꿈을 파는 가게
초등학생이 막 되고 난 후였으니, 여덟 살 때였다. 무려 9년 전.
하나밖에 없는 딸래미에게 교육은 최고로 시켜주겠다는 아버지의 호언장담을 믿고, 우리 가족은 서울로 이사했고 그 이후로 가보지 못했던, 어쩌면 나의 고향에서의 일이었다. 당시 잘나가던 아버지의 회사는 한순간에 부도가 나버렸고, 동네에서 유일하게 외제차를 굴리던 집인 우리는 콧대가 하늘모른 줄 모르고 높았기에, 익숙치않은 사람들의 시선과 동정의 손가락질을 피해 두 시간 거리의 깡촌으로 이사를 왔다. 부자는 망해도 삼년은 간다고, 시골이라 확실히 싼 땅값에 집의 평수는 줄어들지 않았지만 우리의 빌어먹을 콧대는 놀부네 처마에 지푸라기를 물어 나르던 꼭 그 제비의 다리와 같이 형편없이 꺾였다. 남은 건 자존심, 이라는 엄마의 떨렸던 목소리가 아직 귀에 생생하다.
처음 그 깡촌에 들어섰던 날. 나는 여덟 살이 되는 기쁨을 자축하고자 철없이 엄마에게 하드를 먹고 싶다고 용돈을 타냈고, 엄마는 아무 말 없이 하드 열 개는 너끈히 살 수 있을 돈을 작은 손에 쥐어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밖에 없는 아직 어린 딸에게 부도라는 게 무엇인지, 당시 집의 암울한 상황이 어떤지 설명해주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었던 것 같다. 나는 손에 잡히는 지폐의 느낌이 좋았고, 그 곳이 어딘 지는 모르겠지만 어딜가나 슈퍼마켓은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가게를 찾아나섰다. 그렇게 삼십 분넘게 거리를 헤매였을 때였다.
“ 가게다 ! ”
도시에서도 보지 못한 하늘색의 예쁜 가게에 나는 혼자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리소리를 지르며 달렸다.
“ 아저씨, 하드 ... ”
문을 열자마자 사내아이 뺨치게 우렁찬 목소리로 하드를 외치던 내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고, 어리둥절하여 날 바라보는 여러 개의 시선에 뒷걸음질 쳤었다. 주춤, 문에서 발을 빼고 바깥의 간판을 다시 바라보니 [ 꿈을 파는 가게 ] 라는 글씨가 읽혔다. 슈퍼 마켓이 아니구나. ‘꿈’ 과 ‘가게’ 라는 단어의 뜻을 알고 있었지만 꿈을 파는 가게라는 게 도대체 어떤 건지 이해 할 수 없어서 그냥 슈퍼마켓은 아니구나, 하고 생각하고 사색이 되었더랬다. 엄마가 남들에게 폐 끼치지 말고 예의바르게 행동하라고 했는데.
“ 꼬마야, 넌 어디서 왔어? 익숙한 얼굴이 아닌데.
여기 애들 답지않게 옷도 메이커고, 땟국물도 없어. 얼굴도 하얗고. ”
“ 애 놀랬잖아. 지금 누구 심문해? ”
“ 아, 미안미안. ”
나보다 몇 십 센치는 큰 남자어른들이 하나, 둘, 셋 ... 무려 열 세명이나 있었다. 또래 아이들보다도 키가 사, 오센치는 작았던 여덟 살의 나는 마치 거인들에 둘러싸인 걸리버가 된 것 마냥 아무 말도 못하고 땀이 찬 손에 쥐어진 지폐를 부적마냥 바들바들 잡고있을 뿐이었다.
“ 이건 뭐야? 돈이네. ”
“ 너같은 애기가 들고있기엔 너무 큰 돈 같은데, 혹시 어디서 훔쳤어? 오빠가 엄마한테 안이를테니까 솔직하게 말해봐. ”
“ 딱 보면 몰라? 심부름 나왔다가 길 잃어버린 것 같은데. 훔치긴 무슨, 옷 입은 것만 봐도 부잣집 자식이야. ”
“ 아, 그런가? 그럼 요번에 큰 집으로 이사오는 애가 너야? ”
큰 집 ... 우리 집이 큰가? 크긴 했지만 이전 집에 비하면 보잘 것 없었다, 크기만 비슷하고. 하지만 이 동네를 둘러보니, 새로 이사온 집보다 더 큰 집은 한 채도 볼 수 없었다. 더 멋있는 집도 한 채도 볼 수 없었다. 어른들 말로는 막 ‘ 철거 되기 직전의 ’ 집들 뿐이었다. 이 오빠들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일까?
“ ... 예에. ”
“ 아, 맞나보다. 거기서 여기까지 꽤 먼데. ”
걸어온거야? 아직 여섯 일곱 살로밖엔 안보이는데, 다리 아프지 않아? 앉아서 쉬다 갈래?
낯선 이의 친절을 곧이곧대로 믿지 말라고 엄마는 누누이 강조했었고, 내가 부잣집 자식이라 더 그렇다는 걸 나도 체감 상 늘 느끼고 있었지만, 여덟 살이었던 나는 내 나이를 일곱 살로 보는 말에도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피곤했다. 고개를 끄덕이고, 한 오빠가 문을 열고 다른 방으로 들어가더니 곧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이다맛 하드를 들고 나왔다. 나는 그 하드에 정신이 팔려 내 손에 있던 지폐가 떨어진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 그 돈을 전부 썼어? ”
“ ... ... ”
“ 전부 ? ”
“ ... 응. ”
“ 계속 거짓말 할거야? 엄마 속상하게 할거야? ”
“ ... ... ”
“ 말해도 괜찮아, 혹시 누가 뺐었니? 때렸어? ”
“ ... 잃어버렸어. ”
“ 진짜 잃어버린거지? 이상한 사람들이 막 달라고 하진 않았어? ”
“ 응, 진짜야. ”
“ ... 그럼 다행이고. 또 하드먹는다고 아침에 나가서 저녁 늦게까지 안들어오면 혼날 줄 알아. ”
“ 으응 ... 잘못했어. ”
정말 잘못했어. 평소에는 잘못을 해도 억울하다며 눈물 방울을 달곤 빽빽 우겼었는데, 무슨 일인지 풀이 확 죽어 대답하는 모습이 엄마의 속을 어지간히 태웠었다고, 서울에 올라와서도 가끔 농담삼아 말하곤 했다.
그 오빠들이 가져갔을까? 그 뒤로 한달 동안 나는 엄마만큼이나 속을 까맣게 태웠다. 친절했고, 하드도 공짜로 주었고, 재미난 얘기들도 해주었었는데. 보면서 전에 살던 동네의 승우 오빠처럼 눈썹도 잘생겼고 코도 오똑하고, 꼭 옆 집 은혜언니가 좋아할 상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그런데 정말 그 오빠들이 내 돈을 가져갔을까? 아니, 정확히 말하면 엄마의 돈을? 만난지는 몇 시간 안됐지만, 앞으로도 자주 만나서 놀고 싶다고 생각하며 씩씩한 발걸음으로 집에 온건데, 집에 도착해서야 손에서 사라져버린 지폐 한 장이 생각나다니. 참 얄궃었다. 처음으로 친해지고 싶은 오빠들도 생긴 거였는데, 참 얄궃었다, 정말.
그냥 주는 걸로 해야지, 하드값으로 줬다고 당당히 말해야지하고, 할 말 까지 다 생각해놓고 가게를 찾아가려고 운동화 끈을 서투르게 리본으로 묶던 찰나였다. 딩동, 벨소리가 들렸다.
“ 누구세요 ? ”
찾아 올 사람이 없는데 하며 어리둥절해 하며 나간 엄마의 목소리도 들렸다.
“ 아, 그랬어요 ? 에구, 괜히 죄송하네요. 괜찮으시면 들어와서 차라도 마시는게? ”
누가 찾아온 건지 궁금해져 빼꼼 방문을 열고 현관께로 목을 길게 빼니, 엄마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보였다. 하드 오빠였다. 아, 오빠다 ! 한번 밖에 안만났었는데, 뭐가 그리 반가웠던건지, 반은 반가움으로 또 나머지 반은 쑥스러움으로 나갈까 말까 하며 고민했다.
“ 여주야, 안녕? ”
어떻게 알았지? 그 질문에 스스로 대답을 해보기도 전에 나는 하드 오빠에게 지금 내 모습을 들켰다는 부끄러움이 앞섰다. 모르는 척, 못들은 척 다시 방안으로 들어와서 문에 기댔다. 여주야, 인사해야지 하는 엄마의 재촉소리도 들렸다.
“ 아, 괜찮아요. 저는 이만 가볼게요, 그럼. ”
“ 차라도 한잔 들고 가시지. 차는 너무 덥나? 냉커피라도. ”
“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어서요. 잠깐 전해주려고 들렀어요. ”
“ 아휴, 감사해요. 또 이렇게 신경써주시고. ”
“ 정말 괜찮아요, 그냥 어쩌다 주웠던 건데요, 뭘. ”
“ 그래도 ... ”
그리고 다시 한번 인사소리와 문이 열리는 소리.
나는 다시 방문을 빼꼼히 열고 하드오빠의 뒷모습을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눈에 담았다.
좋아, 오늘 무슨 일로 온 건진 모르겠지만, 내일 꼭 찾아가야지 !
“ 여주야, 이리 잠깐 나와봐. ”
“ 응 ? ”
“ 이것 좀 봐봐. ”
생글생글 웃고 있는 엄마의 손바닥 안에는 가게에서 잃어버린 초록 색 지폐 한 장이 쥐어져 있었다.
꼭 잃어버린 그 지폐였다.
“ 어, 이건 ... ! ”
“ 맞아, 여주 네가 잃어버렸었던 그 지폐야. ”
“ 오빠가 갖다줬어? ”
“ 응, 저 오빠 알아? 여기 살지는 않고 여행중인데, 읍내 슈퍼에 들렀다가 네 돈을 주웠나봐. ”
“ 응 ? 슈퍼 ? ”
“ 응, 너 하드사러 갔다가 슈퍼 근처에서 돈 잃어버렸었다며. ”
“ 아, 응 ... ”
“ 저 오빠가 네가 써 놓은 이것 때문에 여기까지 주인 찾아주러 오신거야. 근데 이건 언제 썼니? ”
귀엽다는 듯 내 볼을 꼬집으며 엄마는 이번엔 잃어버리지 말라며 돈을 건넸다.
지폐에는 어린이 글씨를 따라하려고 애쓴 듯, 삐뚤빼뚤하게 낙서와 같은 게 써있었다.
김 여 주 , 여덟 살, 들판 옆 이층 집.
그리고 아주 작고 외진 곳에 있어서, 잘 보지 않으면 안 보일만한 반듯한 글씨체.
김 여 주 님의 꿈이 예약되셨습니다.
나는 그 날, 엄마와 아빠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나를 데리고 놀이동산에 가서, 하드를 사주는 꿈을 꾸었다. 아주 행복했다. 그 다음 날, 다시 가게를 찾아보려 했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가게를 찾을 수 없었다. 후에 친해진 몇 안되는 동네 사람들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가게라며 나의 상상력을 높이 샀다. 그리고 그렇게 1년을 막 채워 내가 아홉 살이 될 무렵에 우리 가족은 서울로 이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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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오랜만에 어릴 때 꿈을 꾸었다. 여덟 살 적의 꿈. 이상한 가게에 가서 이상하지만 잘생긴 오빠들을 만나고, 아주 행복한 꿈을 꾸는 꿈. 사실 나도 이젠 그게 현실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냥 친구도 형제도 없이 외로웠던 내가 만들어낸 환상은 아니었을까? 방학 보충을 위해 학교로 향하던 발걸음이 갑자기 멈추었다. 낯설지 않은 하늘 색의 간판이 흔들렸다. 여전히 가게 이름은 꿈을 파는 가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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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 커뮤니티에서 연재 되었었던 글입니다 '^' !!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어... 글잡은 첨 써봐서 뭐 어떻게 하는거죠... 감사합니다...!
혹시 제가 잘못한 게 있으면 알려주시구... 욕만 안먹었음 조켔습니다.... (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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