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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거슨 에쿠니 가오리씨의 [재난의 전날] 을 모방한 것입네다.
(+)스크롤 압박 주의~

눈을 뜨자 방 안이 온통 어슴푸레 했다. 누워있는 자세가 불편해 머리를 들썩였더니 버석한 베개 커버가 얼굴에 문질렸다. 일어나기 싫어서 더욱 몸을 뒤척였더니 이불이 내려간다. 팔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 찬 손으로 몇번 쓸었다. 이른 시간인데도 밖에서는 여러가지 호외 소리가 난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가물가물한 의식을 거두어 본다. 그래도 사라지지 않는 잠은 아직도 날 괴롭혔다. 사람들의 웅성웅성 소리가 창문을 넘어 귓가에 울린다.
손발은 아직도 차가웠다. 수족 냉증이 있는지 의심이 되어 핫 팩을 손에 쥐었다. 어제 쓰다만 원고를 완성하려 부엌 식탁에 올려져 있는 노트북을 열었다. 몸이 노곤노곤했다. 원래 마감일은 오늘 까지인데. 또 전화가 올까봐 핸드폰의 배터리를 분리했다. 배는 그닥 고프지 않아서 손으로 배를 슥슥 문지르고 의자에 앉았다. 마음이 매우 흡족한 기분이였다. 근데 다리가 무거웠다.


"어라?"


왼쪽 다리가 버거웠다. 하얀 트레이닝 바지가 꽁꽁 끼어 움직이지 않았다. 어제까지는 이러지 않았는데. 옆에서 미야옹- 하고 우는 윙키를 흘긋 보고서 다시 내 다리에 신경을 썼다.
풀썩 풀썩. 딱딱한 의자와 버거운 왼쪽 다리가 만나 마찰하는 소리. 깜짝 놀라 잠의 장막에서 헤어나왔다. 왼쪽 다리가 이상했다.
식탁을 짚고 일어났다. 맞은 편 전신 거울 앞에 반듯이 서서 왼쪽 다리와 오른쪽 다리를 비교 해 보자 나는 헙! 하고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왼쪽 다리의 바지가 터질듯이 부어 있었다. 오른쪽 다리에 비해 1.5배 가까이 되는 어마어마한 크기. 이게 뭐야. 속으로 낙심 아닌 낙심을 했다.
허벅지에는 붉은 반점들이 듬성듬성 솟아 있었다. 모기에 물린 자국처럼 부풀어 있는 데다가 주위에는 연디 연한 붉은색의 테두리가 자리했다. 허벅지를 손으로 쓸면서 이 흉측한 상처들에 순간 공포스러웠다.
약한 열감이 전해지면서 찌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상처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듯한 모양새에 쯧쯧. 나도 모르게 혀를 차고 말았다. 아침부터 무슨 날벼락이래. 약한 열감이 더 심해지는걸 느끼면서 한숨을 푹 쉬었다.
혹시 몰라 팔을 들어 요모 조모 살펴보니 상처들이 군데 군데 솟아 있었다. 약한 열감에 작은 상처들.


"아침부터 정신 사납게."


공포영화를 하나 찍은 듯 했다.



우현은 창가에서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있었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나를 발견하자 눈꼬리를 접으면서 환하게 웃어 보인다. 그럼 나는 그냥 고개를 꾸벅 숙인다. 캐주얼한 옷차림. 항상 손목에 걸린 가죽 시계.


"왔어요? 원고는요?"


출판사에서 나를 3년동안 담당한 스텝. 웃는 모습도 멋있고 가만히 있는 모습도 멋있어 모든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된 그는 한가지 흠이 있다면 게이였다. 가방에서 부스럭 봉투를 꺼내 눈 앞에서 흔들자 냉큼 가로챈다. 빼곡히 들어있는 A4용지들을 겉눈으로 훑어 보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성열씨 문장은 뭐랄까. 잔잔해서."


푸슬 웃었다. 우현의 옆쪽으로 저녁 놀이 잔잔하게 지고 있었다. 뭐 먹을래요? 넌지시 메뉴판을 내밀면서 나에게 말하자 나는 손으로 다시 밀며 오늘은 일이 있어서요. 라고 대충 얼버무렸다. 청 소재의 바지로 가려진 내 허벅지가 눈 앞에 여전히 생생했다. 일단 임시 방편으로 머큐로크롬을 뿌리고 나왔다.


"아, 명수씨요?"
"네, 뭐."
"오. 드디어?"
"에에, 뭐."


나도 게이. 명수도 게이. 우현도 게이. 주변 사람들은 다 게이. 
우현과는 사적인 이야기도 나누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워낙 뺀질나게 만나는 사이여서 그런 것도 있고, 같은 게이 인것도 있고, 고양이 한 마리를 집에서 기르고, 그냥 그렇고 그런 편집자이다. 잡일도 시키는 미더운 사이.
사실 몇달 전 부터 김명수는 계속 청혼을 해왔다. 그냥 마이너로 만나던 사이였는데. 그래도 좋은 점은, 나처럼 여유있고 느리다는거. 공감대가 형성이 많이 되서 좋긴 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였다.


"오늘은 저녁 같이 못먹겠네요."
"그래요? 그럼 이만 일어나죠."


드드득. 의자가 은근한 소리를 내면서 끌렸다. 나는 힘없이 웃으면서 터덜터덜 일어났다. 계산은 저쪽이 하겠지. 크로스 백을 어깨에 더욱 단딘히 걸치면서 가게를 나섰다. 딸랑- 맑은 종소리가 웅웅.



"홍역? 수두?"
"그런건 옛날에 다 앓았었어."


손가락으로 수화기를 톡톡 치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머큐로크롬 따위! 청바지를 벗고 허벅지를 보는 순간 그 혐오감이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한발 한발 내 딛을 때마다 허벅지가 조여와 제대로 걸을 수도 없었다.


"성종이가 수두였나? 헷갈리네."


이성종 얘기가 왜나와. 소리를 빽 지르면서 마음을 진정시켰다. 아무튼 병원을 한번 가보렴. 내가 의사는 아니잖니? 오호호 웃음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귀로 들어갔다. 한숨을 쉬면서 끊어요. 엄마는 당황하면서 잠깐 거린다. 


"그만 됬어요. 나 잘꺼에요."
"너 혹시 지금 술 마시니?"


엄마는 내가 맨날 술만 들이 붓는줄 아나.


"그런 거 아니래도. 잘자요. 아빠한테 안부 전해주고."


한참을 묵묵부답이였다가 엄마가 넌지시 이야기를 한다.


"그래도 병원은 꼭 가보렴."


일순 침묵히 흐르고 나는 수화기를 내려 놓았다. 얻은 정보가 없어. 전화기를 가지런히 정리해 두면서 꼬인 전홧줄을 풀었다. 다시 엉킨다. 풀고 엉키고 풀고 엉키고. 기분이 더 언짢아졌다. 줄을 던지고 방에 들어가서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기분이 젠장했다.



다음날 엄마의 당부대로 병원을 찾았다. 그 전에 다른 병원을 다녀 왔는데 진료는 5분 안에 후다닥 끝나고 전문의도 난 몰라요 하는 그런 식이였다. 확실한건 홍역과 수두는 아니에요. 한숨을 쉬며 나오던 나를 가만히 앉아있던 노인이 빤히 보면서 이야기했다.


"독충일지도 모르겠구만."
"독충이요?"
"아니면 알레르기 증상이나 전에 먹었던 무언가가 잘못 됬을 수도 있고."


알 수 없는 눈물이 내 눈을 비집고 나오자 가만히 이야기 하던 노인도 놀란 모양이였다.
옆 동네에 있는 피부과에 접수를 하고 의자에 앉아서 가만히 기다렸다. 부은 허벅지는 도무지 가라 앉을 생각을 하덜 않았다. 
그 전날에 내가 뭘 먹었더라. 우현을 만나 먹은 커피랑 집에서 간단히 먹은 바나나 조각들. 그리고 명수와 함께 마신 술. 그 세계에서 나른하게 먹은 위스키. 위스키.
명수와 나는 술을 곧잘 들이킨다. 위스키를 좋아한다는 공통점. 항상 어딘가엘 가도 위스키가 위치해 있으면 꼭 하나 시켜서 너도 한잔 나도 한잔 나누어 먹는다. 처음 만난 그날도 위스키. 먼저 입을 연건 명수였다.


"술 꽤 하시네. 근데 마시는거 진토닉 같은거 좋지 않아요?"
"글쎄요, 전 마시고 싶은걸 마시는게 더 좋아서."


내 대답에 명수는 피실 웃었다. 그리고 합석을 해서 계속 마셨다. 누가 어떤 술을 좋아하고 이런 술도 먹어봐야하고 저런 술도 먹어봐야 한다느니. 결국 그날 밤은 어떻게 됬는지 모른다. 일어나니 그의 집이였다는 것 정도.
이성열님. 간호사의 나긋한 목소리에 어기적 일어나서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사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반듯한 명판에 김 성 규 라고 석자가 인쇄되어 있었다. 어디가 불편하신지? 나는 대답 대신 검은 진료 의자에 앉아 바지를 허벅지까지 안간 힘을 써서 걷었다.


"세상에나. 엄청 심하네요."


김성규라는 그 의사는 놀라는 제스처를 해 보이면서 가까이 다가왔다. 잠깐 실례. 그의 손이 말릴 새도 없이 허벅지에 손을 댄다. 따뜻한 손의 느낌이 갑작스레 침범했다. 꾸물 꾸물 몇번 눌러 보고 손을 빼더니 이렇게 말했다.


"멍울. 심하네요."
"네?"
"이거 원인이 벼룩이에요. 혹시 집에 반려동물 키우시나? 그거 때문인거 같은데."
"습진만 일흔 일곱 군데에요."
"그럼 그만큼 뜯긴거죠 뭐."


의사는 무표정한듯 처방전을 써 주었다. 윙키는 분명히 잘 씻기고 배변도 정해진 장소에서만 하는데. 손톱을 잘근 잘근 씹으면서 진료실을 나왔다. 
벼룩이라니. 충격을 받아 어안이 벙벙했다. 내 반려 고양이. 그리고 그 아이 자체가 워낙에 깔끔해서 벼룩은 생기지 않는데. 어렸을때부터 성종이와 고양이 고양이 노래를 불러 두손 두발 다 든 엄마가 고양이를 한 마리 사주셔서 걔 때문에 익힐 껀 다 익혔는데. 허무함이 내 마음을 쓸었다.

윙키. 현관에 들어서면서 컨버스 화를 벗어 던지고 윙키를 불렀다. 자기 집에서 유유히 몸을 말아 놀고 있었다. 깨끗한 녀석. 익숙하게 녀석을 들어 무릎에 뉘이고 배의 털을 헤집었다. 젠장. 벼룩의 흔적이라는것을 알기 까지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윙키. 왜그래요?"
"어어. 있었어?"


명수다. 김명수가 내 방에서 나왔다. 나보다 한살 아래인 김명수. 뺀질나게 내 집에 드나드는게 이제는 익숙해졌다. 티셔츠를 툭툭 털면서 윙키의 상태를 넌지시 묻는다. 벼룩 생겼어. 계속 자신을 잡고 있는게 짜증이 났던건지 윙키는 몸부림을 쳐서 내 무릎에서 나온 뒤에 살짝 열린 현관으로 유연하게 나갔다. 윙키! 밖으로 나갔지만 이미 벽을 타고 저만치 가버렸다. 원인은 이거구만. 미간을 구겼다.


"윙키가 벼룩이라니. 허허."
"짜증나."


저만치 간 윙키를 보면서 짜증나. 짜증나. 불만을 토로했다. 뒤에서 명수가 품 안 가득히 안아와서 기분이 좀 느슨해졌다. 따뜻해.


"참. 욕조에 물 받을께요. 같이 씻어요."
"잠깐. 뭐라구?"


안돼. 내 추한 허벅지를 보일 순 없어. 놀라서 뒤를 돌자 웃으면서 왜 그렇게 놀라요. 한두번도 아닌데 하면서 안심시키려고 한다. 그게 아니라고! 속에서는 비명이 연신 들렸다.


"왜그래요? 뭐 숨기는거 있어요?"
"아니... 그게..."


우물쭈물. 명수는 입맛을 다시면서 물 받을께요. 하고 들어갔다. 길다란 복도에서 나는 고난을 마주했다. 젠장할. 비방용 단어가 연신 퉁겨졌다.
하는 수 없이 수건을 두르고 들어가기로 했다. 예전에는 수건이 다 둘러 졌었는데. 지금은 퉁퉁 부어버린 왼쪽 다리 덕분에 집게로 집어야 했다. 먼저 앉아있던 명수는 푸풉 하고 웃었다. 웃기냐? 쏘아 붇이자 손으로 입을 막으면서 진정한다.


"이런 적 한두번도 아닌데 왜 가려요."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다구."


명수의 반대편에 앉자 뜨끈한 기운이 온 몸을 감쌌다. 노곤노곤. 어제부터 계속 스트레스를 받던 나는 나른해졌다.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젠장. 눈치 챈건가. 일부러 다리를 모아 세우면서 계속 눈치를 봤다.
계속 눈치만 보면서 명수와 몇마디 나누면서 한 목욕이 다였다. 예전 같으면 기운에 눈이 맞아 섹스도 하고 그랬을텐데. 오늘은 그럴 기분이 아니여서 먼저 씻고 나와버렸다. 안방 거울 맞은편에 앉아 머리를 위이잉 말리던 내 뒤로 다 씻은 명수가 와서 어깨를 감싸 안는다.


"오늘 이상한거 알아요?"
"나중에 알려줄께."


그대신 오늘은 같이 자자. 옆에서. 꼭. 배싯 웃으면서 명수를 돌아보자 알았다며 입을 촉 맞춘다. 우울했던 기분이 어느정도 풀렸다.



윙키를 계속 씻겼다. 샴푸도 아깝지 않게 팍팍 써가면서 문댔지만 벼룩은 여전히 오리무중에 사라지지 않았다. 기분이 더럽네. 땀을 슥 하고 닦아내면서 윙키를 쏘아봤다. 세상도 모르면서 미야옹- 가는 목소리를 냈다. 결국엔 우현에게 문자를 보냈다. [고양이 벼룩 어떻게 없애요?] 받고선 우현도 당황했으리라. 고양이 털을 빗으면서 벼룩 퇴치에 푹 빠진 나는 진동 소리에 퍼득 정신이 들었다. [글쎄요. 그건 그렇고 다음 연재나 빨리 써서 내죠?] 젠장.
하루하루가 고난이였다. 계속 물렸다. 처음 물렸을때는 안절 부절. 근데 몇번 물리고 나니 마음이 태연했다. 매일매일 집안 청소도 깨끗이 하고 있었다. 삶이 부지런해졌다. 명수는 가끔 와서 윙키의 상태를 보고 약을 사다 주곤 했다. 목에 벼룩 퇴치용 목걸이를 낀 윙키가 나름 싫었다.


"바보같은 고양이."
미야옹-


가는 목소리로 날 응수했다. 아니거든. 고양이의 목소리가 생생히 귓전에 울렸다. 

우현이 집에 찾아왔다. 원고는 언제 낼꺼에요? 그때처럼 캐주얼한 차림으로 집 앞에 선 우현을 보면서 당황했다. 드, 들어 오세요. 떨리는 목소리로 거실로 안내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윙키는 또 나갔다. 다른 고양이들과 노닥거리고 있겠지.


"지금 그럴 상황이 아니라니깐요."
"보아 하니 벼룩이 생겼네. 쯧쯧."


그럼 내가 그때 보낸 문자는 폼입니까? 발끈. 주전자에서 빼액 하고 수증기가 뿜어 나왔다. 속으론 내심 편집장이 서둘러 가길 원했다. 나처럼 되면 안되는데. 인스턴트 커피를 컵에 풀고 물을 죽 부었다. 뿌연 연기가 설설 올라와 코 끝을 간질였다.


"그럼 이달분 연재 좀 미뤄요. 양해해 줄께요."
"아, 고마워요."


커피를 우현의 앞에 내려놓으면서 조심스레 앉았다. 퉁퉁 부은 허벅지가 터질 것 같았다. 후끈한 열기를 찬 손으로 식히면서 억지로 귀를 기울였다.


"눈을 보니까 나보고 빨리 가라는 눈치네요."
"아..."
"하긴, 나도 벼룩 생긴 집에는 오래 있고 싶지 않아요."


저 새끼가. 편집장이고 뭐고 주먹이 나갈 뻔했다. 여유롭게 커피를 한 모금 한 모금 마시더니 바지를 툭툭 털면서 일어났다. 표정을 최대한 밝게 하고 아니꼬운 말투로 배웅을 했다.


"안녕히 가세요."
"잘 있어요. 성열씨."


복도를 걸어가면서 손을 흔든다. 꼴도 보기 싫군. 그때 윙키가 미야오옹- 가는 소리를 내면서 열린 현관문 안으로 들어갔다. 고고한 걸음걸이. 나는 서둘러 문을 닫고 물을 데운다. 이제 나들이를 했으니 씻어야지. 조심스레 윙키를 안아들어 욕실로 들어가려는 순간에 띠디딕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김명수구나. 아랑곳 하지 않고 들어갔다.


"윙키 씻기게요?"
"응. 괜찮으면 나좀 도와주라."
"기다려요."


외투를 벗어 소파에 냅둔다. 내 방에 있는 편한거 아무거나 꺼내입어. 윙키를 안아들고 들어가 욕조 안에 있는 물에 넣었다. 뜨뜻했는지 그냥 앉아서 고개를 요리조리 돌린다. 곧이어 명수가 들어오고, 나는 고양이용 샴푸를 손에 가득 담은 채로 그를 맞이했다. 얘좀 잡아봐. 명수가 세게 잡자 나는 손을 문대 벅벅 윙키의 털을 문질렀다. 왠일로 얌전하군. 

명수덕에 가뿐하게 씻겼다. 시간이 평소의 절반으로 줄어들어 헤실헤실. 명수에게 안기면서 고마워 라고 했다. 뭘요. 가만히 앞머리를 만져주면서 이리 저리 살짝식 돌린다. 거실에 뻥 뚫린 창문으로 저녁 놀이 불그스름하게 비추었다.


"근데, 허벅지가 왜이렇게 부었어요?"
"...아."


느껴졌나보네. 풋 웃으면서 별거 아니라고 얼버무렸다. 아무도 아파해 주지 않네. 병원을 한번 가봐야겠어. 피부과를 다녀온지 벌써 며칠이 지난 지금이였다.


김성규라는 이상한 -내 눈에만- 의사만이 내 상태를 보고 마음 아파했다. 더 심해진거 같아 보이네요. 사라지지도 않다니. 어지간히 고집 있는 벼룩이네. 혀를 쯧쯧 차면서 차트에 무언가를 써 내려간다. 벼룩의 피해 사례로 사진을 남겨두고 싶다나. 


"그럼 뜻대로."


응하는 내 대답에, 의사는 아니꼬운 눈으로 날 흘려내려본다.


"이런걸 진담으로 받는 사람이 있네."


무관심했다.
처방되는 약이 한가지에서 두가지로 늘어났다. 전에 바르던 반투명 연고에 포스터 칼라 물감같은 희고 끈끈한 연고를 받았다. 반투명 연고를 바를때 순간 시원해져서 기분은 좋다. 다만 덧 바르는거라 중간에 자꾸 영겨서 그렇다고나 할까. 또 식생활을 현미식으로 바꾸어 볼 생각이 있냐면서 권유를 받았지만 그닥 바꿀 생각은 없었다. 이런 것 때문에 변화라니. 못마땅했다.

쓰레기를 버리려고 더운 여름에 얇은 가디건과 긴 바지를 입고 나왔다. 밤이여도 열대야라 이마에서 땀이 푹푹 솟았다. 큰 봉투를 통에 던지고 가려는 순간 익숙한 발치가 발 끝에 닿았다. 김명수다. 직감적으로 눈치챘다.


"보고 싶었어요."
"나도."


서로를 마주보면서 솔직하게 말했다. 명수의 손을 잡아 끌어 집으로 들어가면서 기분이 나아졌다. 벼룩과의 사투. 끝나지 않은 이 여름의 전쟁. 푹푹 솟는 땀을 닦으면서 손을 잡아 끌었다.
아직 밥을 먹지 못했다고 말하는 김명수 덕에 남은 찌개와 밥을 퍼서 거실 탁자에 차려 주었다. 한 술 크게 떠서 입안으로 먹는 명수 덕에 또 부엌에 가서 물을 받아 왔다. 천천히 먹어.


"채널좀 돌려줘요."
"어, 어."


명수의 식사가 끝나고 싱크대에서 설거지를 하는 나에게 명수는 다가와서 진한 키스를 퍼부었다. 입이 놀랄만큼 화끈거렸다. 혀에서는 찌개 맛이 확 났다.


"입 안이 차요."


명수의 손이 쇄골을 만지작 거린다. 싫지는 않다.


"이성열."


그때, 부어버린 허벅지가 눈 앞에 선했다. 나는 쇄골을 만지던 그 손을 황급히 떼어버리고 싱크대에서 떨어졌다. 미치겠군. 명수는 놀란 눈으로 날 쳐다봤다.


"왜그래요?"


긴 한숨.


"......"
"사실대로 말해봐요."


명수는 위스키를 마시면서 말했다. 나도 한잔 달라면서 잔을 내밀었다. 갈색의 진한 액체가 잔에 담긴다.


"벼룩한테 물렸어."
"...고작 그거?"


고작 그거라니! 위스키를 넘기다 잔을 쾅 하고 내려놨다. 명수가 깜짝 놀라 어깨를 움찔 했다. 허이구. 그걸로 나 싫어한거 였어요? 장난스러운 눈길로 나를 보면서 위스키 잔을 내려두었다. 살짝 키스를 하는 입술에서 위스키 향이 옅게 났다.


"그럼 우리 또 같이 목욕해요."
"그래. 그러자."


마지막 남은 위스키를 입에 털어 넣으면서 보일러를 틀었다. 바닥이 뜨뜻해지고 물이 위잉 데워졌다. 명수는 티셔츠를 벗으면서 물을 받으러 들어갔다. 안방으로 들어가 의사가 처방해준 약을 덧바르면서 흥얼흥얼 했다. 상처들한테 약 발라야지. 부드러운 곡조로 말했다.


"다 받았어요. 나 먼저 들어갈테니까 준비 되면 들어와요. 참. 저번처럼 수건 가리고 들어오지는 말고."


변태. 풉 웃으면서 덧바른 약이 스미길 기다렸다. 말라라 말라라. 어쩌면 오늘 밤은 길 수도 있겠고, 짧을 수도 있겠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축축하고 끈적이는 약이 스밀때까지 빠져 있었다. 어쩌면 명수가 부르지 않았더라면 다 스민 약을 못 느끼고 계속 입을 헤 벌리고 있겠지.
욕실로 들어가자 명수는 팔을 죽 벌리면서 이리 오라고 했다. 나는 웃으면서 뜨뜻한 물 안으로 들어가서 폭 안겼다. 김명수 품. 따뜻해. 탄탄한 가슴에 얼굴을 슥슥 문대면서.


결국 그날 밤은 후끈 후끈. 뜨거웠다.


참. 벼룩은 어떻게 되었냐. 결국엔 윙키를 친정으로 보냈다. 친정은 시골이라 깨끗해서 윙키가 지내기엔 안성 맞춤이겠거니 했다. 엄마가 와서 윙키를 데려갔다. 미야오옹- 작별 인사를 하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손을 흔들었다. 옆에 있던 명수도 잘가- 손을 흔들었다. 그 후에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근 한달만이였다.


"벼룩이 없어졌더라."
"진짜? 여기가 도시라서 그런가."


역시나 손가락으로 수화기를 톡톡 치면서 엄마와의 대화를 이어갔다. 옆에서 책을 보던 명수가 윙키 다 나았데요? 하고 물었다. 응. 말하는 쪽을 잠깐 손으로 막으면서 대답했다.


"알겠어."
"참. 네 상처는 다 나았고? 저번에 보니까 붓기가 장난 아니더라."
"응. 다 나았어. 걱정마."


붓기는 다 가라 앉았다. 상처들은 딱지가 내려 앉아 거무스름하게 듬성 듬성 흉터가 나있었다. 이제 왼쪽 다리와 오른쪽 다리의 크기는 엇비슷했다. 그럼 잘 지내렴. 엄마가 먼저 전화를 끊자 나도 그제서야 수화기를 내려놨다. 노트북을 다시 내 앞으로 끌어와 원고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탁탁탁. 경쾌한 타자의 자판 소리가 거실을 가득 메웠다.


"안쓰면 또 혼나죠?"
"어. 남우현 개자식. 지가 편집장이라면 다냐."


풋. 명수는 웃으면서 맞아요. 하고 같이 깔봤다. 햇빛이 우리 둘을 비췄다. 몸이 나른해졌다. 여름의 낮. 더운데더 땀이 안나서 신기했다. 이제 가을이라서 그런가. 명수의 어깨에 머리를 올리면서 비스듬한 시선으로 글을 써 내려갔다.

그 여름의 벼룩과의 사투의 결말은 매우 화목했다.

그리고, 나는 명수의 청혼을 받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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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의 맨드라미의빨강 버드나무의초록 중 재난의 전말을 보면서 문득 생각났지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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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우앙.. 진짜 달달한거 잘쓰시네야우ㅜㅠ저번 풍섬껌 키스도 그렇고ㅜㅜㅜㅜㅜ이런거 좋아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2년 전
독자2
올해 조은대요??풍선꼼키스랑. 오도독도좋았는대!!
12년 전
독자3
오미달달달달!!쓰시는작품들다너무좋아여ㅠㅠㅠ
12년 전
독자4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저 작가님 작품다 봤성열!ㅠㅠㅠㅠㅠㅠㅠ
다 좋아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작가님도 좋아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2년 전
독자5
그대금소뉴ㅠㅠ진짜달달달달ㅋㅋㅋㅋ근데중간에나무현씨바밤바가튼시킼ㅋㅋ얄밉고짱나구그르네옄ㅋㅋㅋㅋ니가뭔데!!ㅋㅋㅋㅋ그대잘봐써요♥♥
12년 전
독자6
으어어엉 더 뱉어내요 빨리ㅠㅠ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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