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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만화 단편/조각 고르기
이준혁 샤이니 온앤오프
모가파 전체글ll조회 1345l 1

 

 

 

 


 

 

 

 

 

 

 

 

 

 

 

 

 

 

 

 

 


 지긋지긋하게 비가 내리던 계절이었다고,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계속해서 내리던 여름의 비가, 그날 밤도 멈추지 않고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나는 여름의 비를 좋아하지 않았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 마냥 계속해서 줄기차게 내리는 것도, 그 끈적끈적한 공기도 싫어했었다. 여하튼 그 날 한 밤 중에, 어렸을 때부터 몸이 많이 아팠다던 종대가 비를 잔뜩 맞고서는 우리 집에 왔었다. 언젠가 내가 사주었었던 파란색 우산을 그대로 손에 든 채. 그 해 여름에 들어서면서 종대의 건강은 눈에 띄게 나빠지고 있었던터라, 나는 무섭게 화를 내었다. 하지만 종대는 그 하얗게 질린, 지금도 잊지 못해서 이렇게나 마음이 아픈, 병색이 완연한 그 모습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우뚝 서있었다. 화를 내다가, 그 모습에 마음이 아파서, 너무나도 아파서, 나도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씻기부터 하라고 말하며 옷과 속옷 같은 것들을 안겨서 욕실로 떠밀자 종대는 '고마워요, 아저씨.' 하고 웃었다. 어쩌면, 울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얼굴로.

 

 

 

 

 

 

 

 

 

 

 

 

 

 

 

 

 

 

종대의 젖은 옷을 세탁하기 위해 세탁기에 넣고 버튼을 누른 뒤 거실로 오자 종대는 어쩐 일인지 불도 모두 다 꺼버리고 그 깜깜한 어둠 속에서 텔레비전을, 어쩐 일에서인지 싸구려 같은 야한 영화를 보고 있었다. 웅크려서 무릎을 껴안고, 왠지 모르게 필사적인 눈빛으로, 텔레비전만을 보고 있었다. 묘한 기분에 그런 종대의 옆에 앉아서 나도 화면을 응시했다. 소리까지 잔뜩 줄여놓은 텔레비전에서는 난잡한 화면과 인위적인 여성의 신음소리가 작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소리 마저도 창 밖의 빗소리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지만. 한동안 그렇게 둘 다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 종대가 작은 목소리로 '아저씨….' 하고 나를 불렀다. 익숙했어야 할 날 부르는 그 작은 말에, 평소같았으면 냉큼 대답했었겠지만, 나는, 끝끝내 대답하지 못했다. 왠지 종대를 보는 것 조차 겁이 나서, 옆을 돌아보면 왠지 없어져버릴 것 같은, 그런 기분에.

 

 

 

 

 

 

 

 

"만약에, 만약이지만, 내가 사라지게 된다면…."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종대는 상관 없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그 사이 영화는 끝나버렸고 까만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우습지만, 필사적이게 용기를 내어 종대의 옆모습을 보았다. 여전히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던 종대의 옆모습. 불투명하게, 얇게 떠다니고 있던 텔레비전의 그 미약한 빛 속으로 투명하게 녹아들어갈 것만 같았던, 아직도 생각하면 눈물이 날 것 같은 종대의 모습.

 

 

 

 

 

 

 

 

 

 

 

 

 

"그때는 아저씨의 삶을 살아요."

 

 

 

 

순간, 그렇게 말하는 종대의 모습이 너무나도 위태로워 보여서, 나는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았다. 이 넓고 넓은 도시에 나와 종대만이 남아있는 기분, 의지할 사람이, 함께 숨쉴 수 있는 사람이 종대뿐인 것만 같은, 그런 막연한….

 

 

 

"눈물은 보이지 말아요."

 

 

 

 

 

마치 노래가사 같은 그 말이, 종대가 언제 말했는지도 모르겠는 그 말이, 너무나도 그애 다웠어서 울 수 없었던 그 말이, 내가 기억하는 종대의 마지막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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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하게 들리는 빗소리에 잠이 깼다. 침대에서 일어나 혹시나 하는 생각에 베란다로 나가보니 역시 비가 새하얗게 물안개를 일으키며 내리고 있었다. 잠이 덜 깬, 몽롱한 기분에 나는 빗방울이 주륵주륵 떨어지고 있는 창문에 등을 기대고 빗방울이라도 된 것 처럼 미끄러지듯 주저 앉았다. 이렇게 비의 계절이 오면, 오늘처럼 종대의 꿈을 꾼다. 느릿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며 나는 다시 종대의 흔적을 따라다녔다. 저기가 종대가 앉았던 곳, 종대가 보던 TV, 종대가 물을 뚝뚝 흘리며 들어섰던 현관, 언젠가 내가 선물로 주었던 파란색 우산을 기대어놨던 신발장, 그날 밤의 김종대…. 눈을 다시 감고 나는 꿈의 시간 이후를 떠올리려 애쓴다. 하지만 언제나와 같이, 종대는 꿈 속의 종대- 그 모습으로 끝나있다. 다시 천천히 눈을 뜬다. 신발장이 보인다. 그 위에 올려놓은 우리의 사진과 함께 보낸 시간의 증거들이 담겨 있는 상자가 보인다. 하지만 역시, 종대의 파란 우산은 없다.

 

 

 

 

 

 

"어디 있는거야."

 

 

 

 

 

빗소리와 함께 내 목소리가 웅웅 울린다. 어디 있는거니, 너도, 너의 기억도.

 

 

 

 

 

 

 

 

 

 

 

 

 

 

 

 

 

 

 

 

 

 

 

 

 

 

 

 

 

 

 

 

 

 

 

 

 

 

 

 

 

 

 

 

 

 

 

 

 

 

 

 

 

 

 

 

 

 

 

 

 

 

 

 

 

 

 

 

"우리는 어떻게 휴가가 딱 시작하자 마자 장마가 오냐."

 

 

 

 

 

 

 박복한 인생이라며 우는 시늉을 하는 준면에게 슬쩍 웃는 척을 하며 그러게. 하고 짧게 대답하고 나는 계속해서 카페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알록달록한 여러 색의 우산 속에서 파란 우산을 찾기 위해. 최후의, 마지막의 기억조차 없이 사라져버린 김종대를 찾기 위해.

 

 

 

 

 

 

 

 

 

"…크리스, 야!"

 

 

 

 

 

한참 창문 밖을 보고 있다가 준면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더니 준면이 답답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수술 집도시에만 볼 수 있다는, 우리 병원 간호사들에게 인기 있는 진지한 표정으로. 복도에 서서 얼굴을 붉히며 꺅꺅대던 간호사들이 생각나 슬쩍 웃자, 준면이 어이 없다는 식으로 허- 하고 웃는다. 준면은 이제 나에게 종대에 관해 묻지 않는다. 처음 얼마동안은 연락은 왔는가 아직인가 묻던 준면은, 여전히 무너질듯 마음 아파하는 나를 보는 것을 못견뎌했다.

 

 

 

 

 

 

 

"너 아직도 찾냐."

 

 

나는 대답하지 않고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빨간색, 분홍색, 하얀색… ….

 

 

 

 

 

 

 

"끄집어내."

 

 

 

무슨 소리냐고 물을 요량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준면은 안쓰러워 죽을 것 같다는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표정에, 나는 반쯤 벌렸던 입을 다시 다물 수 밖에 없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기억을 끄집어내."

 

 

 

 

창밖으로는 아직도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김종대는 나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사람들 틈에 섞여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김종대는 나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사랑했던걸까. 김종대는 날 어떤 존재라고 인식하고 있었을까. 넌 왜 갑자기 떠나버렸을까. 난, 나는 다만…, 그래 나는 다만…. 종대를 처음 만났던 날을 떠올려봤다. 그 날의 나는 상당히 지쳐있었다. 의사라는 직업이 힘들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까지 사람을 혹사시킬 수 있는 직업이라는 것을 몸으로, 머리로 깨달아가고 있었던 시절. 실로 오랜만에 집에 가게 되어서 집방향이 같은 준면과 함께 병원을 나섰다가 몸이 너무 피곤해서 이대로 가다가는 길에서 쓰러져 자버릴 것 같다고 농담을 주고 받으며 커피를 사기 위해 무작정 보이는 편의점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 김종대가 있었다.

 

 

 

 

 

 

 

 길게 놓여져 있는, 의자도 없는 스텐딩 테이블에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이 기대어 서서 종대는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커피에 뜨거운 물을 부으며 나는 계속해서 종대를 쳐다보았다. 그때의 나의 마음을 아직 나는 확신하지 못한다. 어떤 마음으로 종대를 쳐다보고 있었는지. 첫눈에 반했다던가, 그런 말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런 흔한 말을 쓰기에 그날의 종대가 너무 강렬했던 탓이리라. 새벽 3시가 넘어가는 시간, 기껏해야 고등학생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 아이가 이 시간에 편의점에 서서, 그것도 어울리지 않게 커피를 마시고 있는 광경. 마치 혼자서 다른 시간에 머무는 듯 아이의 눈은 창 밖에 박혀있었다. 창 밖은 암흑. 네온사인이 기괴하게 반짝거리고 있는 다른 세상. 무언가를 찾는 듯이 계속해서 아이는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커피에 물을 다 붓고, 준면이 집에 안가냐며 물었지만 나는 먼저 가라고 말했다. 준면은 잠시 고개를 갸우뚱 거리다가 너무 피곤했는지 그냥 알았다며 먼저 편의점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나는 뜨거운 커피를 들고 종대의 옆에 섰다. 그리고 종대처럼 창 밖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너는 무엇을 찾고 있는 걸까.

 

 

 

 

 

 

 

 

 감기는 눈을 몇 번이고 비벼가며, 몇 잔째인지도 모르는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꿈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처음 들었던 김종대의 목소리. 성인 남성의 목소리도 아니고, 그렇다고 여자같지도 않은, 소년의 목소리.

 

 

 

 

 

"무서워요. 지금 밖으로 나가면 누가 손목을 잡고 어둠 속으로 끌어당길 것 같아요."

 

 

 

 

 천천히 종대의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아이는 웃고 있었다. 한없이 유약한 얼굴로. 하지만 눈빛에는 왠지 모르게 힘이 잔뜩 들어가 있어서, 종대는 아이같지도 어른같지도 않았다. 그런 표정인 주제에 눈에는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러고보니 김종대는 항상 그랬었다. 마지막의 그날도, 분명히.

 

 

 

 

 

"갈 곳이 없어요."

 

 

 

그렇게 말하며 아이는 내 옷깃을 쥐었다. 분명 종대는 예쁜 입꼬리를 올리며 웃고 있었지만 내 눈동자에 비춰져있는 종대의 모습은…,

 

 

 

 

"데려가 주세요."

 

 

 

울고 있었다. 내 마음이 다 아프도록, 온 몸으로 울고 있었다.

 

 

 

 

 

 

 

 

 

 

 

 

 

 

 

 

 

 

 

 

 

 

 

 

 

 

 

 

 

 

 

 

 

 

 

 

 

 

 

 

 

 

 

 

 

 

 

 

 

 

 

 

그렇게 말한 주제에, 김종대는 집이 따로 있었다. 하지만 그 날은 우리 집에 머물렀고 그 후에도 자주 내 집에 드나들었다. 종대의 '진짜' 집이 어디인지는 아직도 모른다. 심지어 전화번호까지도. 그러고보니, 나는 종대에 대해 모르는게 너무 많구나. 나이조차도 모른다. 함께 있을때는 그런 것을 물어보는 시간도 아까워서,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나도 소중해서, 모든 것을 잊었다. 짧은 시간안에 종대는 당연스레 습관처럼 보는 사람이 되었고 그와 다른 의미로 나에게 습관같은 사람이 되버린 것이다. 자연스럽게, 공기같은 사람. 그렇게 익숙하지만 나에겐 같이 있는 시간이 항상 초조하고 조바심이 났다. 그래, 어찌보면 난 항상 감이 좋은 사람이였으니까.

 

 

 

 

"아…."

 

 

 

 이것저것 떠올리며 걷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 편의점 앞이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 날의 나는, 김종대를 만나기 위해서 존재했다. 이 편의점도, 스텐딩 테이블도, 커피도. 그 날 졸린 눈을 비비며 커피를 사러 들어갔던 편의점은 김종대 때문에 존재했다. 종대를 만나기 위해서 나는 그날 이 길을 걸었다. 모든 것이 널 만나기 위해서…. 나는, 나는 단지….

 

 

 

 

 

 

"단지, 널 사랑했었어."

 

 

 

 

 

 입으로 울리는 목소리가 슬펐다. 갑자기 떠나버린 너를 원망하고 싶었을까.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내 마음과, 아직도 모르겠는 너의 마음.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바지에 튀긴 빗방울 때문인지 걸음이 무거웠다. 몸과 마음, 모두가 무거웠다. 종대로 인해서.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떠나버린 김종대. 기억조차 남기지 않았다. 울고싶은 마음에 눈에 눈물이 가득 맺혔지만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김종대의 기억을 찾아내자.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너의 기억을 좇아서.

 

 

 

 

 

 

 

 

 

 

 

 

 

 

 

 

 

 

 

 

 

 

 

 

 

 

 

 

 

 

 

 

 

 

 

 

 

 

 

 

 

 

 

 

 

 

 

 

 

 

 

 

 

 

 

 

 

 

 

 

 

 

 

 

 

 

 

 

 

 

 

 

 

 

 

 집에 돌아왔더니 바지 밑단이 모두 젖어있었다. 축축하고 불쾌한 느낌에 바로 욕실에 가 씻고 옷을 갈아입고, 머리도 말리지 않고 현관 앞에 앉았다. 벽에 기대어 앉아서 눈을 감았다. 여름 감기에라도 걸릴려고 하는지 머리가 무거웠다.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 마쉰다. 시야와 함께 머릿속도 깜깜하게 변한다. 창 밖으로는 빗줄기가 더욱 거세져 빗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린다. 오늘도 김종대의 꿈을 꾸게 될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 이상의 것을 떠올리고 싶다. 마지막 너의 모습을. 헛웃음이 지어졌다. 떠올린다고 해도, 내가 지금 가장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이상하게도 예전과 같이 종대와 생활하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 나의 가장 큰 소망은, 내가 바라는 가장 큰, 나만의 소원은….

 

 

 

 

 

 잠이 살풋 들려는, 흐릿한 의식 속에서 나는 현관문이 열리는 것이 느껴졌다. 비의 기운과 파란 우산, 종대의 잔뜩 젖어있는 바지가 보였다. 하지만 어쩐일에서인지 나는 그 모습에 놀라지도 않고 눈을 감았다. 옆에 누가 앉는 느낌이 나더니 잔뜩 젖어있는 머리가 내 어깨에 기대어진다. 나는 웃으며 꿈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나의 기억을 끄집어 낼 수 있도록 도와줘, 종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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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 잔뜩 내리고 있었다. 새벽이 꽤 깊었는데도 새벽빛이 밝지 않아서, 나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장마의 막바지 부분이었다. 종대는 비를 잔뜩 맞고 우리집에 왔고, 감기라도 걸렸는지 온몸에 열이 잔뜩 올라서 겨우 잠들었었다. 몸이 많이 약한 종대에게 감기는 일반 사람들처럼 가벼운 문제가 아니였으므로 나는 아침이 밝아오는데로 종대를 병원에 데려가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여름은 해가 길다. 벌써 파랗게 해가 떠야하는데. 베란다에 서서 고개를 갸우뚱 거리고 있으려니 뒤에서 뭐하냐는 종대의 목소리가 들렸다.한 손에는 담요를 들고 눈을 비비며 서있는 종대가 사랑스럽다. 더 자라며 말하는 나에게 괜찮다며 웃는 종대를 가까이로 불러서 손에 들고 있는 담요를 종대의 몸에 둘러주었다. 덥다며 칭얼거리는 종대에게 감기때문에 안된다며 나는 김종대를 꽉 껴안아버렸다. 꼼지락대다가 결국 웃으며 조용히 안겨있는 종대를 데리고 거실로 들어와 종대를 쇼파에 앉히고 나도 그 밑에 앉았다. 아픈 종대의 곁을 지키느라 잠을 자지 못하여 졸렸기 때문에 나는 종대의 무릎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어어, 자는거에요?"

 

 

 

 

 

 너 때문에 피곤해- 하고 눈을 감고 있는데 종대가 에이, 약골이네. 라고 말하며 키득키득 웃더니 상체를 내려 내 얼굴을 감싸듯 안는다. 열때문에 땀을 많이 흘렸지만, 종대에게서는 깨끗한, 마치 물의 향기라도 되는 듯한 향이 난다. 그 향에 기분이 좋아져 슬쩍 웃었다. 고마워요. 하고 작게 말한 종대의 작은 숨이 느껴졌다. 열이 올라 쌕쌕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생각해보면 언제나 위태로웠던 너의 숨소리, 미약한 너의 존재의 증거. 무언가, 나는 그때, 정확히 감지하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않고 그대로 있었다.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어. 새벽빛이 밝아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와 함께라면 영원히 밤이여도 괜찮아. 종대는 그대로 내 머리를 껴안고 있다가 잠시 후 '이제 가야되요.' 하고 말했다. 그 말투가 꼭 종대의 평상시 말투와 똑같아서, 나는 힘이 빠져버렸다. 나는 깜짝 놀라지도, 놀라서 반문하지도 못했다.

 

 

 

 

 

"아까 말했던 것처럼, 이제 아저씨는 아저씨의 인생을 살아요."

 

 

 

 

 그렇게 말하고, 종대는 울었다. 처음에는 약하게 떨며 흐느끼더니 나중에는 어린아이처럼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나도 크게 소리내어 울고 싶었지만 어쩐일에서인지 나는 울지 못했다. 종대는 그렇게 울다가 비척비척 일어났다. 그래, 그때 내가, 분명 내가, 종대의 옷자락을 잡았었다. 처음 편의점에서 종대가 내 옷자락을 잡았던 것처럼. 데려가줘. 종대는 그런 나를 내려다보고 열이 올라 빨개진 얼굴로 엹게 웃더니 내 손을 자신의 손으로 잡고, 분명한 태도로 떨어뜨려놨다. 분명 열이 잔뜩 올라서 온몸이 뜨거웠을텐데, 손이 소름끼칠정도로 차가웠어서 나는 더 서러워졌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지만 꾹 참고 쇼파를 짚고 겨우 일어서자, 종대는 그런 날 걱정스러운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렇게 봐, 네가 날 왜 그렇게 봐.

 

 

 

 

"눈물은 보이지 말아요."

 

 

 

 노래가사같은, 종대다운 그 말에 나는 결국 울지 못하고 종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갈꺼야? 짧게 묻는 내 말이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서, 내가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는지가 실감이 났다. 응. 하고 짧게 대답한 종대가 까치발을 들고 내 목에 팔을 둘렀다. 안기는 작은 몸이 형편없이 말라있었어서, 그 마른 몸이 내가 꽉 껴안기라도 하면 부서져버릴 것 같아서, 나는 아이를 조심스럽게 안고 몇 번이고 종대의 이름을 불렀다. 종대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은 것 처럼. 응, 응, 응. 하고 계속해서 대답하던 종대는 내가 감정이 북받쳐 목이 메어 종대의 이름을 더 이상 부르지 못하자 조심스럽게 나에게서 떨어졌다. 작별인사는 안할게. 하고 말하는 종대의 목소리도 나처럼 사정없이 떨리고 있어서, 나는 더 서러워졌다.

 

 

 

 

"눈을 감으면, 바로 만날 수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고서는, 종대는 뒤돌아서서 현관으로 걸어갔다. 마치, 아무일도 없는 것 처럼. 평소와 같이. 네가 없으면 나는, 전혀 행복해질 수 없어. 붙잡지도 못하고 가만히 서서 종대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눈물을 꾹 참고 있었다. 현관문 손잡이를 잡은 종대가 뒤를 돌아보고, 가만히 서 있는 내 모습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나는 손을 마주 흔들어주지도 못한 채, 그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나는, 내가 사랑했던 이 세상에 아저씨가 계속해서 앞으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죽을 수 있으니까 행복해요."

 

 

 

 

그렇게 말하는 종대의 모습이 정말 행복해보였으므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붙잡지 못하고, 그저 손을 마주 흔들어주었다. 그 모습에 종대도 웃으며 손을 흔들고, 문을 열고, 그대로 나가버렸다. 내가 주었던 파란 우산은 여전히 손에 들고서. 조금씩 밝아오는 파란 새벽빛 속으로 뛰어들듯, 그렇게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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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준면이냐? 어. 아침부터 미안하다. 어, 그런데…, 응. 종대 꿈을 꿨어. 응. 응. 모조리 다. 아, 걱정했었냐? 아니, 울지 못했어. 응. 종대가 마지막에 눈물은 보이지 말라고, 그랬었어. 응. 약속이니까. 울지 못했어. 강해져야지. 그런데 준면아, 아침에 눈을 딱 떴는데, 난 아직 현관에서 자고 있더라고. 그런데, 눈을 딱 떴는데, 파란 우산이 있었어. 응. 현관에. 나 그래서 약속, 지키고 싶었는데. 응, 우산보고 울었어. 그런데 신발장 위에 올려놨던 그 우리 사진 들어있는 박스, 그게 없어졌어. 그리고 내 옆자리가, 아니야. 안울어. 그런데, 내 옆자리가, 내가 잤던 옆자리가 축축하게 젖어있어. 응? 아, 바라는거? 어제까지는 생각이 잘 안났거든. 근데 오늘 아침에 딱 일어나서 소원 하나 빌었어. 종대가, 못만나도 되니까 이제, 살아있게 해주세요. 응. 살아있었으면 좋겠어. 그게 내 소원이야.

 

 

 

 

 

 

 

 

 

김종대가, 살아있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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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니까, 비오는 날의 배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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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대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그날의 구희수씨가 본 게 종대인지 종대의 령인지 생령인지는 아무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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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면 같이 있고 싶죠 그런데
사랑하니까 같은 하늘 아래 있길 바랄 수도 있어요 저 하늘 위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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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타세요? 저는 가을도 타고 비오는 날도 탑니다
그래서 소설이 이런가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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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이런거너무좋아여ㅠㅠㅠㅠㅠㅠㅠㅠㅠ
10년 전
독자1
ㅠㅠㅠㅠㅠㅔ뭐예요ㅏㅠㅠㅠㅠ슬프잖아요ㅠㅠㅠㅠ
10년 전
독자2
아련하면서도 뭔가ㅠㅜㅠㅜㅠㅜ 아진짜 종대 살아있는건지 죽은건지... 크리스 말처럼 살아있었으면 좋겠네요...ㅠㅜㅠㅜㅠㅜ
10년 전
독자3
이런거 좋아여 ㅠㅠ 슬퍼여 ㅠ
10년 전
독자4
종대가 살아있기를ㅠㅠㅠㅠ
10년 전
독자5
ㅜㅜㅜㅜ아진짜 취향저격
10년 전
독자6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종대야ㅠㅠㅠㅠ희수야ㅠㅠㅠㅠㅠㅠㅠ진짜 다 취향저격ㅠㅠㅠㅠ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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