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한테선 향기가 나, 짜증날 정도로 달콤한 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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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깜짝이야. 내 이름은 또 어떻게 알았대.
나를 계단 끝으로 데려갔던 그 날 이후로 몇일간 권순영이 조용했다. 평소처럼 책상에 엎드려 잠만 자고 가끔 친구들이 찾아올때만 느릿하게 움직이고. 다만 시끄러운건 애들의 말 뿐이었다.
노란머리가 드디어 돌았어. 모든 소문을 한마디로 결합하자면 그랬다. 한달동안 한마디도 없어 벙어리라는 소문까지 돌았던 애가 향기 하나에 입을 열더니, 여자애 손목을 잡고 어디론가 끌고 갔다. 뭐 대충 내 얘기 맞다.
당연한 수순처럼 나한테도 온 관심이 쏠렸다. 쟤가 권순영이 냄새맡은 애래. 향이 그렇게 좋다며? 온갖 애들이 다 찾아와서 냄새를 맡아본다고 난리였다. 하지만 다들 코를 대본 후에는 아무 냄새 안나는데...하며 의아해져 돌아가곤 했다.
그런 행동에 민망해지는건 온전히 나의 몫. 내말이 그말이다. 나한테 무슨 달달한 냄새가 난다고. 솔직히 처음엔 내가 못맡는 향이라도 있나 싶었다. 근데 모두 입을 모아 아니라니까 괜히 무안해진다.
무슨 권순영만 맡을 수 있는 그런 향이라도 있는건가? 어떻게 된건지는 몰라도, 일단 권순영은 명백하게 변태인 것 같다.
그리고 애들의 소문이란 밑도끝도 없이 와전되는 경향이 있어서 일찌감치 발을 빼야 된다. 난 괜히 권순영과 얽히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러기엔 이미 너무 얽혀 버렸는걸. 언제 본 사이라고 그렇게 뻔뻔하게 아는척을 해가지고는.
아, 갑자기 권순영이 미워진다. 곤히 잠들어 있는 권순영을 세게 한대 때려주고만 싶다. 정작 당사자인 지는 세상모르고 엎드려 자고 계신다. 그래 자기는 건드리는 애들 없다 이거야. 나는 이렇게 전교생한테 시달리게 해 놓고. 아, 갑자기 권순영이 너무 얄밉다. 샛노란 머리털을 다 뽑아버리고만 싶다.
부글부글 끓는 마음에 뒷자리에 위치한 권순영의 책상 바로 앞까지 향해 주먹을 불끈 쥐었다가, 내가 참고 말지 하는 마음으로 한숨을 푹 쉬고는 복도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권순영의 앞을 스쳐 지나가려는데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김여주...자다 깬듯 목이 잠긴 목소리. 처음엔 작아서 들리지도 않았다. 얘는 내가 지나가는걸 어떻게 안거지. 정말 나를 부른게 맞나 싶어 잠시 멈칫 했다가 다시 잠잠해진 권순영을 보고 살며시 걸음을 뗐다.
스윽, 뭔가가 손가락을 움켜쥔다. 권순영의 손이다. 내 손가락을 끌어 쥐더니 조심스럽게 움직인다. 곧이어 꼼지락거리기 시작한다.
"나인줄 어떻게 알았어?"
권순영은 고개를 들지도 않는다. 엄마 손을 잡는 아기처럼 그저 손가락만 꼬옥 붙들고 있는다.
"향기가 나잖아."
말문이 막혀 뒤통수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곧이어 권순영의 손이 나를 끌어당긴다. 휘청거리며 발이 떨어진다.
"여기 있어."
권순영은 자신의 옆자리에 나를 앉힌다.여전히 손가락은 잡은 채로. 자리에 앉아 멍하니 손가락을 바라보고 있자니, 부스럭 소리를 내며 노란 머리카락이 움직이더니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려 엎드린다.
아 망했어. 눈 마주쳐 버렸잖아. 나는 어김없이 꼼짝할 수 없었고 그렇게 권순영과 눈을 맞추고 있었다. 권순영은 조심스럽게 반대쪽 손을 이용해 내 머리를 책상에 눕힌다. 그렇게 우린 책상에 엎드려 마주보는 자세가 됐다.
괜히 간지러운 기분에 얼굴이 붉어지고 있는데 마주보던 권순영이 문득 말한다.
"저번엔 내가 너무 거칠었지."
계단으로 끌고 간 날을 말하는 것 같다. 다행히 고개를 끄덕거리는건 가능한것 같아 간신히 움직인다.
"나도 알아. 그건 사과할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권순영의 얼굴을 이렇게 자세히 보는 건 처음이다. 가지런히 내려오는 코, 눈을 닮아 크지 않은 입, 잠의 흔적이 남아 약간은 부시시한 얼굴이지만. 꼭 권순영 같았다. 무슨 의미인지는 몰라도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고개만 잠잠히 끄덕이는 나를 보며 권순영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앞으로는 안 그럴테니까, 대신 니 향기 맡게 해줘."
정신이 번뜩 들었다. 맡긴 뭘 맡아. 고개를 세차게 가로젓고 싶었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이건 또 안되나 보다.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무슨 눈빛이 마주치기만 하면 마취제라도 맞은듯이 온 몸이 풀리는지.
"또 대답 안하네."
안 하는게 아니라 못하는거다 이 자식아.
"넌 참 이상해. 내 눈만 마주치면 쥐죽은듯이 조용해지고. 까칠하던 애가 고분고분해지고."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또 말한다.
"나랑 눈 마주치고 이러는 애는 한명도 없었는데."
그래. 맞는 말이었다. 다른 애들은 처음 보는 권순영의 눈빛을 겁내고 피할 뿐이었다. 눈을 마주친 후 난리를 치던 내 친구도 결국 무섭다는게 결론이었다. 권순영과 눈이 마주치고 이렇게 대책없이 꼼짝 못하는 애는, 내가 처음이었다.
"이런 향기도 너한테서만 나고."
손을 끌어당겨 코에 대더니 숨을 깊게 들이마신다. 이젠 민망함에 얼굴이 정말 뻘개졌을거다. 얘는 어쩌려고 진짜.
"대답 없으니까 알겠다는걸로."
능글맞은 목소리로 말하더니 아예 손깍지를 끼고 냄새를 맡아 댄다.
"이정도는 허락해 줘. 나 지금 되게 많이 참고 있는거 알지?"
나를 힐긋 쳐다보더니 환하게 웃는다. 처음 봤을 때의 그 표정. 아씨, 인정하기 싫지만 권순영 웃는거 하나는 진짜 예쁘다.
"너는 잘 모르겠지만."
몸을 확 땡겨 다가오며 귀에 속삭인다.
"너 진짜 사람 미치게 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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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럽 독자님들께 작가가 드리는 말씀♡ |
헝헝 다들 너무 감사합니다ㅠㅠㅠㅠ 제가 어제 독자님들 빨리 만나고 싶어서 혼신의 힘을 다해 글을 써서 올렸습니다! 그렇게 확인 누르자마자 기절....어제 솔직히 너무 피곤했거든요 흑흑 일단은 암호닉 신청해주시고 신알신 해주시는 분들!짧게라도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 모두 너무너무 큰 힘이 돼요ㅠㅠ저 진짜 글쓰다가 막힐때마다 읽을거에옇ㅎㅎㅎㅎㅎㅎㅎㅎ 답글도 최대한 달아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내사랑 암호닉분들♡♡♡제가 진짜 많이 아끼는거 알쥬?제 뽑뽀 받으세요(싫어도 받으셔야 해영) 그럼 향기성애자 수녕이랑 다 같이 달려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