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꿉친구 김태형과 한 지붕 아래 살게 된 이야기.txt
♬ 불꽃심장 - 괜찮아"토닥토닥"
나름 신나게 놀다 두시가 조금 넘어 김태형과 늦은 점심을 먹었다. 물에서 논 이후엔 역시 라면이지.
사이좋게 컵라면을 하나씩 먹고 다시 물에 들어갔다. 이번엔 탕이 아닌 수영을 할 수 있는 풀장이었다.
우리집 공식 맥주병인 나는 수영을 전혀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나에 비해 김태형은 나름 물에서 잘 노는 편이었다.
어차피 하지도 못하는 수영, 그냥 물장구나 치자는 심정으로 물에 몸을 담갔다.
구명조끼에 의해 몸은 붕 떠오르지만 나름 발을 열심히 차봐도 앞으로 나아가질 않았다.
결국 나는 물에서 깝치다 발을 헛디뎌 머리끝까지 전부 빠지고 말았다.
놀라서 발버둥을 치기도 전에 김태형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코며 입이며 물을 잔뜩 마셔 기침이 나왔다.
"괜찮아?"
"아니, 켁. 어후."
그나마 김태형이 계속 등을 두드려줘서 조금 나아졌다. 아직까지도 코 속이 찡하다. 이래서 물이 싫어.
코를 훌쩍이며 수영장 벽에 올라가 걸터 앉았다. 갑자기 물놀이 존나 하기 싫어졌다는 표정으로 앉아 발로 물장구를 치니 내 앞까지 따라온 김태형이 내게 손을 내민다.
"내려와."
"왜."
"수영 알려줄게."
"방금 나 죽을 뻔했어."
"아이구, 그랬어? 그니까 알려줄게. 김탄소 안 죽게."
내 어리광 같지 않은 어리광에 김태형은 마치 나를 어린 애 달래듯 다룬다.
하는 수 없이 손을 잡고 다시 물로 들어갔다. 그러더니 내 두 손을 제 어깨에 올리고선 마주보게 한다.
그리고는 무작정 발을 저으란다. 그래서 저었다. 아주 힘차게.
"잘하네."
"지금 되게 수중 물리치료 받는 기분이거든."
김태형은 물 속에서 뒷걸음을 치고, 나는 그런 김태형의 어깨를 잡고 수영 비스무리하게 앞으로 나아간다.
생각해보니 나는 지금 평소보다 김태형의 얼굴을 아주 가까이서 마주하고 있었다. ...잘생기긴 했네.
그렇게 발을 구르다보니 어느 새 수영장 끝에 다다랐다. 그제야 바닥에 발을 딛었다.
"잘했어."
"이러고 혼자서는 못한다는게 함정이지."
"혼자 할 일이 뭐가 있어."
나 있잖아, 나. 하는 김태형의 말에 그닥 공감은 하지 못했다. 글쎄다. 나는 이제 그냥 물가를 안 올 예정이라...ㅋ.
여름도 아니라 그런지 금새 물놀이에 흥미를 잃은 나는 점점 온천이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내가 재밌게 놀지 않으니 김태형마저 넘치던 똘기를 잃어갔다.
시간도 애매해서 곧 있으면 해가 질 것 같았다. 해가 질 쯤에 저녁을 먹는다 했으니 딱히 다른 놀거리를 찾을만한 시간도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몸을 담갔던 온천탕에 앉아 김태형을 향해 이제 뭐해, 우리. 하고 물으니 그러게. 하는 답없는 답을 한다.
"산책이라도 할래?"
"산책? 어디서?"
"이 앞에 바다잖아."
"헐. 맞아."
"너 되게 나가고 싶어하는거 같아."
쟤는 나에 대해 너무 잘 안다. 이만 죽어줘야겠어.
산책이라는 말이 그닥 내키진 않았었지만 바다라는 말에 얼른 나가고 싶어졌다. 물에 들어가는건 별로지만 풍경을 구경하는건 좋달까. 역시 나도 여자였어.
물에 불려진 미역마냥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단 나가는 것이 훨씬 이득일 것 같았다. 어차피 이제 이곳에서 할 것도 없으니까.
김태형과 나는 물에서 빠져나와 각자의 탈의실로 들어갔다. 외투를 걸치고 로비로 나왔는데, 솔직히 인간적으로 너무 춥다.
따뜻한 온천에 들어가 있을 때가 행복한거였나. 왜 그 땐 그걸 몰랐을까. 머리를 말리느라 시간이 좀 늦어져서 그런지 로비엔 이미 김태형이 서있었다.
리조트 건물을 나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엔 정말 바다가 있었다. 나는 멀리서 바다가 보일 때부터 걸음이 빨라져 어느 새 백사장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나는 무슨 바다를 처음 구경하는 애 마냥 오, 오 거리며 호들갑을 떨었다. 나도 여자인지라 이런 평화로운 풍경을 보고 감상에 젖을 수 있다는 걸 오랜만에 깨달았다.
겨울이라 사람도 얼마 없는 것이 역시 바다는 겨울 바다야.
"진짜 이쁘다..."
"...그러게."
마침 해는 뉘엿뉘엿 저물어 노을이 지고 있었다. 찬 기운의 바다에 붉은 색이 입혀지는 것을 보며 추위도 잊고 있었다.
파도가 채 닿지 못하는 모래사장에 그어진 선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런 내 옆에서 김태형이 따라 걸었다.
무언가를 달라는 듯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내민 김태형의 손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하이파이브를 하는 것처럼 내 손을 툭, 치고 도망을 쳤다.
덕분에 의도치 않게 티비에서나 보던 나 잡아 봐라 놀이로 변질이 됐지만, 김태형은 정말 날 잡으면 죽일 듯이 쫓아오고 있다는게 문제였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행복한 커플의 모습인 줄 알테지만 난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숨이 차올라 결국 뜀박질을 멈추고 미안. 하고 사과를 했다. 사실 거의 잡힌 거나 다름이 없었다. 쓸데없이 달리기만 빨라가지고.
결국 김태형에 의해 손을 붙잡히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의 역경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나의 맞은편에선 내 기준에선 아주 큰 개 한마리가 해맑은 표정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개는 좋아. 문제는 무서워한다는거지.
나는 황급히 김태형의 뒤로 숨어 허리춤을 붙잡았다. 그런 나를 향해 응? 하는 반응을 보이던 김태형이 그제야 맞은 편의 개를 발견했다.
"아직도 강아지가 무서워?"
"저게 강아지냐. 개지. 겁나 큰 개."
"강아지야~여기 누나 물어~"
"하지마!!"
하지뭬!!! 빼애애액!!! 어느 새 우리 주변까지 달려온 강아지는 헥헥거리며 우리를 쌩 지나쳐 달려갔다.
그 뒤로는 개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아저씨가 죽을 상을 하고 개를 쫓아가고 있었다. 아저씨 화이또...☆
김태형은 개를 좋아했다. 그것도 아주 many.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내가 싫은데.
"오히려 큰 개들이 더 순해."
"무서워...순하고 자시고 무섭다고."
"제일 크고 안 무서운 개가 뭔지 알아?"
"뭔데?"
"태형 강아지."
ㅎ? ㅎㅎ?? 역시 우리 태형이는 개새끼가 맞아^^ 이제 스스로 인정 하다니 다 컸구나^^
표정관리를 하지 못하고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무릎을 굽힌 탓에 키가 낮아진 김태형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휴^^ 우리 개새끼~^^
김태형은 곧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오며 조금만 더 있다 들어가자고 했다.
휴대폰으로 바다의 모습을 잔뜩 담았다. 이제 김태형 사진 내리고 이걸로 프사해야지.
그렇게 한창 셔터를 누르는데, 김태형의 휴대폰에서 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네. 네. 곧 갈게요. 네."
"누구?"
"이모."
"엄마는 왜 나한텐 전화를 안하고..."
아, 맞다. 엄마 아들은 김태형이었지, 참ㅎㅎ...ㅠㅠㅠㅠ
이제 숙소로 돌아가기 위한 발걸음을 옮기는데, 문득. 아주 문득 생각난 것이 있었다.
"근데 있잖아."
"응."
"내가 그 때 술 취해서...뭐 물어봤어?"
"궁금해?"
그럼 궁금하지. 안 궁금하냐. 내 머릿 속에 지우개가 기억을 다 지워버렸는데.
"니가 대답도 아직 안했다며."
"나중에 해줄게. 대답."
"질문이 뭐냐니까?"
"비밀."
-
저녁은 말 그대로 바베큐 파티였다. 작은 천막 안에는 김태형의 가족과 우리 가족 뿐이었다.
고기와 밥도 있었지만, 테이블엔 술도 있었다. 사스가 술가족. 술 없으면 분위기도 없다는게 우리 아빠의 평소 생활신조이다.
구워지는 고기와 함께 술잔이 오갔다. 엄마와 이모도 마찬가지였다.
나에게도 술잔이 놓여졌지만 여기서 취했다간 어떤 모습을 보일지 몰라 마시지 않겠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하지만 내 옆에 앉아있던 김태형은 어른들이 주는 술을 잘만 받아마셨다. 저러다 훅가는거야, 저러다...
나는 홀로 짜게 식어 고기만 집어 먹었다. 물놀이를 한 후라 배가 무척 고픈 탓에 젓가락질을 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안 마실거야?"
"응. 절대."
"웬일이야."
"하하, 누가보면 매일 술만 마시는 앤줄 알겠네. 하하."
다른 사람들이 소주잔에 소주를 채울 때 나는 사이다를 채워 건배를 했다.
김태형은 어김없이 어른들이 채워주는 술을 거절하지 못하고 받아마시고 있었다.
난 김태형의 주량을 모르니 어느 정도가 지나야 취하는지도 몰랐다. 계속 지켜봤는데 한 잔을 안 쉬길래 옆구리를 툭치며 괜찮냐 물었다.
그런데 어째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헤헤거리며 웃는 빈도가 잦아지는게, 좀 불안한데.
"야. 그만 마셔."
"괜찮아. 괜찮아."
"아니...안 괜찮아 보이는데..."
나는 얼굴이 붉어진 채 허허, 웃고있는 맞은 편의 아빠를 발로 살짝 건드렸다.
나를 바라보는 아빠를 향해 억지미소를 지으며 김태형을 한 번, 김태형의 술 잔을 한번 바라봐 주고 고개를 저었다.
내 뜻을 알아차린 아빠가 손에 들고 있던 술병을 내려놓았다.
내 옆의 김태형은 겉으로보면 막 취해보이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평소완 다르게 바보처럼 계속 웃고있었다.
내가 지금 확실히 느끼는건데, 김태형 이 새끼 취했음.
"나, 나 화장실."
"혼자 갈 수 있어?"
"응. 그럼."
발음이 멀쩡하다고해서 방심하면 안 되는게, 제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어지러운지 의자에 다시 주저앉았다.
내가 저랬을까, 술 취했을 때...? 노답...
나는 결국 눈물 젖은 고기를 내려놓고 김태형과 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가 김태형이 어느 정도 취했다는걸 아는 눈치였다.
"하하. 화장실 같이 가자."
"괜찮은데..."
"아니야. 나도 화장실 가려고. 하하."
고기 먹고싶은데. 내 고기...고ㄱ...
김태형이 나를 어떻게 집까지 끌고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김태형에게 팔짱을 끼고 화장실로 향했다.
김태형을 화장실에 들여보내고 그 앞에서 한숨을 쉬었다. 나 데려올 때 어지간히 힘들었겠다. 미안하다. 친구야.
얼마 지나지 않아 김태형이 화장실에서 나왔다. 다행히 많이 비틀거리지는 않았다.
이대로 밥을 다시 먹으러 갈 순 없었다. 나는 다시 김태형을 끌고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웬일로 순순히 따라온다.
"너 고기 다 안 먹었잖아."
"괜찮아. 불안해서 못 먹겠어."
"나 안 불안해. 하나도!"
"그래, 누가 너 불안하다했니. 가만히 좀 있어."
"가만히 있었는데..."
김태형은 술 취하면 평소보다 순해지고 말을 잘 듣게 되는 것 같다. 좋네. 매일 취해있었으면.
내 손엔 여자방 열쇠 밖에 없어서 결국 우리 방으로 김태형을 데려왔다.
들어오자마자 혼자 쇼파로 걸어가 앉길래, 나는 거실과 바로 붙어있는 작은 부엌에서 컵을 꺼내 물을 가득 따라 김태형에게 건넸다.
다 마신 컵을 식탁위에 올려놓고 김태형의 옆자리에 앉았다. 물놀이 후 나른해진 몸을 쇼파 등받이에 편히 기댔다.
그리고 김태형을 바라보는데, 취기가 올라오는지 가만히 눈을 감고 머리를 벽에 기대어 있었다.
자나, 하는 생각을 하며 다시 앞을 바라보는데 심한 정적 속에서 김태형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김태형을 향해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다.
"김탄소."
"왜."
"나 취한 것 같아."
"알아."
"그래서 하는 말인데."
"... ..."
나는 계속해서 앞을 바라봤다. 왠지 모르게 이제는 김태형을 돌아볼 수가 없었다.
이유없이 찾아오는 스산함에 괜히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런 진지한 분위기는 질색인데.
"니가 질문한게 뭐냐고 물어봤잖아."
"...응."
"내가 뭐라고 대답했냐고, 물어봤잖아."
"...응."
"근데 난 항상 대답했어."
"... ..."
"넌 모르겠지만."
무슨 소린지, 하나도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내가 한 질문도 모르는데 김태형은 항상 대답을 했다고 했다.
그래서 그게 도대체 뭔데.
"사실 이제 니가 대답할 차례야."
"...뭘?"
"그래서 지금 대답 들으려고."
"...무슨 대ㄷ..."
모든 것은 아주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여전히 고개를 돌리지 못하던 내가 고개를 돌리게 된건, 고의가 아닌 김태형에 의해서였다.
김태형은 내 턱을 손에 잡아 돌리고선 제 얼굴을 내 얼굴과 아주 가까이 가져다 대었다.
덕분에 눈을 바로 앞에서 마주쳤고, 여차하면 코가 닿을 거리였다.
무엇보다 우리 둘의 입술이 무척이나 가까워져버렸다.
이런 상황에 익숙치도 않지만 김태형의 갑자기 달라진 모습이 무서웠다. 나도 모르게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눈을 깔아 내 입술 께를 바라보던 김태형이 다시 나와 눈을 마주쳤다.
나는 확실히 평소완 전혀 다른 김태형의 차가운 눈빛을 두려워 하고 있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 ..."
"... ..."
내게서 심한 떨림이 느껴진다는 것을 김태형도 느꼈는지, 곧 제 얼굴을 뒤로 뺐다. 떨림은 쉽사리 멈추지 않았다.
상황 파악을 하려 얼빠진 표정을 하고 있자 하면, 김태형은 짧게 한숨을 쉬고선 내 머리에 손을 올려 차분히 쓸어내리기 시작했다.
이제야 원래의 김태형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대답 충분히 들은 것 같네."
"... ..."
"미안. 놀랐겠다."
"... ..."
"...잘 자."
그 말을 끝으로 김태형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가버렸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사라진 후에도 나는 쇼파에 앉아, 도통 일어나질 못했다.
-
이해가 가실랑가요
조금 설명을 해드리자면 태형이는 여주도 자신을 좋아하는지 안좋아하는지를 알아보고 싶었던거에요
저런 행동을 했을 때 거부반응을 보이는지를.
하지만 여주는 그런 태형이의 행동이 아직은 설레기보단 무서워하는 눈치네요
나라면 좋을텐데 쩝
위 움짤 참고하시면 될듯합니다 분위기상 글 중간에 넣을 수가 없던...
이제 분위기 똥으로 만드는 저를 욕하시면 됩니다 하하하하하하
연재에 시간 투자를 하다보니 답댓이 느려도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시옵소서..8ㅅ8
~♥~ ~♥~〈 암호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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