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꿉친구 김태형과 한 지붕 아래 살게 된 이야기.txt
♬ 불꽃심장 - 이슬안부
"사람 마음가지고 장난치는거 아니야."
"... ..."
그 말을 듣는 순간 술이 확 깨는 것 같았다. 술이 깨는 약 때문은 아니었다. 진심으로 장난을 치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억울하지도 않았다.
왜 그랬던거지. 이유는 모르지만 사과를 해야할 것 같았다. 그저 잘못을 빌어야 할 것 같았다.
한참이나 내가 말이 없이 바라만 보고 있자, 김태형은 작게 한숨을 쉬고 그대로 걸어가려했다. 붙잡아야 했다. 그래서 붙잡았다.
"...장난치려던거 아니야."
"... ..."
"...나 술 깼어. 진심이야."
"... ..."
너는 내게 뒷모습만 보이고 있었다. 표정이 보이지 않으니 어떤 말이든 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무어라 말을 꺼내야할지, 머릿 속이 정리가 되지 않았다.
너만큼이나 나도 심경이 복잡하다고. 어쩌면 변한건 너 뿐인데 그런 너에게 변하지 않은 내가 맞춰지지 않아서 제대로 돌아가질 않는다고.
하고싶은 말이 참 많았다. 술기운을 빌릴래도 기억을 잃어서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그 수많은 말들까지도.
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
"...모르겠다. 나도."
"...모르겠다니 어쩔 수 없네."
"넌 뭐 대단한거 아는 것 처럼 말하지마."
"... ..."
나도 모르게 화를 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잘못도 아닌데 김태형이 마치 내 잘못처럼 행동하고 말하는게 싫었다. 이것도 하나의 자존심이라면 자존심이었다.
지금 상황에 화를 낼건 김태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끝까지 내 자존심을 내세웠다.
"결국 다 내 잘못이라는거지."
"... ..."
"...알았어. 미안해."
"... ..."
"이제 내가 정말 그만할게."
김태형은 날이라곤 하나 없는 말을 내뱉고 그대로 그렇게, 사라져버렸다. 이 상태로는 집으로 갈 수가 없었다. 실은 가고싶지 않았다.
코 끝이 시렸다. 누군가 지나가다 나를 조금만 건드려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기분만큼이나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찬 바람을 맞으며 무작정 걷다보니 도착한 곳은 김태형이 저번에 앉아있던 놀이터였다.
기억을 되살려 김태형이 앉아있던 그네에 앉았다. 그리고 김태형처럼 똑같이, 앞 쪽 어딘가를 멍하니 바라봤다.
넌 여기 앉아서 무슨 생각을 했어? 아니면 아무 생각도 하고싶지 않았던거야?
시간이 얼마나 지나는지도 모르고 자리에 앉아 일어나지 않았다. 몸이 추운 것도 잊은 채 발을 구르며 그네를 앞뒤로 움직였다.
더욱 찬 바람이 나를 지나쳐 두 갈래로 나누어진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더 흘렀을까,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이 울린다.
'김태형'
"... ..."
몸도, 손도 굳어버려 전화를 받을 수가 없었다.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전화를 받는 것이 두려웠다.
어쩌면 너도 그래서 전화를 받지 않은 것일까, 난 그런 네 맘도 모르고 쓴소리를 마구 해댔더랬지.
이 와중에 지난 일을 떠올리는 내 자신이 웃겨 자조적인 웃음을 짓고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다시 넣었다.
그 때였다. 차디 찬 바람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포근한 무언가가 내 어깨에 걸쳐졌다. 난 목각인형처럼 그대로 멈춰 고개를 돌리지도 못했다.
빠른 발자국 소리가 멀어짐을 느꼈다. 다가올 땐 아무 소리도 내지 않더니.
그제야 고개를 돌려 내 어깨 위의 무언가를 확인하면, 나는 그제야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 채 입을 막고 흐느껴 울었다.
김태형이 자주 입고 다니던 패딩이었다.
차라리 화를 내지, 왜 넌 끝까지 착해서 사람을 더 비참하게 만들어.
-
그 날 이후 김태형과 나는 서로에게 가장 불편한 관계가 되었다. 한 집에 살면서 장난을 치지도, 대화를 길게 하지도 않았다.
사실 김태형은 평소처럼 나를 대하려했지만 내가 그러지 못했다. 나도 이런 내가 답답하지만 이것밖엔 방법이 없었다.
김태형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 깊이 대할수록 무너지는 쪽은 내가 될 것 같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또 겁쟁이었다.
시간이 흘러가는대로 학교에 나갔다. 집에 있을 땐 다른 것엔 신경을 쓰지 않으려 책상에 앉아있다보니 오히려 공부는 더 잘 되었다.
애써 잘 된일이라며 위안을 삼았다. 막상 일찍 끝날 뿐 고등학교와 크게 다를 것 없던 이 주를 보냈다. 그 동안 나에게 찾아온 변화는 없었다.
다만 듣고싶지 않아도 들려온 소문이 하나 있자면, 네가 과 친구에게 여자 소개를 받았다는 것.
별 생각 없이 들여다 본 페이스북의 타임라인에 올라온 네 친구들의 글을 보고 어림짐작을 했다.
다 내가 자초한 일이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따지고보면 뭐라 할 일도 아니었다. 스무 살 대학생에게 소개 받는게 뭐, 그게 뭐 어때서.
강의가 끝난 후 사물함 정리를 하고 있자하면, 누군가에게서 온 문자를 확인한 박지민이 호들갑을 떨며 내게 말한다.
덕분에 옆에 있던 정국이도 놀라서 박지민을 바라본다.
"야. 얘기 들었어? 김태형 여소받았대."
"...알아."
"알아?"
"...응."
어쩌면 사실이 아니었길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네 입도 아닌, 박지민의 입에서 나온 말로 소문이라 생각했던 것을 확신하게 되는 것이 싫었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마음이 단지 너와 내가 친한 친구여서가 아니라는 것. 그것쯤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애매모호한 관계인 너와 나 사이에 다른 누군가가 침범해도 우리 둘 중 누구도 무어라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너도, 나도 잘 아는 사실이었다.
아까 전 점심을 먹은게 체한 것 같다.
신경질적으로 사물함을 닫고 멀뚱히 서있는 그 둘에게 손을 흔들며 먼저 갈게, 하고 말했다.
빠른 걸음으로 내게 걸어온 정국은 어느 새 내 옆까지 와있었다.
"같이 가자. 데려다 줄게."
"아냐. 됐어. 굳이 뭐하러."
"... ..."
"혼자 갈게. 내일 보자."
그런 정국을 지나쳐 빠르게 계단을 내려갔다. 기분도, 컨디션도 최악이었다. 역시 체기 때문일거야. 그렇게 생각하려한다.
절대, 절대로 다른 일 때문이 아닐거라고.
이젠 속이 더부룩하다 못해 꽉 막혀 명치가 당길정도로 체기가 심해졌다. 윗 배를 한 손으로 부여잡다보니 허리가 굽혀진 채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누가봐도 아파보이는 꼴이었다. 한참을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학교를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더 빠른 길을 찾겠다고 정문이 아닌 쪽문으로 몸을 틀었다.
그저 집에 빨리가서 쉬고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 그래도 정문으로 갈걸 그랬나보다.
별 생각없이 쪽문으로 간게 문제였다. 안 그래도 좁은 쪽문으로 나오는 김태형을 마주쳤다. 그리고 그 옆엔 처음보는 여자가 있었다.
내가 정국이와 저녁 시간 집에 돌아왔을 때, 마치 바람 핀 사람의 표정같았다고 해서 그게 무슨 말인가 했는데 지금 보니 알 것 같다.
나는 이미 김태형이 여자를 소개받았다는 것도 알고 있고, 저 여자는 그 여자일 가능성이 높은 것도 알고 있으니 어쩌다 마주친 김태형을 바라본게 그만인데, 김태형은 순간 멈칫하며 나를 마치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설명보다 가장 정확했다. 무슨 바람피다 들킨 사람마냥.
"... ..."
"... ..."
우리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의 이 상황을 신경쓰기 이전에 내 컨디션이 그닥 좋지 못한 것이 더 신경쓰였다.
그래서 김태형을 한 번, 그 여자를 한 번. 바라봐주고는 그 둘을 지나쳐 걸었다. 앞만 바라보며 걷는 내게 닿는 시선이 느껴졌다.
애써 무시한 채 드디어 학교에서 빠져나왔다. 한결 속이 후련했다.
참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아직 사귀는 단계가 아니래도, 김태형의 친구로서의 나는 충분히 응원해줄만한 사람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그 여자를 향해 웃고있던 김태형의 모습이 떠올라 고개를 흔들어 연기처럼 피어나는 기억을 없애려했다.
하지만 그럴 수록 더 진하게 피어오를 뿐이었다.
무겁고 힘든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해 가방과 책을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침대에 누웠다. 배가 아프니 침대에 누워도 편칠 않았다.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점심을 어떻게 먹었길래 이렇게 단단히 체하냐. 진짜.
결국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약통을 뒤졌다. 아무리 찾아봐도 몸살약이나 감기약 뿐, 소화제는 보이지 않았다.
순간 엄마와 아빠는 귀가가 늦을테니 김태형에게 염치없이 부탁을 해볼까, 하다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한창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을텐데 방해를 하는건 더 염치가 없는 짓이니까.
한숨을 크게 한 번 쉬고 다시 침대에 드러누웠다. 슬프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는데 괜시리 눈물이 옆으로 흘러내렸다.
아플 때 곁에 아무도 없는 것이 가장 서럽다는데, 그래서 그런가.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다, 정적을 깨고 울리는 휴대폰 벨소리에 손을 뻗어 발신자도 확인하지 않은 채 귀에 가져다 대었다.
"여보세요..."
'... ...'
"누구세요."
'... ...
"...끊을게요."
'...너 어디 아파?'
김태형이었다. 발신자나 확인하고 받을걸, 순간 후회를 했다.
다 떠나서 얘가 나를 본게 몇 년인데, 그리고 그 동안 아팠던 적이 몇 번인데.
허리를 굽히고 배를 부여잡은 모습을 보고 쟤 아프구나, 하는 생각을 할거라고 예상은 했었다.
그래서 더 빨리 김태형을 지나치려 한건데.
말했듯이 나는 그 둘에게 방해거리가 되고 싶지 않았다. 한참을 머뭇거리다 들려온 네 목소리에 일부러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아니. 안 아파."
'... ...'
"신경 꺼."
대답도 듣지 않은 채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휴대폰이 금새 다시 울려왔다. 이번 발신자는 김태형이 아니었다.
"여보세요."
'어? 받았다.'
"왜?"
'집 앞이야. 나올 수 있어?'
"...집?"
'응. 잠깐이면 돼.'
이번엔 정국이 먼저 전화를 끊었다. 휴대폰을 멍하니 바라보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집 밖으로 나갔다.
엘레베이터에서 내리니, 아파트 입구앞에 서있는 정국이 보였다. 아까 너무 인사를 무뚝뚝하게 해서 지금이라도 웃어주고싶은데, 웃음이 나질 않는다.
"어쩐 일이야. 여기까지."
"아까 체한 것 같다고 했잖아."
"...아."
"집 갈때도 기분 별로 안 좋아보이길래."
"...괜찮은데."
"나도 괜찮아. 내가 주고싶어서 주는거야."
정국이 건넨 비닐봉투엔 소화제와 초콜렛 몇 개가 들어있었다. 그걸 보고 또 울컥하는 마음에 코를 훌쩍였다.
내 성격이 이렇게 거지같아도 나를 챙겨주는 사람이 있다는게, 미안하고도 고마워서.
정국이 뿐만이 아니었다. 사사건건 나를 챙겨주던 박지민도, ...김태형도.
"...고마워."
"... ..."
"...고마워. 진짜."
"...울지마."
"... ..."
"뚝."
정국은 갑작스런 내 눈물에도 당황하지 않고 내 볼에 큰 손을 얹고 눈물을 닦아준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더,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
(태형 시점)
아주 잠깐 지나친 너의 모습이 눈 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가끔씩 밥을 급하게 먹다 체하면 항상 저렇게 허리를 굽히고 걷던 너의 모습이 생각났다.
무엇보다, 학교 밖에서 잠시 마주친 과 선배누나와 가는 길이 같아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이라 너에게 바로 갈 수 없던 것이 후회스러웠다.
너에게 그만한다고, 이제 내가 그만두겠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그럴 수 없어. 도저히 그만 둘 수가 없어.
결국 빠르게 대화를 마치고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전화를 거는데도 참 많이 망설였다.
발신자가 나라는 사실을 모르는지 너는 누구냐 물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너의 끊는다는 소리에 입을 겨우 열 수 있었다.
"...너 어디 아파?"
'아니. 안 아파.'
"... ..."
'신경 꺼.'
딱 들어도 아프고 기운이 없는 목소리로 너는 아프지 않다고 말했다. 그걸 나보고 지금 믿으라는건지, 말라는건지.
집으로 가는 길에 있는 약국에 들러 소화제를 샀다. 그리고 집으로 곧장 달려갔다.
하지만 너는 너의 친구와 서있더라. 그 친구에게 봉투를 건네 받는 네가 집으로 들어가고, 내가 서있는 쪽으로 걸어오는 너의 친구와 마주칠까 몸을 숨겼다.
그 친구가 다 지나가고 나서야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불 꺼진 집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혹여나 약을 먹고 잠에 빠져드는 것에 방해가 될까봐 조심스레 내 방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흘렀다. 지금쯤이면 잠에 들었을까, 하고 네 방문을 열었다. 역시 너는 잠들어 있더라.
"... ..."
"... ..."
네가 받아온 봉투 옆에 내 봉투를 내려놓고선 네 침대 옆에 앉아 너를 바라보았다.
사실 네가 잠들어 있을 때보다 깨어있을 때가 더 좋다는 것을 너는 알까.
아무리 화를 내고 짜증을 내어도 나에게 이야기를 해주는게 좋아. 네 목소리를 듣는게 좋아.
한없이 평화로워야 할 너의 꿈 속에 또 누군가가 찾아와 너를 괴롭히는 듯, 너는 괴로움에 표정을 구겼다.
몇 번의 앓는 소리와 함께 잠결에 주먹을 꼭 쥐기에, 그 손을 가져다 내 손 안에 넣었다.
그러자 너는 내 손에 힘을 주며 다시 평온하게 잠에 들었다.
지금쯤이면 진정이 되었을까 싶어 손을 빼려해도, 너는 내 손을 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그렇다면 난 조금 더 착각해도 되는걸까. 예전엔 아니었더라도 지금 네가 나에게 조금이라도 마음이 있다고 말이다.
네가 이런 상황에 나를 찾고, 내가 있으면 괜찮아진다고. 그러니까 나는 더 착각해볼게.
아주 조금, 그리고 조금만 더.
이런 부분은 빠른 전개로 넘기긔 왜냐믄 빨리 설레미한걸 쓰고 싶기 때문이긔
태형이 찌통 아파하는 분들이 많긔 얼른 돌려놓겠긔
사실 목표는 개강하기 전에 완결내는거긔
개강하면 연재텀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긔
이거 완결나면 형라인멤버들로 글 써볼거긔
암호닉 신청감사하긔
~♥~ ~♥~〈 암호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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