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벚꽃 그리고 너
나는 봄을 좋아했다.
따스한 햇살과, 그 햇살 아래 활짝 핀 꽃들과 초록색으로 물들어가는 여린 잎들이 차가운 겨울은 가고, 따스함이 왔다고 나를 위로해주는 것만 같았다.
꽃들 중에서도, 나는 벚꽃을 유난히 좋아했다.
시간이 남곤 하면, 벚꽃 나무 아래에서 벚꽃을 가만히 내려다 보기도 하고, 벚꽃을 꺾어서 보기도 했다.
그러다 바람이 불어 옅은 분홍색의 벚꽃잎이 휘날리면, 이 세상에서 이보다 아름다운 건 없을 것 같았다.
"벚꽃 정말 좋아하나봐."
"어디가나 하고 항상 따라오면 여기네."
"나랑 같이 교실 들어가자."
넌 항상 웃는 모습이 예뻤다. 예쁘게 반으로 접혀 휘어들어가는 눈에, 입꼬리는 살며시 올라가 보는 사람도 기분 좋게 만들었다.
그래서 난 너가 좋았다. 너의 모습은, 벚꽃잎이 흩날리는 것보다 더 아름다웠다.
"좋아해."
"..."
"성이름. 나도 너 좋아해."
"봄만 되면 수업에 집중을 못하는 이유가 이거였나보네."
"벚꽃 예쁘잖아."
"나보다 예뻐?"
"참내..."
"왜 말 못해, 진짜 벚꽃이 나보다 예뻐?!"
"아니, 너가 더 예뻐 석민아."
너는 시간이 남을 때면 나를 따라와서 벚꽃잎으로 나한테 장난을 치다가 가곤했다. 그러다 내가 우울해보이는 날이면 저 멀리서 나를 가만히 보기도 했다. 친구들 틈에서 나를 계속 힐끔힐끔 쳐다보는데 자기는 이게 최대한 티 안 낸거라고 생각하겠지만 티가 정말 많이 났다.
"오늘따라 왜 그렇게 우울해, 이름아..?"
"늦봄이잖아."
"늦봄이면 뭐 어때!"
"벚꽃도 다 지고, 여름이잖아. 난 여름 싫어.."
"그럼 내가 봄, 일 년 내내 보게 해줄게!"
"아, 그냥 내가 벚꽃나무를 우리 반에다가 심어놓을까?"
넌 내가 우울하거나, 지칠 때면 언제나 풀어주려 노력했다.
그러다 내가 웃어보이면, "푼거지? 응? 이제 우울해지기 없기~" 하면서 또 다시 활짝 웃어보였다. 그 덕분인지 원래 해가 지는구나 하고 그러려니 생각하던 노을이 오늘따라 예쁘게만 보였다.
"눈 감아봐."
"갑자기 왜..?"
손 위에 뭔가가 올려졌다. 눈을 떠서 확인해보니 벚꽃잎이 압화되어있는 책갈피였다. 한 여름에, 나는 봄을 선물 받았다.
"내가 일 년 내내 봄일 수 있게 해준댔잖아, 앞으로 나랑 데이트할 때는 봄인거야."
이미 너랑 연애하는 것 자체가 봄인데.
너는 나를 만날 때마다 봄을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선물했다. 덕분에 나는 일 년 내내 봄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계절이 지나고 또 지나면서, 우리는 점차 변했다.
서로에게 익숙해짐에 자주 싸우기도 했고, 서로에게 서운해지는 일만 늘었다.
"석민아."
"응, 이름아."
"친구들... 말고도, 나도 만나주면 안 돼..?"
"좀 이해해줘, 애들하고 요즘 약속이 많네."
서운해도 눌러참아야 했다. 근데 너와 화해하고 나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다시 행복해졌다. 그러기를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계절은 겨울을 흐르고 있었고, 곧 졸업이었다.
"석민아, 우리 봄 오면 나랑 벚꽃보러가자! 응?"
"그래그래, 꼭 보러가자."
난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했다. 곧 졸업이란 걸 누구보다 너와 내가 잘 알고 있었다. 그저, 현실을 받아들이기 싫었다. 다시 너가 없어져버린 봄을, 너가 없는 내 생활을 보고싶지 않았다.
"이름아."
"석민아."
"그동안 나 때문에 많이 힘들었지. 받아줘서 고마워."
"봄에 벚꽃보러가자던 약속 지켜주고 싶은데 못 지킬 것 같아, 넌 봄일 때 제일 예쁜데 난 못 보네. 질투난다~"
"잘 지내."
넌 끝까지 밝았고, 착했다.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아서 꾹꾹 눌러참았다. 너는 떠났고, 나는 너한테 아무 말도 해주지 못했다.
계절은 겨울을 지나 봄을 향했다. 나는 입학문제로 바빴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벚꽃이 피어있었다. 떠난 너가 밉기도 했지만, 그리웠다. 책상 위에 놓여진 책갈피는 아직도 버리지 못했다.
'예쁘다..'
나 혼자 벚꽃을 보았다. 일 년 전의 고등학생이던 나처럼.
원래 하던대로 돌아온 것 뿐인데, 이상하게 외로웠다.
날 위로해주는 것 같은 봄이 아니였다.
바람이 불었다.
벚꽃잎이 흩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