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꿉친구 김태형과 한 지붕 아래 살게 된 이야기.txt
♬ 불꽃심장 - 옅은미소
(태형 시점)
"... ..."
"... ..."
계획적이었다기 보단, 충동적이었다는 말이 더 맞는 것 같다. 너에게 정말 무슨 짓을 하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너의 마음을 알고 싶었다. 그래도 열에 일곱 쯤은 너도 나처럼 마음이 있을거라 생각한 것이 화근이었다.
모든게 나만의 착각이었다.
두려움에 찬 듯 몸을 떠는 너를 보며 내가 무슨 짓을 했나 싶더라, 술을 마셨음에도 죄책감에 도통 잠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네게 던진 내 대답은 확답으로 돌아오지 못해서 너와 나, 둘 모두를 아프게 했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고 느낀 것이 몇 년 째인지 모른다.
하지만 가장 친한 친구임이 무색하게 너를 대놓고 마음에 담을 수 없었던 것은 역시나 가장 친한 친구였기 때문이었다.
네 마음을 완전히 알아차리기 전까지는 그 친구라는 벽을 허무는 것이 두려워 늘 감정을 숨기기에 급급했었다.
무서웠다. 내 자신이 지켜오던 선을 넘어버린 찰나의 행동 때문에 그렇게 소중히 여기던 그 벽에 금이라도 갈까봐서.
그래서 네가 나를 멀리할까봐서.
많은 생각과 고민을 했다. 내가 아침에 일어나 네 얼굴을 제대로 마주할 수나 있을까. ...글쎄.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할까, 아니면 술에 취해 한 행동이니 용서를 구해볼까.
내게 남은건 온통 후회뿐이었다. 내가 미쳤지. 어쩌자고 너에게 그런 행동을. 바라만 보기에도 아까운 너인데.
"... ..."
사진첩에서 한 장도 지우지 못하고 보고, 또 보던 네 사진을 한장씩 넘겼다. 고등학교 시절 내가 하루하루를 이렇게 보내곤 했지.
그러다 너를 만나러 가는 전날 밤엔 잠도 제대로 못이루었다고 하면 네가 믿어 줄까.
내가 처음부터 너와 오래된 친구가 아니었다면, 우리가 조금 더 늦게 만났더라면 지금과는 이야기가 달라졌을까.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어. 나만 생각했어. ...미안해.
-
(탄소 시점)
"... ..."
"잘 잤냐."
"...응? 응."
아무렇지 않은건지,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건진 몰라도 김태형은 내게 먼저 말을 걸었다.
어젯 밤 김태형이 방에서 나가고 정신을 차린 뒤 한참을 생각해봤는데, 내가 너무 과민반응을 보인건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술김에 자신도 모르게 나온 행동일지도 모르는데.
방에서 나와 아침을 먹으러 갈 동안에도, 아침을 먹는 와중에도, 그리고 짐을 챙기러 다시 숙소로 갈 때에도 우리 간에 오고가는 대화는 없었다.
그저 하루 사이에 변한 것이 있고, 또 변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변하지 않은 것은 김태형이 말없이 내가 들고 있던 짐을 빼앗아 들고 내려갔다는 것이고,
변한 것은 집으로 돌아가는 차 뒷자리엔 나 하나 뿐이었다는 것이었다.
텅빈 옆자리를 보며 어제의 모습이 떠올랐다. 일상처럼 당연하면서도 옆에 없으니 생각나는 기억이 되었다.
돌아가는 길엔 주구장창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노래를 연신 들으며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잠에서 깨어나면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버려, 억지로라도 복잡한 생각을 할 시간을 줄일 수가 있었다.
두 대의 차는 집 앞에서 멈춰섰다. 짧은 인사후에 이모와 삼촌이 탄 차가 시야에서 빠르게 사라졌다.
여러모로 신경을 쓴 탓에 온몸이 피곤했다. 안 그래도 숙소에서 잠을 설친데다 차에서 불편하게 잠을 잤더니 피로가 쌓이고 또 쌓인 듯 했다.
또다시 김태형과 불편한 걸음을 같이 했다. 어제까지만해도 신나있던 우리가 갑자기 이렇게 된건 그저 서로 피곤하기 때문이라고.
차라리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마치 없던 일처럼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길.
소심한 성격에 먼저 말을 걸지도 못하고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생각이었다.
"...고마워."
"...응."
김태형은 굳이 내 방까지 내 짐을 들어다 줬다. 모든게 그대로인데 우리 사이에 흐르는 기류는 완전히 어색해져 버렸다는게 참 웃긴 상황이었다.
가방을 내려놓고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제 방으로 가버리는 김태형을 가만히 바라보다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씻는건 둘째치고 침대에 몸을 던지니 이젠 아예 침대와 몸이 하나가 되어버렸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꾸만 어젯 밤의 상황이 떠올랐다. 처음부터 김태형을 탓할 생각도 없었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나의 잘못이 큰 것 같았다.
한번 쯤 이해해줄 수도 있었는데. 김태형하고 내가 보낸 시간이 얼만데.
...설령 김태형이 정말 나를 좋아하는거라면 더더욱 그러면 안됐던거잖아.
"...아. 내 인생아..."
원래 어른이 된다는건 이렇게 힘든거였나. 교복을 입을 때가 마냥 좋았던거였나.
마냥 휴대폰을 넋놓고 바라봤다. 차라리 김태형에게서 먼저 연락이 오길 바랐다. 그것이 사과든, 의미 없는 말이든, 욕이든 상관없으니까.
[ 어디? 아직도 온천? - 박짐니 ]
"...깜짝이야. 아."
내 바람처럼 휴대폰이 울리긴 울렸는데, 그 발신자는 김태형이 아닌 박지민이었다.
평소에도 메세지가 반가운 애는 아니지만 이런 상황에 메세지를 보내니 더욱 반갑지가 않았다.
[ 집임 왜 ]
[ 오늘 나올수있어? - 박짐니 ]
[ 김태형이랑? ]
[ ㄴㄴ 너만 - 박짐니 ]
당연히 박지민이 나를 부르는것은 김태형도 같이 부르는 건줄 알았는데, 왜 나만 부르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같은 상황에는 그나마 다행인걸지도 모르지만 괜시리 의아한 마음에 왜 나만? 이라고 답장을 보내니 바로 1이 사라진다.
[ 말하자면 긴데 - 박짐니 ]
[ 나 고등학교 같은 반 친구중에 이번에 우리랑 같은 과 가는 애가 있거든 - 박짐니 ]
[ 그래서 어쩌다 니 얘기가 나왔는데 너 소개시켜 달라더라 - 박짐니 ]
[ 물론 친구소개 - 박짐니 ]
굳이 내가 오해라도 할까봐 친히 친구소개라고 확실히 알려준다. 참 좋은 친구새끼야.
그나저나 박지민과 같은 반이면 내가 박지민 반에 놀러간 적이...음 몇 번 없으니 누군지도 모르겠구나.
[ 누군데 그게? ]
[ 말하면 아냐 - 박짐니 ]
[ 근데 얜 너 알더라 - 박짐니 ]
[ ???나같은 찌질이를 어케앎 ]
[ 찌질이인건 아네 - 박짐니 ]
[ ㅅㅂ ]
[ ㅈㅅ 그냥 지나가다 몇 번 봤대 - 박짐니 ]
[ 그친구 기억력이 짱이네 ]
난 고등학교 때 급식실이나 매점아니면 반 밖으로 잘 안나갔는데 날 도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건지.
그리고 문제는 그게 아니라 지금 나보고 당장 나오라는것 같은데.
[ 그래서 나올래 말래 - 박짐니 ]
[ 어디로 ]
[ 여기 까페 - 박짐니 ]
[ 몇시에 ]
[ 지금은 아니고 세시간 뒤? - 박짐니 ]
[ 그럼 두시간 반 뒤에 나 좀 깨워주삼 ]
[ ㅇㅋㅇㅋ - 박짐니 ]
세 시간이면 아직 한참 남았으니 그전까지 잠이라도 자둬야겠다는 생각으로 박지민의 마지막 답장을 읽자마자 기절하듯 잠에 들었다.
다행이었다. 지금 나오라고 했으면 이야기하다가 잠에 들었을 수도.
-
"...여보세요..."
'일어나.'
"...그래..."
신나게 울리는 전화벨소리와 단호한 박지민의 목소리의 콜라보로 잠에서 깰 수 있었다.
화장대 앞에 앉으니 졸린 표정 속에서 못생김이 묻어난다. 그래도 내가 모르는 사람 만나러 가는건데 화장 정도는 예의지싶어 이것저것을 바르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얼추 됐다, 하고선 옷도 나름 골라입었다. 패딩수니인 내가 패딩을 포기할 정도면 말 다한거 아닌가. 엄청 신경쓴건데.
제일 두꺼운 코트를 골라 입었다. 약속 시간까지 이십분 정도가 남았으니 여유롭게 가려면 지금쯤 집에서 나서야했다.
지갑과 휴대폰을 챙겨 방을 나섰다. 거실에서 티비를 보는 엄마와 아빠에게 친구를 만나고 오겠다 이야기 한 뒤 현관으로 향하는데, 그 순간 화장실에서 나온 김태형과 딱 마주쳐 버렸다.
"... ..."
"어디 가냐."
"...어, 친구 만나러."
"...조심히 다녀와."
"...응."
어색해!!어!!색!!해!! 발끝부터 밀려오는 어색함에 괜히 주먹을 꼭 쥐었다. 이렇게라도 안하면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겨우 집에서 나와 길을 걷기 시작했다. 휴대폰에선 어디쯤 왔냐는 박지민의 재촉메세지가 오고 있었다.
[ 가는 중 ]
[ 그니까 어디 - 박짐니 ]
[ 몰라 새끼야 ]
[ 왜 또 화가났어... - 박짐니 ]
[ 거의 다 옴 ]
내가 화가 안나게 생겼냐구 지금! 김탄소 인생 한번 참 힘들게 산다.
그냥 세상에게 화가 나 씩씩거리며 걷다보니 어느 새 까페 앞에 도착해있었다.
밖에서 들어가지 않고 유리문 너머로 까페 안을 들여다보니 테이블에 앉아있는 박지민과, 뒷모습이라 보이지 않는 박지민의 친구가 있었다.
누가 소심한 성격 아니랄까봐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익숙치 않아 쉼호흡을 한 번 후, 하고 문을 열었다.
"어? 왔다."
"... ..."
"... ..."
"안녕."
"...아, 안녕."
크로스백 줄을 두손으로 꼭 쥐고 테이블까지 걸어갔다. 날 보며 손을 흔드는 박지민을 보던 그 친구가 뒤를 돌아 나에게 인사를 하는데.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존잘이더라. 진짜. 박지민 친구 맞나 의심될 정도로.
덕분에 인사 한 마디에도 말을 더듬게 된 나는 박지민 옆에 살포시 앉아 눈도 제대로 마주치질 못했다.
와중에 박지민의 무엇을 마시겠냐는 말에 ...아메리카노, 하고 작게 대답하니 계산을 하고 오겠다며 자리를 떴다.
...? 망함. 테이블에 둘이 남음.
"이름 탄소 맞지? 김탄소."
"...응? 응."
"내 이름은 안 물어봐줘?"
"...응? 아, ...이름이 뭐야?"
"난 전정국이야."
"아...그렇구나."
"뭐야. 이제 통성명하고 있으면 어떡해."
그럼 뭐 만난지 오분도 안됐는데 같이 노래방가서 트로트라도 부르리?
그래도 계산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온 박지민 덕에 어색함을 떨칠 수 있었다.
집도 어색하고 여기도 어색하고 어색해서 오늘 안에 죽어버리겠네. 정말.
이름이 정국이라던 잘생긴 친구는 생각보다 말도 많고 성격도 활발해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잘생겼음.
오늘부터 널 잘생이라 부르겠어. 물론 속으로만.
"갑자기 불러내서 미안해."
"아, 아니야."
잘생이 이(가) 김탄소오징어 에게 웃으며 말하기 스킬을 시전합니다. 잘생이 의 호감도가 5 상승합니다.
그나저나 암만 같은 고등학교였다고 해도 한번쯤은 마주쳤을 법 한데도 오늘 처음 보는 얼굴이라 당황했다.
내가 이 정도로 반에만 틀어박혀 있었던가. 아무튼 궁금한건 정국이 나를 어떻게 알고있느냐, 이것이었다.
"근데 날 어떻게 알아...?"
"나 기억 안 나려나. 예전에 매점에서."
"...매점?"
"백원."
"백원...?"
매점은 내가 매일 가던 곳이 매점이라 거기서 누굴 만났는지까지 기억나지는 않고, 백원은 뭐지.
내가 매점에서 애들한테 백원씩 삥을 뜯고 다닌 적도 없는데. 백원이 도대체 뭐지, 뭘까. 무..ㅓ...응?
"아...설마?"
"어, 기억났나보다."
"백원이 뭐야? 전정국 삥뜯었냐, 김탄소가?"
언제더라. 고2였나. 아무튼 정확히 언제인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백원 하니까 생각나는 기억이 있었다.
그러니까 그 날도 어김없이 매점엘 갔는데 분명 주머니에 천 원짜리가 있었던 것 같은데 먹고싶은 빵을 손에 쥐고 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지폐가 없었다.
주머니에서 동전을 있는대로 꺼내 세어보니 빵은 구백원인데 내 손에 있는건 팔백원 뿐이었다.
결국 빵을 다시 내려놓고 매점 아주머니를 향해 아줌마...백원이 없어요...하고 하소연을 하는데 누군가 내 손에 백원을 쥐어주고는 홀연히 떠나가 버렸다.
맞아, 그래서 빵을 사먹을 수 있었는데 그게 누군지를 몰라 고맙다고 말도 못했었다. 그런 적이 있었지. 근데 그게 이 잘생이였다니...
"우와. 그 때 고마웠어. 왜 말도 없이 갔어."
"빵 사먹어서 거스름돈 백원이 남았는데 옆에서 누가 애타게 백원을 찾길래."
"와...대박이다. 그게 너였다니."
세상에 여러 우연이 있어도 백원 우연은 흔치 않을걸? 그러니까 잘생이랑 나는 우연적 만남을 갖게 된...닥치고 있어야겠다.
대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같은 과 친구가 두 명이나 있다니, 차라리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정국은 처음 만난, 사실 처음은 아니지만 처음으로 대화를 해본 사람 답지 않게 그 이상으로 친해질 수 있었다.
예를 들면 하이파이브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정도의.
박지민이 내 아메리카노를 보며 저런 쓴 것을 왜 마시냐는 말에도 먼저 반응을 보인건 내가 아닌 정국이었다.
"커피는 아메리카노지. 뭘 모르네."
"크, 역시. 정국이."
"...둘이 언제 그렇게 친해졌어..."
편한 사람이라 느꼈다. 먼저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말도 걸어주고, 내 말에 경청해주는.
시간 가는줄도 모르고 대화를 나누고 어두운 밤이 되서야 까페를 나섰다.
정국은 지민과 나의 집과는 반대편에서 산다고 했다. 까페 앞에서 인사를 하려는데 정국이 뒤를 도는 대신에 내게 자신의 휴대폰을 내민다.
"나 번호 알려주라."
"어...여기."
"연락할게."
그제야 정국은 나와 지민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도 따라 손을 흔들어주고는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는 내내 박지민은 내 옆에서 자꾸 이상한 말로 나를 부추기기 바쁘다.
"어때?"
"뭐가 어때."
"전정국."
"좋네. 성격도 좋고."
"그치. 남자로서는 어때?"
"친구 소개라매요."
"아니. 그건 그냥 한 말이지."
정말 말도 안되는 소리 한다. 자꾸. 일단 저런 잘생이는 나와 이어질리가 없어. 내가 아무리 모태솔로라도 그런건 안다고.
나는 억지로 귀를 닫고 박지민이 제 집으로 들어갈 때까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박지민의 집에서 머지 않은 우리집에 도착하고, 현관문을 여는 타이밍에 맞춰 문자가 도착한다.
[ 집 잘들어갔어? 나 정국이야 번호 저장해! ]
-
판사님 저는 서브남주가 있다는 소리는 안했지만 없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찌통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저는 찌통을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여러분
원래 이런 약빨고 쓰는 빙의글은 굴곡이 많을수록 흥미진진한 법
배고프다
백원백원 게슈탈트 저만 일어나나요
의식의 흐름
암호닉 신청 감사합니다
댓글 천천히라도 답댓 다 달겠습니다
날씨가 풀릴수록 감기 조심하셔야 합니다
왜...미리보기가 안되지...
~♥~ ~♥~〈 암호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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