꿉친구 김태형과 한 지붕 아래 살게 된 이야기.txt
♬ 316 - 거짓처럼 다시 봄은 오겠지
약기운을 빌려 억지로 잠들었건만, 컨디션이 안좋은 틈을 타 또다시 가위에 눌렸다.
하지만 지금까지와 다른 점이 있다면 매번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던 그 무언가가, 오늘은 웬일인지 나를 향한 움직임을 뚝하고 멈추더라.
덕분에 내 떨림이 멈추고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있었다. 그 무언가는 곧 스르르 사라져버렸다.
잠에 든지도 모르던 내가 한시름을 놓을라치면 이내 눈을 뜨고만다. 그렇게 오래 잠들지는 않은 모양이다.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주위를 둘러보면, 평소와 다를 것이 없이 조용했다. 다만 봉투가 두 개인 것에 의아해하며 책상으로 향했다.
정국에게서 받은 봉투가 아닌 다른 봉투엔 소화제가 들어있었다. 누가 놓고간거지, 하는 뻔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 ..."
한참을 그 소화제를 바라보고 있다가, 책상 서랍에 넣어두었다.
정국이 준 봉투에서 초콜렛을 꺼내어 입에 하나 머금었다. 분명 달기만 한 초콜렛이 쓰게 느껴진다.
한참을 자고 일어나서인지 몸에 기운이 없었다. 소화제 덕분에 체기는 전부 내려갔지만 아직도 속이 답답했다.
의도하지않은 한숨이 계속해서 나왔다.
왜 이러는거지, 도대체 왜.
이유를 찾지도 못하면서 멍하니 생각하는 척을 하다가, 머리가 복잡할 때면 주저리주저리 말을 늘어놓기 편한 수정이에게 연락을 했다.
[ 수정씨 ]
[ 예 탄소씨 무슨 일이 있나봅니다? - 수덩이 ]
[ 상담 좀 해주세요 ]
[ 누가 우리 탄소씨 마음에 불을 지릅니까? - 수덩이 ]
[ 그런거 아니니까 지금 나와주시죠 ]
"...하여간 눈치는..."
그저 이름을 불렀을 뿐인데 단박에 내게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아챈 수정이었다. 소름돋는 것. 이런 곳에는 쓸데없이 촉이 어마무시하다니까.
저녁 일곱 시 쯤을 알리는 시계를 확인하고 방을 나섰다. 조용한 거실을 지나, 누구의 간섭도 없이 현관문을 열고 나올 수 있었다.
-
"각 나오네. 사랑이네, 사랑이야."
"또 이상한 소리한다."
"이상한 소리라니. 니가 지금 다 말해놓고선."
"...내가 뭘...어쨌다고..."
나는 한게 없었다. 그냥 김태형과 나 사이의 최근 일들과, 갑작스런 정국의 등장. 그리고 정국의 행동들을 쭉 사실대로 이야기 했을 뿐이었다.
물론 내가 보인 반응에 대해선 일절 언급하지도 않았다.
그랬더니 한다는 소리가 저거다. 이미 모든 답이 나왔다는 듯이 굴었다.
수정은 팔짱을 끼고 등을 뒤로 젖히며 꽤 거만한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같은 말을 반복한다. 사랑이야. 사랑.
"아, 장난치지말고. 나 오랜만에 진지하잖아."
"나도 진지해. 사랑 맞다니까?"
"아..."
"아니. 답을 내려달라며. 사랑. 무슨 답이 더 필요해?"
"내 반응은 묻지도 않았잖아."
내 말에 웃음기를 싹 뺀 얼굴로 다시 묻는다. 그럼 넌 무슨 반응을 보였는데?
그 물음에 되려 내가 당황해 고개를 뒤로 뺐다. 뭐, 뭐가.
"반응 물어달라며. 그 친구가 다른 여자랑 있을 때. 넌 어떤 반응을 보였냐고."
"그냥 갔는데."
"왜?"
"방해...될까봐."
"그 둘이 같이 붙어있는 꼴을 보기 싫어서가 아니라?"
"... ..."
선뜻 아니라고 대답하지 못했다. 찔려서라기 보단 생각을 해야 했다.
정말 그랬나. 방해가 될까봐 그냥 지나친게 아니라 정말 그 둘의 사이좋은 광경을 보고싶지 않아서 도망친거였나.
아니야. 그런게 아닐텐데.
"그럼 그 둘이 사귀기라도 하면 넌 어떻게 할건데?"
"...축하 해줘야지."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어?"
"... ..."
"축하를 해준다고 해도 니 일처럼 기뻐할 수 있냐고."
"... ..."
...아니. 내 일처럼 기뻐해주지 못할 것 같아.
"아니면 반대로 생각을 해보자."
"...무슨?"
"그 정국?이라는 친구가 널 좋아한다 쳐."
"어휴, 아니야. 무슨."
"그니까 가정이지. 가정. 좋아한다는 가정하에."
"...그래."
"만약 너에게 고백을 한다면?"
"... ..."
글쎄. 거기까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정국이가 나한테 고백을 해? 말도 안 돼.
"그럼 덜컥 응, 그래. 사귀자. 하고 받아 줄거야?"
"...모르겠는데."
"거 봐. 고민하잖아. 너."
"...그거야."
"니가 조금이라도 마음이 있었어봐. 사귀자고 하는데 고민할 이유가 뭐야?"
"... ..."
듣다 보니 사람 말문 막히게 하는 재주가 있다. 나는 결국 폭풍처럼 날아오는 질문에 제대로 된 대답은 단 한 번도 하지 못했다.
생각이 많아서 이야기를 하러 온건데 더 생각이 많아진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수많은 생각들은 예전보단 쉽게 정리될 것들이었다.
어쩌면 나는 모르고 있었던게 아니라, 모르고 싶었던 것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근데 여자를 소개받았다는건 나한테서 마음이 떠났다는거 아니야?"
"아니지. 니가 하도 기를 쓰고 막아내니까 지쳐서 다른 방법으로 떼를 쓰고 있는거지."
"무슨 소리야. 그게."
"그러니까, 보여주기식 질투유발이라고나 할까."
"... ..."
"내가 볼 땐 그래. 근데 여소 받은건 확실하대?"
"...아마도?"
내가 본 것도 있고, 들려온 말도 있으니 확실하겠지.
"흠. 내 생각엔 니가 착각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너한테 들은 그 친구 성격 상, 그런 비겁한 방법을 쓸 것 같진 않거든."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원점으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이해하기를 포기하고 몸을 뒤로 축 늘어뜨렸다.
여소를 안 받았을 수도 있다...? 에이. 그럴리가.
괜히 입을 쭉 내밀고 뾰루퉁한 표정으로 테이블을 바라보다가, 참 적절한 타이밍에 전화가 온다.
'박지민'
"...여보세요."
'야야-. 김탄소.'
"...술 마셨냐."
'이 눈치라곤 1도 없는...너 그러는거 아니야!'
"...뭐라했냐. 지금."
'정구기가...정구기가 너를...'
"... ..."
'아. 박지민. 진짜. 탄소야. 미안.'
"정국이?"
매우 소란스러운 소음 속에서 박지민의 혀꼬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 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다가 정국에게 폰을 빼앗겼는지, 곧 정국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미안. 쉬고 있었을텐데.'
"어...아니야. 친구 만나러 잠시 나왔어."
'속은 좀 괜찮아?'
"어. 덕분에. 근데 박지민 왜 저래?"
'술을 좀 많이 마셨어. 집에 데려다줘야할 것 같아.'
"어디야? 거기. 가서 도와줄게."
'아니야. 괜찮아.'
"빨리. 어디야."
결국 장소를 캐물어 알아내고나서야 전화를 끊었다. 수정의 의심어린 눈초리를 전화 통화하는 내내 받아야했다.
"왜, 뭐."
"곧 다 끝나겠구만."
"뭐가."
"아니야. 가봐야되지? 나가자."
끝까지 이상한 소리를 늘어놓던 수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수정을 따라 까페를 나섰다.
정국과 지민이 있는 곳은 수정의 집과는 반대방향이었기에, 까페 앞에서 인사를 했다.
고민상담하려고 부른건데 고민이 더 늘은 것 같은 기분이란말이지.
고등학교 같은 반 친구들끼리의 모임을 가진건지 정국과 지민 외에는 전부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전부 남자였다.
나를 보는 눈빛이 심상치않은 그들을 향해 대강 목례를 하고선 박지민을 거의 들쳐매다싶이 부축한 정국과 함께 그곳에서 빠져나왔다.
나랑 마실땐 하나도 안취하더니 도대체 얼마나 마신건지, 박지민은 도통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나저나 아까 나한테 전화해서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걸까. 눈치도 없고...정국이가...정국이가...?
술에 취해 헛소리를 했을거라 생각하며 지민의 반대편 팔을 어깨에 걸쳤다.
"미안해. 몸도 안좋은데."
"괜찮아. 다 나았어. 얜 어쩌다 이렇게 많이 마신거야?"
"모르겠어. 혼자 신나가지고는."
"하여튼 박지민..."
하지만 나도 술에 취해 신세를 진 것에 빼놓을 수 없는 주요 인물이기에 더이상 박지민을 욕할 수는 없었다.
사실 힘은 정국이가 다 주고있는 것 같았지만 나도 도움이 되기 위해 열심히 박지민을 끌었다.
다행히 여기서 박지민 집이 가까우니 망정이지, 내 성격같아선 그냥 길바닥에 버리고 가는건데.
그렇게 우리 둘은 낑낑거리며 박지민을 그의 자취방까지 운반하는데에 성공했다.
빌라를 나선 우리는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마치 짠듯이 타이밍이 딱 맞아떨어져 서로를 보며 웃었다.
정국은 내게 집을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거절할까 했지만 거절한다고 내 거절을 받아줄 정국이 아닐뿐더러, 사실 내 스스로 판단해보고 싶은게 있었다.
우리 둘은 나란히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까완 다르게 미묘한 분위기가 우리 사이에 흘렀다.
늦은 시각, 대학로를 벗어나자 동네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몇 없었다. 그만큼 거리는 조용했다.
탄소야. 적막 속에서 정국의 목소리가 들렸다.
왠지 나를 부르는 그 목소리, 그 말투가 예사롭지 않아 괜히 나도 모르게 긴장을 했다.
"나 고등학교 때 선도부했었거든."
"...아, 정말?"
"응. 너 명찰 자주 놓고다녔잖아."
"...맞아. 하도 놓고다녀서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 때 네 이름 한 번도 적은 적 없어."
"... ..."
나는 진심으로 놀라 정국을 바라봤다.
불현듯 떠올랐다. 아침마다 선도에게 걸렸어도 벌점이 낮았던 이유가, 그럼.
"생색내는거 맞아. 말 안했으면 평생 몰랐을거 같아서."
"어쩐지..."
"그래서 너 알고있었던거야."
"...난 진짜 몰랐어."
새삼 예나 지금이나 주변 관찰력이 참 없다, 하며 나 자신을 한탄했다. 왜 그때 정국이를 미리 알아보지 못했을까. 바보같이.
그 때 백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정국은 생각보다 나를 더 자주보았고, 더 많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정국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엔 걸음을 멈추고, 나를 바라본 채 말했다.
덕분에 나도 멈춰 서서 정국을 바라보았다.
"나 그 때 소원 지금 써도 돼?"
"소원?"
"흑기사했던거 있잖아."
"아, 그럼. 뭔데?"
"뭐든지 들어줄거야?"
"...어, 들어보고?"
그냥 말이라도 다 들어준다고 하면 덧나냐, 하여튼 김탄소 말주변도 없어요.
소심한 내 반응에 정국이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평소의 적극적인 모습은 어디가고 말을 한참이나 머뭇거리던 정국이 다시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 큰 눈망울을 바라보던 나는 무언가에 홀린듯이 눈을 피하지 않고 있었다.
"탄소야."'
"... ..."
"...좋아해."
"... ..."
"고등학교 때부터, 쭉."
-
대박사건 어머어머 고백했어 어머머 이게 무슨일이람
그래서 오늘 태형이 분량은 어디로 소멸된거죠? 자까님?
예 일단 여기서 끊어서 죄송합니다
설날 잘 보내시고 끝까지 안전하게 집에 귀가하시길 바라요
다들 큰집에서 명절음식 많이 드시고 계시겠죠?
전 배에 열심히 기름칠하고 있어요
저는 아가들 사이에서 나이가 많은편인지라 세뱃돈 많이 받지 못하지만..
여러분들은 세뱃돈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호호
다음편에서 만나요@^^@
그리고 매번 답글 달아드리지 못해서 고멘나사이...(오열)
~♥~ ~♥~〈 암호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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