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갔설 (1234567) 5
w.솦이
사귄 지도 어느덧 7년, 연인 같기도 친구 같기도 한 이제는 사랑이 아닌 정인 것만 같은 신동근과
7주년 기념으로 꽤 멀리 떨어진 바다로 여행을 갔다.
사실 이젠 백일, 이 백일, 일 년, 이 년 이런 기념일을 챙기기는 버겁고 할만한 것도 없어서 안 챙기기는 아쉬워 되는대로 여행을 왔는데
나이도 스물 후반이 되고, 점점 생각이 많아지는 요번 년도에 사실 나는 신동근과의 관계를 이 여행을 끝으로 정리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단지 생각뿐이였다. 그러기엔 난 그를 사랑해서 놓지 못할게 분명하니까.
단지 이 긴 시간의 무료함에 무엇인가 터닝 포인트처럼, 처음 만났던 20대의 초반처럼 그 불타올랐던 감정이
그리워지는 것뿐.
신동근은 꾸준히 잘 나가는 가수이고, 나는 지극히 평범한 회사원.
신동근의 열열한 팬인 너설의 친구가 팬미팅 같이 가자며 끌고 간 게 신동근과 만나게 된 원인.
그날 신동근이 나한테 반해 1년을 쫓아다닌 끝에 사귀게 된 것이 벌써 7년이나 만나게 되었고 아직까지 별 탈 없이 만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긴 일이지, 날 뭐 보고 그렇게 쫓아다녔나.
"설아- 피곤하면 자도 돼"
"아 응. 도착하면 깨워줘. 너무 졸리면 말하고, 내가 운전할게"
"네, 공주님 주무세요~"
하지만 너는 한결같았다. 너설이 투정을 부리건,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건 너설의 말을 참 잘 들었고, 다정하고 자상한 남자친구였다.
어떻게 말하면 내 말이면 뭐든 다하는 로봇 같았다. 그의 감정은 도대체 찾아보려야 볼 수가 없었으니까.
후- 그래서 내가 더 이러는건가 .. 난 뒤척이다가 금세 잠이 들었다.
#
일어나니 벌써 도착한지 오래인 듯 아침에 출발했는데 오후 3시쯤 이였다.
신동근을 바라보니 녀석은 씩-웃으며 나를 한참 동안이나 쳐다보고 있었다, 되게 불편한 자세로.
"으.. 음.. 어..? 뭐야 왜 안 깨웠어.."
"모르겠어. 깨우려고 했는데 못 깨우겠어. 너무 예쁘게 자잖아."
하고선 헤헤 웃어버리는 신동근. 참 나,, 변한 게 없구나 넌, 변한건 나뿐인가 하는 생각에
한숨을 푹 쉬고는 "어서 들어가자" 한마디하고는 문을 닫고 먼저 호텔에 발걸음을 옮겼다.
저렇게 바보같이 착해서 어쩌려는지, 가끔가다 속상하고 조금만 더 그가 영악하기를 바랐다.
아들을 바라보는 엄마심정이란 이런 걸까?, 남에게 해가 돼도 조금만 더 이기적이었으면 하는 바람.
어느새 내 짧은 보폭을 쫓아와서는 나란히 걷는 신동근.
나도 참, 먼저 가고서는 그가 편히 따라오도록 천천히 걸음을 늦추고 있었나 보다.
이렇게나 내 몸은 내 의지와는 다르게 너에게 너무 익숙해졌다.
우리는 말이 없는 편이였다. 원래부터 말이 없는 편은 아니었지만 4년 차가 지나고 나서 말수가 점점 줄기 시작했다.
뭔가 말하지 않아도 그가 원하는 말, 행동은 아니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방으로 올라가는 길에 역시나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난 너의 보폭에 맞추어 걸을 뿐 이였다.
-1004호
별생각 없이 문을 열어 방에 들어가 짐을 풀고는 소파에 털썩- 앉았다.
그러자 그도 엄마 따라 하는 새끼 오리처럼 나를 고대로 따라 하고는 내 옆에 앉아 헤헤 웃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설아- 뭐부터할래? 밥먹을까?"
"밥 생각없어."
"음..그럼 바다 보러갈래?"
"더워..나 밤바다 좋아하는거 알잖아."
"그럼 방에서 조금 쉴까?"
"여기까지 왔는데?"
내가 듣기에도 참 욕먹을만한 대화였다. 어딜 봐서 싸우지 않은 커플의 대화란 말인가.
왜 이렇게 요즘 내가 삐뚤게 나가는지, 그걸 아는 너는 왜 아무렇지 않은 건지, 아니면 그런 척을 하는 건지
이게 권태기라는 것일까라는 생각도 조심스럽게 했다.
너는 지금 상황도 화낼 법 한 대도 여전히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는 바보라서, 설이가 하고 싶은 걸 못 찾겠어. 그러니까 생각나면 알려줘요."
너의 애교 있는 말에 난 또 어김없이 웃음을 짓고 만다.
넌 수많은 사람들을 울렸다 웃었다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인데, 왜 내 앞에서는 이렇게 한없이 작아지는 것일까.
그런 널 바라보는 난 왜 이렇게 먹먹할까.
#
호텔에서 영화도 보고, 밥을 먹고 산책 좀 하다 보니 벌써 하늘은 노란색으로 물들어 장관이었다.
정말 예쁜 풍경에 멀리 온 보람 없이 평소 만날 때와 똑같은 데이트 코스는 식상하던 것도 식상하지 않게 만들었다.
너도 나와 같은지 하늘을 보는 표정이 밝았다. 그리고 오랜만에 먼저 내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7년을 만났는데도 스킨십은 왜 이렇게 조심스러운지 잠자리는커녕 키스도 웬만하면 잘 하지 않았다.
7년 동안 키스한 적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니 말 다한 거지 뭐
"동근아"
"응 설아"
"술먹자"
"어..어?"
"우리 둘이 술 먹은적 한번도 없잖아"
없었다. 없을 수밖에, 밖에서는 네가 연예인이라 제대로 마음 놓고 다니지를 못했고, 집에서는 술을 사다 놓을 생각조차 안 했으니까
나의 말에 넌 끄덕끄덕- 싫어도 내 말이면 좋다고 하는 널 알기에 네가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는 건 알았다.
편의점에 들러 소주 두 병과 과자 몇 봉지를 집어 계산을 하고는 바다가 잘 보이는 모래사장에 앉아 한 병은 그에게 건넨 뒤
뚜껑을 따고 짠-하자고 그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신동근도 뚜껑을 따고는 병을 부딪히며 웃고는 입으로 가져갔다.
그 바다에는 사람이 없었다. 많았으면 오지도 않았겠지. 사람 없는 곳을 수소문해서 찾아 간 거니까.
이제 제법 어둑해진 밤하늘을 안주 삼아 과자를 집을 생각도 못한 체 한 모금 두 모금 마셨다.
입에 부딪히는 무언가에 고게를 돌리니 신동근이 과자를 들고 한마디 했다.
"과자 먹어 설아- 쓰잖아"
난 말없이 받아먹고는 다시 하늘을 보았다. 그리고 다시 신동근을 쳐다보았다.
신동근은 갑자기 쳐다보는 눈길에 당황한 듯 눈을 굴리며 어색하게 헤헤 웃고 있었다.
"동근아"
"..."
진지해진 나의 얼굴과 말투에 너도 조금씩 표정이 굳었다.
딱히 비장한 말을 할 것은 아니었는데, 하지만 굳은 표정의 너는 새로웠다. 긴장하는 것 같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우리는.."
"설아"
신동근은 다급하게 내 말을 잘랐다. 진짜 오늘 새로운 모습 많이 보는 것 같다.
항상 내 말은 자르지 않고 끝까지 듣는 그였는데, 그런데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뭔가 음.. 편하게 대해지는 기분? 오히려 이게 좋았다.
"나는 너랑 헤어지지 않을 거야."
"..어?"
"네가 변한 거 알아. 나의 대한 감정이 오래전에 사라졌다는 것도 알아.
그래서 나.. 진짜.. 잘하려고 하고 있어. 더 잘할 수 있어. "
"..."
"네가 힘들어하는 것도, 날 지겨워한다는 것도 알아.
내가.. 더... 잘할게 설아."
"제발 헤어지자고만 하지 마라"
떨리는 눈동자와 불안한 표정으로 나지막이 말하는 너는 나한테 큰 쇼크로 다가왔다.
물론 헤어지자고 하려던 건 아니었다. 우리는 언제 결혼을 하냐고 물어보려던 것이었는데, 내가 그만큼 너를 불안하게 했던 걸까.
마음이 아팠다. 알고 있다고 했다. 자신을 지겨워하는 것을, 너의 대한 감정이 오래전에 사라졌다는 것을.
그렇게 생각하는 넌 지금까지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얼마나 마음 아팠을까.
반박을 조금이나마 하자면 널 지겨워하는 게 아니었다. 익숙함에 새로운 것을 원했을 뿐이었다. 또 너의 대한 감정이 오래전에 사라졌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넌 감정이 없는 사람과 결혼까지 생각할 수 있는가. 참 내가 얼마나 그에게 무심했는지 보여주는 말이었다.
너의 말의 반박도 못하고 눈물이 차올라 고개를 숙였다. 그래서 감정 표현을 안 했던 것일까.
내가 헤어지자고 할까 봐. 내게 꼬투리 잡히면 헤어지자고 할까 봐 그렇게 죽기 살기로 나만 봤던 것일까.
정말 최악이었다 나는, 왜 나는 일찍 깨닫지 못했을까 나는 그를 여전히 열렬히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설아.. 울지마.. 내가 미안해"
잠긴 목소리로 너는 또 어김없이 나에게 굽힌다. 큰 손으로 내 눈가를 닦아주며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씩 웃었다.
"키스.. 해줘"
내 말에 신동근은 놀란 듯 눈물을 닦아주던 손을 멈칫- 하고 멈추었다.
그리고는 그 상태로 입술을 맞대었다.
오늘따라 그는 농도가 짙었고 놔주지 않았다.
어느새 하늘은 까맣고 바다고 하늘에 반사되어 밝게 빛났으며, 그 빛나는 바다 앞에서
우리 둘은 더욱 밝게 빛났다. 우리의 미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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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
[나빛섭] [체리뽀샤시][라이트형제] 님
밤을 새고 정신없이 써서 뒤죽박죽일거같네요..써본다고 썼는데
역시 글은 아무나쓰는것이 아닌것같아요:(
그냥 이번편은 잔잔하게 풀어내고 싶었어요 ㅜㅜ
갑자기 음슴체가 아니라 놀라셨죠? 이번편은 좀 진지한 편이라..하하 어색해도
재미로 봐주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