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부터 시끄럽게 내 귀를 파고드는 형의 목소리가 듣기 싫었다.
내가 어디로 데려가든, 데려가서 무얼 하든, 형이 알아서 뭐하게?
"아, 아프다고. 좀 놓고 말해."
".."
"이거 놓으라고!"
"시끄러워."
차갑게 던진 말 한마디에 내 분노가 충분히 담겨있었던게 형에게도 느껴졌는지 형은 금새 조용히 수그러들었다.
-
언젠가부터 각자 오가던 우리의 집에 둘이 함께 들어간 것은 오랜만인 듯 했다. 아, 이제 형은 오는 것도 가는 것도 못하겠지만.
함께 자던 침실 문을 열고 형과 들어가고 나서야 손목을 놔줬다.
"왜, 여자들이랑 놀아날 때 거들떠도 안보더니 왜 이제서야 나 찾는건데?"
뭘 잘했다고 날 쏘아보며 큰 소리를 치는걸까.
"좋아?"
"뭐?"
"다른 남자새끼랑 만나니까 좋냐고."
"야, 니가 그런 말 할 처지는 안ㄷ.."
태형이 형을 발견했을 때 부터 차오르던 내 분노가 결국 이성을 이기지 못했다.
쫑알거리던 말도 멈췄고, 형의 고개도 돌아갔다.
"왜 나갔어."
".."
"대답해, 왜 나갔냐고."
".."
"대답 안하지? .. 아 그래, 그럼 다른걸 물어볼게. 왜 폰 꺼놓고 있었어?"
".."
"형? 대답 안할거야?"
".."
"대답 안할거냐고 씨발, 내가 묻잖아."
고개가 돌아간 채 울음이 나오는지 훌쩍거리며 어깨를 들썩이는 형이 보기 싫다. 진짜 보기 싫다.
"다시, 물을게. 왜 폰 꺼놨냐고."
".. 왜 궁금한데? 넌 어차피 내가 뭘하는지 궁금해 하지도 않았잖아. 오히려 내가 이때까지 니가 어디에 있는지,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해했었지. 내가 다 알고 있으면서도 변명이라도 들어보려고 물어볼 때는 대답 하나 없더니 지금 내가 대답 안한다고 왜 이러는건데? 대답 계속 안하다간 아주 사람 죽일 기세다?"
돌아간 고개를 바로해서 날 쳐다보며 말하는 형의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고, 형의 눈물은 내가 맨날 만져대던 볼에 길을 내가며 떨어져가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 눈물에 내 마음이 흔들려야 했겠지만, 지금은.
지금은, 그저 화날 뿐이다.
"뭘 잘했다고 쳐울어."
".."
"뭘 잘했다고 쳐 우냐고."
예전과는 다르게 자신의 눈물에 더 화난 것 같은 내가 낯설었는지 형은 그저 눈물을 흘리며 날 말 없이 쳐다볼 뿐이었다.
그만 울라니까 진짜 왜 계속 울고있어, 사람 기분 좆같게.
형이 처음에 맞았던 곳의 반대쪽 뺨을 내려쳤다.
중심을 잃고 넘어진 형의 머리채를 잡아서 고개를 젖히니 반쯤 풀린 눈망울이 날 애처롭게 쳐다봤다. 겁에 질린 개새끼처럼.
"저.. 정국아.."
두쪽 뺨이 부어오른 형은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머리채를 잡은 내 손을 움켜쥐었다. 지금 바들바들 떨리는 손이 내 손을 움켜쥐듯, 윤기 형 손도 움켜쥐었겠지.
머리채를 움켜쥐지 않은 손으로 형의 뺨을 한 대 더 때리며 머리채를 놓으니 형이 바닥에 엎드리듯 쓰러졌다.
매끈한 뒷목이 보인다. 저 뒷목도 윤기 형이 물고 빨고 했겠지.
보기 싫어 무작정 휘두른 발은 형의 배에 정확히 명중했다. 짧은 비명소리와 함께 형이 배를 움켜쥐고 나뒹굴었다.
"흐윽.."
고통에 흐느끼는 형이 싫었다. 그 소리가 마치 신음 소리같았다. 윤기 형 밑에서 흘렸을 그런 신음소리.
"어땠어?"
".. 하윽.."
"어땠냐고."
".. 뭐가.."
"윤기 형이랑 한 섹스는 어땠냐고. 3일이나 집 나가서 잠수 타는 동안 윤기 형 집에서 잤을거 아냐."
".. 니가.. 니가 생각하는.. 흐.. 그런 사이 아니야.."
"내가 그걸 어떻게 믿어."
".. 뭐?"
"내가 그걸 어떻게 믿냐고."
형이 그 형 집에서 뒤를 대줬을지 안 대줬을지 내가 어떻게 믿냐고.
입술이 터진 채 배신감에 휩싸인 표정으로 날 쳐다보는 태형이 형을 제대로 보기 힘들었다.
싫었다. 짜증났고, 역겨웠다.
속에선 화가 끓었고 가슴이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았다.
분노로 인해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게 느껴지며 몸이 더워지기 시작했다.
참을 수가 없었다.
연이은 발길질과 손찌검에 아파하는 태형이 형은 나에게 보이지 않았다.
내 눈 앞에서 고통에 의한 신음 소리를 내는 형은 그저 윤기 형 밑에서 쾌락에 의한 신음 소리를 내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래서 더, 더, 더 미칠 것 같았다.
--
정신을 잃고 형을 때리는 내가 지쳐갈 때 즈음, 형이 나로 인해 생기게 된 상처들이 하나 둘 씩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부어 오른 뺨, 터져서 피가 흐르는 입술, 헝클어진 머리, 발길질로 인해 멍 들은 팔과 다리.
울면서 거친 숨을 내뱉는 형을 보니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진짜 이 모든 것이 내가 한 짓인건지.
형이 지금 울고 있는 이유가 나 때문인지.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져도 답은 정해져있었다.
모두 내가 한 짓이었고, 되돌릴 수 없었다.
"..형."
울고 있는 형의 뺨을 앉아서 쓰다듬으니 형이 흠칫 놀란다.
".. 미안해.. 미안해, 정국아. 흐윽.. 윤기 형이랑 안 만날게.. 제발 용서해줘.."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
형이 울면서 나한테 부탁을 할만큼 내가 그렇게 심하게 행동한걸까.
난 형을 이렇게, 이렇게 사랑하는데 말이지.
".. 나도 미안해 형. 그니까 형 내일부턴 어디 가지 말고 집에 있어. 미안해, 많이 아프지? 미안해.."
형을 품 안에 안았다.
아직까지도 바들바들 떨리는 몸이 형이 지금 얼만큼 겁을 먹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듯 했다.
미안해서 어떡해.
우리 예쁜 형을 내가 이렇게 대하다니 나도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네.
"내가 내일 일어나서 약 발라줄게. 늦었으니까 일찍 자자. 난 거실에서 잘게."
눈물을 닦아주며 말하니 형이 작게 끄덕거렸다.
일어서서 형을 안아 침대에 눕혀주고 이불까지 덮어준 다음 옛날처럼 이마에 살짝 입 맞춰 주고 나왔다.
자물쇠, 자물쇠가 어딨지.
여깄네.
형은, 형은 그냥 그 안에서 나만 보며 있어줘.
나만 보고, 나만 기다려줘.
밖에 나가면 또 그 예쁜 얼굴로 민윤기 같은 놈들 홀릴지 내가 어떻게 알아? 아니, 홀리겠지.
그니까 형은 그냥 거기 안에만 있어줘.
다 형을 사랑해서 이러는거야. 다 형을 향한 애정이야.
이해하지?
우리 평생 서로만 바라보고 살자.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