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델바이스(Edelweiss)
01
아침부터 울리는 핸드폰 벨 소리에 잠이 깼다.
선반 위 잔잔한 핸드폰 알람 소리에 손을 뻗어 알람을 끄고 눈을 살며시 떴다.
나는 그대로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일어나 자연스럽게 핸드폰을 확인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오던 전화가 울리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그 아이의 톡 방을 들어가 오지 않는 답장을 보며 침대에서 기지개를 펴고 일어나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커튼을 치니 이제 슬슬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있다는 걸 알리 듯
따사로운 햇빛이 창문을 뚫고 나에게 비쳤다.
그리고 바로 옆에 조그마한 화분에게도 따사로운 햇빛이 들어왔다.
키운지 몇 달 안됐지만, 날 봐달라는 듯이 조그마한 싹이 보여 그대로 물뿌리개를 들어서 조심히 물을 주었다.
싹에 맺혀있는 물이 햇빛을 통해 더욱 이뻐 보였다. 꽃에도 밥을 줬으니 나도 밥을 먹어야겠다 싶어
슬리퍼를 질질 끌며 부엌으로 가 식빵을 꺼내 토스트기에 빵을 넣었다.
그리고 찻잔을 열고 꽃 그림이 있는 머그컵을 꺼내서,
식탁에 앉아 아까부터 우러나오는 커피를 멍하니 바라봤다.
때마침 울리는 토스트기에 식빵을 입에 물고,
딱 맞춰서 다 우려진 커피를 머그컵에 담아서 들고 1층으로 내려갔다.
꽃을 좋아하고 꽃의 꽃말이 좋아서 시작된 꽃집이었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서 사람이 별로 없어서 커튼만 치고 책상에 앉아서 햇빛에 비친 꽃들을 보면서 토스트를 먹었다.
그리고 동시에 울리는 핸드폰 소리에 확인을 하니
[ 문 열어 ]
언제 온 건지 열리지 않은 문 앞에서 핸드폰을 든 채 손을 흔드는 정수정이 보였다.
나는 닫혀 있는 문으로 다가가서 까치발을 해도 닿지 않는 문 잠금을 겨우겨우 열고 수정이 들어오자
다시 까치발을 들어서 문을 잠갔다.
" 밥 안 먹고 또 빵? "
너무나 자연스럽게
들어오자마자 내가 먹고 있던 식탁에 가 앉으면서 물어오는 수정이의 말에
나도 모르게 나온 버릇이라는 말을 했다.
아직 다 먹지 않은 커피도 있어서 다시 식탁에 가서 커피를 마셨다.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던 수정이는 그대로
내가 먹던 컵을 가져가더니 안에 있는 내용물을 확인했다.
" 또 아메리카노? "
" 아, 응 "
" 쓴 건 안 먹으면서, 걔 때문에 식성도 바뀌었어? "
아. 그런가, 걔가 맨날 아메리카노만 먹어대서 나도 먹기 시작했는데,
언제부턴간 그 아이에 입맛에 맞춰졌나 보다.
맨날 핫초코만 먹었는데..
나도 모르게 지금은 머신기도 사고 원두도 직접 사러 갈 정도로 커피를 좋아하네,
" 안 아파? "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서 물어오는 수정이의 질문에 생각해 봤다.
안 아프냐니, 아프다. 어떻게 사랑하던 사람과 헤어졌는데, 안 아플 수가 있을까
시간이 지나면 다 나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점점 더 쓰라려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 아파, 근데.. 괜찮아. ”
" 응? "
“ 내가 아프다는 건 내가 그 사람을 정말 좋아했었다는 걸 증명해주는 거잖아 ”
유일하게, 내가 거짓된 마음이 아니라 진심으로 좋아했다는 걸 알 수 있다는 증거,
그거 때문에, 아파도 쓰라려도 참을 수가 있다.
그리고 지금은 그 하루하루 일들이 소중한 추억 같아서 나에게 더 이상 아픔이 아니었다.
“ 장사해야 돼. 그만 가 ”
다 먹은 머그잔을 들고 설거지통에 갖다 놓은 뒤에 벽에 걸려있는 앞치마를 맸다
그리고 다시 닫힌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이제 막 출근을 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 간다 가! 있다 애들 만나는 거나 잊지 마! "
“ 응. 아! 잠깐만 “
수정이가 인사하고 나가려는데 옆에서
조그만 화분에 보라색 빛을 내는 꽃을 들어서 수정이에게 주었다.
“ 팔레높시스야 ”
" 어?? "
“ 호접란, 꽃말은 행복이 날아오다. 면접 꼭 붙기를 빌게 “
내 말에 꽃을 보더니 활짝 웃고 꽃 냄새를 맡더니
화분을 들고 출근하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다.
나도 이제 가게를 열어야 하고 이렇게 햇빛이 들 때 꽃들도 봤음 해서
하나하나씩 꽃을 밖으로 옮겼다.
- 저... 저기....
“ 어서 오세요 ”
꽃을 옮기고 있는데, 수줍어하는 얼굴로 온 양복 차림으로 온 한 남성이 보였다.
- 제가 그..그니깐, 고,,고백 그게
내가 꽃 장사를 하면서 느낀 것은, 사려는 의도를 대충 알 수 있다는 것
이 사람은 고백을 하려고 꽃을 사러 온 것 같았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장미를 추천해 주지만,
그 사람이 메고 있는 자주색 넥타이를 보니 다른 꽃이 생각이 났다.
“ 잠시만요. 손님 ”
가게 안으로 들어가서 자주 색으로 이쁘게 꽃이 핀 카틀레야가 눈에 들어왔다.
옆에 보인 흰색으로 된 화분에 카틀레야를 심고 자주색 리본으로 화분에 묶었다.
그리고 들고 그 남성에게 건넸다.
- 어? 이게 뭐죠?
“ 카틀레야라고도 하며 양란이라고도 해요. 보통 고백하실 때는 장미를 드리는 편인데
손님이 하신 자주색 넥타이를 보니 이 꽃이 어울릴 것 같아서요. “
- 아......
조금 의아해하며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는듯한 표정이었다.
“ 카틀레야의 꽃말은 ' 당신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 에요 ”
내 말에 손님은 놀라며 웃었다.
그러더니 그 여자분을 생각했는지 다시 얼굴이 붉어지는 게 보였다.
- 얼마죠?
“ 안 주셔도 돼요."
- 네??
“ 대신 꼭 성공하길 빌게요 ”
내 말에 남자는 감사하다는 말을 몇 번이고 고개 숙이면서 하고 갔다.
북적거리는 사람들 속에서도 빛나거나 향기가 나는 사람이 있다. 꽃처럼,
그건 사랑을 하고 있거나 시작한다는 것,
저 사람도 빛이 나고 향기가 났다.
아주 달콤한, 그리고 저 사람 덕분인가? 조금은 너가 생각이 났다.
처음에 꽃을 사러 온 너의 모습이 그땐 너한테도 빛과 향기가 났는데
지금도 나려나?
- 윤기 시점 -
어제 커튼을 안치고 잤는지 뜨거운 햇빛에 의해 나도 모르게 눈이 떠졌다.
지금 와서 커튼을 칠 수 없고,
그냥 일어나 핸드폰을 집고 자연스럽게 그 아이의 폰 번호를 눌렀다.
통화 버튼을 누르기 전에 내 머리가 하지 말라는 말에 내 손은 멈췄다.
“ 아.......... ”
버릇인지 습관인지 일어나면 자연스럽게 그 아이의 번호를 누르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없어질 거라고 느꼈던 버릇도, 아픔도, 점점 더 늘어가는 것 같다.
뭐.. 천천히 고치면 되겠지..
아직 졸린 눈을 비비면서 식탁으로 가서 식빵을 꺼내서 토스트기에 넣고 우유를 끊였다.
그리고 찻잔을 열어 꽃이 그려진 머그컵을 집고,
그 옆에 놓인 핫초코를 꺼냈다.
머그컵에 핫초코 가루를 넣고 다 끓여진 우유를 넣고 수저로 천천히 휘저었다.
다 되었다고 울리는 토스트기에서 빵을 입에 물고 머그컵을 들고 전자 피아노가 있는 곳으로 갔다.
피아노 옆에 있는 책상에 머그컵을 올려놓은 뒤에
식빵을 문 채 현재 만들고 있는 악보를 펼쳐 피아노를 쳤다.
피아노를 치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뒤를 돌아, 침대 옆에 놓인 꽃을 바라봤다.
그 아이가 내게 준 마지막 선물,
에델바이스
나는 그대로 일어나서, 조그마한 물뿌리개를 들고 물을 줬다,
흰색 꽃잎에 맺혀있는 물이 햇빛을 통해서 더욱 흰색을 환하게 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었을까,
울리는 전화를 받고 나는 그대로 옷을 입고 나갔다.
-
한 카페로 들어가니 멀리서도 보이는 김태형이 보였다.
" 왔어? 앉아. 뭐 먹을래? "
김태형의 말에 아까 한입도 못 먹고 나온 핫초코가 생각이 났다.
핫초코라고 말하니 한숨을 쉬더니 주문을 하러 가는 김태형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카페, 우리가 자주 오던 카페였네.
거기다 우리가 맨날 앉는 창가 자리, 맨날 여기 앉아서. 밖에 구경했는데 조심히 밖을 쳐다보니,
아침이라서 그런지 출근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학생들의 소리까지, 그렇게 천천히 사람들을 살펴보는데
그 중 눈에 띄는 한 남성이 보였다. 뭐랄까 달콤한 향기가 나는 듯한 느낌.
자세히 보니 그 남자의 손에는 자주색 리본이 묶인 자주색 꽃을 들고 있었다.
“ 고백하러 가나 보네. ”
" 에? 어떻게 알아? "
언제 왔는지 손에 커피와 핫초코를 들고
내가 바라보는 쪽을 보면서 말하는 김태형이었다.
그거야 당연히 저 꽃은,
“ 카틀레야,
저 꽃말은 ' 당신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 ”
내 말에 멍하니 날 쳐다보는 김태형을 그대로 무시하고,
들고 온 핫초코를 마셨다.
역시 입안 가득 퍼지는 달달함이 느껴졌다.
" 너 왜 아메리카노 안 먹어? "
“ 뭔 상관 ”
" 아주 이제 꽃 박사도 되고, 단건 싫다는 애가 핫 초코를 먹고, 참.. "
그렇네. 근데, 이젠 달달한 게 좋은 걸. 이상하게,
그리고 저 꽃은,
" 이건 카틀레야! 당신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꽃도 이쁘고 꽃말도 좋은데,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 "
“ 내가 기억하면 되지? 하나 사줘? "
" 응! "
기억하기로 했거든.
“ 그보다 왜 불렀는데? ”
안 그래도 작업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자서 피곤한데
무슨 일 때문에 부른 건가 하고 한번 들어는 보자는 생각으로 물었다.
근데 김태형 입에서 나온 말에 순간 멈칫했다.
" 아. 소개받을래? "
“ ...... ”
" 그만 잊고, 너도 이제 다른 사람 만나야지 "
다른 사람이라,
한 번도 생각해본 게 아니라서, 순간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만나면 잊을 수 있을까?
아니, 나는 아마도 잊지 못할 것 같다.
" 싫어. 헤어지기 싫어 "
잊기에는 지금은 소중한 추억이 되어 버렸다.
좀 품어주고 싶은 추억,
" 그만하자.. 이제 "
좀 아픈 기억이지만 굳이 잊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니까
" 벌써 약속 잡았어 "
앞에 있는 핫 초코를 한번 더 먹으니 쌉싸름하면서 달달함이 입안에 가득 찼다.
기분 좋은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 좀 있음 오기로 했어 "
이 카페는 초코를 많이 넣어줘서 그런지 다른 곳보다 더 달달한 것 같다.
이제 여기로 와야 하나?
" 만나... 알았지? "
김태형의 말에 대답하기도 무섭게 드리워진 그림자가 보였다.
혹시나 해서 고개를 들어보니 순수하면서 단발머리인 한 여성이 보였다.
" 안녕하세요~ 한여은이라고 합니다. "
그 사람을 보는 순간
너가 생각 날 정도에 이쁘고 환한 웃음이 보였다.
" 네? 아.. 정하이 라고 하는데요 "
처음 널 봤을 때, 반할 정도의 그 웃음이,
“ 안녕하세요. 민윤기라고 합니다. ”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기에, 그 봄을 기다리는 두 남녀의 이야기
약 1년 반전에 썼던 내용을 조금 바꾸면서 연재합니다.
딱 이 시기에 올려야 하는 거라서요.
단편이구요! 많은 사랑 부탁드려요.~
이미 완결까지 나와있는 거라서 빨리 내도록 할게요~~!!
그리고 내용이 하이 시점과 윤기 시점 한 번씩 나올거니까,
혼란을 격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궁금한 게 생겼는데 여러분은 에델바이스 하면 무슨 색이 떠올라요?
전 연보라색 또는 보라색이 떠오르는데 꽃은 흰색이더라고요.
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