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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김태형] 상처를 치료해줄 사람 어디 없나 05 | 인스티즈 

 

 

 

 

 

 

 

 

 

 

 

"태형아, 밥 먹자." 

"네!" 

 

 


저녁시간이 좋았다.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저녁은 꼭 가족끼리 먹어야 한다며 그 시간이 되면 집으로 돌아오시는 아버지도 좋았고 매 저녁시간마다 좋아하는 반찬로 가득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주시는 어머니도 좋았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너무도 평범한 저녁식사 시간이었다. 잘 먹겠습니다! 큰 소리로 주방을 울린 뒤 숟가락을 드는 남자아이를 바라보며 젊고 아름다운 여자가 미소를 지었다. 

 

 


"엄마는 안 먹어요?" 

"엄마는 우리 태형이가 먹는 것만 봐도 배불러." 

 

 


남자아이는 입에 넣은 고기를 우물거리며 동그란 눈으로 그런 여자를 빤히 보다 숟가락 가득 밥을 커다랗게 떠서 그 위에 가지런히 고기를 올린 뒤 여자에게 내밀었다. 

 

 


"엄마, 아-." 

"아-." 

 

 


그 작은 고사리 손으로 지 어미의 입에 음식을 물리면 만족스럽다는 듯 활짝 웃었다. 여자는 입에 음식을 머금고 여전한 미소로 아이의 머리를 다정하게 쓸어주었다. 그런 둘의 모습을 바라보며 맞은편에 앉은 남자의 얼굴에 또한 웃음꽃이 피었다. 평화로웠다. 그 누구의 방해도 없이 그 셋은 행복했다. 

그렇게 조용하고 따뜻하게 식사시간이 지나가는 듯 보였다. 그리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사장님."




대신 전화를 받아들은 비서는 식사 중 실례인 것을 알면서도 차마 참지 못 하고 그 사이에 끼어들어 남자에게 핸드폰을 건네었다.




"네. 말씀하세요. 회장님께서? 아, 알겠습니다. 네. 곧 가겠습니다." 

"여보, 무슨 일이에요?" 

"회장님께 가봐야 할 거 같아." 

"여보... 지금 저녁시간," 

"당신도 같이." 

 

 


순식간에 분위기는 찬물을 끼얹은 듯 딱딱하게 얼어붙었다. 큰일이 생긴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깨지 않았던 시간이었는데 저리 굳어진 얼굴은, 큰일이 난 게 분명했다. 

얼른 옷가지를 걸쳐 입고 나갈 준비를 마친 둘은 여전히 동그란 눈으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와 이마에 짧게 입을 맞추었다. 

 

 


"김태형, 아빠 대신에 씩씩하게 혼자 집 지킬 수 있지? 엄마, 아빠 금방 갔다가 올게." 

"태형아, 금방 다녀올게. 먼저 밥 먹고 있어, 알겠지?" 

"네." 

 

 


아이는 그 자리에 앉아 가만히 자신의 부모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따뜻했던 음식이 차디차게 식어버려 딱딱하게 굳어버릴 때까지. 하염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그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 둘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아무도 없는 큰 집에 아이만을 남겨두고,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방탄소년단/김태형] 상처를 치료해줄 사람 어디 없나 05 | 인스티즈 

 

 

 

 

 

 

상처를 치료해줄 사람 어디 없나 05

 

 

 

 

 

 

 

 

 

 

 

휴일이었다. 집에서 쉬는 것보단 일을 나가는 게 더 편하다 외치던 나였지만 다른 사람도 다 쉬는 빨간 날에는 쉬는 게 당연했다. 나도 사람이라고. 열심히 한주를 달렸으면 다음 한주를 위해 쉬어줘야 몸도 마음도 효율적으로 더 잘 돌아가는 법이다. 그런 이유로 역시나 아침 늦게까지 늦장을 부리며 침대에서 비비적거리고 있었다. 반쯤 열어둔 커튼으로 쨍쨍 햇빛이 들어왔고 이젠 정말 타죽을 정도로 날이 뜨거워진 때였다. 이럴 때는 나가지 않는 게 좋다. 하지만 하필 시선이 꽂힌 곳이 귀찮아서 쌓아두기만 했던 터지고 있는 분리수거 통이었고 입에선 하- 한숨이 흘러나왔다. 시계를 보니 11시를 넘어가고 있었고 더 있다가는 해가 정수리 위로 올라 활활 타오를 때가 올 것이다.
그리하여 더 뒹굴고 싶어도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들어가 대충 세안을 마쳤다. 아무리 집 앞이라 해도 성인인 내가 씻지도 않고 나가는 것은 세상에 대한 반항이며 예의가 아니었다. 

방대한 양의 분리수거 통을 품에 안고 끙끙거리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반짝이는 아스팔트를 보니 현관을 나서기가 겁이 났지만 얼른 끝내고 가자는 생각으로 용기 있게 뛰쳐들었다. 더 섞인 것이 없나 하나하나 확인해가며 나름은 빨리 통을 비워가고 있을 쯤 옆에 또 다른 쓰레기통이 놓였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도와줄게요." 

 

 


또 다시 며칠이 흐르고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이번엔 또 아는 척을 하는 것이다. 참 기가 차는 행동에 나도 모르게 다시금 하- 하고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번 역시 집 앞에서 마주쳤고 이제와 보니 꼭 밖에서만 날 모르는 척하는 이유가 혹 나와 아는 사이라는 것이 쪽팔리기 때문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또 이 무슨 거지 같은 태도인지. 

전혀 하나도 이 사람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었다. 나 혼자 처리하기엔 내리쬐는 태양이 부담스러울 정도의 쓰레기 양이었지만 저 남자의 도움이라면 마다하겠다. 하물며 자신 또한 분리수거를 하러 나왔으면서 자기 것이나 신경 쓰지 왜 굳이 나한테 신경을 쏟냐는 말이다. 니 거나 하세요. 그리고 말야. 대체 어떻게 매번 우연스럽게 마주치냐고. 이 건물에 나랑 이 남자 말고는 살지 않는 걸까. 이웃이라곤 이 남자밖에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마주치기 힘들고 각자 바쁜 사람들인데 어떻게 이 남자만 몇 번을 마주치냐고. 참 신기한 건지 이상한지. 

 

 


"됐어요." 

 

 


지난번 나를 무시하고 지나갔던 일이 생각나 심술이 난 김에 원래도 다정하지 않은 말투에 더한 차가움을 얹어 대답했다. 하지만 됐다는 나의 말에도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자기가 먼저 내 쪽에 있는 분리수거 통에 손을 뻗어 쓰레기들을 하나하나 꺼내 각각 통으로 던져 넣고 있었다. 자기 일이나 하지 대체 왜 굳이 나서서 시간을 허비하며 내게 관심을 던져주는 것인지. 얼핏 보니 그쪽의 쓰레기봉투는 별로 차있지도 않은 것 같은데 말이다. 하긴 집에 붙어있지를 않으니 쓰레기가 어디서 생기겠어. 요 며칠간은 이 남자 집의 불이 켜진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대체 뭘 하는 사람인지. 부지런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아직 차지 않은 그 남자의 쓰레기봉투를 보고 있으면 쓴웃음이 나오며 고개가 절레절레 저어졌다. 

그와 더불어 이젠 이 남자에겐 어이없음과 빡침만 남아있어서 그런지 바로 옆에 서있는데도 난 아무렇지가 않았다. 조금 긴장이 될 뿐. 등허리에서 식은땀이 나지도 않았고. 내 얼굴도 하얗게, 멀쩡했다. 조금 붉어진 볼은 아스팔트와 정수리에서 오는 뜨거운 열 때문이었다. 그건 평소와 다르게 잠잠한 내 심장이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 근처에 다니나 봐요." 

"...." 

"회사." 

 

 


뭔 소린지. 주어가 없어 그 남자를 쳐다보자 뒤이어 회사라는 말을 덧붙였다. 뻔뻔스럽기도 하지. 자기가 먼저 그날 일을 꺼내니 말이다. 내가 지금 이 남자에게 심술이 나있는 이유인 건널목에서 마주쳤던 날의 기억으로 말하나 본데. 

어이가 없어 마치 자신의 일이었던 것처럼 쓰레기통에 시선을 꽂으며 내 분리수거 통을 비우고 있는 그 남자를 잔뜩 똥 씹은 표정으로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아직 괜찮지는 않은지. 눈까지 마주치는 건 아직 무리였던 모양이다. 이제는 이 남자를 보며 째려줄 수도 있겠구나 싶었던 순간 내게 시선을 돌리려는 그 남자의 행동에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 나도 모르게 고개를 앞으로 돌려버렸다. 그 김에 멀쩡했던 몸은 깜짝 놀라 잔뜩 당황을 하다 분리수거를 하러 왔다는 사실도 잊은 채 아무것도 못 하고 눈만 어디에 둘지 몰라 돌돌 굴렸다. 째려보고 싶었는데. 한 번은 째려보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오늘도 실패구나. 

 

 


"네." 

 

 


다행히 시선은 금방 분리수거 통으로 떨어졌고 다시 몸을 움직이며 짧게 대답했다. 그리곤 둘 다 아무 말 없이 분리수거에만 집중했나 보다. 내가 대답을 했음에도 그 남자는 다른 말 없이 나와 함께 분리수거 통을 비워갔다. 뭐라 물어오는 것도 짜증이 났지만 막상 이렇게 아무 말 없이 어색하게 나란히 서 있자니 그것도 숨이 막혔다. 그래서 내가 먼저 다른 말을 꺼내려 해도 내 능력 밖인 것도 있었고 그렇게 하자니 나를 또 우습게 볼까 싶어서 입을 열려다 말았다. 

슬슬 내 분리수거 통은 비어가는데 또 다른 난관에 부딪혀버렸다. 내가 이걸 다 비우고 나면 나 또한 저 사람을 도와줘야 하는 것인지. 내가 부탁한 것도 아니고 자기가 자처해서 날 도와준 것인데 나 또한 선의를 베풀며 마음에 들지 않는 이 남자를 도와줘야 하는 것인지 머리를 똘똘 굴렸다. 하지만 결국 나온 결론은 이 남자를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었고 또 한숨이 나오려 하는 것을 참아가며 아까와는 반대로 천천히 분리수거를 하고 있었다. 

 

 


"나 오늘은 약속 없는데." 

 

 


내내 조용했던 공간에 울리는 목소리는 실로 어이가 없었다. 근데 어쩌라는 거야. 자기가 오늘 약속이 없는 걸 왜 나한테 어필하는 건지. 설마 또 밥 먹을 사람이 없어서 그러는 건 아니겠지. 그래서 뭘 어쩌라는 것인지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으면 그 뒤의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저게 끝인가 대체 저 말에 뭐라 대답을 해줘야 할지 몰라 나는 여전히 입을 열지 않고 있었다. 

그 상태로 다시 정적이 흐르며 드디어 내 분리수거 통이 깨끗이 비워졌다. 왔다 갔다 굽혔던 허리가 뻐근거려 쭉쭉 피며 스트레칭을 한 뒤 남자를 도와주려 했다. 몸을 다시 똑바로 피고 그 남자에게 당신의 것도 도와주겠다 말하려는 때 그 남자는 자신의 쓰레기통이 아닌 나를 바라보며 내게 먼저 자신의 물음을 던졌다. 

 

 


"이름이 뭐예요? 우리 한참 봤는데 아직 이름도 모른다." 

 

 


별걸 다 묻네. 어이가 없다는 것을 넘어 이제는 신기할 지경이었다. 다짜고짜 통성명을 요구하는 것도 그렇고 우리에게 그것이 필요할 만큼 한참 본 건 아닌 것 같은데 이 남자 기준에서 한참은 어느 정도인지. 좀 더 만만해진 김에 아까 도전했던 것을 마저 해보려 자연스럽게 숙여져 있던 고개를 들어 그 남자의 코를 쳐다보았다. 참을만하네 뭐. 똑바로 몇 초간 있는 것은 어려웠지만 힐끔힐끔 시선을 올려 간간이 눈을 맞추는 것은 가능했다. 그렇게 조금은 이상한 듯 보이겠지만 나는 나름 눈을 맞추고 있었다. 

 

 


"김태형. 내 이름이에요." 

 

 


김태형. 이름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남자랑 '김태형'. 이름이 참 잘 어울렸다. 대답을 하지 않자 그의 입에서 먼저 이름으로 보이는 단어가 나왔고 저 남자의 이름까지 들었는데 나도 말해줘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내 입은 쉽게 열리질 않았다. 그냥 나는. 뭔가 내 이름을 내 입으로 말하는 게 징그럽고 이상했다. 제 자신을 자주 3인칭화시켜 부르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직접 몇 번 불러본 적 없는 이름을 내 입으로 말해야 할 때 그 어색함이란. 앞의 남자, 김태형에게 내 이름을 말해주기 싫었던 건 아니었고 그런 이유에서 내 입으로 내 이름을 말하기가 꺼려졌다. 

 

 


"이름." 

 

 


잊고 있었다. 이 남자에겐 약간의 끈질김이 있다는 것을. '이름'을 다시 강조하며 김태형은 입을 앙 다물었다. 아마 내가 자신에게 이름을 알려줄 때까지 내내 나에게 물어보겠지. 고작 몇 초 뜸을 들인 것 가지고 벌써부터 재촉을 해대는 걸 보면 뻔했다. 내게 어색한 일이건 뭐건 어쨌든 한 번 거쳐야 하는 일이었고 대답을 해줘야 했다. 

 

 


"김 ... 아미요." 

"이름 이쁘다." 

"고맙네요." 


"그럼 아미야, 나 오늘 약속이 없는데. 같이 밥 먹어요." 

 

 

 

망할 내 이름이 드디어 김태형의 입에서 나왔고 코까지 올라가 간간이 눈까지 맞췄으면서 내 시선은 다시 뚝 떨어져 원점인 그의 신발코로 내려갔다. 아까까진 멀쩡하던 심장이 쿵쿵 소리를 내며 내 귀를 울리기 시작했다. 대체 뭐야, 뭐가 문제길래 갑자기 반응하는 거냐고. 분명 그런 무례한 말에 고개를 쳐들어 더욱 용기를 내서 내가 왜 그래야 하냐며 기분 나쁘단 표정을 지어줘야 하는 것이 맞았지만 마음처럼 되질 않았다. 우선은 갑자기 뛰어대는 심장과 올라오는 열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더욱 푹 숙이는 게 먼저였다. 


조금은 천천히 내 이름을 뱉어내자 그의 입에선 바로 이쁘다는 형식적인 말이 튀어나왔고 후에 바로 반듯한 이가 보일 정도로 씨익 웃으며 내게 같이 밥을 먹자며 권했다. 별로 보지도 않았고 친하지도 않은 사이에 이름이 오고 가자 나이도 모르면서 대뜸 내게 말을 놔버리는 것은 무슨 태도인지 모르겠다. 또 밥이야. 결국 밥이었다. 혼자 먹기 싫다고 그랬었나. 또 내가 걸리고 만 거지 뭐. 하지만 내가 그 제안에 응해줄 필요는 없는 것이다. 물론 나도 혼자 끼니를 때워야 하지만 이미 익숙해진 나는 혼자 밥을 먹어도 전혀 아무렇지가 않단 말이다. 만일 내가 혼자 먹는 게 싫다고 해도 이 남자랑 먹는 것은 내 쪽에서 사절이다. 지금에서야 다시 느끼지만 이 남자는 이상한 게 확실했다. 내 이름을 부르면서. 김아미씨, 아미씨도 아닌, 무려 아미야 라니. 도통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밥 먹자, 네?" 

 

 


올바른 언어구사를 못 하는 것인지. 이건 반말인지 존댓말인지 구분도 안되는 단어들을 뱉어댔다. 야속하게도 내 표정이 보고 싶었는지 내게 한 발짝 다가오더니 허리까지 구부리고 내 표정을 살폈다. 옆으로 힐끗 보이는 그의 얼굴에 아랫입술을 꽉 물었다. 대체 어느 부분에서 갑자기 긴장이 되는 거냐고. 어느새 맞잡은 두 손은 땀이 나는지 축축했다. 계속 대답도 않고 이러고 있자니 대답이 나올 때까지 날 붙잡아둘 것 같았고 이 남자를 도와주고 들어가야겠단 생각은 이미 접은지 오래였다. 내게 선행을 베풀었든 어쨌든 빨리 이 남자를 피해 집으로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니요. 나는 약속이 있어요." 

 

 


눈을 질끈 감은 채로 빠르게 대답하며 혹시 잊고 가서 망신살을 뻗치지 않도록 바닥에 있던 분리수거 통도 확실히 챙겨들고 현관으로 마구 내달렸다. 실은 약속 따위는 있지도 않았다. 혜주가 아니면 나는 친구도 없으니 말이다. 아니, 있긴 하지만 전부터 잡았던 약속도 아니고 갑자기 막 불러낼 편한 친구가 없다는 뜻이었다. 있는 약속도, 만들 약속도 없었지만 나는 거절의 말을 해야 했고 나쁜 것이지만 거짓말이라도 해야 했다. 그래서 교과서처럼 대답을 하고 엘리베이터에 올라 숨도 쉬지 않고 집안으로 골인했다. 집안으로 들어와 그 남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후- 숨을 내쉬면 쿵쿵거리던 심장은 잠잠해지는 것 같았다. 대체 왜 그랬냐고. 괜찮았으면서 갑자기 뭐 때문에 꼴사납게 그렇게 뛰어댔냔 말이야. 마음대로 조절이 되지 않는 심장을 쿵쿵 치며 다음으로 머리에게도 화를 낼 참이었다. 멍청하고 우습게도 순간 나는 그가 내놓은 제안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자고 할 뻔했으니 말이다. 잠깐, 아주 잠깐이었지만 이 남자와 함께 밥을 먹는 상상을 했다. 한 번도 다른 남자와 마주 보고 앉아 밥을 먹은 적이 없었다. 만약 그랬다면 기절해서 거품을 입에 물었을 것이다. 그건 좀 심한가. 어쨌든, 계속해서 이상한 말을 뱉어대는 그 남자에게 오기 비슷한 호기심이 생긴 김에 함께 밥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면 이 남자에 대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들이 풀리지 않을까 생각한 건 사실이었다. 정말 바보 같고 답답하지만 그건 사실이었다. 그래서 마음대로 내 입에서 알겠다는 허락의 말이 떨어지기 전에 급하게 뛰어들어온 것도 있었다. 

들어오는 말과 행동이 어이가 없으니 나마저도 답이 안 나오는 행동들이 나가는 것이다. 그 남자로 인해 나마저도 이해 못 하는 행동들을,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도 대체 왜 그 남자를 따라가는 것인지 설명이 안 되었지만 그렇게라도 위로를 해보련다. 도통 모르겠는 내 감정을 정의해보련다. 

 


약속이 있다는 말을 했음에도 집 한번 떠나지 않고 집에 박혀 있으려니 옆집 남자가 걸렸지만 내가 나갔는지 안 나갔는지 그 남자가 어떻게 알까 싶어 그냥 말았다. 그 후로 그 남자는 어떻게 했으려나,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찾으러 밖으로 나갔으려나. 그 남자에 대한 생각으로 하루를 채우면서.

 

 

 

 

 

 

 

 

[방탄소년단/김태형] 상처를 치료해줄 사람 어디 없나 05 | 인스티즈 

 

 

 

 

끙끙. 가뜩이나 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며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평소엔 바쁜 나를 배려한다시며 집으로 잘 부르지 않으셨는데 어느 날은 퇴근길에 꼭 집에 들르라는 연락을 하셨다. 간만에 엄마도 보고 싶었고 잘 지내고 계신가, 하나 밖에 없는 딸이 효도도 못 하고 밖으로 나돌기만 하는 것이 죄송스러워서 지친 몸을 이끌고 오랜만에 집향기를 맡으러 옛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건 내 머리통보다 두 배는 커 보이는 수박 한 통이었다. 매 여름마다 그래왔듯이 올해 또한 빼놓지 않고 외할머니께서 보내주신 거라고 하셨다. 어차피 혼자 사는지라 잘 먹지도 않으니 집에 놔두고 주위 이웃분들과 나눠드시라고 인사만 드리고 오려 했는데 굳이 내 손에 꼭 쥐여주셨다. 회사 사람들하고 나눠먹으라고. 너도 이웃 있지 않냐고, 나눠먹으라고. 그래서 차마 거절을 할 수가 없었다. 오랜만에 뵌 엄마의 얼굴은 꽤 핼쑥한 듯 주름이 더욱 깊어져 있어 안타깝고 죄송스러운 마음이 파도처럼 펄펄 밀려들어왔다. 못난 딸이 뭐 하나 해드리는 것도 없이 그렇게 살아온 게 왜 이제서야 죄송스러운지. 집에서 자고 간지도 오래되었는데 온 김에 잠이라도 마음 놓고 자고 가고 싶었지만 당장 내일부터 다시 출근을 해야 해서 그럴 수도 없었다. 인사만 드리고 가려 했지만 딸 온다고 테이블 넘치게 차려놓으신 밥상에 그래도 밥공기 가득 밥을 꾹꾹 눌러 담아 밥알 한 톨까지 싹싹 긁어먹고 집을 나왔다. 그리곤 아쉽게 발걸음을 또 떼어야 했다. 감사하고 죄송하고. 

 


그래, 그건 그거였고. 배부르게 식사를 마친 것까진 좋았는데 속이 꽉 차서 그런지 그 무거운 수박을 혼자 들고 나르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팔은 빠질 거 같지, 수박 무게까지 버텨야 하는 발은 꾹꾹 쑤시지, 목까지 차오른 음식들로 숨쉬기도 힘들지 아주 죽어났다. 그날따라 집으로 가는 길은 왜 그렇게 또 먼 건지 걸어도 걸어도 집이 보이질 않았다. 

그러다 옆쪽에서 까만 물체가 훅 지나갔고 수박을 들었던 손은 금방 홀가분해졌다. 옆집 남자였다. 날 도와주는 건가. 분명 내가 들었던 수박 중에 제일 무거웠다고 장담할 만큼 육중한 무게를 자랑하는 수박이었는데 김태형의 손에 들려있는 저 수박은 덜렁덜렁 참으로 가벼워 보였다. 남자는 남자인 건가. 김태형은 나보다 두발짝 앞서서 아무 말 없이 대신 들어준 수박을 덜렁거리며 뚜벅뚜벅 걸었다. 남 도움 받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지라 얼른 다시 받아들어야 했지만 너무 아팠던 팔이 자꾸 하소연을 해대서 그대로 조금만 걸었다. 정말 한 다섯 걸음 걸었나, 이제 다시 내가 들어야지 앞서가는 그의 걸음을 따라잡아 옆에 서서 수박을 받아들으려 했다. 

 

 


"제가 들게요." 

"설탕 뿌려먹으면 맛있는데." 

 

 


달라니까 여전히 앞을 보며 걷는 김태형은 딴소리를 해댔다. 그래서 나눠달라는 거야 뭐야. 근데 웃긴 게. 또 하필, 왜 하필. 단 걸 좋아하기에 어렸을 때부터 수박에 설탕을 뿌려먹는 습관이 있었다. 망할 이 남자와 공통점이 생겼다는 사실이 조금 웃기긴 했지만 신기하기도 했다. 그런 사람 흔치 않은데.

김태형은 여전히 수박 끈을 쥐고 걸었다. 신세를 지고 싶지 않았지만 더 달라고 말을 해도 말을 돌리며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할게 뻔하니 그냥 놔두기로. 뻘쭘하게 뻗었던 손을 다시 가지런히 들었고 처음처럼 뒤로 몇 걸음 빠져 그의 뒷모습을 보며 졸졸 뒤를 따랐다. 뒷모습이라 그런가 아예는 아니지만 그리 심하게 긴장이 되지는 않았다. 아니, 이제 이 남자는 하도 많이 봐서 괜찮아진 건가. 

 

 


"먹어 봤어요?" 

 

 


조용했던 그 길에 나지막히 김태형의 음성이 울렸다. 내가 그날 자신의 말에도 뭐라도 본 것처럼 거절을 하고 마구 내달렸던 것에 대해 기분이 나쁘진 않았을까 걱정을 했었는데 먼저 말을 걸어주는 그에게 조금 고맙기도 했다. 꽤나 무례했던 행동이었는데. 앞에 사람이 말을 하고 있는데도 난 내 할 말만 던지고 자리를 피해버렸다. 그게 못된 짓이지, 뭐. 그런 그에게 공통점도 생겼겠다 뭐라 길게 대답을 해주고 싶었지만 여전히 짧막하게 대답이 나갈 뿐이었다. 

 

 


"네." 

"맛있죠?" 

 

 


영혼 없이 나간 나의 대답에도 벌써 기분이 좋아졌는지 맛있죠, 라고 묻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 보이지 않는 그의 뒤통수로 실실 웃고 있는 남자의 표정이 그려졌다. 아마도 머릿속으로 자신이 맛있게 먹었던 설탕이 듬뿍 뿌려진 수박을 상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 역시 수박에 설탕을 꼭 뿌려먹어야 한다는 주의였고 그 맛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말로는 차마 표현을 못 하고 그 뒤에서 고개만 힘껏 흔들었다. 나눠줘야겠지. 그의 들뜬 말투를 듣는다면 누구라도 그에게 수박을 들이밀고 싶었을 것이다. 원래도 나 혼자 먹기에 벅차서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걱정했었는데 이 남자의 입을 빌리면 쉽게 해치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또 짧게 네, 라고 대답했고 김태형은 벌써 내가 나눠줄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는지 신이 나는 듯 그 무거운 수박을 흔들흔들 거렸다. 꽤나 아이 같은 모습이었다. 수박 하나에 헤벌쭉해서 방방거리는 모습이 귀엽다는 생각까지 살짝 들었다. 미친 거지. 정신을 차리고 그런 생각일랑 다른 곳으로 치워버렸다. 

 

 


"그렇다고 꼭 나눠달라는 건 아니고." 

 

 


열심히 앞으로 걸어가던 김태형의 고개가 뒤를 돌아 나와 시선이 마주치는 것은 순간이었다. 피할 틈도 없었고 준비할 틈도 없었다. 내가 그리고 있던 대로 정말 반달처럼 올라간 입꼬리와 함께 김태형은 활짝 웃으며 내게 말했다. 순간 심장이 욱신해서 발이 잠깐 멈추었다. 준비할 틈도 주지 않고 말이야. 고개를 숙이거나 내 눈동자를 아래로 깔아버릴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그렇게 빨리 눈은 마주쳤고 아이처럼 해맑게 웃는 그를 보고 깜짝 놀란 내 심장이 욱신한 것이다. 다행히 금방 정신을 차리고 다시 그의 뒤를 따르긴 했지만 미미하게 심장은 콕콕 계속해서 찔렸다. 저 남자는 조심해야 해.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라야 했다. 나란히 엘리베이터가 일층에 도착하는 것을 기다리며 나는 불안함에 안절부절못했고 그런 나를 김태형은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계단으로 올라가고 싶었지만, 그를 피하기 위해 그렇게 뱉은 내 말에도 그는 그럼 같이 가자며 함께 계단으로 향할게 뻔했으니 꺼내지도 않았다. 그래서 더 빠르게 끝나는 엘리베이터 앞에 그나마 참고 있을 수 있었다. 약간은 긴장한 내 몸이 티를 냈겠지만 그 또한 금방 내려온 엘리베이터 덕분에 무마할 수 있었다. 문제는 엘리베이터에 오르고 나서였다. 문이 닫혀야 출발할 수 있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문이 닫히는 걸 원하지 않았다. 문이 닫히고 나면 정말 그 좁은 공간에 남자와 둘만 갇히게 되는 거니까. 그 때문에 내 쪽에 있는 버튼을 누르지도 못 한 채 저절로 닫히는 문을 기다리며 시간은 더욱 지체되었다. 숨이 턱- 막히는 바람에 먼저 엘리베이터에 올라 구석으로 박혀있었다. 여긴 나 혼자다, 나는 지금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다, 얼마나 속으로 주문을 외웠는지 모른다. 

꽉 막혀 숨을 쉬기가 어려워질 쯤 엘리베이터는 도착해 문이 드디어 열리며 내 숨통을 틔워주었고 또한 무례한 행동인 것을 알면서도 그를 지나쳐 먼저 내려버렸다. 그래도 참고 같이 타고 온 게 어디냐며 애써 위로를 하면서. 

 

 


"여기요. 이 무거운 걸 여기까지 혼자 들고 왔어요?" 

"고마워요." 

 

 


그래 우린 옆집이었지. 서로의 집으로 들어가려면 또 다시 나란히 서야 했다. 뭔가 큰 것을 깜빡 잊고 얼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도어락을 누른 뒤 문고리를 잡으면 그 모습을 찬찬히 보고 있던 김태형이 내게 수박을 건넸다. 아차, 하며 여전히 길어질 줄 모르는 대답을 해주고 아직 도어락도 풀지 않은 그 남자에게 꾸벅 인사를 한 뒤 집으로 들어갔다. 이게 끝이 아니야. 수박을 나눠주어야 한다. 

 


내겐 꽤 큰 미션이었다. 얼만큼 줘야 하는지 고민을 무척이나 하다 일단 반을 뚝 잘라놓고 또 머리를 굴렸다. 반을 다 주자니 아까운 건 아니지만 그 남자가 오해할 만큼 너무 많이 주는 것 같고. 어떻게 잘라서 어디에 줘야 하는 것인지도 내겐 큰 고민이었다.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서 줘야 하는 건지 아님 자신의 먹는 스타일이 어떨지 모르니 통으로 그냥 줘야 하는 것인지. 누구에게 무엇을 나누어 준 적이 없으니 머릿속이 참으로 복잡했다. 일단 다시 보지 않기 위해 버릴 수 있는 일회용 접시에 주는 것이 맞겠다는 결론은 하나 나왔다. 그렇다면 그에 맞게 수박을 잘라야 하는데 너무 성의가 없어 보이고 한없이 적은 양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에이씨. 머리를 마구 헝클였다. 그냥 대충 주면 되는데, 줬다는 것이 중요한 거지 어떻게 주느냐가 얼마나 중요한 거라고 이렇게 고민을 하는 것인지. 고민을 하고 있다는 자체가 웃긴 짓이라는 것을 늦게도 깨닫고 그냥 잘라놓은 반 통을 그에게 넘기기로 했다. 

 


반이나 잘랐는데 아직도 무거운 건 내가 힘이 더럽게 부족하다는 뜻일까. 여전히 무거운 수박을 들고 초인종에 한번 손도 가져가지 못 한 채 우물거렸다. 남자 집이다. 남자 혼자 살고 있는 집. 침을 꼴깍 목뒤로 넘겼다. 시원한 수박을 들고 있는 손에선 야속하게도 땀이 나는 게 느껴졌다. 내겐 초인종 하나를 누르는 것만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내가 이 자리에 선 것만 해도 꽤나 큰 발전을 한 것이니 말이다. 남자에게 무언가를 전해주려 하다니 그것도 직접. 그래도 혜주의 도움으로 저번에 한번 박지민에게 아이스티를 건넸던 것도 있어서 그나마 나은 것 같기는 했다. 하지만 그건 눈앞에 있는 그에게 그저 내 손에 있는 것을 내밀기만 하면 되는 거였고 지금은 남자의 집에 벨을 울려야 하니 더욱 시간이 걸리는 것은 당연했다. 것도 무려 남자의 집에. 

그리 걱정하고 있어도 이미 작정을 하고 나왔는데 초인종이라도 눌러봐야 하지 않겠는가. 실은 들고 있는 수박이 자꾸 팔을 눌러와 이제쯤 빠질 듯 아파왔기 때문도 있었다. 안 그래도 무거워 죽겠는데 초인종을 누르기 위해 바들바들 한 손으로 수박을 넘겨놓고 겨우 벨을 눌렀다. 인터폰으로 누구라 말할 필요도 없이 김태형 집의 문은 바로 열렸다. 그리곤 바로 씻은 것인지 머리에 축축 물기를 머금고 있는 김태형이 날 반기러 아니, 수박을 반기러 나왔다. 

 

 


"어?" 

"저, 이거, 수박, 어...." 

 

 


바보같이 말은 왜 더듬는지 답답한 내 입술을 착착 때려주고 싶었다. 시선은 잘려있는 수박의 단면을 한없이 뚫어보며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있었다. 멘트도 정리하지 못 하고 온 내가 바보 같았다. 짧은 말이었으면 모를까 긴 문장은 하기 힘든 걸 알면서 아무것도 정리하지 못 하고 벨을 눌러버린 것이다. 그거나 정리하지 웬 쓸데없는 것들만 고민했냐며 자신을 탓했다. 몇 번 더 버벅거리며 쿵쿵 뛰어대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킨 뒤 멘트를 정리해 나름 차분히 뱉었다. 

 

 


"혼자 먹기는 너무 많아서요." 

"그래서 이걸 다 나 줄라고요?" 

 

 


젠장, 너무 큰 걸 가져왔어. 힐끔 들어본 그는 눈을 땡그랗게 뜨며 입까지 벌리고 있었다. 더 잘라올 걸 내가 너무 무식하게 가져왔나 후회가 왕창 들었다. 이럴까봐 걱정을 했던 거였는데 고민을 했던 것도 다 헛짓이 되어버렸다. 나는 멍청하다. 반으로 뚝 잘려선 딱 보기에도 부족해 보이는 일회용 접시에 꾸겨있는 수박의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다. 동시에 그의 말에 볼이 발그레 올라왔다. 가뜩이나 처음 해보는 일이라 긴장이 잔뜩 되었는데 그의 반응을 보니 그렇게 창피할 수가 없었다. 

 

 


"너무 많으면," 

"나 수박 진짜 좋아하는데." 

"...." 

"근데 이거 너무 많아요." 

"...." 

"같이 먹고 갈래요?" 

 

 


낑낑거리며 들고 있는 수박이 내게 버겁다는 것을 알아차린 건지 자신이 얼른 받아 들며 말을 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손이 몇 번 스쳤지만 무거운 수박이 혹시나 떨어질까 쉽게 빼지도 못 했다. 자연스럽게 여자를 집으로 들이는 기술이 대단했다. 같이 먹고 가라는 말이 어쩜 저렇게 쉽게 나오는 건지. 어쩜 이 남자는 정말 아무 뜻 없이 방대하게 많은 수박을 위해 뱉은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식의 말을 처음 들은 나는 이상한 마음이 드는 게 당연했다. 그래서 그의 말에 긴장을 하며, 기대를 하며 심장이 쿵쿵 뛰었더랬다. 맨날 같이 밥 먹자고 하는 것도 그렇고. 정말 나에게 관심이 있는 것인가, 생각이 들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나에겐 그랬다. 물론 내가 연애 한번 안해 본 생초보자라 오해를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지금의 난 그렇게 느껴졌다. 그래서 순간 머리를 또 무척이나 굴렸다. 물론 거절을 해야 한다는 것은 단번에 생각이 들었지만 이번 역시 거절을 하는 게 미안하기도 해서 바로 말하지 못 하고 뜸을 들였다. 며칠까지만 해도 이 남자에게 또 한 번의 거절을 한 뒤 냅다 뛰었으니까. 하며 이번에도 내가 거절을 하면 그때는 포기하고 그만하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다. 그만 건드리겠지. 

 

 


"아니요. 저도 집에 있어요." 

 

 


남들이 들으면 정말 바늘 하나 안 들어가는 개철벽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근데 어쩔 거야. 나는 남자를, 싫어하는데. 약간은 정 없게 들릴 수도 있는 말투에 김태형이 혹시나 기분이 나빠할까 싶어 고개를 살짝 들어 그를 살폈다. 수박을 주고 비어버린 손이 어색해 연신 꼬물딱거리며 그의 눈치를 보는 것이 참으로 답답하기도 했다. 거절할 수도 있는 거지 그게 뭐 그리 대수라고 눈치까지 보냔 말이다. 평소엔 다른 사람들에게 잘도 거절을 했으면서. 처음 내가 수박을 들이밀었을 때완 다르게 둥글던 눈썹이 내려가고 묘한 표정을 짓는 그였다. 하지만 그게 기분이 상했다는 표시는 아닌 것 같았다. 그냥 그랬으면 좋겠다. 

 

 


"고마워요. 맛있게 먹을게요. 나 수박," 

"...." 

"진짜 좋아해요." 

 

 


왜 저렇게 한 템포 쉬었다가 말하는 거야. 다른 사람이 들으면 뭘 좋아하는 건지 오해라도 하게끔 그렇게 한 템포 쉬었다가. 이 남자는 풍기는 분위기가 묘했다. 입꼬리 하나에, 뜨고 있는 눈 크기 하나에 표정이 휙휙 바뀌며 또한 분위기마저 왔다 갔다 거렸다. 집으로 오는 길 내내 아이같이 방글방글 웃고 있던 남자와 지금 내 앞에서 눈은 가만히 둔 채 입꼬리만 올려 슬쩍 웃는 이 남자는 느껴지는 분위기가 매우 달랐다. 차마 내 앞에서 대놓고 기분 나빠할 수는 없고 그래서 일부러 저런 표정을 짓는 건가. 하나부터 열까지 이 남자의 행동은 풀리는 문제가 없었다. 모르겠다. 더 생각하면 머리만 아프지. 일단 나는 하나의 큰 미션인 수박 나눠주기에 성공을 했고. 자꾸 하는 거절에 이 남자가 기분이 나쁘든 말든 나에겐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게 기분이 나빠서 다음부턴 그런 제안 따위 하지 않으면 더 좋은 것이고. 이제 이 남자는 괜찮은가 싶으면 저런 말을 뱉어서 또 내게 커다란 긴장감을 안겨주니 제발 안 그랬으면 좋겠다. 

 

 


"그럼 맛있게 먹어요." 

 

 


마지막 말을 해주고 문을 닫으라며 나는 몸을 살짝 뒤로 뺐다. 그럼 수박을 받아들은 김태형이 안으로 들어갈 거란 내 생각과는 다르게 그는 눈만 깜빡이며 들어갈 생각을 안 하는 것이다. 나를 빤히 보면서. 그렇게 나오면 나는 뭐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고. 고개는 여전히 숙인 채로 그런 김태형을 힐끔 힐끔 올려다보면 나를 빤히 보다가 먼저 들어가라는 듯 고갯짓을 했다. 아주 별걸 다 배려해주시네. 

그래, 나도 이 남자와 빨리 떨어지고 싶었고 알겠다며 먼저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 뒤 바로 들릴 것 같았던 옆집의 도어락 소리는 꽤나 시간이 흐른 후에야 귀로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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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통님 눈부신님 태태님 인사이드아웃님 령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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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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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흐헣 ㅠㅠㅠㅠㅠㅠ진짜 너무 재밌어요 감사합니다 ㅠㅠㅠㅠ
8년 전
독자3
태형만의 언어능력이 매력적이긴하죠!ㅋㅌㅌ 뭔가 알수없는 요상한 분위기에 제 취향저격입니다 작가니뮤ㅠㅠㅠㅠ너무 재미있어요!
6년 전
독자4
히익 맞아요 태형이는 헤헤 웃는거랑 무표정이랑 입꼬리만 올라간거랑 분위기가 다 다른것ㅠㅠ
6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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