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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김태형] 상처를 치료해줄 사람 어디 없나 06 | 인스티즈

 

 

 

 

 

 

 

 

 

 

 

/
"여보, 걔는 괴물이라니까! 오늘 또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 줄 아세요?"

"...."

"여보, 내 말 들어요? 우리 집에서 당장 쫓아내요! 우리 애한테까지 피해 줄까 봐 무섭다구요!"

 

 


기둥 뒤에 안 보이게 서서 둘의 이야기를 옅들었다. 아무 말도 없이 자신의 턱을 쓸며 눈을 감고 있는 남자에게 잔뜩 흥분한 여자가 소리를 질러댔다. 벌써 몇 번째 학교로 불려간 것이 드디어 터진 듯했다. 자신의 아이도 아닌 피 한 방울 안 섞인 아이 때문에 피곤하게 학교로 출근도장을 찍는 것에 열이 받기도 했지만 학교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이 무서울 정도로 소름이 끼쳤다.

어머님, 오늘 태형이가 또 한 학생을 때렸습니다. 이번에는 저희 선에서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요. 그쪽 어머님께서 화가 무척이나 나셔서, 저희도 다른 방도가 없네요.

먼저 시비를 건 것은 그쪽임에도 이유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일단 한 아이가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몸에 상처를 입었고 그의 어머니는 자신의 자식이 무슨 잘못을 했든 피해자가 되길 바랐다. 이미 심하게 맞아 의식도 없는 아이를 계속해서 때리며 너무 심한가 생각을 하면서도 이러면 나를 봐주겠지, 이러면 내게 관심을 더 주겠지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결국 날 위해 학교로 오셨으니 성공했다고. 비록 내게 따뜻한 말 한마디 안 해주셨지만 나를 위해 학교로 오셨으니 그거면 된 거라고.

 

 


"당신이 계속 그렇게 그 아이를 감싸고 돈다면, 제가 석호를 데리고 나가겠어요!"

 

 


그러면 안 되는데. 나는 큰어머니도 좋고, 석호도 좋은데. 다 같이 살면 안 되는 걸까. 석호의 말대로 한 것뿐인데 내가 뭘 잘못했을까. 분명 자신의 말만 잘 들으면 큰어머니께도, 큰아버지께도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했는데.

 

 


"야, 김태형. 따라와봐."

 

 


제 또래의 남자아이를 따라가보면 복도 맨 끝 제일 작은 방에 나이가 조금 더 있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둘을 기다리고 있었다.

 

 


"와, 미친. 진짜 김태형이네?"

"거봐. 내가 맞다고 했지? 얘 내 말이면 다 들어. 그치, 태형이 형?"

"...."

"형, 우리랑 같이 살고 싶잖아. 그럼 내 말 들어야지."

 

 


남자아이는 아무 말 못 하고 서있는 태형을 여자가 서있는 쪽으로 밀어 넣었다. 그럼 자신의 품으로 들어온 태형의 볼을 여자는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들은 대로 존나 곱상하게도 생겼네. 너랑 사촌 맞냐? 시발, 무슨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어."

"사촌은 무슨. 이제 걔, 누나 맘대로 해."

"아, 미친! 너 말 바꾸지 마라!"

 

 


흐뭇한 표정으로 태형을 보고 있는 여자와 살짝 찡그린 채 가만히 서있는 태형을 담기 위해 남자아이는 카메라를 들었다. 자신을 담고 있는 카메라에 대고 브이자를 한번 그려준 여자는 슬금슬금 태형의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갑자기 끼치는 차가운 느낌에 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 태형에게 여자는 속삭였다.
태형아, 누나 믿어. 누나가 기분 좋게 해줄게.

 

 

 

 

 

 

 

 

 

-

"누나, 나 사랑하죠?"

"응. 누나가 태형이 많이 아끼지!"

"이것도 다 나 사랑해서 그런 거죠."

"그럼. 사랑해, 태형아. 누나 믿지?"

 

 

 

 

 

 

 

 

 

 

 

[방탄소년단/김태형] 상처를 치료해줄 사람 어디 없나 06 | 인스티즈

 

 

 

 

 

상처를 치료해줄 사람 어디 없나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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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바에야 차라리 나서서 야근을 할 걸 그랬다. 정시간에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려 하면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이 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튀어나와 한마음으로 버스와 지하철을 채웠고 그렇게 붐빌 수가 없었다. 숨이 턱턱 막히더랬지. 출근길 못지않게 퇴근길 또한 생지옥이었다. 이럴 때면 또 끌어 오르는 차를 장만하자는 턱도 없는 바램을, 꾹꾹 누르고 버스에 올랐다. 지하철을 타도 되지만 지하철을 타면 버스보다 몇 걸음을 더 걸어야 하기 때문에 버스를 자주 선택하는데, 요즘 들어 그 선택이 거지 같은 생각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중이다. 지하철도 숨이 막히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난폭하신 기사 아저씨의 운전 실력을 보면 일정하게 움직이는 지하철이 훨씬 나았다. 급제동, 급정거에 내 몸은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머릿속은 이미 영혼이 빠져나간 뒤였다. 부대끼는 몸들에 혐오감이 들기도 전에 숨을 쉬며 살아남는 게 더 바빴고.

그래도 정거장을 지나쳐 갈수록 사람이 훅훅 빠지기는 했다. 그러면서 숨은 쉴 수 있었지만 내 의지도 아닌데 힘없는 몸은 가만히 서있고 싶어도 안으로 쭉 끌려들어 왔다. 처음 자리가 없어 앞문 쪽에 위치했던 나는 눈을 떠보니 발 한번 의지로 뗀 적이 없었는데 어느새 뒷문이 있는 중간까지 와 있었다. 망할 버스, 다음부턴 조금 더 걸어도 지하철을 타리라 다짐을 하며 머리맡에 위치한 에어컨 바람을 쐬고 있었다. 정류장에 도착했는지 버스는 멈췄고 뒷문쯤에 있었던 나는 내리려는 사람들로 인해 다시금 안쪽으로 더 들어가야 했다. 아니, 차라리 안으로 더 들어가는 것이 더 나았다. 안쪽은 사람들이 별로 서있지 않았으니까. 사람들에게 덜 치여도 되었다.

 


그래서 그 자리에 섰고 내 앞엔, 참 웃기게도 옆집 남자, 김태형이 앉아있었다. 언제부터 타고 있었는지, 벌써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것을 보면 꽤 전부터 타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수박을 나눠줬던 일도 있고 나름 친해졌다는 생각에 인사를 건네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노래를 듣는 듯 양쪽 귀엔 이어폰을 곱게 꽂고서 잠을 자는 것인지 아님 생각을 하는 것인지 눈은 감겨있었다. 나 혼자 발견한 듯한데 굳이 감겨있는 그의 눈을 열어 아는 척을 해야 할까 싶어 대신 날 발견하지 못 했다는 이유로 나는 처음으로 그 남자의 얼굴이나 자세히 뜯어 보자 했다. 처음 내려다 본 곳은 감은 눈으로 보이는 속눈썹이었고 웬만한 여자도 울고 갈 정도로 부드럽고 길게 뻗어있었다. 괜히 마스카라로 늘려놓은 인공적인 내 속눈썹이 초라해지는 순간이었다. 실은 제대로 한 번 본 적도 없었는데 이렇게 알아보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남자에게선 그만의 분위기가 있어서 그것을 느끼자마자 바로 김태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꽤나 잘생긴 얼굴이었다. 이마부터 떨어지는 콧대는 자연이 맞나 싶을 정도로 빚어놓은 듯 시원하게 쏫아있었다. 분명 화장을 한 것도 아닐 텐데 뻘겋게 물들어있는 입술은 촉촉한 물기를 먹금은 딸기와 같았다. 하지만 그 중 아까부터 눈을 뗄 수 없었던 건 처음 눈에 띄었던 속눈썹이었다. 낮에 무슨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었던 건지 나쁜 꿈을 꾸는 건지 평소답지 않게 살짝살짝 미간을 찌푸리는 바람에 기다란 속눈썹은 더욱 눈에 밟혔다. 무언가 얹혀있는 듯 묵직했지만 가볍게 흩날리고 있는 그 길고 소복한 속눈썹은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 그와는 반대로 넋을 놓고 바라볼 만큼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입까지 살짝 벌리고 창가 쪽에 앉아있는 그 남자에게 시선을 꽂고 있으면 또 한 정류장에 도착을 했는지 버스는 멈춰 섰고 내 몸 또한 한번 뒤뚱했다.
그 김에 정신을 차렸고 방금했던 내 발언들을 곱씹어보니 그렇게 꼴사나울 수가 없어 죄책감마저 들었다. 나 지금 뭐라고 지껄인 거지. 정신 차리라며 볼을 아프지 않게 착착 때렸다.

 


거리는 가까운데도 구석구석을 돌아서 가는 바람에 우리 집으로 도착하려면 꽤 많은 정류장을 거쳐야 했다. 그래서 그 많은 사람들이 차례차례 내리는데도 난 버스 손잡이를 잡고 버스와 함께 달려야 했다. 한 다섯 정거장쯤 남았을까. 함께 서있던 사람들이 모두 내리고 나만 서있는 꼴이 되었다. 가뜩이나 힐을 신고 있어 중심잡기도 힘들고 발과 다리도 아파죽겠는데 한 번도 앉지 못 해 정말 죽을 맛이었다. 나와 같은 곳에서 내리는 건지, 나보다 더 멀리 가는 사람들인지 엉덩이가 다들 딱 붙어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내 앞에 앉아있던, 김태형의 옆자리를 채우고 있던 한 여학생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졌는지 김태형은 지긋이 감겼던 눈을 찬찬히 뜨더니 비어버린 옆자리 대신 나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이 버스에 함께 타고 있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는지 나를 발견하고는 그리 놀라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저 아무 표정 없이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순간 머리는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인사를 해야 하는 것인지 자리에 앉아야 하는 것인지. 어쩐 일인지 그 남자와 눈이 마주친 순간, 주위가 붕 떠올랐고 시선을 거둘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몇 초간 그 남자와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고 그 남자 또한 나와 같이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않은 채 그러고 있었다. 이 남자를 만나면 자주 혼을 빼놓는 것 같아. 하지만 금방 정신을 차리고 시선을 거두었다. 양 볼이 따땃하게 올라왔고 심장이 따끔따끔거렸다. 머리를 빨리 굴려야 했다. 다음 행동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이 남자는 분명 나와 함께 내릴 텐데. 집에 도착하려면 아직 몇 정거장이 더 남은 곳이었다. 분명 다른 남자였다면 옆자리가 비었든 그 남자가 내 옆에 서있든 난 절대 자리에 앉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다리가 미친 듯이 아파와도, 내 앞에 자신의 옆자리를 비워두고 나를 잔뜩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아도 한번 보고 말 사이라 하며 꾹 참았을 것이다. 그랬음에도, 항상 그렇게 해왔음에도. 이 남자는 뭐가 그러게 다르다고, 얼마나 친하다고, 내가 그렇게 해버리면 서운한 감정을 느끼진 않을까 상처를 받진 않을까 약간의 걱정이 들었다. 여전히 나를 빤히 쳐다보는 눈길이 느껴졌다. 열심히 머릿속을 굴리고 있다는 걸 몸소 보여주듯 정서불안처럼 귀를 만졌다가, 머리를 만졌다가. 그러다 그 남자의 입이 먼저 열리는 것이다.

 

 


"앉아요."

 

 


밖에서 보면 꼭 모르는 척 날 무시하길래 이번 역시, 어김없이 눈을 마주치고도 아무 말하지 않는 그를 보고 정말 밖에선 내가 쪽팔린가 보다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 쪽에 막혀있던 이어폰을 뽑더니 그의 입에선 그런 말이 나왔고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말해주었으리란 것을 알면서도 내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졌다. 집으로 가는 버스가 이거 하나밖에 없는 것도 아니고 하필 이 시간에, 하필 이 버스에 같이 올라서 내 머릿속을 헤집어놓느냐 원망을 해댔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걱정도 없었을 것을.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아랫입술도 꽉 물었다. 앉자. 한번 앉아보자. 마음속으로 심호흡을 한 번하고 아까부터 안타깝게 비어있던 그 남자의 옆자리에 엉덩이를 붙이려 손잡이에서 손을 떼려 했을 때, 그 남자의 말은 다시 손에 힘이 들어가게 만들었다.

 

 


"내 옆에 앉기 싫구나."

 

 


한 쪽 입꼬리만 올라가 픽 바람이 빠지는 소리를 내며 살풋 웃었다. 그의 말에 고개를 들어 그 남자의 표정을 살폈고 언제 거두었는지 내가 아닌 창밖을 바라보며 날 오해하는 듯 좋지 않은 표정이었다. 아닌데. 앉기 싫었던 게 아니라 앉지 못 했던 것이었고 끝내 나온 내 결론은 처음으로 남자의 옆에 앉아보자는 것이었는데. 그것도 다른 이유가 아닌 당신, 김태형이어서. 그래서였는데 이 남자는 이미 내게 빈정이 상한 듯 한번 밖으로 돌려버린 고개를 이쪽으로 돌려주지 않았다. 변명을 하고 싶었지만 그 모습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 아니. 그게 아니고,"

"...."

"저는,"

 

 


완성되지도 못 한 단어들이 튀어나가는 건 당연했다. 왜 앉는 것을 망설였는지 그 남자에게 설명해줄 수가 없었으니까. 또한 그런 이유로 그 남자가 나를 이해해준다는 것도 확실치 않았으니 말이다. 제대로 된 변명도 하지 못 한 채 웅얼거렸다. 그런 말이 나왔음에도 아무렇지 않은 척 그냥 자리에 앉으면 되는 일은 나는 그러지 못 하고 답답하게 다시 잡은 손잡이만 의지한 채 그 옆에 서있었다. 달리는 버스에선 곧 다음 정류장에 도착할 거라는 안내방송이 나왔고 드디어 남자는 고개를 돌려 버스 앞을 바라보았다.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말지."

"...."

"그럼 기분이라도 덜 더러웠을 텐데."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 말에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은 것은 나였다. 내가 엄청난 실수를 저질러버렸구나. 이내 나를 바라보는 그 남자는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음에도 표정은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김태형은 그대로 다시 한번 창밖을 쳐다보다 하차벨을 꾸욱 눌렀다. 이 버스는 집으로 가는 버스인데. 아직 도착하려면 네 정거장이나 남았는데 말이다.

 

 


"앉아요. 내가 내릴게."

"아, 저기...!"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지나쳐 내리려는지 뒷문에 섰다. 잡아야 하는데. 나 때문에 네 정거장이나 남은 이곳에 내리려는 것인데. 내가 저 남자의 기분을 굉장히 망쳐버린 것이다. 그게 아닌데. 싫어서 그런 게 아닌데. 더러워서 그런 게 아닌데. 이러니 입을 닫고 있으면 괜한 오해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듣지 못 하는 말들을 자신 스스로 정의 내려야 하니 말이다. 눈앞에 비어버린 두 자리를 보며 앉지도 못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갈팡질팡 머릿속도, 명령을 기다리는 몸도 뭐하나 하지 못 하고 복잡했다. 그 사이 버스는 멈춰버렸고 따라 내리지도, 그 남자를 잡지도 못 하고 잔뜩 흔들리는 눈동자로 그의 뒷모습을 잡았다. 그렇게 버스는 이 답답한 공기 속에 나를 가둔 채 출발을 해버렸다. 생각만 하다가 놓쳐버린 일들이 어찌나 많은지. 늘 후회하고 후회했는데. 이번도 역시나였다. 뭐 하나 결정하지 못 하고 우왕좌왕 거리는 사이에 결국 그 시간은 아무것도 하지 못 한 채 지나쳐버리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고 말해줬어야 했다. 나 때문에 내리려는 그 남자를 잡았어야 했다. 고민하지 말고 그렇게 했어야 했다. 아니, 그전에 비어버린 그 남자의 옆을 비워두지 말고 얼른 채워주었어야 했다.

 


끝까지 자리에 앉지 못 하고 답답한 시선만이 그곳을 채웠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본다 해도 난 그런 시선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괜히 전날, 김태형의 제안을 뿌리치고 집으로 내달렸던 무례한 행동도 갑자기 떠올랐고 그렇게 미안할 수가 없었다. 내가 그 남자에게 대체 얼마나 큰 실수를 한 것인지. 이제 좀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다시 제자리로 돌려버린 기분이었다.

느낌인지 정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버스는 평소보다 더욱 오래 돌고 돌아 우리 집 앞에 멈춰 섰다. 숨이 턱턱 막이고 속이 울렁거려 도착하자마자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가 나를 떨구고 출발을 해버리자 주위를 살폈다. 혹시나 벌써 왔을까. 집으로 걷는 길에도 혹시 몰라 내내 뒤를 돌아 확인했다. 혹시나 오지 않을까 보지 않을까. 자꾸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발걸음은 바닥에 풀을 칠한 듯 끈적끈적하게 늘어졌다. 김태형이 이 길을 올라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에게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게 아니었으니 기분 나빠하지 말라고. 하지만 나에겐 그만한 용기가 없었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 그 남자를 기다렸다 나에 대해 입을 열 용기가 내겐 없었다. 막상 그 남자를 보면 용기가 나질 않아 또 피해버릴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집으로 들어갈 때까지 끝없이 뒤를 돌아보았다. 이제 다신 저 남자를 어떻게 마주 하나 한숨을 내쉬면서.

 

 

 

 

 

 

 

 

 

[방탄소년단/김태형] 상처를 치료해줄 사람 어디 없나 06 | 인스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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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마주치게 된다면 사과를 해야지. 기다리고 기다려도 내겐 기회조차 오질 않았다. 참도 잘 마주치는 그였는데 또 며칠간을 그림자 한번 보질 못 했다. 아직 사과도 하지 못 하고 찝찝한 마음에 나를 보기 싫어서 이젠 저쪽에서 나를 피하는 건가 생각까지 들었다. 그날 내게 뱉었던 말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은 만약 만나게 된다면 어떤 사과의 말을 해야 할지도 다 정해놓았는데 말이다. 쓸모도 없게 되었다. 그래도 언제 마주칠지 모르니까, 마음의 준비를 해두고 있으면 절대 눈에 보이지 않았다. 평일이야 내가 회사에 나갈 동안 집에 들어왔다 나갈 수도 있겠거니 하겠지만 주말인 지금도 한번 보질 못 했으니 그런 생각이 드는 건 당연했다. 이젠 포기해야 하는 건가. 사과도 그렇고 그 남자도 그렇고. 하긴, 이게 맞는 현상이었다. 원래대로 돌아간 거지, 뭐. 내가 살고 있던 이 건물의 사람들은 서로를 잘 보지 못 했으니. 김태형, 그 남자도 다른 이웃들과 마찬가지로 예전과 같이 돌아간 것뿐이다. 이젠 인연이 끝인 거지. 내가 또 하나의 인연의 끈을 스스로 끊어버린 것이다.

 


주말이란 게 딱히 없는 혜주는 오늘도 상담 약속이 있었고 그를 위해 시간을 빼놓고 있었건만 보기 좋기 바람을 맞았다고 했다. 더 중요한 일이 생겼다나 뭐라나. 근데 대체 왜 내가 끌려와서 여기 이렇게 혜주의 투덜거림을 들어줘야 하는 거냐고. 만만한 게 나였다. 하긴 나 역시도 그녀를 그렇게 여기니 별말은 안 하겠다.

오늘도 역시 밥알을 세며 먹는 혜주를 위해 나는 다 먹었음에도 앞에 앉아 밥풀 튀기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직업적 특성 때문에 자신의 이야기를 자주 못 하는 혜주는 내가 편한지 곧잘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안쓰럽기도 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고 조언을 얻고 싶고 공감을 얻고 싶어 하기 마련인데. 그러니 내가 들어줘야지 뭐. 나로선 들어주는 게 싫지도 않으니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게 길어지면 결국 내게 잔소리로 돌아오니 그게 문제였다. 그럴 때면 나는 네네- 고개를 끄덕이며 슬쩍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다. 어차피 들어도 들어도 똑같은 이야기, 귀로 줄줄 흘리며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보면 지루함이 좀 줄어들까 생각한 것이었다. 그렇게 보면 아무리 남자라도 뚫어져라 볼 수 있었고. 나름 연습이라고 하겠다.

주말이라 그런지 목에 사원증을 걸고 있는 사람들은 보이질 않았다. 그 대신 쉬어야 하는 주말마저도 교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학생들이 보였고 나와 같은 삼삼오오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어디론가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도 보였다. 나는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사랑이란 걸 하는 듯한 여러 커플들도 눈에 들어왔다. 어떻게 보면 부럽기도 했다. 모순이긴 하지만, 그랬다. 그런 부러움과 동시에 내가 한심해지기도 했다. 누굴 탓할 수도 없이 저들을 부러워하는 이유는 나 때문이었으니까. 괜히 감성에 젖어지는 것 같아 톡톡 속으로 눈물을 닦고 커플들 말고 다른 재밌는 것을 빠르게 찾았다. 근데 왜 이제와 보니 커플밖에 안 보이는 거냐고.

 

그러다 이게 웬걸. 슬슬 지나가는 사람들도 지겨워질 즘. 눈앞엔 놀라울만한 사람이 서있었다. 이 바닥이 정말 좁다는 걸 어필이라도 하려는 듯, 눈이 번쩍 뜨여지게 창밖엔 옆집 남자가 지나가고 있었다. 요 며칠 보지 못 했던 얼굴을 밖에서야 드디어 보게 되었다는 사실에 놀랐음에도 더 놀라운 건 옆에 여자가 함께 있다는 것. 기억력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딱 봐도 저번에 집 앞에서 실랑이를 하던 그 여자와는 다른 여자였다. 그 여자보다 키가 작았고 길었던 머리와는 반대로 짧고 시원해 보이는 단발머리였다. 여자가 봐도 동글동글 귀여운 외모였고 언제 본 적이 있다고 하는 행동도 귀여웠다. 귀엽기만 하면 어떡하나. 예쁘기도 했다. 여름을 맞이해 머리를 싹둑 잘라버릴까 고민하던 것을 더욱 부축일만큼 시원한 단발머리가 참 잘 어울렸다. 능력 좋네. 라는 생각이 들으려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에 반가운 마음까지 들어 여자 대신 김태형을 보니 그 반대일까 생각도 들었다. 창밖을 보고 있어도 우리가 앉은 곳은 창가와 꽤 떨어진 곳이어서 버스에서 그를 관찰했을 때보다 더욱 편하게 그 남자를 볼 수 있었다. 날 보고 있는 시선이 긴장이 되어 고개를 숙일 필요도, 자신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들킬까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마음껏 그럴 수 있었다. 그날은 그렇게 사연이 있는 듯한 속눈썹이 눈에 걸리더니 이번엔 시원한 콧대가 눈에 들어왔다. 늘 드라마를 보며 주제 넘게 남자는 콧대라며 노래를 불렀었는데 이 남자, 콧대가 정말 예술이었다. 눈도 동글동글 쌍꺼풀이 없는 속꺼풀의 눈이었음에도 정말 컸다. 햇빛을 양껏 받으며 찰랑거리는 머리는 반짝거리기까지 했다. 이미 한번 다 뜯어본 줄 알았는데 자연광을 받으며 서있는 그 남자의 모습이란 내 혼을 또 쏙 빼갔고 다시 한번 나는 넋을 놓아버렸다.

 

 


"야! 너 내 말 안 듣냐?"

 

 


혜주의 말은 이미 저기 우주로 날려버린지 오래였다. 간간이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도 잊어버린 채 멍을 잡고 있으니 혜주는 날 흔들었고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렸음에도 혜주가 아닌 그 남자에게 여전히 시선을 꽂은 채 입만 벙긋거리며 고개만 대충 끄덕였다. 왜 그렇게 떼지 못 했을까 생각하다 일초라도 시선을 떨구기가 아깝다는 느낌이 든 건 말도 안 되지만 사실이었다. 까딱까딱 성의 없이 고개만 끄덕인 뒤 결국 손가락으로 창밖에 있는 그 남자를 가리키며 닫혀있던 입을 열었다.

 

 


"저기, 저 남자야."

"누구?"

"그때, 내가, 말했던,"

 

 


저쪽에선 날 발견하지 못 한다고 정말 넋을 놓고 바라본 것 같다. 뭐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바라보았다. 저 남자의 어떤 면 때문에 혜주에게 제대로 대답도 못 하고 그에게 시선을 떼지 못 한 채 멍하니 바라보았는지 알면서도 굳이 모른 척하겠다. 인정하기 싫지만 그 남자가 잘생겼다거나, 멋있다거나, 사람을 홀리는 묘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거나. 그런 말은 차마 내 입으로 하고 싶지 않았다.

얼굴은 그쯤 다 뜯어보았고 하필 우리가 있는 식당 앞에 나란히 서서 알콩거리는 저 둘을 보고 있자니 뭔지 모를 감정이 올라왔다. 내가 느꼈던 다정한 웃음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 그 여자의 앞에선 정말 따뜻한 표정을 보이고 있었다. 그날 내가 기분을 몹시 뭉게버려 보여주었던 표정과는 무척이나 대조가 되도록. 그럼 그 여자 또한 사랑스럽게 웃으며 그에게 팔짱을 끼는 것이다. 잠깐 멈춰 선 둘은 눈을 맞추며 서있었고 예뻐죽겠다는 듯 김태형은 여자의 머리를 쓰다듬고 복숭아처럼 물들어있는 볼에 살짝쿵 입을 맞추고 떨어졌다. 그런 대담한 행동에 여자는 부끄러운 듯 웃으며 팔짱을 풀고 더욱 대담하게 남자의 품에 폭하고 들어가 안긴다. 왜 내 심장이 뻐근한지 어디서 본 드라마도 이보다 더 설렐 수는 없었다. 부럽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미안할 만큼 둘은 반짝였고 귀여웠고 사랑스러웠다.

 

 


"뭐야, 여자친구 있는데?"

 

 


혜주도 그 둘을 보고 있었는지 뭐라 다른 말은 했지만 오직 그 말만 귀로 들어왔다. 실은 처음 둘을 보고 여자친구가 아니길 했던 것도 있지만 눈앞에 있는 둘의 행동을 본다면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 말이 귀에 박혔고 부정하고 있었던 사실에 더욱 확신을 준 것이다. 하지만 그런 확신을 얻고도 내겐 실망감이나 창피함이 아닌 무엇인지 모를 묘한 감정이 들었다. 여자친구도 있는 주제에 얼마 전까지 내게 함께 식사를 하자고 건넸던 날과, 내가 뭐라고 몹시 구겨진 표정으로 버스에 나를 남겨두고 내려버렸던 것에 대해 나는 화가 나야 했다. 그 분노의 대상이 나였든 그 남자였든 그래야 했다. 나 자신에게 의문이 드는 것은, 그걸 알고 있음에도 혼자 괜한 착각을 하고 설레발을 친 게 분명한데 지금 내겐 눈앞의 남자에게 그새 새로운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것은 별로 상관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단지 한 여자를 세상에서 가장 값진 사람을 얻은 듯 자신 안의 모든 사랑을 줄 것처럼 바라봐주는 것에 나는 그 남자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의 표정들은 내 혼을 쏙 빼놓기에 충분했다.

뭔지 모를 감정이 꽉 잡고 있어서 계속해서 내게 뭐라 뱉어대는 혜주에게로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그 둘이 창가를 벗어나 더 이상 내가 볼 수 없는 곳으로 멀어질 때까지 시선을 내주며 머릿속을 정리하지 못 하고 있었다. 그 둘이 지나간 후에도 아직 눈앞에 그 두 사람의 잔상을 남기며 드디어 돌아가는 고개를 앞으로 향했다.

 

 


"야."

"응."

"너 혹시,"

"응?"

 

 


계속해서 리플레이되는 상황에 의자에 등을 기대고 혜주의 부름에 멍하니 대답을 했다가 인정하기 싫은 말이 그녀의 입에서 나올 듯싶어 얼른 정신을 차리고 그녀의 입을 막았다.

 

 


"아니야."

"...."

"이제 다 먹었으니까 가자."

"지금? 조금 있다 가지."

"왜, 쟤네 볼까 봐?"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너, 배부르잖아."

 

 


어떻게 안 건지 눈을 크게 뜨며 자신의 말에 대답하는 나에게 혜주는 아니라며 말을 거두었다. 그 후 비어버린 그릇을 앞으로 조금 밀고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는 바람에 나는 또 벌떡 혜주를 말려야 했다. 혜주의 말이 맞았다. 금방 우리 앞을 지나간 그 둘이었는데 벌써 나가버리면 거리가 금방 맞닿을 수도 있었다. 하필 방향도 그렇고. 이유 같지도 않은 말에 혜주는 눈썹을 씰룩이며 속아주는 척 챙겼던 가방을 다시 자리에 놓았다. 뭐라도 해야지 나는 가방에서 립스틱을 꺼냈고 작은 거울도 꺼내 빠빠- 입술을 다시 코팅했다.
 

 

 

 

 

 

 

 

 

[방탄소년단/김태형] 상처를 치료해줄 사람 어디 없나 06 | 인스티즈

 

 


 

-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잔상들이 둥둥 떠다녔고 심장은 계속해서 간질거렸다. 그런 증상은 계속되어 더는 혜주의 말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그쯤 되면 내게 이런저런 그 남자에 대해 무언가 말할 혜주가 분명한데 그녀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일부러 다른 주제로 돌려버리려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나도 정신을 차려야 했고 여전히 정신이 빠진 듯 멍하긴 했지만 억지로라도 혜주와의 만남에 집중을 하려 했다. 뭔지도 모를 감정 때문에 그녀에게 소홀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런 이유로 원래 계획대로라면 저녁시간이 될 쯤 헤어지는 것이 맞겠지만 뭐 할게 그렇게 많다고 밤 늦게가 돼서야 서로의 집으로 흩어졌다. 영화도 보고 쇼핑도 하고. 평소 여자들이 친구들과 만나서 하는 일은 다 하고 다닌 것 같다. 혜주 또한 잘 따라와 주었고. 아, 노래방도 갔다. 노래방에 간 것은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재밌긴 했지만 풍겨오는 냄새는 평생을 다녀도 익숙해지지 않을 듯싶다.

실은 집으로 들어가는 게 조금은 겁이 나서 일부러 시간을 질질 끌었던 것도 있었다. 혜주와 보내는 시간이 좋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많은 것을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늦게까지 거리를 돌아다닌 이유는 다른 것에 있었다. 그렇게 이곳저곳을 쑤시고 다녀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그 남자의 잔상은 지울수가 없었다. 이미 내 기억에서 같이 있던 여자는 지워진지 오래였고 그 여자를 바라보고 있던 김태형의 표정만 그리도 깊게 박혀 떨칠 수가 없었다. 내게 마지막으로 보여줬던 표정과 너무 달라서, 그때 그 표정은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던 것 같다. 또한 당연한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내겐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표정이어서 그랬던 것도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기가 조금은 겁이 났다. 혹시라도 집으로 돌아오는 그 남자를 마주할까 봐. 때문에 나는 집으로 가는 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고 주욱주욱 늘어진 걸음으로 길을 걸었다.

 


한번 얼굴을 보았으면 했는데 하루 밤새에 마음은 바뀌어 혹시라도 마주치지 않길 바랬다. 집에 가까워질 즘 우리 집이 있는 층을, 아니 그 남자가 있는 층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불이 켜져 있는지 꺼져있는지. 다행히도 불은 꺼져있었고 그 남자가 집에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저번처럼 같은 버스를 탄 것도 아니고 이대로 쭉 직진해 집으로 골인한다면 김태형을 보지 않고 안전히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에 안심을 하며 숨을 내쉬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얼굴 좀 비춰달라고, 찝찝한 내 기분 좀 풀어달라고. 그러다 결국 보지 못 하자 아침에는 눈을 뜨자마자 이제 그 남자랑은 끝이구나 생각했었는데. 김태형과 내가 뭐 그렇게 깊은 사이였다고 그런 생각까지 하는 것은 좀 우스웠지만 나는 그랬다. 분명 지나쳐간 보통 남자들과 다른 것이 맞고 나 또한 그 남자에게 색다른 감정이 들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내가 저질러 버린 실수로 인해 인연의 끈은 끊어졌고 혜주의 말은 종이 쪼가리가 되듯 그렇게 원래대로 돌아가버렸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그 남자를 보기 전까지는. 그의 표정과 행동을 보기 전까지는.

이제는 그 남자를 본다면 더한 떨림이 와서 그래도 간간이 맞추었던 눈을 처음처럼 아예 보지 못 할 것 같았다. 모순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렇게 되었다. 창가에 서있던 그 남자를 제대로 보았다면 분명 나 자신과 그 남자에 대해 어이없음과 황당함을 날려주어야 하는 게 맞았다. 이번엔 니가 틀렸다며 혜주를 몰아붙임과 동시에 여자친구도 있으면서 함께 밥을 먹자고 했던 그 남자에게 어이없음을 날려줘야 하며, 별것도 아닌 것에 혼자 기대를 했던 나에게 화를 내야 하는 게 맞는 것이었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나는. 대체 왜 그 셋 중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알지도 못 하는 감정에 휩싸이고 있어야 하는 것이지를 알고 싶었다. 꼭 그게 아니라도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이젠 정말 그 남자, 김태형과 끝이구나 해야 하는 게 옳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말이다. 그저 그 남자의 표정만 눈앞에 아른거렸고 그럴 때면 더 심하게 심장이 따끔거렸다. 멍하니 정신을 잡지 못 하기도 했고. 아무 이유도 없이 볼이 따뜻하기도 했고.

 

 


"응. 난 벌써 다 왔는데? 뻥 아닌데- 진짜야!"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고 그대로 바닥에 신발이 딱 붙어 가던 길을 멈춰버렸다. 이대로 곧장 집으로 가면 된다는 내 생각과는 다르게 폴짝 옆 골목에서 튀어나와 만나자 할 때는 보이지도 않던 얼굴이 눈 안에 들어왔다. 보지 않으려고 일부러 그렇게 돌아다녔건만 전부 헛짓이 되었다. 이미 헤어지고 온 것인지 옆엔 아무도 없이 혼자였고 전화를 하는 듯 손엔 핸드폰이 곱게 들려있었다. 전화를 계속 이어가려는 듯 현관에 들어서지 않고 건물 앞에서 잠자리처럼 맴맴 주위를 돌았다. 덕분에 나 또한 안으로 들어가지 못 하고 그런 김태형을 바라보며 그 자리에 서있었다. 전화를 하고 있든 내 갈 길을 막고 있든, 머릿속에 생각해 두었던 사과의 말을 드디어 뱉고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면 될 것을 나는 다가서지도 못 했다.

결국 김태형이 내 쪽으로 몸을 돌리려는 순간 바보같이 가로등 불이 밝히지 않는 어두운 곳으로 몸을 옮겨 졸지에 숨어버린 꼴이 되어버렸다. 그가 나를 발견했는지 못 했는지 나는 모른다. 이미 숨어버려 확인하고 싶어도, 움직이고 싶어도 그를 보지 못 하고 있었으니까. 제발 날 발견하지 않았길 바라고 있을 뿐이었다. 안 그럼 또 자신을 피한다고, 오해를 할지도 모르니까. 한여름 좋아하는 남자아이에게 러브레터를 전달하기 전 심호흡을 하는 소녀처럼 그렇게 서서 그의 목소리에만 정신을 쏟았다. 물론 나는 김태형을 좋아하지도, 손에 러브레터를 들고 있지도 않았지만 속은 그 소녀처럼 긴장하고 있을 거라고 장담한다.

 

 


"보고 싶다. 벌써 보고 싶어. 다시 갈까? 다시 보자, 우리."

 

 


더 들어도 저건 여자친구와 하는 통화가 확실했다. 그렇지 않고야 저렇게 달콤한 목소리가 나올 리 없지. 그 어느 때보다 나긋하고 달큰한 향이 나는 목소리였다. 만약 사랑을 쪼개 목소리에 담을 수 있다면 딱 저 목소리가 나올 것 같았다. 그만큼 듣기 좋았고 다정했고 사랑스러웠다. 계속해서 들리는 그 목소리에 집중하고 있으면 심장이 두근거렸고 클러치를 잡고 있는 손에선 땀이 나기 시작했다. 정말 미쳤나 싶었지만 그 목소리가 너무 달콤해서 그것이 나를 향한 것이었으면 하는 생각도 순간 들었다 사라졌다.

 

 


"나 지금 갈 수 있는데. 밤 동안 계속 같이 있고 싶어. 보고 싶어. 아까 봤는데 계속 보고 싶어."

 

 


분명 그때와 같은 곳인데. 지금 통화하고 있는 여자와 다른, 자신에게 이별을 고하고 있던 여자와 함께 있었던 곳인데. 소름이 돋는 무서운 말을 아무렇지 않게 뱉었던 그였는데. 지금은 그 어떤 말보다 달콤한 말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같은 사람이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그 두 사람은 정말 달랐다.

 

 


"알았어. 나 그럼 조금만 참을게. 우리 내일 또 볼 거니까 내가 참을게. 이불 잘 덥고 자요. 사랑해."

 

 


쿵-하고 심장이 떨어졌더랬다. 내게 해준 말이 아닌데. 나는 그저 뒤에 숨어서 옅듣고 있었던 것뿐이었는데. 실제로 처음 들어보는, 그 남자의 입에서 끝내 나와버린 사랑해라는 말에 내 심장은 쿵쾅거리다 못 해 쿵 하고 떨어졌다. 내게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 듯 떨어진 심장을 붙잡고 후후- 숨을 내쉬고 있으면 이제 들어가 버린 건지 김태형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김태형이 사라지고 몇 분 더 그 자리에서 숨을 몰아쉬었다. 미친 게 분명해. 미친 게 분명하다. 아직 영양실조 때문에 쓰러졌던 게 다 낫지 않았거나 업무 때문에 스트레스를 과하게 받아서 미쳐버린 게 분명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증상인지 설명할 수가 없다. 그런 거다. 그래서 그런 거야. 그저 내가 한 번도 실제로 보지 못 했던 사랑이란 것을 두 눈으로 보게 된 게 생소하고 신기해서 그러는 것일 거다. 애써 부정하려는 것을 굳이 꺼내지 않겠다. 나도 정확히 모르는 감정을 섣불리 꺼내지 않겠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나 역시 그 남자를 처음 보았던 그날과 또한 처음 보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는 지금의, 이 남자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다르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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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통님 눈부신님 태태님 인사이드아웃님 령아님 초딩입맛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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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뭘까요....설마...새여친 아니겠지 하면서 봤는데 맞나봐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조금은 아니길 바랬는데 ㅠㅠㅠㅠㅠㅠㅠㅠ
8년 전
비회원10.63
헐 저 지금 처음보는데 너무 재밌어요ㅠㅠㅠㅠ가벼운 소재는 아닌데 글을 잘 풀어 쓰시는 것.같아요ㅠㅠㅠ
8년 전
독자2
너무 재밌어요..제가 왜 이걸 6개월이 지난 지금 봤을까요..
7년 전
독자3
진짜 너무 재밌는거 아세요 작가님?ㅠㅠ 태형이가 여주룰 오해하고 새로 사귄거는 아닌지 싶네요ㅠㅠ
6년 전
독자4
안돼태형아ㅠㅠㅠㅠㅠㅠ
6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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