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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오세훈도경수] 시퍼런 봄 2 | 인스티즈


시퍼런  


「2. 묻지 못하는, 말하지 못하는



“8500원입니다.”


결국 택시를 잡아 탔다. 택시비를 지불하고 차에서 내려 밤 하늘을 올려다 봤을 땐, 별들이 보이지 않았다. 한 개쯤은 있을 법도 한데 검은색 하늘이 까맣게 도시를 뒤덮고 있을 뿐이었다. 


오세훈은 기지개를 피며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아, 아빠 또 출장 갔나?”

“응. 이번엔 한달.”

“존나게 오래 있다 오네.”

“안 들어가?”


대문 앞에 서있는 도경수를 선두로 오세훈과 내가 뒤를 따랐다. 오세훈이 먼저 도어벨을 눌렀다. 안에는 도경수의 엄마가 혼자 있겠지. 


“뭐야, 왜 안 열어.”


도어벨을 반복해서 두번이상 눌렀음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대문은 미동이 없었다.


“씨발, 왜 이래.”

“안에 아무도 없는 건 아닐 텐데.”

“야, 도경수.”


오세훈의 표정이 굳어있다. 나는 오세훈의 입에서 무슨 말이 튀어나올지 몰라 황급히 말을 이어갔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도경수. 핸드폰 없어? 엄마한테 전화……”

“야, 그럴 바엔 그냥 집에 전화 해.”

“그럴라고 했어.”

“지랄.”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오세훈의 핀잔을 무시하고, 핸드폰을 꺼내 집 번호를 눌렀다. 도경수는 말없이 서 있기만 할 뿐이었다. 신호음이 채 가지도 않았는데, 돌연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적으로 몸이 움츠러졌다. 오세훈은 놀란 듯 했다. 도경수 또한 놀란 듯 고갤 돌려 대문을 응시했다. 


“집 안에서 소리 난 거 맞지.”

“어…”

“씨발. 도대체 안에서 뭐 하는 거야. 존나 마음에 안들……”


오세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멈춘 까닭은, 


“뭐야, 씨발.”


대문이 열렸기 때문이었다. 집 안에서 도경수의 엄마가 열은 것이 아니었다. 타인에 의해 대문이 열렸고, 그는 중년의 남자였다. 우리들 사이엔 잠시 짧은 침묵이 맴돌았다. 

그 침묵을 깬 건 역시나 오세훈이었다.


“뭐냐고.”


어느새 나는 오세훈의 뒤쪽에 서 있었고, 도경수는 여전히 같은 자세로 낯선 이를 응시했다. 


“뭐냐니……!”

“더러운 것.”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액체가 낯선 이의 얼굴을 타고 내려온다. 

남자는 정확한 발음으로 말을 뱉었다. ‘더러운 것.’ 남자의 시선은 나를 향해 있었다. 


“더러워……더러운 년. 지 어미를 똑 빼 닮은 년. 더러운 년……”

“오보은 듣지마. 귀막아.”

“니 놈도 똑같아. 지 아비만 믿고……!”

“안 닥쳐!!! 오보은, 집으로 들어가.”


손이 떨려왔다. 어렸을 때 가끔 봤던 엄마의 얼굴이 어렴풋 떠올랐다. 엄마의 얼굴과 내 얼굴이 닮았던가……?


“오보은. 빨리 집으로 들어가라고.”

“쯔쯧……. 이름은 누가 지어줬냐……?”


눈을 희번덕거리며 내게 묻는 남자.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제 성에 못 이겨 화를 참지 못한 오세훈이 남자의 목덜미를 잡아 내팽개치려 할 때, 뜻밖에도 내내 가만히 서 있던 도경수가 오세훈의 팔을 잡았다.


“뭐하냐, 너?”

“…….”

“뭐하냐고.”

“…….”

“안 놔?”


도경수는 오세훈의 팔을 잡아 남자의 목덜미를 잡은 손을 풀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짓는 오세훈.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남자의 옷을 털어주는 도경수. 무슨 영문인지 몰라도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왠지 모를 배신감이 들었다. 이유는 알 수 없는, 그런 이상한 기분.


***


집 안은 고요했다. 거대한 태풍이 자나간 작은 시골마을처럼. 괘종시계의 시침만이 째깍째깍 소리를 내고 있었다. 

탁- 거실에 불을 키자 집안이 환해졌다. 


“저건 또 뭐냐.”


오세훈의 중얼거림에 녀석이 시선을 둔 곳을 따라 가보니 긴 머리를 늘어뜨린 여자가 소파에 누워 있었다. 


“왜 저기서 자고 지랄이래.”


그리고 오세훈은 내 뒤에 서 있던 도경수를 노려본 뒤 집을 빠져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소파에 누워있던 여자가 번뜩 눈을 떴다. 그리고 거실에 서 있는 나와 도경수를 번갈아 보며 알 수 없는 실소를 터트린다. 


“하...하하! 웃긴다.. 진짜 웃겨..”


여태까지 봐오던 여자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살살 눈웃음을 치며 아빠를 향해 예쁜 목소리로 말을 하던 여자. 내 눈을 바라보며 웃음을 짓던 여자는 볼 수 없었다. 지금 여자의 모습은 세상에서 제일 비참해 보였다. 


“뭘 봐 씨발년아.”


그리고 여자의 입에서 나온 그 욕설은 뜻밖에도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다. 여자는 잠시 허공을 응시했고 소파에서 일어나 느린 걸음으로 우리 쪽을 향해 걸어왔다. 

내 앞에 우뚝 선 여자가 실소를 터트리며 손을 들었을 때,


“들어가.”


내 뒤에 서 있던 도경수가 말했다. 


“하..하하...하하 벌써 정이라도 붙었니..? 저 애를 감싸주는 것 보니..”

“정신차려.”


도경수의 눈빛은 확고했다. 그리고 그 눈엔 경멸, 살기, 혐오, 그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정신? 하, 내가 무슨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내가, 내가 뭘 잘 못했니? 저년은 왜 행복하게 살아가고!! 나는, 왜!!!!!!!”


여자는 멀뚱히 서 있는 나를 가리키며 발악했다. 도경수는 여자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빨리, 방으로 들어가.”


침착한 듯 묵직한 목소리였다. 나는 엉거주춤 몸을 돌려 계단을 올랐고 마지막으로 내려다본 여자와 도경수의 모습은 처참하기 그지 없었다. 


“니가 저년을 왜 감싸주는데!!!!!!!!!!!!!!!!”


여자의 마지막 발악. 

그리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도경수의 고개는 돌아갔다.


***


“저기, 보은……”

“아, 귀에 뭘 낀 거야.”

“그, 그럼 난 이만!”


고개를 드니 반에서 제일 소심하기로 소문난 순심이가 교실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얼굴은 왜 발그레하지? 아무튼. 지금 내 앞에 보이는 다리의 주인은 의심할 여지 없이 오세훈이 분명했다.


“왜.”

“왜? 내가 몇 번이나 부른 줄 아냐. 쟤한테 너 좀 불러달라 그러니까 존나 소심하게……”

“용건만 말해. 나 이거 풀어야 돼.”


어울리지 않게 친구를 통해 나를 불러달라 하는 것부터 낌새가 이상했다. 어젯밤 오세훈이 없는 집은 인정하기 싫지만 꽤 낯설었다. 


“돈 좀.”

“싫어.”

“아, 나 어제 도경수 병원도 데려다 주고!”

“싫어.”

“그럼 나 굶는다.”

“집 놔두고 뭐해?”

“거기가 집이냐?”


오세훈은 사뭇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넥타이가 불편한지 한 손으론 제 넥타이를 쥐어 푸르며 말을 이었다.


“아빠가 언제 온 댔지? 한달. 그래, 한달. 한달 동안은 집 안 들어갈 거야. 왜냐고 물어봐 봐.”

“싫어.”

“아, 쫌!”

“10초안에 말해. 왜?”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니까.”

“…….”

“똥이 무서워서 피해? 아니지. 똥이 더러우니까 피하는 거지.”


오세훈의 시선은 책상에 엎드려있는 도경수를 향해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네 말은 도경수와 도경수의 엄마 때문에 집에 안 들어오겠다? 

이유는 그 둘이 더러워서? 


“어떻게 우리 아빠를 꼬신 진 모르겠는데. 존나 맘에 안 들어. 그 여자.”

“그래도 집 들어와.”

“왜? 나 없으니까 이제서야 내 빈자리를 느끼셨나 봐?”

“그런 거 아니거든.”

“아무튼 나 집 안 들어가. 그러니까 돈……”

“싫어.”


내가 생각해도 잔인한 방법이긴 한데, 오세훈이 집 안으로 제 스스로 들어오게 하는 방법은 이것뿐이었다. 오세훈도 참 멍청하지. 그냥 눈 딱 감고 못 본 척 생활하면 될 텐데. 

오늘 아침 도경수의 엄마는 내게 아침밥을 주지 않았다. 도우미 아줌마는 도경수의 엄마가 온 후로 출근을 하지 않았고, 덕분에 한달 내내 나는 맛 없는 매점 빵을 아침으로 삼아야 했다. 


만약 이 사실을 오세훈이 알면 난리 나겠지. 


“오보은 존나 싫어.”

“10초 끝.”

“나 간다!!!!”

“가.”


교실 문을 쾅 닫고 가는 오세훈 덕에 반 아이들의 짜증 섞인 아우성을 세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래, 실컷 욕해라. 


***


“저기, 보은아……”


점심시간이 돼서 잠시 낮잠을 자려 책상에 엎드리려고 할 때 였다. 모기만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면, 아침에 봤던 순심이가 자신의 머리를 긁적이며 서 있었다.


“왜.”


낮잠을 자고 싶었기에 약간은 신경질적으로 순심이를 향해 답했다. 그러자 그 애는 살짝 놀란 듯 두 눈이 커지더니 이내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을 이어갔다.


“아니……너 괜찮으면……나 도시락 싸왔는데 같이 먹을까 하구……”

“도시락?”

“응……아, 싫, 싫으면 안 먹어두 돼!”


두 손을 휘저으면서까지 말하는 순심이에 괜히 마음 한 구석이 찡해졌다. 왜 그런진 모르겠지만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 정말? 같이, 같이 먹는거야?”

“응. 의자 가지고 내 옆으로 와.”

“와아. 보은아 나 지금 너무, 너무 기뻐. 그러니까, 나 지금 너무……”


순심이는 눈물을 쏟아냈다. 당황스러운 나머지 주머니에 늘 갖고 다니던 손수건을 꺼내 순심이에게 건넸다. 손수건을 붙잡으며 눈물을 토해내는 순심이를 마냥 바라보고 있자니 나쁜애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


점심시간엔 반 애들 대부분이 교실에 있지 않기 때문에 교실엔 나와 순심이, 그리고 도경수가 있었다. 순심이는 진정이 됐는지 숟가락과 젓가락을 내게 건넸다. 

그것을 받아 들고 순심이가 가져온 도시락을 먹으려고 하는데,

엎드려있는 까만 머리통이 자꾸만 눈에 들어오는 이유는 왤까.


“보은아, 왜……? 먹, 먹기 싫어……?”

“어? 아, 아니.”

“먹, 먹기 싫음 안 먹어두 돼……응, 나 괜찮……”

“누가 먹기 싫대?”

“어……?”

“그냥, 잠깐 생각 좀 했어. 먹기 싫은 거 아냐.”


까만 머리통이 꿈틀, 움직였다. 

엎드려서 자는 건지, 아니면 자는 척을 하는 건지. 도경수는 내게 까만 머리통을 보여주며 책상에 엎어져 있었다. 어젯밤 집 앞에서 있었던 녀석의 행동은 내게 왠지 모를 배신감을 안겨주었지만 어쩐지 덩그러니 혼자 있는 녀석의 모습을 보니 괜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어? 보, 보은아. 어디가……!”


순심이의 외침을 끝으로 나는 도경수의 앞에 섰다. 

그리고 단호하게 말했다. 


“일어나.”


까만 머리통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깨를 잡고 흔들어도 미동이 없다. 


“순심아.”

“으, 응? 응?”

“얘도 밥 같이 먹어도 돼?”

“응, 응! 밥 많이 싸 왔어. 같이 먹어두 상관없어!”


까만 머리통을 향해 말했다. 


“들었지. 순심이가 같이 먹어도 된대.”


이렇게 하면 네가 문을 조금은 열지 않을까, 하고.


“그러니까 일어나.”


예전의 나처럼 방치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 그만 자.”

“…….”

“일어나. 저기서 밥 먹어.”

“…….”


도경수는 순순히 내 말을 들었다. 눈에 빛이 없다. 순심이는 긴장한 듯 손을 떨며 도경수에게 숟가락을 건네주었다. 


반에서 외톨이를 담당하고 있는 세 명이 함께 있으니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꽤, 어울리는 조합인 것 같기도 하고. 


***


“어디 갔다 오니?”

“독서실이요.”

“몸 굴리고 온 건 아니고?”


여자의 물음에 당황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지금 저 여자가 뭐라는 거지? 


여자의 왼쪽 손엔 와인 잔이 들려 있었다. 시야를 더 넓혀보니 여자의 앞 테이블엔 아빠가 아끼는 와인 병 5개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농담이야, 농담. 그렇게 취조하듯 쳐다볼 필욘 없잖니?”

“……그만 드시고 주무세요.”


그래도 아빠가 좋아하는 여자이니까. 내가 취할 수 있는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야만 했다. 살짝 목례를 하고 몸을 돌려 계단으로 걸음을 옮겼다. 


“보은아.”


그리고 느닷없이 여자가 내 이름을 불렀다.


몸을 돌려 여자를 바라보면 살며시 입가에 미소를 얹은 채 말을 이어간다. 


“하늘은……살만 하니?”

“……네?”


알 수 없는 여자의 말에 의문을 품은 내가 답을 하면, 여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빙그레 웃으며 와인 잔을 바닥에 던진다. 

와인 잔에 담겨있던 새빨간 레드와인이 마치 피처럼 바닥에 쏟아졌다. 

깨진 와인 잔이 나를 짓누르는 것 같다. 


“뭘 보고 서 있어?”

“…….”

“네 엄마한테 인사 한번 한 거 가지고 그러는 거니?”

“우리…엄마를……알아요……?”

“와인 잔이나 치워라. 꼴 보기 싫어 죽겠네.”


여자는 그 말을 끝으로 1층 끝자락에 있는 안 방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나는 멍하니 그 자리에 서서 여자가 한 말을 곱씹을 뿐이었다. 

도대체 저 여자의 정체는 뭘까. 


***


방 안에 앉아 여자가 한 말을 되뇌길 수백 번 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여자가 말 한 의도를 모르겠다. 하늘은 살만 하다니? 그리고 내 이름을 불렀고. 뇌가 과부하가 걸려 터질 것만 같다. 지금 내가 이렇게 딴 생각을 할 정도로 여유가 있나? 


아니, 없다. 

이제 몇 주 후면 중간고사가 치러질 것이고 나는 아빠가 만족할만한 성적을 받아야 했다. 이미 독서실에서 하루 공부 량을 끝냈지만, 어제 하루 공부를 쉰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물 한 컵이라도 마실 생각으로 부엌으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는데, 찰흙 같은 어둠 속에서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

“……”


순간 놀란 내가 소리를 지르기 전에, 누군가는 내 입을 막았다. 바다의 냄새가 났다. 깊은 바닷속에서 홀로 외로이 알을 낳는 문어처럼. 외로운 냄새였다. 


“말 하지마.”


누군가는 내게 작게 속삭였다. 


“방에……있어.”

“어?”

“밑에 내려가지마.”

“…….”

“부탁이야.”


그리고 밑을 가리켰다. 찰흙 같은 어둠 속에서 계단 밑은 환한 불빛이 켜 있었다. 

자세히 귀를 기울이니 여자의 웃음소리가 얼핏 들리기도 했다. 그리고 중후한 남자의 목소리도. 


***


“학교 가니?”

“……네.”


어젯밤 아래층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 분명한데, 여자는 평소와 같았다. 


“경수야, 얼른 먹어. 왜 또 안 먹니?”

“…….”


여자가 웃고 있던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빨리 쳐 먹어. 좋은 말로 할 때.”


어젯밤 누군가에 의해 나는 여자가 아래층에서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보지 못했다. 


누군가는 여자를 지켜주고 싶었던 걸까. 아무런 표정 없이 밥 그릇을 응시하는 도경수의 모습이 어쩐지 처량해 보인다. 어젯밤 도경수는 내게 무얼 말하고 싶었던 걸까. 


“방에……있어.”

“어?”

“밑에 내려가지마.”

“…….”

“부탁이야.”


어젯밤 어둠 속에서 도경수와 나눴던 대화들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그래, 먹지마. 먹지 말라고!!! 이러는 것도 어디 한 두 번이야? 병신같은놈.”


정신을 차렸을 땐 도경수의 고개가 돌아가 있었다. 여자는 화를 내며 도경수를 있는 힘껏 노려보았고, 부엌을 빠져나오면서 내 어깨를 밀쳤다. 



[EXO/오세훈도경수] 시퍼런 봄 2 | 인스티즈



현관을 나왔을 땐 이기사 아저씨가 자동차를 닦고 있었다. 


“세훈이는? 또 안 들어온 거야?”

“네, 뭐…….”

“어휴, 녀석도 참. 회장님이 아시면 어쩌려구…….”

“그러게요….”

“참, 이럴 때가 아니지. 얼른 학교 가야지? 어, 경수학생! 차 안 타?”


아저씨의 말에 시선을 돌리면 잰 걸음으로 대문을 빠져나가는 도경수가 보였다. 


너는 도망을 치고 싶은걸까. 

걸어가는 뒷모습이 붙잡지 말아달라는 신호로 보이는 건 내 착각일까.


“경수학생!”


아저씨의 외침에도 뒤 한번 안 돌아보고 걸음을 재촉하는 모습에 나는 아저씨를 말렸다. 


“아저씨, 그냥 가요. 오늘은 걸어가고 싶은가 봐요.”

“허, 참…….”


나는 너를 위해 또 한번 거짓말을 했다. 


이건 너를 향한 동정일까. 

나를 향한 동정일까. 


차가 출발하고, 걸어가던 네 뒷모습이 보였다. 

어딘가 슬퍼 보이는 모습. 어젯밤 네게서 났던 외로운 냄새가 코 끝에 맴도는 것 같았다.


“경수학생도 참 안됐지…….”


라디오 버튼을 누르며 이기사 아저씨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한번, 물어볼까. 너도 나와 같은 상황인 건지. 아니면 나 보다 더 최악의 상황인 건지. 


“아저씨.”

“으응! 왜?”

“저,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응. 물어봐. 내가 아는 거면 알려줄게.”


침을 한번 삼켰다. 


“도경수의 엄마는 어떤 사람이에요……?”


내 질문을 들은 이기사 아저씨의 표정은 당황함이 묻어났다. 곤란한 것 같았다. 


“어,…저 그러니까 숙희…, 아니, 경수학생 엄마는……”


이기사 아저씨는 얼버무리기만 하실 뿐,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아저씨?”

“다, 다왔네! 보은학생 오늘도 파이팅!”

“네……?”

“학, 학교 늦으면 안되잖아. 얼른 가. 얼른.”


이기사 아저씨가 어서 내리라며 등을 떠밀었다. 아저씨의 재촉에 나는 질문에 대한 대답도 듣지 못한 채 차에서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어,…저 그러니까 숙희…, 아니, 경수학생 엄마는……”


숙희. 


어딘가 낯익은 이름이다. 어디서 들었더라…….


***


“보은아!”


교실에 들어서자 순심이가 환히 웃으며 나를 반겼다.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나는 어정쩡한 자세로 순심이를 바라보았다. 반 아이들도 나와 순심이를 응시했다. 


“여- 순심이랑 오보은이랑 짝짜쿵?”

“캬, 보기 좋은 커플이네. 오거리 말고 오순심이라고 해야 되나.”

“푸하하하하. 존나 웃기다.”


유치한 말장난은 무시가 답이라는 것을 알기에 나는 놈들의 말을 무시하고 자리에 앉았다. 슬쩍 도경수의 자리를 보니 아직 학교에 오지 않은 듯 했다. 


“보은아, 미안. 괜히 나, 나 때문에…….”


언제 온 것인지 어느새 내 옆자리를 차지한 순심이가 버벅거리며 말을 이었다. 나는 가방에서 문제집을 꺼내 책상에 펼치며 답했다. 


“괜찮아.”


하고. 


귓구멍에 귀마개를 꽂고 수학 문제를 풀었다. 순심이는 제 자리로 간 듯 했다. 


[숙희네 반과 민철이네 반은 각각……]


문제를 읽는 내내 아저씨가 한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어젯밤 우리 집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지. 또, 그때 그 남자는 누군지. 여자가 등장하고 나서부터 이상한 일이 하나 둘씩 생겼다. 

도대체 여자의 정체는 뭘까. 


그리고 나는 누굴까. 


***


결국 도경수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무단 결석이었다. 선생님은 종례가 끝난 후 나를 교무실로 불렀다. 

교무실 안으로 들어가니 낯익은 뒤통수가 보였다. 


“어, 보은이 왔니.”


선생님을 향해 짧게 목례를 하고 가방을 내려놓았다. 선생님께 가까이 다가가자 낯익은 뒤통수가 고개를 돌려 나를 노려본다. 


“아, 쌤. 쟤는 또 왜 불러요.”

“임마, 보은이도 경수랑 같이 살잖아.”

“아, 오보은 공부해야 되는데.”


네가 언제부터 날 신경 썼다고. 씩 웃으며 말하는 꼴이 아직은 살만하구나, 싶었다. 약간 꾀죄죄해진 것 같기도 하고……. 


“얼씨구. 말이나 못 하면. 보은아, 앉아 봐.”

“네.”


오세훈의 옆에 앉자 익숙한 향이 났다. 


“경수가 학교를 안 왔거든.”

“새끼. 간 존나 크네.”

“오세훈, 넌 입 좀 막아라. 아무튼. 경수가 학교에 안 나왔는데 혹시 왜 그런지 아니?”

“우리가 어떻게 알아요. 그 새끼랑 우리가 뭐, 같은 형제도 아닌데.”


오세훈의 볼멘소리에 선생님이 녀석의 머리를 살짝 쥐어박았다. 


“집엔 전화 해 보셨어요?”


내가 물었다. 

선생님은 안경을 한번 치켜 올리시더니 이내 물 한잔을 들이키신 후 말을 이었다.


“응, 전화를 해봤는데 안 받으시더라고. 아버님은 출장 가셨다며? 괜히 걱정하실까 봐 연락도 못 드렸다. 무단 있으면 안 좋은 거 알잖아. 그래서 우리 선에서 해결하려고 했지.”

“전화를 안 받는다구요?”

“응. 한 5번은 한 것 같은데. 어머님 핸드폰 번호는 생기부에 안 적혀 있더라고.”

“그 여자 존나 수상해요.”

“오세훈. 넌 그냥 집 가도 될 것 같다.”

“아, 왜요. 저도 도경수랑 연관 있잖아요. 이거 생각보다 존나 재밌네. 추리하는 것 같고.”

“언제는 아니라며?”

“제가 언제요. 아, 아무튼. 그 새끼 어디 갔는지만 알면 되는 거잖아요.”


오세훈이 상황 정리를 했다. 

어렸을 때부터 오세훈은 그랬다. 집안 어른들이 이야기 하는 것을 몽땅 정리해서 내게 말해주곤 했다. 딱히 그럴 필욘 없었는데. 


“응, 그렇지. 근데 걜 어디서 찾냔 말이지.”

“몇 시까지 찾으면 무단 처리 안돼요?”

“원래는 정규수업 때 와야 하는데…….”

“뭐야, 그럼. 안 되는 거네. 수업 다 끝났잖아요.”


오세훈이 가방을 들고 나갈 채비를 했다. 그러다 선생님이 나직이 한 말에 행동을 멈추고 자리에 앉았다.


“오거리는 좀 특별한 거 너네도 알잖아.”

“네?”

“경수도 오거리니까. 오늘 안에만 찾아오면 된다는 거겠지.”

“우리아빠 돈 존나 투자했나 보네.”


선생님은 당황한 듯 오세훈을 바라보다 이내 내게로 시선을 고정했다.


“보은아, 경수 찾을 수 있겠어?”

“아, 저……”


오늘 아침 보았던 도경수의 뒷모습이 아른거린다. 

너는 대체 어디로 도망을 친 걸까. 


“아, 오보은은 안 된다니까요. 제가 찾을게요. 쥐새끼마냥 숨어서 울고 있을지도 몰……”

“찾을게요.”


내가 말했다. 

선생님의 얼굴 표정은 환하게 펴졌다. 오세훈은 못마땅한 듯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럼 잘 좀 부탁한다. 내가 오늘까지 마감해야 하는 서류가 있어서. 선생님 번호 알지? 찾으면 전화해. 꼭 이다.”


***


“뭐냐, 오보은.”


교무실을 나오자마자 오세훈은 가자미 눈을 하고 나를 보았다. 


“뭐가.”

“너 지금 존나 수상해.”

“오늘 도경수 아예 학교 안온거지?”

“설마 좋아하냐?”


복도를 걷는 걸음을 멈추었다. 지금 얘가 뭐라는 거야. 신경질적으로 오세훈을 쳐다본 후 다시 걸음을 옮겼다.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도경수 찾을 생각이나 해.”

“이게 왜 쓸데없는데.”


오세훈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돌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왜 집 안 들어가는지는 아냐, 너?”


묻는 얼굴이 어쩐지 슬퍼 보인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오세훈이 긴 한숨을 내쉬고, 다음 말을 뱉으려고 할 때. 정확히 그 때.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나는 치마 주머니에 손을 넣어 휴대폰을 꺼냈다. 발신인은 번호가 없었다. 


“……여보세요.”


그리고 내가 전화를 받았을 땐.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 들었다. 섬뜩하면서도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였다. 


[하선아.]

“……네?”

[최하선.]

“전화 잘 못 거신 것 같……”

[지금은 오보은.]

“……누구세요.”


수화기 너머에서 소름 끼치게 웃는 남자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걸음을 멈추고 휴대폰에서 귀를 떼지 않는 나를 오세훈은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왜 그래.”

“…….”

“야, 오보은.”

“…….”

“오보은!!!”


수화기 너머 남자는 오세훈의 목소리를 듣고 나직이 중얼거렸다.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놈……]


“누구세요. 당신 누구……”

[네 옆에 있는 녀석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놈이고. 지금 내 옆에 있는 녀석은 세상에서 제일 멍청한 놈. 그리고 지금 내 전화를 받고 있는 네 년은.]

“…….”

[세상에서 제일 독한 년이지. 네가 왜 그 집에 살고 있는지 알아?]


남자의 질문을 끝으로 나는 더 이상 남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야, 씨발. 장난 전화하려면 다른 사람한테 해!!! 왜 얘한테 하고 지랄이야. 전화 끊어 병신아.”


내 휴대폰을 가져간 오세훈은 흥분한 듯 휴대폰을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나는 오세훈에게서 휴대폰을 뺏어 들었다. 

대답을 듣고 싶었다. 

내가, 왜, 이 집에 살게 되었는지.


그리고 내가 왜……

세상에서 제일 독한 년인지.

오세훈은 왜 불쌍한 놈이고, 남자의 옆에 있는 사람은 누구길래……멍청한 놈일까.


“야, 오보은 뭐 하는데!!!”

“가만히 있어봐.”

“아, 내놓으라고!! 이 새끼 자꾸 이상한 소리 한다고.”


휴대폰을 귓가에 가져갔다. 그리고 남자의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 너머 작은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아버지.’


[둘 다 쌍으로 미쳤구나. 맞지? 지 아비 빼 닮아서 그 놈도 미친놈이겠지. 성질하고는.]

“……내가 왜, 이 집에 살게 됐는데요?”

[궁금해?]

“말해요……당장.”


[그야 네가……]

“…….”

[최보은의 딸이니까.]


그 말을 끝으로 남자는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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