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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김태형] 상처를 치료해줄 사람 어디 없나 10 | 인스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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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일주일을 어떻게 보냈는지. 내가 이렇게 공과 사도 구분 못 하는 사람이었나. 사무실에 앉아있는데도 시도 때도 없이 김태형은 딸기와 아이스크림을 들고 내 머릿속을 마구 돌아다녔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그래도 그 프로젝트를 마치고는 주말이 올 때까지 중요한 업무가 없어서 다행이었지. 망할 팀장에게 멍을 때리다 들켜 일 안 하냐는 말을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르겠다. 이러다 잘리는 거 아닌가 몰라.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내게 오랜만에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이 들어선 후로는 꽤 심각하게 상사병 비슷한 것을 앓는 중인 것 같았다. 밥을 먹을 때는 특히 심했다. 그가 내 얼굴을 훑고 지나갔던 것이 자꾸만 떠올라 숟가락을 입에 넣으려다가도 멈칫멈칫 버퍼링이라도 걸린 것처럼 멈추었다.

그와 동시에 자꾸 심술이 났다. 나보곤 술을 잔뜩 들이키고 다른 남자를 만나러 가는 것이 신경 쓰였다고 했으면서 자기는 지금도 여자친구와 함께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도 신경 쓰여, 나도. 중간중간 그와 나만이 아닌 그와 여자친구와의 모습을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뾰루퉁 입술이 나왔다. 아직 그녀가 여자친구라는 것이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그 여자에게 뽀뽀까지 해주었는데 맞지 않을까 싶었다. 만약 사촌이거나 친한 여자사람친구거나, 그렇다고 해도 반대로 내가 그 상황이라면 절대 뽀뽀까지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한번 확실히 물어보고 싶기는 했다. 그의 입에서 맞다는 소리가 나오면 주욱 크게 금이 갈 것은 당연하지만 말이다.

그런 생각들로 불금임에도 집에서 혼자 기분이 좋았다가 꿀꿀했다가 아주 별쇼를 다한 것 같다. 뭐, 어차피 불금이라 해봤자 다른 사람들처럼 밖으로 나가 정말 '불타는 금요일'을 보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말이다. 그날 또한 김태형을 보지 못 하였고 다른 사람들처럼 그도 불이 번쩍번쩍한 거리를 여자친구와 돌아다니고 있을까 퉁퉁거리며 늦게서야 눈이 감겼다.

 

 

 

 

 

 

 

 

 

 

 

[방탄소년단/김태형] 상처를 치료해줄 사람 어디 없나 10 | 인스티즈

 

 

 

상처를 치료해줄 사람 어디 없나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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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전 일기예보에서는 비가 올 거라는 소식을 전해주었고 아침에 눈을 뜨자 어떤 것보다 먼저 나를 반겼던 것은 빗소리였다. 정말 비가 오네. 비 오는 날을 좋아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 때문이라도 사람들은 더욱 멀리 떨어지니까. 우산을 핑계 삼아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거리를 둘 수 있었다. 내가 피하건, 그쪽에서 피하건. 꼭 그 이유뿐만은 아니었다. 빗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다른 무언가를 특별히 하지 않아도 마음이 편안해지니까. 이 공간에 나 혼자만 있는 듯한 그 기분이 평화로웠고 또한 외롭지도 않았다.

밖엔 주륵주륵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 소리마저, 내겐 음악소리 못지않게 좋았다. 그래서 비가 들이닥쳐 축축 젖은 바닥을 닦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더라도 난 굳이 창문을 닫아두지 않는다. 그러면 빗소리가 더 잘 들리니까. 역시나 전날 열어두고 잤던 창문을 닫지 않고 활짝 열어놓은 채 마음마저 톡톡 두드리는 빗소리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

띵동-, 그렇게 편안한 주말을 빗소리와 함께 보내고 있으면 요즘 쉬지 못 한 주말이 오늘도 마찬가지라는 듯이 문득 울린 초인종 소리가 빗소리를 먹어버린다. 빗소리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가라앉아서 그랬던 걸까 아무런 의심도 없이 문을 활짝 열어재꼈다. 그리고 그 앞엔, 누구보다도 내게 위험한 인물이 나를 반기며 서있었다.

 

 


"집에 있었네."

 

 


밖에 나갔다 온 것인지 어깨를 감고 있는 천 쪼가리는 젖어있었고 살짝 숙여진 고개로 보이는 우산에선 뚝뚝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준비라도 하고 열걸. 문을 열자마자 눈 안으로 들어온 김태형의 얼굴에 숨이 잠깐 컥 하고 막혔다. 이내 다시 내쉬기는 했지만 자꾸만 그날의 일이 떠올라 편안했던 아까와는 달리 또 콩콩 심장이 뛰어대기 시작했다. 이젠 정말 확실해진 것이다. 적어도 김태형의 앞에선 그가 남자라서가 아니라 김태형, 그 자체라서 긴장이 되고 몸이 떨린다는 것을.

 

 


"밖에 비 와요."

"네."

"문, 창문 열려있던데."

 

 


나갔다 들어오는 길에 열려있던 우리 집 창문을 보고 말해주는 듯싶었다. 그럼 우리 집을 일부러 올려다봤다는 걸까. 혹시나 문을 열고 가진 않았나 자신의 집을 올려보다 우연히 열려있던 우리 집을 발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바보같이 그러진 않았을까 생각했다. 굳이 넘어가도 될 것을 초인종까지 눌러 알려주는 수고를 할 정도로 관심이 있는 거라고. 그게 슬쩍 기분이 좋아졌다. 오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간만에 보는 그의 얼굴이 반가웠다. 비록 그를 향해 뛰는 심장과 핑크빛으로 물들어가는 볼이 부끄러워 잔뜩 고개를 숙이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고개를 들어 똑바로 그를 보고 싶어도, 김태형에겐 다른 남자들과 다른 이유로 눈을 마주할 수 없었다. 나도 참 답이 없지. 그가 지금도 여자친구로 추측되는 여자와 데이트를 즐기고 왔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수줍은 소녀처럼 서있다니. 우습지만 그럼에도 그가 좋다는데 난들 뭐 어쩌겠는가.

 

 


"비 오는 날을 좋아하거든요."

"나돈데."

"...."

"같이 걸을래요?"

 

 


아예 시선을 푹 떨구고 있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 눈치를 보는 듯 나름은 티 나지 않게 그를 힐끔거리다 또 다시 훅 들어오는 그의 제안에 하필 그에게 시선이 딱 하고 멈춰버렸다. 입까지 살짝 벌어져서는 동공이 이리저리 마구 흔들렸다. 그런 날 보고 기분 좋은 웃음을 보이는 그이기에 숨을 확 참으며 얼른 고개를 떨구었다. 목이 자꾸 타들어가는 느낌에 침을 꿀꺽 삼켰다. 그와 함께 걷고 싶었다. 투둑투둑 비도 내리고, 비 오는 날엔 다들 밖으로 나오지 않아 나 혼자 조용히 우산에 때리는 빗소리를 듣는 것도 좋았다. 그리고 그와 함께라면 분명 잔뜩 긴장을 하고 빗소리에 제대로 집중도 못 할 테지만 기분은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처음도 아니고 몇 번 걸어봤으니 괜찮겠지, 우산 때문에 더욱 떨어질 수 있으니 괜찮겠지. 이건 혜주가 말한 서두르는 것이 아닐 거라 확신하며 그의 물음에 고개를 두 번 끄덕인 뒤 신발장을 열어 외로이 꽂혀있는 우산을 집어 들었다.

 

 


"우산은 왜 챙겨. 내가 있는데."

 

 

 

 

 

 

 

 

 

[방탄소년단/김태형] 상처를 치료해줄 사람 어디 없나 10 | 인스티즈

 

 

 

 

-

다른 여자였다면 그런 상황에서 절대로 우산을 들고 나오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른 여자들과 다르니까. 이미 함께 걷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심장이 터질 것 같은데 나란히 같은 우산을 쓰고 걷는다는 것은 온몸을 다 터트릴 수 있는 패기 넘치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가 말려오는데도 대단한 철벽을 쳐가며 굳이 내 우산을 꺼내들었다. 그런 내 모습에 그의 입에선 살풋 한숨이 나오는 듯했지만 일단 내가 숨은 쉬어야 하지 않겠어.

번화가가 아니라서 그런 걸까, 비가 와서 그런 걸까. 거리엔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그렇게 눈에 띄진 않았다. 드물게 보이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처럼 남녀가 함께 걷는데 따로 우산을 쓰고 걷는 사람들도 잘 보이지 않았다. 조금 민망하고 미안해지기는 했다. 자꾸 미안하긴 하지만 어쩔 수가 없는걸. 그래도 지난날들처럼 또 한번 그의 제안을 거절하진 않았으니 그걸 알아주었으면 했다.

나란히 걷는 듯싶지만 나는 조금 뒤로 떨어져서 걸었다. 많이 티는 나지 않게. 졸졸 그의 뒤를 따르고 있으면 그는 알아서 조용히 걸을 할만한 곳을 망설임 없이 잘 찾아 걸었다. 차가 별로 다니지 않고 상가들도 별로 보이지 않고. 함께 걷고 있다는 사실에 우산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이 살짝 들어갔지만 기분은 정말 좋았다. 슬슬 바람에 흩날리는 작은 물방울이 아닌 조금은 두꺼운 물방울들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딱 좋을 정도의 양이 일정하게 떨어졌다.

 

 


"조금만 앞으로 오지."

 

 


그렇게 조용히 동네를 걷고 있다 빗소리와 어울리는 편안한 저음이 함께 귀로 들어왔다. 내게 조금 더 앞으로 오라며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그래도 될까, 조금 더 앞으로 간다면 그와 더 가까워질 텐데 그럴 수 있을까. 하지만 이번에도 거절을 한다면 또 한번 그의 빈정을 상하게 할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 속도를 조금 늦춰 내가 자신의 바로 옆으로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그에게 발걸음을 빨리해 조심조심 옆으로 다가갔다. 그런 뒤 그를 올려다보면 슬쩍 올라가는 입꼬리가 보였다.

그렇게 좀 더 가까워진 채로 다시 몇 분을 말없이 걷기만 했다. 오가는 말은 없었지만 어색하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걷는 게 딱 좋았다. 둘 사이에 흐르는 빗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쿵쿵거리는 내 심장소리가 들릴까 걱정은 되었지만 여전히 올라가 있는 그의 입꼬리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이젠 전보다 더 편해진 것 같은 그였기에. 그래서 지금이라면 그에게 물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하필 이 좋은 때 약간의 용기 같은 것이 올라왔다.

 

 


"저... 김태형씨."

"응."

"... 아니에요."

 

 


혹시 여자친구 있나요. 가장 궁금했던 것은 그것이었다. 나의 부름에 김태형은 바로 대답을 했고 망설임 없이 물어보자 다짐했던 것들은 그의 목소리에 묻혀버렸다. 그런 목소리로 자신에게 여자친구가 있다 말을 해버리면 지금까지 좋았던 기분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금세 나빠질 것 같아서. 조금 더 걷고 싶었다. 만약 듣게 되더라도 조금만 더.

 

 


"지금밖에 기회 없어."

"...."

"물어봐."

 

 


하지만 그는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며 장난스럽게 나를 내려다보았다. 물어보라고. 내가 뭘 물어볼지도 모르면서 그렇게 웃어주는 김태형을 보니 야속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그 여자가 아닌 나와 함께 걷고 있고 나를 대했던 행동들을 생각한다면 분명 그에겐 여자친구가 없어야 했다. 아니라면 너는 정말 나쁜 놈이야. 만약 맞다면 김태형의 여자친구라고 믿어지는 그녀와 나에게 정말 몹쓸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질 않길 바란다. 니가 나쁜 놈이 아니길 바란다.

 

 


"여자친구... 있죠."

"...."

 

 


혹시나 그 사이에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면 내가 뭐라고 자격 없는 말일지는 모르겠지만 용서를 해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조심스럽게 물어오는 내 물음에 대답이 없었고 그건 내게 답을 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있구나."

"... 응."

 

 


잠시 또 아무 말이 없다 이내 응, 느린 한마디가 김태형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그의 말을 듣고 잠시 고개는 떨어졌지만 그리 엄청나게 쓰리진 않았다. 잠깐 심장이 크게 욱신은 했지만, 바늘로 콕 찌른 듯 따끔 하긴 했지만. 처음부터 어느 정도 생각을 하고 있어서 그랬던 걸까. 그의 대답을 마지막으로 우린 다시 말이 없어졌다. 분명 방금까지는 어떠한 말이 오고 가지 않아도 어색한 기운 없이 편안하고 따뜻하기까지 했는데. 괜히 물어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말대로, 정말 이번밖에 기회가 없다 하더라도 꾹 참고 물어보지 말걸.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여자친구도 있으면서 내게 함께 걷자한 그에게 화를 내며 다시 집으로 들어가야 하는 걸까. 그럼에도 그가 좋아서 내 옆에 있는 그와 함께 좀 더 걸어도 되는 걸까. 입술이 말라 왔다. 맞다는 그의 말을 듣자 그가 그녀를 바라보았던 눈빛과, 그녀를 향해 내주었던 달콤한 목소리들이 떠올라 잠깐 한켠이 시려왔다. 근데 왜. 대체 왜 나한테 그러는 건데. 또 한번 묻고 싶었다. 거짓말이라도 아니라고 했어야 했다. 만약 나를 자신의 어항 속 꼬물거리는 물고기로 생각한다면 김태형은 그렇게 말했어야 했다. 내겐 여자친구가 없다고. 하지만 그는 결국 인정을 해버린다. 그의 마음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에게 나는 어떤 존재인지 궁금증이 드는 건 당연한 게 아닐까.

 

 


"비 오는 날이 왜 좋아."

 

 


나 혼자 정의를 내려보려고 아무리 노력해보아도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질 뿐이었다. 그래서 그에게 물어볼까 망설이고 있었다. 내게 이러는 이유가 뭐냐고. 할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고 있으면 그런 내 정신을 딱 깨듯 그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사람 마음이란 것은 참 웃긴 것이다. 좋아하는 쪽이 지는 거라고. 누가 그런 말을 했었다. 그래서 나는, 김태형을 좋아하는 나는 그의 옆에 다른 사람이 있든 나를 가지고 노는 것이든 그가 좋았다. 그의 물음에도 잔뜩 속상한 마음에 무시하고 길을 틀어버릴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의 대답에 그리 쓰리지 않았던 이유에는 그럼에도 그를 좋아하는 내 마음에 전혀 상관이 없어서라고 설명이 되는 듯했다.

 

 


"그냥. 좋잖아요. 빗소리도 좋고, 비 냄새도 좋고."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보통 해가 쨍쨍 하늘이 푸른 날을 좋아하지 축축하고 우울한 비 오는 날 따위는 나 같은 사연이 있는, 어두컴컴한 사람들이나 좋아하는 날이다. 그런 날인데, 김태형 또한 나처럼 비가 오는 날이 좋다고 했다. 그게 나와 함께 걷기 위해서 였는지 아님 정말 비 오는 날이 좋아서 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것이든 나에겐 만족스러울 것이다. 그래서 방금까지 고민했던 질문과는 다르게 편안한 목소리로 그에게 물음을 던질 수 있었다. 상처받을 만한 대답이 나올 리 없는 물음이라고 생각했다.

 

 


"김태형씨는 왜 좋은데요?"

"음...,"

"...."


"이럴 수 있으니까."

 

 


잠깐 고민을 하던 그는 나를 빤히 내려다보다 입을 염과 동시에 나의 눈을 무엇보다 동그랗게 만들었다. 그의 손길에 애써 쥐고 있던 내 우산이 아닌 그의 우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내 허리를 감싸오는 그를 피할 수도 없었고 자신의 품으로 당기는 그를 밀어낼 수도 없었다. 그저 놀란 마음에 놓쳐버린 우산만이 땅으로 떨어져 여전히 내리는 빗방울을 받아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의 콧바람이 얼굴에 닿을 정도로 거리는 가까웠다. 숨 쉬는 방법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와 달리 내 코에선 어떤 바람도 나오지 않았다. 몸을 움직일 수도, 숨을 한번 내쉴 수도 없었다. 세상 모든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았다. 나를 지그시 바라만 보고 있는 그에게 나는 넋을 놓아 버렸다. 그렇게 몇 초 정신을 차리지 못 하고 그에게 빠져있었다.

제대로 내쉬지 못 해 숨이 막히는 기분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그에게 떨어지려 그의 가슴팍을 퍽- 하고 밀어냈다. 덕분에 나는 우산 밖으로 밀려나 떨어지는 빗방울을 온몸으로 받고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후- 후-, 그와 거리를 두었음에도 여전히 제대로 숨을 내쉬지 못 했다. 온몸은 전률이 오는 듯 찌릿찌릿했다. 꽉 준 주먹은 덜덜 떨렸고 입은 제대로 내쉬지 못 한 숨을 쉬기 위해 하- 하고 뱉어내고 있었다. 내리는 비를 맞지 않았다면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식히지도 못 하고 터져버렸을 것이다. 혜주가 왜 서두르지 말라고 했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이러다 지난번처럼 정신을 놓아버려 쓰러진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지금은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으니까. 이제야 그때 그가 내 얼굴을 쓸고 지나갔던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렵게 숨을 내쉬고 있으면 뚝뚝 비를 맞아 젖어가는 내게 김태형은 더욱 다가와 우산을 씌워주었다. 그럼 난 더 뒤로 물러나 스스로 비를 맞이했다. 차라리 비를 맞고 말지. 그렇게 물러나도 김태형은 자꾸만 내게 다가와 다시금 우산을 씌워주었다.

 

 


"그만,"

"비 맞아."

"그만 와요."

 

 


자신에게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지 며칠이 지났으면 말도 안 하겠어. 그의 대답으로 내 머릿속은 잔뜩 복잡해졌는데 그는 또 알 수 없는 행동으로 내게 다가왔다. 너무해. 그에게 속상했다. 나를 너무 쉽게 본다, 너는. 그럼에도 내가 자신에게 빠져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걸까. 그의 옆에 다른 사람이 있다 해도 난 상관이 없었다. 아니, 없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랬으면 김태형, 그는 내게 더욱 조심스러워야 했다. 내가 아무리 김태형의 관심을 바라고 있다 해도 그는 조심해야 했다. 그녀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그건 예의가 아니지. 그런 그의 태도에 나는 화가 나는 것이다. 이럴 거면 아까 그의 대답을 듣고 화를 내며 집으로 내달릴걸 그랬다. 그가 나를 우습게 보기 전에 그랬어야 했다. 분명 김태형은 나를 우습게 보는 것이 확실했다. 처음 그를 봤을 때 함께 있던 여자와 헤어진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다른 여자를 끼고 있는 그를 보고 금방 알아차렸어야 했다. 그는 위험하다고. 내게 무척이나 위험하다고. 그것도 아니면 내 마음은 그게 아니더라도 혜주의 말을 상기시키며 또 한번 그의 제안을 거절했어야 했다. 그가 빈정이 상하든 말든 그렇게 했어야 했다. 나를 위해서.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우산을 집어 들 생각도 없이 내가 오지 말라 했음에도 다시 다가오는 그를 피해 빗속을 걸었다. 언제부터 마냥 평화롭지 않게 내리던 빗방울이 나를 더욱 차갑게 때려와도 멈추지 않았다. 차라리 바보같이 김태형 때문에 화끈거리는 몸을 식힐 수 있다면 그 편이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분명 나를 우습게 여기며 한 행동이 확실한데 그런 그에게 순간 마구 떨리며 흔들렸다. 그를 피했어야 했는데. 내 마음은 아무리 그를 향해 달리고 싶다 해도 꾹 참고 버텼어야 했는데. 밀어냈어야 했다. 끝이 상처라는 것을 알면서도 참지 못 하고 그에게 끌렸던 내가 한심했다. 이렇게 바보같고 미련한 사람이 또 있을까 싶었다. 이젠 정말, 정말로 그를 상대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이젠 남자 같은 것은 절대 상대하지 않겠다고.

그렇다고 내게 남아있는 남성 공포증을 여전히 남겨둔다는 것은 아니었다. 김태형, 그 남자로 인해 남자는 역시나 믿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것은 확실히 깨닫게 되었지만 그 때문에 내 의지를 접어버리진 않는다. 오히려 빨리 고쳐 내 쪽에서 애초에 오지 못 하게 막아버리려고, 다시는 휘둘리지 않으려고. 다시 한번 의지를 다잡았다. 혜주의 걱정은 그것이다. 또 한번 내가 김태형에게 실망을 하고 상처를 받아 전보다 더 심하게 남자를 피해버리진 않을까 그런 걱정을 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걱정대로 되지 않을 거라는 것이 내가 결정한 바였다.

 


이제쯤 잘 쉬어지는 숨과 함께 입술을 꽉 물었다. 내가 어떻게든 고쳐본다. 완벽하게 고쳐서 만약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긴장하지 말고, 얼굴 붉히지 말고 그에게 큰소리를 내며 뺨이라도 한대 쳐 주리라. 내리는 비가 눈꺼풀로 떨어져 묵직해진 눈을 잘 뜨지 못 하고 있으면 급하게 줄어든 빗줄기가 이상해 고개를 들었고 익숙했던 우산이 눈으로 들어왔다.

 

 


"잘못했어."

 

 


따라오고 있었는지 몰랐다. 아니, 애초에 그가 나를 따라올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방금까지 내게 상처를 주었던 그 목소리를 들으며 떨어진 고개는 결국 들리지 못 하고 그를 마주하지 못 했다.

 

 


"잘못했어. 그러니까,"

"...."

"나 봐."

 

 


그의 말에 눈물이 나오려는 건 왜 일까. 밑에서부터 끌어올라 오는 감정이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그를 절대 상대하지 않을 거라고, 남자 같은 것들은 다 밀어낼 거라고 했으면서. 단지 사람 손길이 닿는 것을 싫어한다는 내게 허락도 없이 다가온 것에 대해서 인지, 아님 내가 자신에게 화가 난 이유를 알고서 그러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잘못했다는 말에 괜히 울컥했다.

 

 


"나 좀 봐."

 

 


그의 얼굴을 보면 정말 흘러내릴까 몸을 돌리지 못 하고 있었다. 차라리 비라도 맞고 있었으면 빗물인지 눈물인지 알아볼 수도 없을 텐데 그러지도 못 하게 꼭 둘이 쓰라는 듯 커다란 우산이 내게 내리는 비를 막고 있었다. 더 질질 끌다가는 정말 커다란 상처로 남아버릴 것 같아서 이제까지와는 달리 나는 큰 결심을 했다. 자신을 두고 걸어가는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따라와 준 김태형을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그가 좋다는 이유로 계속 덮어두다가는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더 가까워지지도 멀어지지도 못 한 채 계속해서 이런 관계가 유지될 것 같았다. 그에게 상처를 받아도 다시 내게 다가오는 그에게 또 홀렸다가  다시 상처받았다가. 그것을 더 이상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김태형씨."

"...."

"나한테 관심 있어요?"

"...."

"나 좋아해요?"

"...."

 

 


그 어느 때보다 두 손을 꽉 쥐어 뾰족하게 자른 손톱이 손바닥을 찔러 자꾸만 거슬렸다. 어떻게 내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을까 신기하기도 했다. 그만큼 내겐 큰 결심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입에선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냥 아니라고, 차라리 아니라고. 그렇게 말해주지. 아무 말도 않고 가만히 서있는 그가 오히려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아직도 도망가지 못 하게 나를 꽉 잡고 놓지 않으려는 것 같아서. 자꾸만 내게 그래도 떠나지 말라고 여지를 주고 있었다. 그런 그에겐 내가 딱 잘라서 거절을 해주어야 한다. 상대가 끊지 못 하면 내가 끊어야 한다. 이제 그만하자고. 마지막 말쯤은 그를 보며 하고 싶었다. 그래서 고집스럽게 돌아가있던 몸을 돌려 어느 때보다 가까운 그를 마주했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꾹 참았다. 똑바로 그의 눈을 바라보면서.

 

 


"그것도 아니면, 이제 그만해요."

"...."

"내 앞에 나타나지도 말고, 같이 밥 먹자고 하지도 말고."

"...."

"비 오는 날이 좋다면서 나한테 다가오지도 마요."

"...."

"앞으로 아는 척도,"


"미안해."

"...."

"근데 나는. 그렇게 못 하겠어."

 

 


그렇게 길게 말을 해본 적이 있었을까. 이제 버거워진다고 느낄 즘, 그는 그때보다 조금 더 길어 이내 앞머리로 슬쩍 가려진 눈을 서글프게 반짝이며 말을 끊었다. 그런 그는 마지막 한마디로 입술을 꾸물거리며 이내 쏟아지려는 눈물을 애써 참고 있는 내게 자신의 우산을 건네준 채 나와는 반대쪽으로 걸어갔다. 나 대신 자신이 비를 한껏 맞으면서. 그쪽은 집으로 멀어지는 방향인데. 자신의 우산에서 나와 스스로 빗속으로 향하는 나를 보며 당장 따라나선 김태형처럼 나는 나서질 못 했다. 그저 축 처진 어깨로 빗속을 걷는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적어도 내가 뱉은 말에 대한 예의라고. 하지만 아까보다 더 심해진 빗줄기를 맞으며 빠르게 젖어가는 김태형을 보고 있기는 점점 힘이 들었다. 그냥 내가 빗속을 걷고 말지. 차라리 내가 축축 젖어가는 게 낫지. 그럼에도 그를 잡지 못 하고 가만히 그의 우산을 들고 있는 내가 너무 한심했다. 대체 나 같은 거 때문에 왜 저렇게 걸어가. 니가 뭐라고. 내가 뭐라고.

 

저렇게 나를 또 잡아버리고 만다. 매일 밤 김태형에 대한 생각으로 잠을 설치고 일상생활도 마구 헝크러진 내가 이젠 그를 놓아버리려 하면 그러지 못 하게 잡아버린다. 어느 때보다 고민을 하고 큰 다짐을 하며 뱉은 말은 그의 한마디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훨훨 날아가 버린다. 어쩌면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렇게 말한들 김태형은 내게 다시 말을 걸어올 것이고 내게 다가올 거라는 것을. 그럼 나는 다짐을 했음에도 그의 목소리만 들리면 마구 흔들릴 거라는 것을. 그렇게 벌써 깊어져 버렸다. 떠날 수도 없게, 떨쳐낼 수도 없게. 나는 김태형에게 깊어져 버렸다.

 

 

 

 

 

 

 

 

 

 

 

 

 

 


암호닉

암호닉은 재업이 끝난 뒤부터 다시 받겠습니다.

 

통통 / 눈부신 / 태태 / 인사이드아웃 / 령아 / 초딩입맛 / 슙디 / 태형오빠 / 군주님 / 민트 / 태태이즈뭔들 / ☆이현☆ / 똥맛카레 / #RealV /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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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흐어어 오늘 슬퍼요 ㅠㅠㅠ 여주 불쌍해라 ㅜㅜㅜㅜㅜㅜㅜㅜ
8년 전
비회원240.121
제가 다 심장이 쿵쾅쿵쾅하네요ㅠㅠㅠㅠ 빗소리랑 같이 읽으니까 몰입도 더 잘되구요ㅠㅠㅠㅠㅠ어우 이거명작입니다ㅠㅠㅠ
8년 전
비회원250.79
흑흑...애절하네요ㅠㅠㅠ 여주랑 태형이사이가 넘나도 애매하네요ㅠ
8년 전
독자2
표현력이 어쩜...아....대박입니다..............진짜....
8년 전
독자3
절절하다......와우....
7년 전
독자4
태형아ㅠㅠㅠㅠㅠㅠ복잡
6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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