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정용화, 선우정아 - 봄처녀(inst)
그의 품에 안긴 채 옅은 신음소리를 내는 나의 허리를 천천히 쓰다듬는다. 그의 팔목을 꽉 잡으니 아이를 달래는 듯한 말투로 많이 아프냐고 묻는다. 그러면서도 허리를 꽉 잡고 밀어붙이는 몸짓은 지나치게 모순적이다.
몸에 힘을 주고 그를 버티려해도 지치는건 내쪽이라는걸 깨닫고 나서는 그냥 그의 목에 팔을 감아버렸다. 그러니 키스하던 와중에도 그가 씩 웃는게 느껴진다. 시간이 지나도 느려지기는 커녕 멈추는 법을 모르는 것처럼 나를 탐하는 그의 품에 쓰러지듯 안겨 작게 인상을 찡그리니 짧은 순간에도 그걸 캐치하고 내 몸이 더 붉어지도록 목에 입술을 묻고 뜨거운 혀로 살살 핥아낸다.
그와 내 사이의 공기가 뜨거워지는 것이 몸소 느껴지고 가쁜 숨만 내쉴수록 분위기는 점점 더 달아오른다.
끈적한 손길에 몸에 힘이 빠지는가 싶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허리를 강하게 끌어안는 행동에 숨을 멈추고 눈을 맞춘다. 나를 더 가까이, 뜨겁게 안으려는 그의 욕심에 침대 헤드에 머리가 부딪힐 것 같아 눈을 감은 채 그의 어깨를 꽉 잡는데, 고통이 느껴지지 않아 다시 눈을 뜬다. 그의 손이 내 머리를 감싼 채로 눈을 똑바로 맞춘다.
내 눈 봐야지, 그래야 예쁜데.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몰랐다. 부드럽지만 거칠게 나를 다루는 그 손길과 입술에 고개는 완전히 젖혀져 그의 이름을 부르고, 정신은 반쯤 나가 눈물을 매단 눈을 한 채로 그를 올려다본다.
술기운 때문인지,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그의 체취 때문인지 자꾸만 눈이 풀린다. 이러면 안되는데, 진짜 안되는데... 다른 쪽으로 흐르는 생각을 그 새 눈치챈건지 내 턱을 잡고 저를 보게 만든 그가 귓가에 작게 한마디를 속삭이고는 대답하지도 못하게 다시 입을 맞물리고 혀를 섞어낸다.
"딴 생각 하지마, 혼나."
***
아, 미친...누군지도 모를 남자와 꾼 야릇한 꿈을 방해하는 소리에 이불 속에 파묻혀있다 고개를 들어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시계를 껐다.
근데, 우리 집에 알람시계가 있었나...? 모자른 잠을 보충하려 아무렇지 않게 다시 눈을 감으려다 번쩍 눈을 뜨자 그제야 낯선 주변이 눈에 들어온다. 처음보는 침대와 하얀 이불, 거기다 저 이상한 알람시계까지. 멍한 표정으로 있다 시계를 보고 잔뜩 부은 눈을 더 크게 떴다.
아, 망했다. 이미 출근시간보다 몇 십분을 넘겨버린 시계를 보고 급하게 몸을 일으키려는데 허리에 느껴지는 통증에 인상을 찡그렸다. 왜 갑자기 허리가...
손을 허리에 대고 일어나려 이불을 걷어냈고, 그제야 이불 속 내 몸에는 속옷 없이, 누구의 것인지 모를 큰 박스티 하나만 걸쳐져있다는 것을 인지했다, 이 곳은 호텔이며, 어제 회식 이후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하나가 더 있다면, 어제 이름모를 남자와 꾼 그 야한 꿈이, 꿈인 척 하는 현실이라는 것 정도.
몇 분 동안 아무 생각도 없어질 만큼 멘탈이 붕괴 됐지만 어쩔 수 없었다. 회식을 평일에 잡는 미친 회사 덕에 서둘러 출근을 해야했기에. 아픈 허리를 한 손으로 꾹 눌러잡고 침대에서 억지로 몸을 일으켜 대충 어제 입었던 옷을 걸쳐입고 호텔에서 빠져나왔다.
키를 카운터에 건네는데 아무렇지 않게 나를 보며 웃어주는 직원이 왠지 어제의 내 모습을 알고있는 것 같아 창피한 기분이 들었다. 왜 하필 회식자리에서 필름이 끊기고 지랄이야... 미친 성ㅇㅇ. 전정국이 조심하라고 그렇게 말을 했는데...
그러나 후회해봤자 이미 늦은일이었다. 아니, 늦은 일인건 맞았지만, 내가 어제 누군지 모를 직장 동료와 그렇고 그런 불순한(?) 일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두 손 놓고 멍하니 회사를 포기할 수 있는 노릇도 아니었다.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오르자마자 제일 먼저 핸드폰을 켜 급하게 팀장님 번호를 눌렀다.
010.0613.0309. 분명 열 한자리를 다 눌렀는데도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팀원들에게 다정하기로 유명하신 마케팅팀 김석진 팀장님이면 몰라도, 우리 팀장님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상상에 고개를 절레절레젓고 손까지 부들부들 떨어가며 억지로 통화버튼을 누른 뒤에야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대고는 큼큼거리며 목을 풀어냈다.
"...여보세요."
"기획 1팀 민윤기입니다."
"아, 저, 팀장님. 성ㅇㅇ입니다."
"...성ㅇㅇ? 아, 성사원입니까."
"네, 그... 다름이 아니라 제가 오늘 그, 오전 반차를 내고싶은데, 가능할까 싶어서요... "
"이미 낸거 아니었습니까?"
"...네?"
"벌써 한 시간도 더 넘었는데. 지각이라기엔 좀 양심 없잖아요."
팀장님의 말에 말문이 막혀 입술을 꾹 물었다. 오전 반차를 낼거였으면 최소한 어제는 말을 해둬야 했는데, 이제야 전화를 해서 이러고있으니... 충분히 이해 안 될만 한 상황이었으니까. 어떡해야하나, 이제 드디어 잘리는건가 싶어 머리를 짚고 절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궈버렸는데, 벌써 끊긴 줄 알았던 전화에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많이 아픈 것 같은데, 오전만 쉬어도 되는겁니까?"
"...네?"
"아니, 그, 빨리 출근하라는 소리였습니다. 늦어도 점심시간 끝나기 전까지는 들어오세요. 도착하면 바로 팀장실로 오시고."
"헐, 아니, 네. 감사합..."
평소같아서는 지금 당장 오지 않으면 잘리게 될거라는 말을 하고도 남을 사람인데, 순간 잘못들었나 싶어 되물어도 돌아오는 대답을 의아하게 생각하던것도 잠시,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끊겨버린 전화를 멍하니 보다 정신을 차리고 시계를 봤다. 집에 들렀다가려면 시간이 빠듯했다.
점심시간 끝나기 전까지만 오라고는 했지만, 그래도 먼저 가있어야했기에 마음이 급했다. 회사 가면 전정국한테 뭐라도 좀 물어봐야지.
***
사내 로맨스는 아찔하다.01
W.봄처녀
대충 씻고 준비를 한 뒤 옷을 갈아입고 집밖으로 나왔다. 나오는 길에 버스 정류장 앞의 약국에서 생전 처음으로 피임약 한통을 구매하고, 그 옆 편의점에서 생수를 한 통 사 그대로 택시에 올랐다.
택시에 타자마자 피임약과 생수 한 통을 꺼내 입 안으로 털어넣었다. 입안에 퍼지는 쓴 맛에 인상을 찌푸리기도 잠시, 정신이없어 꺼내보지 못했던 핸드폰을 꺼내 데이터를 켰을 때, 우르르 쏟아지는 카톡에 핸드폰이 미친듯이 울려댔고, 괜히 기사님의 눈치가 보여 급하게 매너모드로 바꾸고 카톡을 확인했다.
[박지민 대리님]
ㅇㅇ씨, 일어났어요? -08:01
어디 아픈덴 없죠? -08:01
어제 일 기억나나 모르겠네... -08:02
엄청 귀여웠는데. -08:03
가장 밑에 있던 박대리님의 카톡부터 답장을 남겼다. '죄송합니다, 다음부터 조심할게요ㅠㅠ' 두어개의 반성가득한 뉘앙스를 풍기는 톡을 보내놓고 다시 내용을 살폈다. 어디 아픈덴 없냐니.
고개를 갸웃거리다 그냥 속이 괜찮냐는 말이겠지, 하며 넘기곤 그 위에있던 카톡방으로 들어갔다.
[전정꾸]
일어났냐? -08:47
확인 안하는거 봐라. -08:53
알콜 쓰레기가 어디 가나. -08:53
정 못나오겠으면 일어나서 전화해 -09:10
니네 팀장한테 대신 말해줄테니까. -09:10
얘가 나 회식한걸 어떻게 알지. 미간을 찌푸렸다 문득 어제 회식자리에 마케팅팀도 같이 갔다는 것이 떠오르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전정국도 있었구나.
어제 얼마나 많이 마셨으면 이런 것까지 가물가물하냐. 스스로를 원망하며 타자를 꾹꾹 눌러 보냈다. '지금 가는 중. 나 잘리면 니가 먹여살려라...^^' 박대리님께 보내 둔 문자와 상반되는 말투로 톡을 하고는 마지막 카톡방을 누르려는데... '민팀장님' 이라는 네 글자에 나도모르게 몇 초간 누를지 말지 망설였다. 아까 분명 통화를 했지만, 왜 이렇게 무서운건지... 이러다 팀장실에서 직접 대고 잘리는건 아닌가 싶었다.
제발, 회사까지 도착도 하기 전에 벌을 받는 기분에 눈을 꾹 감고 채팅창을 눌렀다.
[민팀장님]
성 사원 -09:20
어떻게 회식 다음 날마다 지각입니까? -09:21
출근하면 바로 팀장실로 오세요. -09:21
천천히 눈을 떠 내용을 확인 했을 때, 분명 심각한 상황이었음에도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다. 아마 아까 나한테 전화 하기 전에 보내신 것 같았다. '네.' 라고 짧은 답장을 남겼다. 뭐라 더 죄송하다는 내용을 덧붙이려다 민팀장님이 핑계대는걸 가장 싫어하는걸 알기에, 그냥 손을 내려버리고 홀드를 잠궜다.
폰을 무릎 위에 내려둔 후, 두 손에 얼굴을 묻는다. 망했다, 진짜.이게 무슨... 깊은 한숨을 내쉬며 회사 근처에 다와가는 택시 밖 풍경을 바라봤다.
역대 회식자리에서 자잘한 흑역사를 남긴 경험은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대형 사고를 친 적은 없었다. 호텔이라니... 그것도 회사 사람이랑. 아마 엄마나 아빠가 이걸 알게된다면 난 그대로 죽은 목숨일거야...
"아가씨."
"......"
"이봐요, 아가씨!"
"네?! 아, 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인상을 쓰고있는데 어느새 회사 앞에 도착해 나를 부르는 택시아저씨에 정신을 번뜩 차렸다. 인상을 찡그린 채 내게 손을 내미는 아저씨에게 택시비를 지불하고는 서둘러 가방을 챙겨 내렸다.
...우리 회사가 이렇게 컸었나. 저 안에 보나마나 잔소리 폭탄일 전정국에, 어제 일을 가지고 몇 달은 놀리실 박대리님에, 별로 친하지도 않은 마케팅팀 사람들에, ...무엇보다 가장 무서운 민팀장님까지. 얼굴을 어떻게 봐야할지 모르겠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인지 회사가 오늘따라 더 무섭게만 느껴져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아마도, 아니. 90퍼센트 이상의 내 촉으로는, 어젯밤 내 꿈. 그러니까 정확히는 꿈 같았던 현실에서, 호텔비를 지불했던 그 사람도 이 회사 안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전정꾸]
빨리 들어와 미친 가시나야 -11:45
니네 팀장 아까 회의 때 한바탕 하는 것 같던데 -11:46
기분 완전 안좋아보임. -11:46
너 망함 ㅊㅋ -11:46
연달아 도착하는 전정국의 카톡에 머리를 몇번 헝클이며 절망하다 더 늦으면 정말 잘리겠다 싶어 회사 안으로 들어섰다.
어젯밤 일의 주인공을 찾는건 엄청나게 중요한 일이지만, 그만큼 중요한게 회사에 잘리지 않는 일이니까.
...근데 정말, 찾을 수 있겠지?
회식에서 날 데리고 나와 호텔까지 데려간,
달빛 아래에서의 잊지 못할 밤까지 선물한 그 남자를.
***
아까 독방에 한번 올려봤었는데 이제야 가져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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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ㅇㅇ를 데려간 사람은 누구일까요?
힌트는 천천히 뿌려질 예정입니다!ㅋㅋㅋㅋㅋㅋㅋ
추리해보세요ㅋㅋㅋㅋㅋ헤헿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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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