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개의 귀걸이 」
# 10
"후아암~"
때지난 몽정으로 이른 새벽에 깬터라 잠이 부족했다. 터져나오는 하품때문에 입을 가리며 가방과 전공책을 챙겨 집을 나섰다.
하품으로 눈물이 맺혀 손등으로 닦아내었다.
"하아..."
하품 뒤에 한숨이 뒤따랐다. 그일이 있은 다음날인 오늘, 태환 선배의 얼굴을 어떻게 보아야할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어제 저녁에 폭탄 고백 이후 성용 선배와 자철 선배가 먼저 자리를 뜨고 남은 술로 자작하면서 마음정리가 된 줄 알았다.
화장실에서 변기통을 잡고 쭈구려 앉은 태환 선배에게 불쑥 말을 꺼낸 것도 그런 이유였다.
남자와 섹스했다는 것보다 태환 선배였다는 사실이 충격이었지만 기분 나쁘지 않는 이유는 나 또한 호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거부감은 없었다.
그 호감이 일반적인 감정보다 특별하다는 것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상당히 무덤덤하게 지나갈 수 있었던 이유가 술기운 덕분이었나보다. 술이 깬 지금, 또다시 머리가 복잡해졌으니까.
무슨 낯으로 봐야하지?
태환 선배를 보면 부끄럽고 쪽팔릴 것 같았다. 새벽녘에 흐릿했던 기억에다 살을 덧붙여 태환 선배와 섹스하는 꿈을 꾼 터라 더욱 그러했다.
저번에는 멀쩡한 정신에서도 태환 선배에게 망측한 상상을 하더니 한술 더 떠서 그따위 꿈까지 꾸었다.
정녕 난 변태인가. 그렇겠지?
멀쩡한 남자가 남자를 대상으로 망상이든 꿈이든간에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
아니지. 남자든 여자든 야한 생각을 하는 것은 상관없나? 그냥 성별차이잖아.
나 게이인가. 그건 아닌 것 같은데...한번도 남자를 두고 가슴 두근거린 적이 없었고 이성적으로도 좋아해본 적 없다.
여자도 좋아해봤고 교제도 해봤으며 성적 경험도 충분했다.
그러니 남자를 좋아하는 성벽을 가졌을리 없었다. 그런데 남자를 좋아한다. 같은 동성을 좋아한다.
남자의 성별은 가진 박태환이라는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다.
태환 선배뿐이었다. 심장 소리가 거슬릴 만큼 두근거린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좋아하는 게 분명했다. 그러니까 술이 깬 지금도 쉽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 미치겠다. 복잡하다 못해서 머리가 펑!하고 터질 것 같다.
넘치도록 수많은 생각들로 머리가 아파왔다.
그러나 복잡한 머릿속과 달리 몸뚱아리는 착실하게 휘적휘적 걸어서 어느새 학교 앞까지 도착했다.
"벌써 학교네..."
아직 마음의 준비를 못했는데 벌써 학교 앞이다.
긴장된다. 주먹 쥔 손바닥에 땀이 찼고 심장은 심하게 날뛰기 시작했다.
전공책을 든 손과 가방을 맨 어깨가 묵직하게 느껴졌다. 나사 한개 빠진 얼빠진 기계처럼 삐그덕거리는 것 같다.
"어?"
두근대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학교 정문으로 다가가니 태환 선배는 없었고 성용 선배 혼자 서 있었다.
걸어오는 나를 발견한 성용 선배가 손을 살짝 들고 인사하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긴장을 가져다 준 주체가 보이지 않자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괜히 긴장했나 싶은 마음이 들었고 왜 그가 없는지 궁금해졌다.
설마 내가 사실을 알고나자 부끄러웠던걸까? 그날 밤 이후로 지금까지 잘만 만났는데 새삼스럽게?
어제도 괜찮아보였는데...아니었나?
"괜찮냐?"
"네...선배는 잘 들어가셨어요?"
"오냐. 자봉이 지네집에 떨궈주고 집에 들어가서 바로 주무셨다."
"네...."
"넌?"
"네?"
"넌 어떠냐고..."
"그게...잘 모르겠어요."
"그게 뭐냐...좋으면 좋은거고 기분 나쁘면 나쁜거지. 사실을 알고 나니까 어때? 기분 더럽냐?"
왠지 비틀린 어투에 성용 선배를 쳐다보았다. 마치 조롱하는 듯한 말에 기분이 나빠졌지만 그의 눈동자가 몹시 진중한 것을 보고 나의 착각이었음을 알았다.
태환 선배를 걱정하는 건가? 나의 반응에 따라 상처받을 친구를 생각해서 그런걸까.
데면데면한 말투와 달리 표정과 눈빛은 차분하고 날카로웠다. 대답을 망설이는 나를 다그치지 않고 말없이 기다려주었다.
말을 꺼내기까지 5분가량 걸렸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숨이 막힐 만큼 길게 느껴졌다. 심호흡을 하고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하나 둘씩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자 단 하나만 남았다.
"아니요."
"그럼?"
"잘...모르겠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좋은 것 같아요."
"흠...상당히 빨리 받아들이는데...혹시 너 게이는 아니지?"
"아, 아니거든요! 그냥...태환 선배니까...선배니까..."
"...그러냐? 후우...쯧."
성용 선배는 뭔가 할말이 더 있는 표정이었지만 미간을 세운 채 한숨을 쉬다 고개를 도리질쳤다.
그러고 보니 그날 밤일을 성용 선배가 알고 있잖아. 알고 있으니까 나한테 말할 수 있었던 거고...갑자기 궁금해졌다.
아니, 어제부터 궁금했던 부분이었다.
"저기...그런데...기선배."
"왜?"
"....저...그거 선배가 말해줬잖아요...그날 밤...일..."
"그런데?"
"생각해보니...자세히 아는 것 같아서...저기..혹시 옆에 계셨..."
"미친!!! 내가 왜 거기 있냐! 바로 나왔지!! 캭!!! 그런 오해하지도 마! 어딜 멀쩡한 사람을 관음증 변태로 봐!"
"아니면 됐구요."
"다시는 말도 꺼내지마!!"
"넵!"
묻자마자 버럭 고함치며 소름끼친다는 듯이 있는대로 얼굴을 구겼다. 잔뜩 찌그러진 표정에 괜히 물었다 싶었다.
눈에 불길이 치솟는다고 표현해도 모자를 만큼 성난 호랑이같아서 무섭기까지 했다.
"저기...그런데..."
"또 뭐야! 이상한 거 또 묻기만 해."
"아니 그게 아니고요. 태환 선배는 어디..."
"아, 걔는 당분간 못볼거야."
"네?"
"뭐...자기가 한 짓도 있으니...어디 얼굴 부끄러워서 니 앞에 나타나겠냐."
"...그런 것치고는 어제 괜찮아보이던데..."
"그건....크흠...술에 취했으니까 그렇지. 제정신이 아니라서."
"......"
하긴. 소주 두잔에 취할만큼 주량이 약하니까. 고개를 주억거리며 성용 선배의 말에 긍정했다.
이윽고 성용 선배가 무언가를 불쑥 내밀었다. 도시락이 든 종이백이었다.
어떨결에 받아들었고 나에게 전달해준 성용 선배는 '이만 간다'라는 짧은 말만 남기고 사라졌다.
서둘러 사라지는 성용 선배를 눈을 깜빡이며 멀뚱히 쳐다보다가 강의 시간이 거의 다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아, 젠장!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으면 말하고 가야죠!
치사하게 먼저 가버린 성용 선배를 욕하며 서둘렀다. 강의 시간 늦겠네.
-
그날 이후로 태환 선배는 며칠 동안 보이지 않았다.
매일 아침마다 성용 선배 편으로 도시락을 배달받았다. 대체 보지도 않을거면서 도시락을 왜 매일 주냐고 성용 선배에게 따지듯이 말하자, 도시락은 약속했던 것이니 계속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언제까지 나를 안 볼 셈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잘모르겠다는 답변만 날라왔다.
처음에는 불편하구나 라고 납득했다. 그러나 며칠동안 계속 이러자 짜증이 났다.
{다시는 날 안 볼 생각인가?} *{ } 중국어
그 동안 장미꽃잎과 알파벳 편지도 왔지만 모습이 보이지 않는 태환 선배에게 온통 신경을 쏠린터라 신경질을 더 돋구는 역활만 했다.
하나둘씩 알파벳 편지들이 쌓여갔다. 책상 구석에 쌓여가는 종이들과 나를 피하는 태환 선배때문에 점점 스트레스가 쌓였다.
{오늘이 며칠이더라?}
최근에 워낙 정신이 없어서 무슨 요일인지도 몰랐다. 용케도 강의를 때맞춰 받은게 신기했다.
날짜를 가늠하니 목요일이었다. 그럼 내일은 금요일이네?
캄캄했던 눈앞이 밝아지는 기분이었다. 금요일이면 교양수업이 있었고 오전 수업은 다름아닌 태환 선배도 함께 듣는 과목이었다.
그럼 내일은 볼 수 있겠다. 설마 대리출석하고 안나오는 것은 아니겠지?
《삐로로》
누구지? 휴대폰을 꺼내 확인하니 성용 선배였다. 무슨 일이지?
《쑨. 내일은 잔디구장으로 와라. 너 수업 늦게 있지? 내일 아침에 축구 경기 있거든. 도시락 받으러 와. -기선배》
성용 선배의 메세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곰곰히 생각했다.
태환 선배를 볼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떠올랐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한결 가벼워진 걸음으로 자취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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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프...아니...뒷이야기는 제대로 써지는데...
이편은 왜이렇게 안써진답니까ㅠㅠ
에구...어서 본격적인 이야기로 넘어가고싶네요.
제글은 쓰면 쓸수록 장편으로 진화하는 것 같아요...허;;;
【암호닉】
ㅌ/흰구름/꽃게/유스포프후작/우구리/마린페어리/박쑨양/촹렐루야/잼/초코퍼지/쌀떡이/꾸워엉/탱귤탱귤/응가/햄돌이/토야/이율/아와레/허니레인/태꼬미/포스트잇/샤긋/딸기빼빼로/소띠/광대승천/태환찡/쥬노/빠삐코/초코퍼지/잼/렌/비둘기/박태쁘/아스/아마란스/뺑/피클로/하늬/양갱/화뉴/옥메와까/밧짱과국대들/탱귤/찰떡아이스/또윤/토야/응가/고무/사과담요/부레옥잠/소어/태쁘니/연두연(연두)/레인/귤/수풀/리엔/고구미/눕는독자ㅇ〈-〈/텔라/@(골뱅이)/하양/양양/차느/너구리/식빵녀/앙팡/하늬/까망이/반오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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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글
광야(狂夜) / 향기없는 꽃 / 월요일의 남자
현재까지 봤을 때 향기없는 꽃이 거의 압도적이네요. 다음으로 월요일의 남자~~
지금까지 보아서는 향기없는 꽃이 7일동안 후속작이 될것 같아요.
※ 그리고 특별한 이변없이는 모두 연재할거에요~~ㅎㅎㅎ
그저 독자님들이 제일 원하시는 작품으로 먼저 찾아뵐려고 하는거랍니다.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