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사는 세상
#1 프롤로그
아침 시간을 허투루 보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그는 5시에 잠에서 깨자마자 욕실로 향한다. 모르긴 몰라도 그 욕실문 손잡이부터가 태생이 남다를 것이다. 마치 그와 같이. 샤워를 마치고 가운을 걸치며 나오는 그의 머리칼에선 제대로 말리지 않아 물이 뚝뚝 흘러 바닥에 자국이 남겠지만 오후에 집을 닦고 쓸어 줄 사람이 올 테니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도심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큰 창이 있는 거실의 테이블 위에는 조간과 영자 신문이 정갈하게 놓여있고 그 옆으로 그의 어머니가 직접 골라 보낸 영국제 접시에 스콘과 파니니가 담겨있지만 그는 그 것에 손도 대지 않고 신문을 펼치며 에스프레소 잔을 들 것이다. 그가 호화스러운 삶에 뜻을 두는 사람은 아니지만 모든 것이 원하기도 전에 이미 갖춰져 있다. 그에게는 당연하게 주어진 것들이다.
아침잠이 많은 나는 손을 더듬거리며 다섯 번 째 울리는 폰 알람을 끄다가 현실을 자각하며 벌떡 일어났다. 좋게 말하면 아늑하고 나쁘게 말하면 좁은 원룸의 유일한 장점인 동선이 짧음을 이용해 욕실로 몇 걸음 만에 뛰어 들어갔고 샤워는 가볍게 스킵. 고양이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은 뒤 정성스레 드라이를 했다. 근무 특성상 헤어는 중요하니까. 가히 신의 손으로 풀메이크업을 5분 만에 마친 나는 어젯밤 미리 세팅해놨던 블라우스와 하이웨스트 스커트를 껴입고 손에 핸드백을 쥔 뒤 우당탕 현관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이젠 하이힐을 신고 계주도 뛸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박지민 같은 남자와 나 같은 여자가 마주쳐서 관계를 지속 할 확률이란 극히 드물다. 하지만 확률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어딘가에서 극적으로 마주친 뒤 우연이 연속적으로 일어난다거나 혹은 우리가 세상에 완전히 속하지 않았을 때 그러니까 사는 세상이 완전히 달라지기 전에 인연이 있었다면 가능할지도 모르지. 그리고 우리는 후자의 경우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인연이란 것이 로맨틱한 무엇이었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아니오. 절대 아니오. 그 때의 나는 아주 궁상맞고 치사해서 그 기억을 불태우고 싶을 정도라고 덧붙이고 싶다.
‘도둑 고양이처럼 어딜 가냐?’
‘나 알아?’
‘모르는데. 근데 네가 대리 시험 친 건 알고 있어.’
‘...이것 좀 놔봐.’
‘그러고 싶은데 부정 행위 알고는 못 그러겠네.’
‘여기 이런 일 흔한 거 알잖아. 난 돈이 필요했고 그 사람은 좋은 성적이 필요했고.’
‘돈이 그렇게 중요해?’
‘그럼 안 중요해?’
‘돈보다 중요한 게 있잖아. 법 배우면서 그런 가치관 가지는 건 좀 위험한 거 아닌가.’
‘지금 네가 몸에 두른 것들 합치면 얼만지 알아?’
뜬금 없는 내 말에 그가 날 빤히 내려다보았다. 그 것은 4년 전 미국에서의 일이었다. 내가 코피 터져가며 공부해서 법대에 진학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으로부터 우리 집이 쫄딱 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나는 최소한의 생활비와 한국행 비행기 티켓 값을 급히 벌기 위해 다른 학생을 위해 대리 시험을 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내 대각선 뒷자리에서 시험을 치던 그가 부정행위를 단박에 알아챈 것이다. 페이퍼를 제출한 뒤 급하게 나오는데 그가 복도 끝에서 나를 붙잡았고 내 캡 모자를 벗겨냈었다. 그의 손에 들린 법전에 James Park이라 적힌 것을 스치듯 봤다.
‘여기서 내가 두른 것들의 값 얘기는 왜 나오는데?’
‘네가 입은 셔츠, 팬츠, 운동화, 손목시계, 가방 가격 전부 합하면 여기 한 학기 학비야. 그리고 네가 들고 있는 차키. 그 차까지 합하면 연간 학비겠지. 그 정도면 집이 대대손손 큰 거 하는 집이란 건데.’
‘계속 해 봐.’
‘내 손모가지를 걸게. 너희 집은 그 돈을 벌기 위해 꽤 오랫동안 매우 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거리에 나앉게 만들었을 거야.’
‘......’
‘근데 난 그것도 능력이라 생각하거든. 그러니까 대리 시험 치는 것도 내 능력이야, 알겠지?’
쌍꺼풀 없이 고운 선을 가진 그의 눈이 굳어가더니 이내 싸늘해졌다. 확실하지도 않은 것을, 그것도 편견까지 끌어들이며 그의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내고 앞 뒤 없이 우기는 것은 엄청 치사하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정말 급하기도 했고 아직 돈을 받지 못한 상태라 당장이라도 모든 것을 까발릴 것 같이 청렴해 보이는 그 자식의 입을 막아야만 했다. 그는 말이 없었고 내가 돌아서려는 찰나 다시 나를 잡았다. 줄곧 영어로 말하던 그가 이번엔 한국말을 뱉었다.
‘잘 모르겠는데. 우리 집이 실제로 그랬다면 난 그게 부당하다 생각하고 그딴 게 능력이 아니란 것도 알아.’
‘내 말은 너한테 그런 말 듣고 싶지 않다는 거야. 넌 그게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걸로 편하게 먹고 살잖아. 너 그거 포기할 수 있어? 못할걸. 나도 내가 부당한 거 아는데 먹고 살자고 하는 거야. 상황만 보자면 내 쪽이 훨씬 급하다고.’
나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내 모자를 낚아채며 돌아섰고 나를 붙잡는 손은 더 이상 없었다. 아마도 그는 교수님께 이르진 않을 것이다. 본인 현실에 대해 꽤나 충격 받은 표정이었으니까. 그 뒤로 그 때의 내가 얼마나 거지 같았는지 가끔 떠올리며 그와 다시 마주치는 상상을 해 본적이 있지만 우리에게 다음이란 없을 것이라 확신해왔다. 2년. 아니 빠르면 1년 안에 우리가 사는 세상은 완벽히 구분 될 거란 걸 알고 있었다.
박지민은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을 가진 초일류 상류층이며 난 이제 평범함으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 직장인이다. 우리 둘은 각자 다른 의미로 대한민국 상위 0.1%이고 이 것이 우리 둘의 유일한 공통점이라 할 수 있겠다.
글
프롤로그겸 1화라 의도치 않게 진지한데 훨 가벼워질 거예여 전 가벼운 녀자니까욜
재벌섹시뇌섹남아이스와온을넘나드는갭망개 박지민..을 보고 싶어서 구상한 이야기인데
이 소설의 장르는 로펌물인데요... 저는 로펌에 대해 잘 모르니까 거의 판타지 입니다8ㅅ8ㅋㅋ
+암호닉은 3화까지 받고 추후 추가로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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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쥬!!!! 혹시라도 기다리셨을 단 한분을 위해서 씁니닼ㅋㅋ 완결 후 제 노트북이 터지고 한참 글을 쓰지 않았어요...흐엉ㅎ휴ㅠㅠ 어쨌든 얼마 전부터 충격에서 벗어나서 다시 쓰면서 현재 번외 분량은 뽑아놨구요. 메일링 분량은 아직이라 완성되면 올리겠슴미다!!! 메일링 신청은 공지 뜨면 해주심 되구요! 완결편 암호닉 리스트 기준으로 할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