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박지민의 비서로서 업무를 시작한 지 약 일주일이 지났다. 그간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박지민이 내게 흥미가 있다거나 내가 거기에 마음이 동한다거나 걱정했던 모든 것들이 무의미했다는 사실. 우리는 얼굴을 맞대고 잡다한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없을 정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박지민은 하루 온종일 대부분의 시간을 기업 자문과 계약서 검토를 위주로 한 업무를 했다. 대표님이 일부러 그가 소송 업무에는 손을 대지 않도록 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자신의 아들이 재판장을 드나드는 소송 업무 보다는 비즈니스 변호사가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그런 그를 보조해야 했기 때문에 퇴근 시간은 운이 좋다면 10시 이전 보통은 새벽이 되기도 했다. 그는 내게 같이 야근 할 필요 없다 말하곤 했지만, 내가 없으면 커피로만 배를 채우는 그가 사무실에서 어떻게 되기라도 할까봐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때가 되면 자료더미에 둘러싸인 그의 책상 귀퉁이에 조심스럽게 테이크아웃 샌드위치나 포장 음식 등을 놓고 나오곤 했다.
[비서님 어디예요?]
“저 외근이요.”
[지민이형도 없는데?]
“박 변호사님도 외부미팅 나가셨어요. 무슨 일이세요?”
오히려 박지민보다 더 많은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생겼는데 바로 전정국이었다. 전정국 변호사는 보고서를 올리기 위해 거의 매일 박지민의 사무실에 들락 거렸다. 미팅이든 뭐든 외출로 바쁜 박지민이 없을 때 그것을 받아 검토해두는 것이 내 업무였기 때문에, 우리는 금세 농담도 주고받는(주로 전정국의 헛소리) 사이가 되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박지민에 의해 빨간 줄이 좍좍 그어진 보고서를 받아들고 사무실에서 나오는 전정국의 모습을 보며 측은지심을 느끼기도 했다.
[보고서 올리러 왔는데 아무도 없네요. 근데 이거 오전까지 마쳐야 했거든요. 형한텐 오전에 받아뒀다고 해주면 안돼요?]
“안돼요. 매번 안 된다고 한 것 같은데, 언제까지 물어보실 거예요?”
[음. 될 때까지?]
업무 전화인 줄 알고 양해를 구하며 받았던 건데. 전정국의 실없는 소리에 나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능글거린다거나 되는대로 말을 뱉는 등 박지민과 전정국 그 둘은 은근히 닮은 구석이 많았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나는 거울을 보며 블라우스를 정돈하고 드레싱 룸의 커튼을 젖혔다. 조곤조곤 우아한 목소리들이 공간을 가득 울렸다.
“프랑스 본사에서 공수해온 백입니다.”
말로만 들었던 백화점 프라이빗 룸을 실제로 본 것은 나도 처음이었다. 소파에 가 조심스레 앉은 나는 입술을 물며 손가락을 꼼지락댔다. 백화점 매출의 삼분의 일을 책임지는 VVIP들을 위한 개인 쇼핑 방이라는 사실 만으로 그 위압감은 어마어마했다. 이 곳은 외관만 본다면 호텔의 스위트룸이나 다름이 없었다. 브라운과 화이트가 적절히 섞여 묵직하면서도 모던한 인테리어인데 벽면에는 대형 거울 그리고 진품인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유명한 미술 작품이 놓여있었다. 룸 한켠에는 내가 잠시 들어갔던 드레싱 룸이 마련되어 있었고 고객들의 소규모 모임을 위한 미니 키친과 티 테이블 그리고 고급 오디오까지 갖춰져 있었다. 잡지에서나 보던 소파와 탁자들은 모두 미국과 유럽에서 들여온 제품들이었다.
“이 상품은 지난번 말씀드렸던 스페셜 에디션 입니다.”
하얀 장갑을 낀 손이 백을 들어 조심스럽게 눈높이에 맞춰 올렸다. 고개를 살짝 움직이며 그것을 훑던 시선이 오른쪽으로 옮겨가자, 검은 유니폼을 입은 VVIP 매니저가 들고 있던 것을 내려놓고 짙은 네이비 색상의 백을 들어 보였다.
“어떤 게 더 나아 보여요?”
갑작스레 나를 향하는 우아한 목소리에, 내가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 한 건지 박지민과 똑 닮은 눈이 호선을 그리며 휘어졌다. 중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고운 피부와 가느다란 몸 그리고 심플한 선의 베이지 원피스를 입은 여자는 P로펌의 사모님이자 박지민의 어머니였다. 나는 오늘 영문도 모른 채 이곳으로 호출 된 것도 모자라서 그녀와 나란히 앉아 세상에서 가장 부담스러운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편하게 말해요. 젊은 사람 생각이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예요.”
“그... 이 쪽이 더 단정하고 고아해 보입니다.”
“디자인은 그런데, 색상은 블랙이 더 고아하지 않을까요?”
“사모님 피부가 희셔서 푸른빛의 색상이 더 어울리실 것 같습니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백을 살피던 눈이 만족스러운 듯 깜빡이자 매니저의 얼굴에 안도의 미소가 퍼졌다. 곧장 사모님의 개인 비서가 그 자리에서 수 천 만원을 호가하는 백을 아무렇지 않게 일시불로 결제했고 사모님께서는 바로 와인 클래스로 가셔야하니 운송까지 부탁한다 말했다. 아마도 저 백은 백화점 VVIP를 위한 벤츠에 모셔져 본가까지 운송될 것이다.
“오늘도 고마워요. 이 아가씨랑 담소 좀 나누고 싶은데 자리 비켜줄래요?”
“네, 사모님.”
룸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나가자 그녀가 나를 향해 웃어보였다. 아까보다 천만배는 더 불편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나는 멘탈이 꽤나 튼튼한 편이라고 자부해왔는데, 긴장이 돼서 입술이 바짝 말라왔다.
“불편하죠?”
“아뇨, 괜찮습니다.”
“지민이가 자기 아버지 비서실에서 직접 비서를 채용했다기에 놀랐어요. 이런 식으로 직원을 직접 불러들이는 건 예의가 아닌데 미안해요. 너무 궁금해서.”
그녀가 작게 웃었다. 무어라 답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지만 사모님 역시 대답을 들으려는 눈치가 아니었다.
“어소시에이트 전정국, 알죠?”
여태껏 나는 소파에 앉아 명품 백을 구경한 것이 아니라, 사모님이 언급할만한 모든 가능성 있는 주제에 대해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전정국은 정말이지 예상치 못한 이름이었다. 그래서 멍청하게 눈만 깜빡일 수밖에 없었다.
“그 애를 잘 부탁해요. 정국이는 지민이와 미국에서 함께 공부하며 자랐거든요. 서로 거의 형제나 다름없죠.”
사모님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차를 홀짝였다. 둘이 미국에서 함께 자라고 공부했다고? 내가 대표 비서실에서도 전혀 듣지 못했던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그것은 의도적으로 비밀에 부쳐진 얘기임이 틀림없었다.
“이런 얘기까지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정국이는 가엽게도 어릴 때 가족 없이 홀로 남겨졌어요. 상황이 참 안타까웠던 게 가해자는 없지만 상황의 희생자만 남은 경우였죠. 그 희생자가 정국이었고 우리가 그 애를 데리고 왔어요.”
남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는 것만큼 불편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사모님은 내게 전혀 말 할 이유가 없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 의중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의중을 알아내는 것이 내 의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추리할 정신이 없었다. 전정국이 겪었다는 그러한 사정 때문에 무려 P로펌이 거두었다? 그래서 박지민과 형제처럼 자랐다? 누가 봐도 이해가 가지 않는 전개일 것이다.
“사람이 가진 뿌리가 얼마나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그것이 뿌리든 무엇이든, 사람은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뇨 틀렸어요. 난 뿌리가 가치관을 형성하고 결국엔 그 사람 자체가 된다고 생각해요. 뿌리는 절대 변할 수가 없어.”
“......”
“그래서 그런지 정국이가 철거니 뭐니 우매한 민중들이 떠들어대는 이야기들에 솔깃한가봐.”
“......”
“대표님이 아시는 날엔 뒤집어질 거예요. 그렇게 되면 지민이 그 애가 정국이를 얼마나 싸고돌지 상상만 해도-”
이거구나. 사모님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꾹꾹 눌렀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내렸다. 전정국을 감시하라는 의미이다. 자칫 자신의 아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전정국의 행보를 막을 수 있다면 내가 막아야 하며 필요시 보고를 해야 할 것이다. 뿌리, 우매한 민중. 그러한 반시대적 단어가 저리도 우아하게 읊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게 되었다.
“지민이는 앞으로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아요. 지금 누리는 특권도 다 책임이 따르는 것이죠.”
“......”
“강 비서가 도와줘야 해요. 지민이는 뭐랄까, 심약하거든요.”
내가 아는 박지민은 심약이란 단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남자다.
“할머니 손에 커서 그런지 정도 많고 동정심도 참 많아요. 사람들은 다른 집 자제들과는 달리 지민이가 잘 자랐다고들 하는데 우린 걱정이죠.”
그녀가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묘한 위화감에 손톱이 손바닥 살을 파고들었다.
“그래서 자기가 겪어보지 못한 계층에 대해 관심이 넘쳐요.”
“......”
“미국에 있을 때도 세탁소집 딸 교포2세 아가씨랑 교제한 적도 있었고. 뭐, 젊은 남녀 둘이 눈 맞는 거야 대수로운 일은 아니죠.”
“......”
“다만 소문이 좀 그래서.”
“......”
“지민이가 라운지에 출입한 날, 지민이랑 강 비서 둘 다 빌딩에서 나오지 않았다던데.”
그녀의 표정이 삽시간에 싸늘해졌다. 하지만 당장이라도 혼이 빠져 나갈 것 같았던 나는 그녀의 표정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러니까, 박지민과 나 사이에 그렇고 그런 일이 있었다고 오해를 하는 건가? 소문? 대체 어떤 소문? 그러다 문득 로펌 로비라던가 엘리베이터 안, 자료실, 프린트 룸 등에서 나를 보던 변호사들이나 직원들의 관심어린 눈빛이 떠올랐다. 하루아침에 박지민의 비서가 되었으니 그 눈빛들이 충분히 납득이 갔었는데, 실은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어제 잠깐 들렀던 대표 비서실에서 호석 오빠가 넌지시 매사 신중 하라는 말을 했던 것도 납득이 갔다. 터무니없는 오해였다.
“무언가 오해하고 계신-”
그녀가 하얀 손을 살짝 들어 올리며 내 말을 멈췄다. 화를 애써 억누르는 표정이 여실히 드러났다.
“소문의 진위 여부가 중요한 것 같나요?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아.”
“......”
“어떻게 감히 그런- 소문을.”
나는 ‘그런’과 ‘소문’ 사이에 분명히 ‘천박한’이라는 단어가 생략됐음을 단번에 알아챘다. 나는 숨 조차 쉴 수가 없었고 잔뜩 날이 선 표정의 사모님은 짧은 심호흡을 내뱉었다. 그 때 룸의 문이 벌컥 열렸다. 어떤 간땡이 부은 인간이 VVIP룸의 문을 저렇게 여나 싶었다.
“뭐 하세요, 어머니?”
두툼한 서류 봉투를 팔에 낀 박지민이 사모님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흐트러진 검은 머리칼 사이로 그의 미간이 의아하다는 듯 좁아졌다. 문 너머로 사모님의 개인 비서가 허둥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제서야 떠올랐다. 오늘 박지민의 외부 미팅이란 것이 G백화점의 해외 투자 자문에 관한 미팅이었다는 것을. 그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강 비서는 왜 여기 있어? 보고서 검토는 다 했어? 정국이 송무 담당 판사 확인해 달라는 건?”
“그-”
“그래. 아직 안 했겠지.”
이리 와, 혼나야지. 박지민은 내게 손가락을 까딱였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사모님의 표정이 느껴졌다. 내가 겪은 상황 중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가 따로 없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었는지 사모님이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박지민 너 엄마는 안 보여?”
“문 열자마자 어머니께 뭐 하시는지 여쭸잖아요.”
“성북동 본가 들르라고 그렇게 말해도 귓등으로도 안 듣더니.”
“그러니까요. 그렇게 얼굴 좀 보자며 성화시더니 왜 화를 내세요? 혹시 제가 알면 안 되는 거라도 있나요?”
“너 말버릇 정말!”
“아 죄송해요. 여튼 제 직원을 이렇게 개인적으로 부르시면 곤란해요.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해주세요, 어머니.”
사모님은 정말 화나신 건지 박지민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가며 하얀 손으로 백을 꾸욱 말아 쥐었다.
“지민이 널 할머니와 미국으로 보내는 게 아니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좋겠어.”
“그런 얘기라면 정말 많이 들었지만 계속 들어도 화나긴 하네요. 할머니 얘긴 제발 그만하세요.”
“혜민이도 당장 들어오라고 해야겠어.”
“박혜민은 왜요?”
“지민이 너를 보니 혜민이가 너처럼 될까 무서워서 그런다!”
“걘 한국에서 못 살아요. 아시면서.”
“뭐?!”
결국 소리를 지른 사모님이 박지민의 팔뚝에 백을 휘둘렀다. 꽤 둔탁한 소리가 났는데도 눈도 깜빡 하지 않은 그는 대리석 바닥에 떨어진 백을 주워 그녀의 손에 다시 쥐어줬다.
“백에 스크래치 조금만 생겨도 남 줘버리는 분이.”
“이건 예외야. 태어나서 사람을 때린 건 처음이니 가보로 간직할 거다!”
박지민은 기가 찬다는 듯 피식 웃었다. 그런 그를 흘겨보던 사모님은 손으로 뒷머리를 정리하더니 심호흡을 하는 듯 어깨를 들썩였다. 그녀는 곧장 몸을 돌리며 나를 향해 인자하게 웃어보였다. 자유자재로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것이 부러울 지경이었다.
“강 비서. 홍차 얘기 즐거웠어요. 대표님이 본가에서 유일하게 만족하지 못하는 게 티타임인데, 강 비서 때문인 거 알죠? 언제 한 번 본가로 들러서 좀 도와줘요. 많이 그리워하셔.”
“네, 사모님. 다음에 뵙겠습니다.”
비록 우리는 홍차의 홍자도 얘기를 나눈 적은 없었지만 나는 꾸역꾸역 대답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멀어지자 다리가 다 후들거려왔다. 박지민만 없다면 그대로 소파에 풀썩 앉아버리고 싶었다. 박지민이 한숨을 쉬며 차키 홀더를 손가락에 걸고 달랑였다.
“가자.”
“됐어요. 저는 버스를-”
“좀 가지.”
내 의견은 전혀 궁금하지 않다는 듯 그는 나를 억지로 VVIP 전용 엘리베이터에 구겨 넣었다. 그 때부터였다. 조수석에 앉은 지금까지 한 손으론 운전대를 잡고 다른 팔은 차창에 걸친 박지민의 표정을 알 길이 없었던 것은. 그가 무표정인 것인지 아니면 화난 표정인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는 것만은 확실했다. 하지만 아무렴 상관이 없었다. 나도 기분이 좋지 않으니까. 나는 창에 머리를 기댄 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티타임은 무슨 얘기야?”
정지 신호에서 차를 느리게 멈춰 세운 그가 나를 향해 물었다. 대체 나는 언제쯤 홍차나 티타임 따위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궁금해져서 헛웃음이 터졌다. 대표실에서의 내 업무가 허드렛일이었다는 것을 박지민이 알게 되는 건 정말 싫었다. 나는 여전히 차창 밖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들으신 대로에요. 항상 차를 타드렸거든요.”
“혹시 그 어이없는 티타임도 강 비서 담당이었어?”
“네.”
그가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눈을 감으며 시트에 등을 기대었다. 다시 차가 움직였다. 톡톡톡, 운전대에 손가락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박지민이 생각에 집중 할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본가까지 오라는 건 무슨 경우지? 거기에 대고 왜 알겠다고 대답했어?”
“그럼 사모님께 싫다고 대답할까요?”
“강 비서가 하녀야?”
나는 눈을 천천히 떴다. 그는 전면을 보다가 내게로 고개를 돌렸다.
“본가까지 가서 차 내어가겠단 건 뭐냐고. 난 너한테 업무 능력을 바란 거지 그런 수발들라고 데려온 거 아니야. 그런 일 시킨다고 배알도 없이 넙죽 할 거면 다시 돌아가서 하던 거해도 좋아.”
단 한 번도 내게서 눈을 떼지 않고 말한 박지민은 말을 마친 후 다시 운전대를 고쳐 잡았다. 나는 숨을 들이켰다. 가능하면 화를 참아보려 했다. 소문인지 뭔지도, 전정국도, 박지민이 뱉은 말도 이 자리에서 혀를 콱 깨물고 죽어버리면 더 이상 떠오르지 않을까 싶었다. 차 안에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그 하녀 일, 전 대표실에서 일년 내내 했어요. 자랑스러운 업무는 아니었지만 주어진 거니까 최선을 다했고.”
“......”
“다른 사람들 눈에도 제 일이 우스워 보였을 수 있겠죠. 하지만 누구도 저에게 하녀라고 하진 않았어요. 이게 무슨 뜻인 줄 아세요?”
다시 정지 신호에 걸렸다. 횡단보도 바로 앞에서 꽤 긴박하게 멈춰선 차의 반동으로 몸이 짧게 튕겼다. 그는 나를 빤히 바라봤다. 나는 그를 향해 눈을 치켜떴다.
“박 변호사님이 제일 못됐단 뜻이에요.”
박지민이 미워서 죽을 것 같다. 그의 어머니가 내게 했던 말들을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읊어주고 싶었다. 스커트 위에 놓인 손이 바르르 떨렸다. 곧장 박지민의 시선이 내 손으로 내려왔고 나는 팔짱을 끼며 다시 차창 밖을 내다봤다. 그가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 것이 느껴졌다.
“신호 바뀌었어요. 좀 가죠.”
“미안.”
신호가 바뀌었는데 출발하지 않은 것에 대한 사과인지, 다른 무언가에 대한 사과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눈을 깜빡이며 스쳐가는 거리를 구경하려 애쓰는데 박지민이 입을 열었다.
“미안해. 단어 선택이 경솔했어.”
“......”
“근데 변명 좀 해도 돼?”
“...알아서 하세요.”
“라운지에서 강 비서 손이 반창고투성이인 거 보고 엄청 의아했거든.”
“......”
“이제야 이유를 알 것 같아서. 난 걱정한 건데 말이 헛나갔어.”
당황스럽다. 박지민을 향해 얼어붙은 내 얼굴에 그리 써져 있었을 것이다. 박지민은 앞을 봤다가, 나를 봤다가, 여러 번을 반복했다. 그러다 그는 정말로 미안한지 눈썹을 늘어뜨리며 아직 반창고가 감긴 내 손을 가리켰다. 이것도 그거야? 달리는 차체 때문에 그의 손가락 끝이 내 손가락 위에 닿을 듯 말 듯 했다. 나는 곧장 팔짱을 풀어 오른 손을 왼손 아래로 숨겼다.
“...괜찮아요.”
“약은 제대로 발랐어?”
그럴 리가. 찻잔을 깨끗이 씻어내는 것 역시 내 업무였기 때문에 약을 발라도 물에 금세 씻겨 내려갔거든. 몇 번 덧바르다가 집구석 어딘가에 쳐박혀 있을 연고가 떠올랐다.
“네.”
“잘했어. 근데 울지 마. 미안해.”
“안 울어요.”
나는 가능한 한 최대로 고개를 틀었다. 직장 사람들 앞에서 우는 거 정말 싫은데. 더 싫은 건, 내가 울고 있는 이유다. 화나고 짜증나서 손까지 떨릴 땐 언제고, 박지민의 걱정했다는 그 말에 눈물이 나는 거다. 나 정말 진짜 없어 보인다. 덜컥, 콘솔 박스가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눈앞으로 하얀 티슈를 건네는 손이 불쑥 나왔다.
“내 차에 콧물 묻으면 안 되니까 닦아.”
“...콧물 안 흘리거든요.”
“쿨쩍거렸잖아.”
“누구 때문인데요.”
“미안. 그리고... 어머니가 무슨 얘기를 했든 그냥 잊어버려.”
나는 말없이 티슈를 만지작거리다가 코를 팽- 하고 풀었다.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를 흘겨보았다. 그러자 박지민은 곧장 웃음기를 거두었다. 비서가 흘겨보고 신경질을 내도 저리 속 편한 상사는 아마 박지민밖에 없을 것이다. 뭐 하나 부족한 것도 없고 성정도 모난 곳 없이 올곧아 보여서, 재수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시트에 몸을 풀썩 기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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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눙 독짜 여러분들!!!!!! 이야기 갈 길이 구만리네요!!!!!!!!(ㅠㅠㅠㅠ) 다음 화부터는 정국이의 분량이 늘어날 예정입니다아
그리고 다음 주는 휴재할 수도 있음을 알려요8ㅅ8 제가 종강하고 더 바빠졌어요. 저 대체 왜 학원을 등록했을까요...? 아시는분...ㅠㅠ
+암호닉
정리를 아직 못했어요...(당당) 어쨌든 암호닉은 3화까지만 받았구요.
제가 3화까지만 받았던 이유는 순전히 정리하기 버거워서이기 때문이라 이야기 중간이나 끝 즈음에 한두 번 더 받을게요!
남사친의 모든 것 번외와 메일링에 관해 |
번외와 메일링 너무 늦어져서 정말 죄송합니다. 뭐라 드릴 말씀이 없어요ㅠㅠ 글이 막히는 것도 막히는 거지만 위에서 말씀 드렸듯이, 방학 후 저도 글이 너무 쓰고 싶지만 구상할 시간조차 부족해요.8ㅅ8 그렇다고 대충 쓰는 건 싫어요 다메... 여러분을 실망시킬 수 없숴... 7월 안에 오는 것이 목표인데 목표일 뿐이고요. 확신은 못 하겠어요 못 지킬까봐ㅠㅠ 기다리시는 분들께 다시 한 번 정말 죄송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