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억울했다.
너에게 버려진 것이 억울했다.
살이 찌면서 나를 외면한 것은 사람들뿐만이 아니였었다.
너도 내게서 등을 돌렸다.
뚱뚱한 것이 죄일까.
과거에는 잘생겼다는 말도 많이 듣던 내 얼굴은 어느새 살에 파묻혀 흉칙해졌다.
예전에는 몰랐던 누군가를 질투하는 시선.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시선을 던지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도 못했다.
"야, 일어나."
"................"
"이러니까 너가 살이 찌는 거야."
"나쁜 놈."
술에 취해서 잠들었던 것 밖에 기억이 안나는데 눈 앞에 네가 있다.
이것은 환상일까. 여긴 분명 내 방이 맞는데 내 침대가 맞는데 너무 그리워서 환영이라도 보이는 것일까.
내가 그렇게 누군가에게 목을 매던 사람이 아니였는데 너 하나에 내가 이렇게 망가진 것일까.
술에서 깬 내 눈 앞의 너는 나를 아무 감정없이 내려다 보고 있다.
미워. 그런 눈빛으로 쳐다보지마. 너에게만은 동정 받고 싶지 않아.
너에게 이런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아 너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나는 고개를 돌린다.
"....가."
"못가. 문도 열어놨더라. 아무리 성인 남자라도 혼자 사는 주제에 그렇게 문단속 안하면 위험하다."
"가! 가라고!"
"진정해, 선배가 부탁해서 온 거니까."
"이병헌!"
너는 대체 지금 나를 뭐라고 생각하고 있을 까.
바보, 병신.
누구보다 도도했던 내 모습에 반했던 너인데 나는 네게 이런 모습만 보인다.
"씻고 나와. 정신 좀 차린 뒤 얘기하자."
".............."
"씻으라고."
"...난 너랑 할 얘기 없어."
"이제 시작인데 할 얘기는 많아. 씻고 나와."
둔한 몸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는 너무 무거워서 일어날 때 팔목으로 몸을 지탱하는 것도 힘들다.
나 자신을 버티기가 힘들다.
근데 이제 내가 기댈 사람은 없다.
화장실 거울 속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추했다.
태어나서 이런 나는 처음인 것 같아.
너는 누구니?
몇년 전까지만 해도 누구든 갖고 싶어 했던 앵두같은 입술은 어디간 것일까.
모두가 마주하고 싶어하던 초롱초롱하던 내 눈망울은 어디간 것일까.
어깨에 닿는 수북한 머리카락도 얼굴을 다 덮지 못한다.
머리 자른 게 언제더라. 자르고 싶지도 용기도 없다.
짧은 머리는 나를 더 드러내보이게 한다. 나를 더 커보이게 한다.
다시 방으로 향하는데 네가 말한다.
"오늘 날 되게 좋다."
"너...!"
이것도 환상인 것일까.
네가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아니 모르는 사람 같다.
"좋아. 밥 먹고 운동가자."
"너 누구야."
"일찍 일찍도 물어본다. 선배가 부탁하셔서 온거야."
다른 사람. 낯선 사람.
선배도 참 지금 이 모습으로 새로운 만남을 가지고 싶지 않은데.
"됐어. 선배 때문에 온거라면 그냥 가줘."
"딱히 선배 때문에 온 건 아닌데."
".......뭐?"
"네가 쌀쌀맞게 대하니까 욕심이 생기네."
"............."
"네 얘기 듣고 상상한 네가 있었는데. 하, 예상이 빗나가서 말이야."
"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 거야?"
"앞으로 잘 해보자고."
"........"
"아, 참고로 내 이름은 이병헌이 아니라 최종현이다."
아까 내가 그로 착각했던 것을 들켰나...?
하긴 그렇게 말했는데 모르는 게 더 이상하다.
.....도와준다고...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 까, 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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