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순식간이었다. 라이코비치의 주먹이 내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사이 벙쪄있던 나를 제정신으로 돌아오게 만든건 고통스러운 아슬란의 비명소리였다. 입싸움에 먼저 선빵을 날렸겠다, 게다가 원래 맞히려던 내가 곧이곧대로 맞아주지 않았으니 성이 오를대로 나 달아오른 분을 삭히지 못하고 아직도 씩씩대는 라이코비치에게 홧김에 발차기를 날리다, 아슬란의 관자놀이께에 짚은 손에 묻어나오는 피에 소스라치게 놀라버렸다. 아니 얼마나 세게 친거야, 인상이 절로 구겨졌다.
"손, 진정해."
내 팔을 붙잡은 동료의 손에서 피가 뭍어났다. 얼굴을 보니 방금까지만 해도 아슬란 옆에서 그를 부축해주던 사람이다. 당황스럽고 나아가 더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에서 내가 걱정해야될것은 평판이 아닌 아슬란이다. 나 대신 라이코비치의 주먹에 이마를 맞은 그가 팀 닥터 무리사이에 누워있다. 힘이 빠진채 축 늘어진 두 팔과 다리, 닥터가 무어라 무어라 말하고 있긴 한데 꼭 이럴때만 머리속에서 번역이 더 느려지곤 한다. 아, 진짜 돌겠네.
"아슬란 괜찮아? 많이 안다쳤어?"
"손.."
"괜찮아? 미안해, 내가 피하지만 않았어도.."
문법에 어긋난 단어의 배열이 내 입에서 맴돈다. 닥터들의 도움으로 급히 이송되는 아슬란의 뒤에서 그의 팔을 잡았다. 그가 쥐고 있는 휴지의 가장자리가 빨갛다. 피가 점점히 찍혀있는 그의 손가락에서 자책감이 느껴지는듯, 제정신을 뒤찾은 그가 차에서 말을 거는것도 듣지 못했다. 손, 나 괜찮아, 애써 미소를 지어보이는 아슬란의 입꼬리에서 그가 가진 고통이 생생히 전해진다.
"손, 나 정말 괜찮아. 걱정하지마."
"나 때문에.."
"아니야, 정말 괜찮다니까."
뭐가 괜찮아, 약간 들춰진 휴지 사이로 벌름대는 상처에서 새빨간 피가 찔끔찔끔 새어나왔다. 이렇게 따가워보이는데 뭐가 괜찮다는거야 정말, 고된 훈련끝에 맺힌 땀방울이 돌돌말린 아슬란의 곱슬머리에 위태롭게 걸려있다. 그 땀방울이 토독 하고 떨어진곳은 아슬란이 먼저 잡아온 내 손 끝이다. 어느새 잡힌 손에서 그의 온기가 전해져왔다.
"손, 내 걱정 하지말고 훈련장으로 돌아가."
"그래도 나 때문에 이렇게 다쳤는데..."
"내일 경기 망치고 싶은거 아니지? 얼른."
자기는 괜찮을거라고, 괜찮다고 나를 타이르듯 얘기하는 아슬란에 먼저 눈물이 앞선다. 돌이켜보니 축구외엔 아무것도 모르는 새파랗게 어린 아이일때부터 독일어며 독일 음식이며 세세한것까지 가르쳐준 그에게 나는 항상 받기만 했다. 연습중에 부상이라도 당하면 여길 다쳤느니 다음 시합은 어쩌느니 하며 어쩔때면 한국에 계신 엄마보다도 더 엄마같은 그의 모습이 한편으론 부담스럽다고 해도 싫진 않았다.
"내 몫까지 연습 잘 해줘, 알았지?"
"아슬란.."
새로 염색한 내 머리를 한번 헝클이고 등을 떠미는 아슬란에게 끝까지 내 특유의 사람좋은 미소 한번 보이지 못했다. 웬만해선 웃음이 필요치 않은 상황에서도 잘만 나왔는데 요즘엔 그게 힘들어진 건지, 그나마 그를 보면서 가끔씩 나왔는데 말이다. 멀어지는 아슬란의 뒷모습에서 이유모를 설움이 목구멍을 비집고 불쑥 머리를 들이밀었다. 라이코비치에게 맞아서 생긴 불쾌함이 아닌, 훈련을 망쳐버렸다는 그런 죄책감이 아니었다.
같은 팀동료라기엔 너무나 친하고 다정한 우리, 이렇게 잠깐만 떨어져도 자꾸 보고싶은게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것이 아니기를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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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학교가야 하는데.. 또 똥글을..ㅠㅠ 절 매우 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