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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단편/조각 만화 고르기
이준혁 몬스타엑스 강동원 김남길 성찬 엑소
심리학자 전체글ll조회 3103l 3





방용국은 전공이 유아심리학, 부전공이 역사학인 26살의 대학생이었다. 나이만 보면 암모나이트격인 셈이었다. 캠퍼스 내에서 암모나이트 선배로 유명한 김힘찬과 친구이니만큼 그 또한 고대 화석 취급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방용국이 김힘찬과 동급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김힘찬처럼 단순히 군대와 옵션으로 휴학까지 해서 졸업이 늦추어진 것이 아니라 미국에서 유학 코스를 밟으며 특출난 엘리트로 불리었기 때문이었다. 군대도 미루어놓고 스물부터 스물 둘까지 풀로 학교를 다닌 방용국은 스물 셋이 되던 시기에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고 했다. 방용국이 유학 가던 쯤에 정대현과 그 외 아이들이 입학을 했으니 정대현은 같은 학과이면서도 방용국이라는 존재를 모를 만도 했다. 그렇게 몇 년 간 미국에서 유아심리학에 대해 공부를 하던 방용국이 올해 다시 한국의 대학으로 들어왔단다. 따지고 보면 방용국은 올해 4학년, 그러니까 졸업반이었고 정대현과 그 외 아이들은 군대니 뭐니했던 고로 올해 고작 해 봐야 2학년 뿐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되다 보니 자연스레 그들 간의 접점이라는 건 존재치 않았고 소개를 받으면서도 생판 초면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었다. 같은 학과 선배 중 이런 암모나이트가 있다는 사실을 소개 받던 그 날에서야 깨달은 정대현이나 유영재만큼 얼떨떨한 사람은 없겠지만.


여기까지가 정대현이 유영재를 통해 듣게 된 방용국의 프로필이었다. 추가로 김힘찬에게 귀띔 받기론 방용국의 장래는 아동 범죄를 바탕으로 둔 범죄 프로파일러라고 하는데 그건 전공을 잘 살린 꿈이라고 쳐도 부전공과는 무슨 관련인지 잘 모르겠다 이거다. 사실 정대현의 머릿속에 방용궁은 원시인을 좋아하는, 어쩌면 특출난 엘리트라기 보단 좀 덜 떨어지는 기묘한 사학과생같다는 생각이 대부분이었다. 절대 당연하게 저를 원시인 취급해서, 또는 저더러 원시인이 잘 어울린다고해서 하는 말은 아니었다. 그냥 느낌이라는 게 그랬다.


그건 그렇다 쳐도 제일 의문인 것은 왜 자신이 방용국의 적응기를 도와야 하는가, 싶은 것이었다.



   “원시인씨는 꿈이 뭐야?”

   “원시인씨 아니고 정대현이요.”

   “아, 맞다. 미안. 잘 어울려서.”

   “…꿈은 선배랑 비슷해요. 아직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냥 1절까지만 하고 끝냈으면 좋을 걸, 방용국은 잘 어울린다는 희대의 개소리 2절을 남기게 됨으로써 정대현의 심기를 툭툭 건드리게 되었다. 기억력이 최준홍만도 못한 방용국은 틈만 나면 원시인씨, 하고 정대현을 불렀다.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더라. 사실 이 쯤 되면 정대현도 포기하고 그렇게 부르던가 말던가 신경을 쓰지 않을 만도 하지만 정대현 딴에는 억울했기 때문에 정정해주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방용국을 소개 받던 그 날, 본인의 상태가 얼마나 꼴사나웠는지 정도는 집을 나올 때 확인해서 알고 있었고 게다가 집에 들어가서도 괜히 울분이 터져서 한 번 더 확인했었다. 그러나 방용국과 떨거지들, 그러니까 방용국과 김힘찬과 유영재에게 원시인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추한 모습은 아니었다. 단지 머리 좀 감고 나왔으면 이보다는 나을 성 싶다는 생각만 한 게 다였지. 그래서 정대현은 자신의 원시인꼴을 만회하기 위해 그 다음주부터, 아마 방용국이 다시 학교를 나오기 시작한 시기쯤이었을 때에 평소보다 굉장히 신경 써서 나왔다. 방용국이라는 존재를 모르고, 김힘찬의 소개가 아니라면 앞으로 알 일도 없을 방용국을 모르는 최준홍은 옆에서 정대현이 하는 것을 지켜보다 말했다.



   와, 뭐야, 여자 꼬시러 가? 머리는 왜 바짝 세우고 난리야.



한동안 깐족이다가 기어코 정대현의 째림을 받고나서야 입을 다물긴 했지만 최준홍이 그렇게 말할 정도면 자신이 얼마나 과하게 치장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그런 걸 알면서도 자신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따위의 원시인이 아니라 문명화 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문명인임을 밝히고 싶었기에 그런 번뇌 -최준홍의 깐족거림- 를 감안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노력이 부질없음을 깨닫게 된 것은 시종일관 똑같은 방용국의 태도 탓이었다. 여기서 봐도 원시인, 저기서 봐도 원시인, 어딜봐도 원시인이란다.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는 방용국의 취향이 대단 해 보였다.


그 기묘한 흐름을 눈치 챈 건 어쩌면 가장 눈치가 빠를 수도 있는 김힘찬이었다. 평소에는 그렇게 또라이같이 굴더니, 꼭 이럴 때만 눈치가 재빨랐다. 물론 저번에는 되도 않는 눈치로 계획을 짜다가 최준홍과 정대현 커플을 파경까지 몰아 갈 뻔도 했지만 그것은 거의 시행착오에 불과했고 필요할 때는 나름 괜찮은 직감을 보이는 편이었다. 이번에도 그 직감은 피해가지 않았다. 단지 정대현이 원하는 쪽은 전혀 아닌 곳으로 간 게 문제지. 김힘찬은 원시인 드립으로 하여금 일이 커진 것을 사죄하기 위해 특별히 방용국과 일대일 대면을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그게 어떻게 사죄하기 위한 방법에 속하는 건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결단코 정대현이 바라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김힘찬은 뻔뻔하게 얼굴을 들이밀며 방용국에게 학교를 안내해주라고 했다. 유학 갔다와서 지리를 잘 모를거라나 뭐라나. 방용국과 함께 입학 해 여태까지 학교를 다니고 있는 김힘찬은 입학 초를 제외하고는 학교에서 길을 잃었던 적은 없었다. 왜냐하면 교내에서는 바뀐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는 말은 방용국도 얼추 지리를 알고 있다는 것이었고, 결론에 도달하자면 정대현은 이런 짓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김힘찬은 사람을 사서 고생시키게 하는 데에 아주 천부적인 소질을 가지고 있었다.


방용국 전용 강제 학교 안내 도우미를 맡게 된 건 오늘이 벌써 삼일 째였다. 학년이 다르긴 해도 전공이 같다보니 이리저리 겹치는 과목이 많아 대체로 수업은 함께 듣고 마쳤다. 교내 암모나이트 선배이자 하찮음의 대가 김힘찬의 말을 굳이 듣고 따를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대현이 이리저리 끌려다니게 되는 건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의 이론마냥 착실히 김힘찬을 따르는 방용국 떄문이었다. 애덤 스미스 짝퉁 힘찬 스미스야, 뭐야. 서열 하나는 끝발 날리는 대학 학과 안에서 그걸 또 따르지 않을 수도 없고하니 잠자코 방용국을 안내해주고 있긴 하지만, 하면서도 왜 자신이 이러고 있는지는 여전히 고민이었으며 심리적 불안이었다. 심리학과 학생이 심리적 불안을 겪고 있는 꼴은 제법 볼만 했다, 라고 정대현은 스스로 자아성찰에 나섰다.



   - ㅇㄷ?



이 와중에 최준홍 새끼는 어디, 라는 말을 치기도 귀찮아서 초성으로 톡을 보낸다. 그단새 게임 금기 현상을 못 견디고 롤이나 하고 있나 했지만 정말 롤을 하고 있다면 애초에 톡도 보내지 않았을 것이었으므로 정대현은 똑같이 초성으로 답을 해주었다. 마침 방용국이 더 이상의 안내는 괜찮다며 학식 옆 소박한 카페로 데리고 왔기에 위치를 보내는 건 조금 쉬운 편이었다.



   ㅎㅅ ㅇ ㅋㅍ



방용국은 톡을 보내고 있는 정대현을 한 번 흘긋 보더니 멋대로 아메리카노 두 잔을 시켰다. 아, 선배, 그러는 게 어딨어요. 내 맘이야. 나 아메리카노 못 마셔요. 그럼 시럽 잔뜩 넣어 먹으면 되겠다. 너무하네. 아메리카노냐, 아니냐, 로 잠깐 투닥거리는 사이 최준홍에게서 톡이 도착했다.



   - ???

   - 뭐라는 거야

   ㅎㅅ ㅇ ㅋㅍ

   - 초성 즐이염

   니가 먼저 함ㅋ

   - 아 자기야 

   - 어디세요 ㅠㅠㅠ



학식 옆 카페. 그렇게 보낸 뒤에는 화면을 껐다. 어디냐고 묻는 걸 보면 금방 여기로 찾아올 것이었다. 방용국에게 허락도 받지 않고 맘대로 초대 해도 될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방용국은 저에게 의사도 묻지 않고 아메리카노를 시켰기 때문에 쌤쌤이로 치부하기로 했다. 정대현은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카운터에서 계산을 마치고 아메리카노 두 잔을 들고 온 방용국은 정대현의 앞에 한 잔을 내어주었다. 테이블 옆에 세워져 있는 시럽을 친히 펌핑 해 주기까지 했다. 아, 살찌겠다.



   “정대현씨는 나한테 궁금한 것도 없나?”

   “뭐…없는데요.”

   “그래?”

   “…….”

   “난 많은데.”



두 손에 간신히 꼽을 정도로 펌핑질을 해 대고 나니, 이게 아메리카노인지 시럽탕인지 구분이 안 된다. 한 모금 마신 정대현은 지난번 방용국을 처음 학식에서 만났을 때처럼 흡, 컥하고 사레가 들렸다. 와, 존나 맛 없다. 이건 단 것도 아니고 쓴 것도 아니고, 애매모호하게 돋아나는 맛에 정대현은 더는 생각도 안 하고 테이블 끝으로 잔을 치워놓았다. 반대로 방용국은 잘만 마시고 있었다. 여지껏 정대현이 하는 행색을 다 본 듯, 개죽이 웃음도 짓고 있었다. 



   “쓴 것도 싫고, 단 것도 싫으면 대체 뭘 좋아한대.”

   “이건 그냥 맛이 없는거죠. 어떤 게 황금 비율인지 모르네, 이 선배.”



자고로 시럽 펌핑은 어쩌고, 그게 비율이 저쩌고, 정대현은 잔뜩 흥분해서 떠벌거렸다. 그 동안에도 방용국은 정대현의 말을 한 번도 끊지 않고 경청 해 주었다. 그것 때문에 정대현이 더 신나게 떠들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시럽 펌핑의 주의점을 일부터 백까지 다 늘어 놓을 뉘앙스로 말하던 정대현은 목이 탐을 느끼고 아무 생각 없이 치워두었던 자신의 아메리카노 잔을 들고 한 입 마셨다. 그리곤 억, 시발, 하고 눈을 댕그랗게 떴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방용국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갈 줄을 모르고 있었다.



   “얼굴만 원시인인 줄 알았는데,”

   “아, 그 놈의 원시인.”

   “머리도 좀 원시인같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했는데, 정대현은 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저거 분명 욕 맞지. 뚱한 표정을 지은 정대현이 아오, 이 선배가 못 하는 말이 없네, 하고 말하려는 순간 방용국이 먼저 선수를 쳤다.



   “나 약속 있어서 나갈건데, 너는? 같이 나갈래?”

   “어, 아니, 어, 누구 만나기로 했어요.”



그럼 나 먼저 갈게. 남자들이야 카페에 오래 눌러붙어 있는 꼴이 잘 없으니 정대현도 그러려니 하고 방용국을 배웅해주었다. 어쩐지 화를 내려다가 방용국의 재빠른 말 돌리기로 그것을 시행하지 못한 저를 보니 정말 제 머리가 원시인같기도 하고. 알고보면 저도 최준홍더러 매일같이 멍청이라며 놀릴 수준이 아닌 걸 수도. 근데 얜 왜 안 와. 등받이에 기대어 최준홍더러 어디냐며 톡을 보내자 이제 학식 근처란다. 얼른 오라고 답장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카페 문을 열고 최준홍이 들어왔다.



   “길을 만들면서 왔냐? 왜 이렇게 늦었어?”

   “오다가 문종업 만나서 이야기 좀 한다고. 이 새끼 오늘 대출 했는데 교수님한테 걸렸거든.”

   “좆됐네. 이거 마실래?”



정대현이 턱을 괴고선 아메리카노 잔을 최준홍 앞으로 밀어넣었다. 최준홍은 커피라면 사족을 못 썼다. 생긴 건 꼭 코코아나 밀크티같이 단 것을 입에 물고 다닐 것 같은데 알고보면 커피 매니아였다. 작년엔 본인이 직접 커피를 만들어 마시겠다며 원두에, 커피 포트에, 별의 별 것을 제 맘대로 샀다가 사용법을 제대로 몰라 정대현의 한심스런 눈초리를 받기도 했었다. 아무튼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커피 매니아 최준홍은 의심 없이 정대현이 내민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그리고 어젯 밤 정대현과 함께 불었던 소주팩이 역류함을 느꼈다.




* * *




최준홍에 의해 억지로 끌려 나온 정대현의 이맛살은 펴질 줄을 몰랐다. 한 손에는 줄넘기가, 반대편 손에는 최준홍의 손에 잡혀서 시큰둥한 발걸음만 옮겼다. 아무리 봄이라지만 그래도 밤은 조금 추운 편이라 동정심을 자극할 생각으로 오들오들 떨어보지만 최준홍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얘 사랑이 식었나봐. 결국 정대현도 오들오들 떨던 것을 포기하고 최준홍을 종종대며 따라갔다. 그래도 최준홍은 느린 정대현의 걸음에 자신의 걸음을 맞춰주는 매너는 있었다. 


일은 오늘 아침에 있었다. 수요일은 둘 다 나란히 강의가 없었다. 그래서 아침부터 침대에서 맘껏 부둥거릴 수도 있었고, 그게 아니라면 화려한 배틀을 벌일 수도 있었고, 선택지는 많았다. 오늘은 최준홍이나 정대현이나 부둥거리기를 택한 모양인지 이불 속에 파고 들어 얌전히 잠에 취했다. 그런데 정대현이 깬 것은 잠옷 틈으로 들어 온 최준홍의 손 때문이었다. 옆 사람의 옷을 들춰서 배를 주물거리나 만져대는 것은 최준홍의 버릇이었다. 그걸 아는 정대현은 가만히 내버려 둘 때가 많았다. 가끔 그것을 이용해 노골적으로 만져 대면 가차없이 처내는 건 당연한 것이었고.


그러나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기함을 해댔다. 김힘찬과 최준홍이 한창 친해졌을 쯤에 둘이서 술을 마시다가 김힘찬의 집에서 최준홍이 외박한 적이 있는데 그 다음 날 아침에 김힘찬이 잔뜩 기가 질리고 당황한 목소리로 정대현에게 전화를 걸어 그리 말했다. 야, 어떡해, 미친, 최준홍 존나 성희롱 개 쩔어. 내 순결…. 정대현은 아침부터 들려오는 김힘찬의 지랄 메들리에 그런 거 아니니까 안심해도 된다며 위로를 해주었지만 김힘찬은 순결 타령을 멈출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러고 난 뒤에는 김힘찬이 일주일 간 최준홍을 피해다녔다는 그런 이야기. 덧붙여 최준홍은 영문도 모른 채 김힘찬의 경계를 받았을 뿐이었다.


김힘찬이 피해 다닐 정도의 과한 버릇을 지닌 최준홍은 오늘 아침에도 그랬으나 정대현은 그 버릇을 알기도 했고 익숙해진 탓에 때때로 그것에 안정을 취하곤 해서 오히려 더 편한 기분으로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는 최준홍에 놀라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러나 오히려 최준홍이 더 놀란 눈치였다. 정대현은 저도 모르게 왜, 왜, 하고 말을 더듬거렸다. 최준홍은 놀란 눈을 껌뻑대다가 갑작스레 정대현의 잠옷을 들추었다. 아니 이건 아침부터 발정이 났나, 왜 이래. 뒤를 잇는 최준홍의 돌발행동이 더 놀라서 꾸역꾸역 옷깃을 잡아 내렸다. 



   헐, 야.

   아침부터 뭐야, 죽을래?

   너 살쪘어?



…뭐, 시부럴.


밑도 끝도 없는 살 드립에 정대현이 할 말을 잃었다. 최근에 몸무게를 재어 본 적이 없어서 그건 잘 모르겠지만 그게 그렇게 상대방을 놀라게 해야 할 만큼 굉장하고 세계 미스테리에 버금가는 일이었던가. 정대현의 표정이 썩어 들어가든지, 말든지, 최준홍은 영 울상인 얼굴로 정대현의 배를 쓰다듬었다. 그러다 찔끔 꼬집기까지 했다. 아프다고 발버둥치는 정대현에 멈추어야 했지만. 정대현은 최준홍이 왜 그렇게 심각하게 나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감촉이 아니잖아, 감촉이.

   무슨 감촉? 변태같이 뭐래.



최준홍의 입이 댓발 나왔다. 아침밥을 차리면서도 최준홍은 정대현의 배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오늘은 자신이 밥을 담겠다면서 주걱을 가져가더니 정대현의 밥그릇에는 꼭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의 밥에 빙의한 양을 담아두고선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대체 무슨. 본인의 의사는 전혀 없고, 다이어트의 다자도 말한 적 없는 정대현만 죽어 날 노릇이었다. 물론 요즘 술도 많이 마시고 야식도 먹고, 좀 걸신 들린 것 같이 굴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강제성이 드러나는 다이어트를 할 필요가 있냐는 거다. 언제부터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었지.



   저녁에 운동 가자.

   …….

   가는거다, 알았지?

   아, 왜, 싫어, 안 가.

   너 살 쪘어. 예전에 그 배가 아냐.



예전에 그 배가 아니라는 최준홍의 얼굴은 단호하기 그지 없었다. 손에 딱 알맞게 들어오는 배의 부피가 아니라나 뭐라나, 되도 않는 소리를 하며 오늘 밤에 하러 가자는 운동을 합법화 시켰다. 단호한 최준홍을 이기는 건 어려워서 정대현은 삐진 채로 화장실 거울 앞에 섰다. 좀 쪘나. 어쩐지 요즘 바지가 끼는 것 같긴 했는데. 정대현은 그 쯤 되니 슬슬 상황이 아리까리하게 헷갈리기 시작했다. 살이 쪘다는 것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그러나 땀 빼는 류의 운동을 정말 싫어하는 정대현은 운동 나가기 직전까지 앙탈을 부려댔다.



   야, 언제는 나보고 살 좀 찌라며.



가만 보니 좀 괘씸했다. 연애 초기 때는 자기도 마른 주제에 저더러 왜 이렇게 말랐냐면서 입에 이것저것 물려주던 게 최준홍 아니었는가. 당시에는 고삼이라서 스트레스 때문에 먹은 게 아무리 많아도 살이 쭉쭉 빠졌었다. 그 때의 최준홍은 지금 자신에게 살 쪘다며 단호하게 굴고 있었다. 입을 내밀고 찡찡거리니까 최준홍은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이 정대현의 삐죽 나온 입을 잡고 아프지 않게 흔들었다.



   그건 그 때고.



그리곤 저의 손에 줄넘기를 쥐어주었다. 개 단호한 새끼, 사랑이 식었어. 투덜거리며 받아든 줄넘기는 친절하게도 정대현의 키에 맞춰져 있기까지 했다.


저녁은 원래 여섯시 전에 다 먹고 그 후로 아무것도 먹으면 안 된다는 최준홍의 말에 평소보다 이른 저녁을 먹고, 그것이 소화 될 쯤에 집을 나섰다. 두껍고 큰 최준홍의 후드 집업을 입으니 그래도 체형이 좀 가려지는 것 같아 마음이 편했다. 얼마 찌지도 않은 것 같으나 최준홍의 시선이 워낙 노골적이라서 오늘 하루동안 무진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스트레스성 고혈압으로 쓰러지면 이건 다 최준홍 때문이었다. 



   “딱 천 개만 해.”

   “아, 많잖아.”

   “많기는. 빡세게 하면 삼십분도 안 걸려.”



정대현이 입은 겉옷을 여며 준 최준홍은 줄여 달라고 발까지 동동 구르는 정대현을 외면하고서는 본인이 더 신이 난 상태로 줄넘기를 했다. 걸리지도 않고 잘만 뛰어댄다. 최준홍은 금방 백 개를 넘겼다. 1인 시위라도 하면 최준홍이 좀 봐주겠지, 싶었지만 최준홍이 단호박을 먹었을 경우에는 씨알도 안 먹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정대현은 느릿느릿 감아두었던 줄넘기를 풀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말도 없이 줄을 돌렸다. 줄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만 계속 들렸다. 정대현이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든 다시 원상복귀시켜서 이런 고생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눈에 어렸다. 그걸 본 최준홍이 속으로만 웃었다. 맨날 튕겨도 하라고 하면 다 한다, 정대현은. 최준홍은 기분이 좋아져서 시키지도 않은 2단 뛰기를 해댔다. 그걸 모르는 정대현은 옆에서 휙휙 돌아가는 줄에 기겁을 했다.




* * *




기껏 운동 다 하고 왔는데 맥주 마시는 건 무슨 쇼야. 정대현은 떨떠름하게 캔맥주 뚜껑을 땄다. 그리고 맞은편에 당연하게 앉아 있는 방용국을 보고 기가 차서 헛웃음만 날렸다. 최준홍은 뭣도 모르고 마음이 잘 맞는 형같다면서 친근하게 방용국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방욕국은 최준홍과 이야기를 하면서도 정대현을 흘긋대며 쳐다보곤 했는데 정대현은 그에 신경도 쓰지 않았다.


방용국을 만난 건 줄넘기 천 개라는 기적적인 일을 일으킨 정대현을 칭찬 해 줄 겸 근처 편의점에서 음료를 사러 가자는 최준홍에 의해서 일어 난 것이었다. 최준홍은 편의점 안에서 음료를 사러 갔고, 정대현은 편의점 앞 의자에 앉아 탁자 위로 엎어졌다. 조금 전 휴대폰 셀프 카메라로 확인한 꼴은 가관이었다. 꼭 저번주, 머리도 감지 않고 학교로 갔다가 방용국을 만나 원시인 취급을 받은 그 때와 비슷해 보였다. 그 날 이후로 원시인은 저의 인생에서 떠나가지를 않았다. 최준홍은 음료 말고도 다른 것들도 이것저것 사는 듯, 힐긋 고개를 돌려 바라 본 최준홍의 손에는 플라스틱 바구니까지 들려 있었다. 분명 저 곳에 담긴 건 얼마 지나지 않아 정대현의 뱃 속으로 들어 올 것이 뻔했다. 그걸 알면서도 저렇게 마구잡이로 사대는 최준홍의 심리는 당최 무엇인지.


꼬륵거리는 배를 부여잡고 차선을 지나가는 무수히 많은 차들만 뚫어져라 쳐다보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가 저의 어깨를 툭툭쳤다. 거지같은 몰골을 가리기도 힘들 정도로 기가 다 빠져서, 정대현은 멀거니 뒤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보이는 건,



   정대현씨, 안녕. 

   …….

   오늘도 원시인 닮았네.



방용국이었더란다. 그 때 정대현의 머릿속에 든 생각이라고는 존나 쪽팔려, 이게 다였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일주일 간 꾸미고 다녔는가. 어차피 이 몰골 한 방에 다시 원시인이라고 불릴 거면서. [/system] 정대현은(/는) 원시인의 칭호를 획득했다! 이런 개 같은 세상같으니.


김힘찬에게 듣기로는 조만간 최준홍이나 문종업에게도 방용국을 소개시켜 줄 것이라고 했다. 어차피 그럴 것인데 미리 소개 시켜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정대현은 편의점을 이제 막 나온 최준홍과 편의점으로 들어가려는 방용국을 나란히 붙잡아 앉혀두고 통성명을 시켰다. 추한 꼴을 계속 보이고 싶지는 않았지만 벌써 두번째라서 그런지 좀 쪽팔린 것 빼고는 이제 무소유 정신으로 넘길 수 있었다. 방용국도 그렇게 신경 쓰는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다행스럽게 최준홍과 방용국 둘 다 친화력이 좋은 편인 듯 쉽게 친해졌고 정대현에게는 그다지 관심이 쏠리지는 않았다. 


이렇게 만났으니 술이나 마시자며 방용국이 사 온 캔맥주는 정대현의 배 안으로 잘 저장되고 있었다. 정대현은 오랜 형동생처럼 지내는 최준홍과 방용국을 보며 이 뱃살은 어떡하지, 하고 걱정만 했다. 맥주는 아마 줄넘기 천 개의 분량으로는 꼼짝도 안 할 것이라서.






+) 산으로 가는 배틀호모.

++) 암호닉은 309호, 털복이, 쪼꼬. 다들 사랑해요. 내 맘 알죠 하트. 물론 읽어주시는 다른 분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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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으앙 재밌닼ㅋㅋㅋ신알신 받고 바로 달려왔어요! 저도 암호닉 신청해도 되나요?? 된다면 시럽으로! 대현이랑 준홍이가 시럽 잔뜩 들어간 커피 먹고 난리치는게 너무 인상깊어섴ㅋㅋㅋ
10년 전
독자2
아 진짜 너무 재밌어욬ㅋㅋㅋㅋㅋㅋㅋㅋ정대현 이미지 완전 굳히기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준홍이 잠버릇 넘 귀여워요 그둘모습 상상하니 넘 달달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0년 전
독자3
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쪽지받구바로왔어요 ! ㅋㅋㅋ 재밌어요ㅠㅠㅌㅋㅋㅋㅋㅋ큐ㅠㅠㅠㅜㅜ 움 이번편도 허니잼이니까 제 암호닉은 허니잼으로 할래요 ㅋㅋ
10년 전
독자4
아 진짜 작가님 필력ㅠㅠㅠㅠㅠㅠ 그냥 너무 재밌어요ㅠㅠ
10년 전
독자5
ㅋㅋㅋㅋㅋㅋ홍아ㅋㅋㅋㅋㅋ줄넘기 천개시켜놓고 왜 맥주 마시게 해ㅋㅋㅋㅋ가만보면 저거 바보라니깤ㅋㅋㅋ아 저 털복입니다♡
10년 전
독자6
쪼꼬)진짜 읽는 내내 지루하지도않고 항상 너무ㅈ재밌어요 살 빼라고 운동시켜놓고 맥주마시는 건 무슨 상황이야 최준홍ㅋㅋㅋㅋㅋㅋㅋ담 편도 기대할게요!!
10년 전
독자7
전 암호닉 밥으로할래요 지금 배가고파서ㅋㅋㅋBAP 밥 이라는 뜻도 있지만요ㅋㅋ대현인 이제 용국찡한테 원시인으로 확실히 낙인찍힌거같네요ㅋㅋㅋ
10년 전
독자8
와 진짜 재밌어요 이걸 내가 왜 이제야 발견했을까!! 캠퍼스 코믹달달물 이거 내 취향 정확히 저격하시셨어요 자까님!!!!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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