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nkerBell
아마 8년 전쯤인 것 같다.
어디서였는지,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단지, 영화 보는 걸 싫어하던 권순영을 졸라 함께 팅커벨이란 영화를 처음 보았던 기억만 있다.
당연하게도 권순영 또래 남자아이들에겐 흥미를 줄 만한 영화가 아니었고
순영이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는지 재미있어보이진 않았다.
그래도 끝까지 앉아 같이 봐주었던 그 때의 초등학생 남짓한, 어린 너에게 새삼 고마워져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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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 성이름. 또 그거 보냐? 이제 그만 볼 때 되지 않았냐.
니 말대로 우연히 봤던 어린이용 영화를 성인이 되어서도 이렇게 챙겨보게 될 줄은 몰랐다.
내 감수성이 지나치게 풍부한 탓인지, 이상하게 영화 보는 걸 싫어하던 너와 본 처음이자 마지막 영화여서 그런지
그저 어린 아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는 전형적인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작은 것들 하나하나에 의미를 두게 된, 나에게, 팅커벨이란 영화는 정말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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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같이 커왔던 우리 둘은 어쩌면 가족보다 가까웠고
나는 순영이와 슬프고, 기쁘고, 예쁘고, 작고 순수했던 우리의 추억들을 함께 나누어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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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마음은 정확히 어땠는지 모르겠다.
영화 속 팅커벨이 태어난 것처럼,
내 마음 속에 너라는 꽃잎이 날아와 꽃을 피우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꽃의 향기가 서서히 나에게까지 전해져 나는 내가 널 좋아하고 있음을 확신해갔다.
그렇게 나는 아름답게 꽃이 피었던 그날에, 향기로운 꽃내음이 우리 주위를 감싸안았던 그 봄날에,
너에게 내 꽃의 향기를 전했다.
그날따라 우리 주위 꽃들이 향을 너무나도 많이 풍겼는지, 그 향기들 속에서 너는 내 꽃의 향기를 알아채지 못했고
나는 그렇게 너에게 단박에 거절당했다.
처음보는 너의 진지한 모습에 놀랐다.
- 미안해. 지금은 내가 할 게 너무 많아. 그리고 지금까지 너랑 나는 계속 친구였잖아.
눈물도 나오질 않았다.
그래. 너에겐 가수가 되고 싶다는 큰 꿈이 있었고 니가 너무나도 간절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던 나였다.
그래서 그랬을까. 그 이후로도 너와 마주치면 한참 속이 아려오면서도 그렇게 말을 했던 니가 이해가 갔다.
가수가 되려면 연습도 해야할 거고 가수가 되어서도 너를 좋아해주는 팬들과 그런 사랑을 받는 너에게 방해가 되지 않으려면.
그 날 이후로도 우린 그냥 그렇게 지냈다. 평소와 같이. 그저 친구였던 원래의 너와 나처럼.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서로 그럴려고 무지 노력했던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고 오래 지나지 않아 너는 니가 원하는 곳을 향해 예쁘게 날아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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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그렇게 서울로 훌쩍 떠나버렸고 나는 니가 떠난 그 자리에서 여전히 너를 잊지 못한 채,
혼자 남아 날갯짓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