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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관 부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석진의 허리를 감싸 안고 들어오는 남준. 그 둘의 등장에 홀로 부실을 지키고 있던 태형의 눈이 커졌다.
남준은 석진을 긴 책상에 눕히고는 서랍장 안에 넣어 놓았던 약품들을 꺼내 올렸다. 태형은 남준에게 어떠한 말도 먼저 꺼내지 않고 석진의 셔츠를 풀었다.
셔츠를 푸니 선도부에게 맞은 상처들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태형은 자연스레 미간을 찌푸렸다.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한 것들."
"몇 일은 누워 있어야 할 것 같다. 여분 옷 좀 있니?"
"전에 떠난 하루키가 두고 간 옷이 있어. 지금 가져올게."
"그래."
태형은 석민의 몸에 소독약을 바르고 있는 남준을 다시금 바라보며 물었다.
"넌 괜찮냐."
"뭐?"
"너도 만만찮게 아파보인다."
꽤나 진지해보이는 태형의 목소리에 남준은 소독질 하던 손을 멈추었다.
그리곤 태형을 바라보며 조금 웃어보였다.
"언제 우리가 안 아팠던 적 있니."
그의 말에 태형 또한 웃었다.
부실을 나온 태형은 별관을 벗어나 빠르게 기숙사로 향했다. 다들 부실에 있는 터라 기숙사로 향하는 길이 꽤나 조용했다.
운동장에 있는 운동하는 아이들의 기합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기숙사는 조용했다. 기숙사 내에 배치되어 있는 사감들 또한 봄날의 나른함 때문에 새근새근 단잠을 자고 있었다.
태형은 사감들이 꺠지 않게 조용조용 걸어 방 앞으로 갔다. 그리고 들었다. 누군가의 서러운 울음을.
태형은 방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선뜻 문고리를 잡아 돌릴 수가 없었다. 그 아이의 울음이 태형의 발목을 잡아 끌어내리는 것 같았다.
아이가 설움을 느끼는 것이 당연했다. 저 앞에선 강한 척, 괜찮은 척을 하더니 아무도 없을 때 터져버린 것인가.
태형은 그 아이가 대견하다고 생각했다.
"괜찮다, 괜찮다."
태형은 문 앞에서 아이를 달래주었다. 가까이에서 등을 토닥여주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다 괜찮아 질 것이야.
까마득한 예전의 자신을 떠올리며 말이다.
***
교장실을 나온 윤기는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나갔다. 그러고선 거북했던 속을 변기에 대고 빠르게 게워내기 시작했다.
윤기는 여러번 토악질을 해댔다. 아무리 속을 게워내고 게워내도 울렁이는 것은 멎을 줄을 몰랐다.
윤기는 억지로 손가락을 입 안에 넣어 혓바닥을 문질렀다. 완전히 속을 비워내기 전까지는 화장실을 나오지 못할 것 같았다.
문들어질대로 문들어진 속은 언제쯤 제기능을 할까. 윤기의 눈 끝에 좁쌀만한 눈물이 맺혔다.
윤기는 울렁이는 것이 조금 멎은 틈을 타 품안에 늘 부적처럼 품고 다녔던 사진 두 장을 꺼냈다.
한 장은 윤기가 그토록 보고파하고 아껴하는 동생 유즈키. 다른 한 장은 조선에 있던 시절 동무들과 함께 찍은 처음이자 마지막 사진.
그 사진속에는 꽃 한 송이를 들고 있는 석진과 내리쬐는 태양빛을 피하려 미간을 찌푸린 남준, 그리고 윤기가 서있었다.
윤기는 두 사진을 품에 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려 보냈다.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렸지.
이 세계는 이미 진즉에 무너져 버렸을 것이다. 아무도 찾지 못하도록 잘게 부숴져 형태조차 알아보지 못하겠지.
왜 사람은 아플 수록 더 단단해지는 것일까. 아프면 더 문드러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왜 내성이 생겨 더한 고통을 끝끝내 기다리게 하는 것일까. 다져질대로 다져진 윤기는 이젠 쉽게 무너질 수 없었다.
이곳에 오지 않았더라면 좋았을텐데. 그저 고향에서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더 나았을텐데.
여동생과 함께 그날의 강에 빠져 나란히 죽어버리는 게 더 좋았을텐데. 윤기는 가끔씩 꿈을 꾸곤 했다.
강물에 떠있던 연꽃잎이 여동생과 나를 태워 아무도 찾지 못할 곳으로 데리고 가는 꿈을.
"매일이 서럽구나. 서러워서 살 수가 없어."
조금만 더 버텨다오, 유즈키. 윤기는 두 사진을 품안에 넣었다.
다시, 또 다시 단단해져버린 윤기였다.
* 민사재판 *
쿠키님 지팔님 한라님 나비야님 봉봉님 듬듬님 긍응이님 들꽃님 밤님 이백원님 짐쮸님 우유님 야꾸님 태형깔님 뉸뉴냔냐냔님 파랑토끼님 라뿡까끄님
매일 글 올릴 때마다 재미있다고 칭찬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연재 끝날 때까지 꼭 함께 갔으면 좋겠어요:)
그럼 다음 정리편으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