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 LEAP
Prologue
어둠이 짙게 내리 깔았다. 가로등만이 내 시야를 밝힐 뿐이었다. 집까지 가려면 아직 두 정거장 남았는데 사람이 별로 없네. 졸음이 몰려와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그리곤 흐릿하게 보이는 어느 한 잔상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내 어깨 빌려줄게. 잠 오면 자."
도대체 누구의 소리일까. 무엇인지 모르는 소리에 눈물이 왈칵 차올랐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항상 집에 갈 때면 나를 괴롭히는 저 목소리. 숨을 크게 들이 마셨다. 그리고 입으로 천천히 내쉬었다. 내 등을 누가 어루만져 주는 거 같다. 괜찮다며 다독여주는 거 같다.
왜, 자꾸 누군가가 생각이 나는 걸까. 그리고 난 왜 그 누군가를 생각 못하는 걸까. 도대체 무엇 때문에 난 그걸 생각치도 못하는 걸까.
" ㅡ 정거장입니다. 내리실 분은..."
후덜거리는 다리를 애써 통제하며 벨을 눌렸다. 기계음이 내 귓가를 파고 들었고 그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가방을 한 손으로 꼬옥 쥔 채 내릴 문 앞에 섰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는 도중 한 남자가 계속 생각이 났다. 기억해야할 거 같은 한 남자가 내 머리 속을 맴돌았다.
분명 기억해야하는데 난 도저히 누군지 모르겠다. 그가 나와 무슨 인연인지, 그는 내게 어떤 존재였는지. 또 그는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었는지 조차 기억이 안 난다. 다시 한 번 울컥한 마음이 치솟았다.
"울지말라니깐. 또 울려고 해."
결국엔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오열하는게 아니라, 흐느껴 울었던 거 같다. 뺨을 타고 흐는 눈물은 턱까지 흘러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졌다. 소매로 눈가를 벅벅 닦았다. 소매가 다 젖었다. 이렇게 슬픈데 왜 그는 생각이 안 나는 걸까. 학창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도 어느 한 곳만 텅 비어보였다.
내가 그를 기억 못하는게 아니라 내가 그를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안 하는게 아닐까.
집에 도착하자마 휴대전화를 켰다. 주소록을 훑어보아도 짐작이 가는 사람이 없었다. 한숨이 나왔다. 눈을 잠깐 붙혔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그가 어렴풋 기억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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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건 내가 졸업한 학교였다. 난 분명 집에서 잠깐 눈을 붙혔는데 왜 반에 들어와있는 걸까. 주위를 둘러보니 전부 지금과 다른 앳된 얼굴을 가진 반 아이들이 보였다. 달력을 보니 8월이 아닌 5월이었다. 이게 무슨 일일까. 갑자기 저려오는 손목에 손목 부근을 확인하니 붉게 숫자가 써져있었다.
947?
지워보려 손으로 문질러 보았지만 더 선명해지고 지워지진 않았다. 그러고보니 내 옷차림을 보니 교복을 입고 있었다. 믿기지 않았다. 설마 내가 과거에 왔다고는 전혀 상상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지만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선생님께서 전학생이라며 그 뒤로 들어온 그 얼굴을 보고 알았다. 보자마자 울컥하는, 슬퍼지는 그와 동시에 심장이 빠르게 뛰는 얼굴.
"안녕. 난 권순영이야. 잘 지내보자."
익숙한 그의 음성, 그리고 흐릿한 잔상과 일치하는 저 잔상이 모든걸 말해주었다. 여기는 947일 전인 과거라고.
그리고 내 앞에 존재하는 저 권순영은 내가 그토록 찾지 못한 기억의 조각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