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옥상에는 상을 깔아놨다는 말에 버너를 낑낑거리며 들고 올라가는데, 도란도란 나누는 말소리가 들린다.
목소리가.....호원이랑 우현이 같은데,
남우현 어디 갔나 했더니 이제 안 시켜도 둘이 얘기까지 하나?
히히 웃으며 계단을 오르는데,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
옥상으로 돌아들어가는 모퉁이 뒤에 숨어 슬쩍 보니 깔아놓은 돗자리와 상 옆에 두 사람이 있는데,
내 쪽으로 등을 보인 채 팔짱을 낀 채 서있는 우현이와,
까만 머리를 흩날리는 채 어쩐지 엄청 화나 보이는 표정으로 우현이를 보고서있는 호원이.
호원이와 눈이 마주칠까봐 슬쩍 훔쳐보고는 다시 모퉁이 뒤로 숨었다.
싸우는 거야 뭐야. 주고받는 소리를 들으려 귀를 쫑긋 세웠다.
"그게, 그렇게 중요하냐니까……."
"그래, 이 씨발새끼야. 존나, 니, 네가 그때 그런 표정을 하고 '난, 모른다' 했을 때 씨발 내가 어떤 기분이었는지는 아냐?
니가 생각해본 적 있냐고!"
"내가 그러라고 했냐고, 니 멋대로 그런 거 아냐. 구질구질하게 굴지 좀 말자 진짜-."
"뭐? 구질구질? "
"그래봤자 다 지난 일아냐, 니 감정에 휘둘려서 남 기분까지 개같게 만들지 말라는 거지. "
확실히 표정이나, 말투나, 딱 봐도 호원이는 지금 감정과잉이다.
평소에 생각이 없는 듯, 대부분이 무표정이었던 사람과 동일인물이 맞는지
무슨 도사견마냥 우현이를 씹어 먹을 듯 노려보며 으르렁거리고 있다.
그리고 아까 나랑 치토스 까먹을 때까지만 해도 되게 들떠보였는데, 차갑게 무표정을 한 채 선 우현이.
날카롭게 날이 선 말투로 호원이를 매섭게 노려보고 있다.
이 상황에 옥상에 당당하게 올라가서 버너를 놓고 다시 모르는 척 내려갈 수도 없고…….
우물쭈물, 그냥 버너를 든 채 서있는데, 그래도 거리를 둔 채 서있던 호원이가 성큼성큼 걸어 우현이의 앞에 간다.
호원이가 키가 좀 더 큰 탓에 우현이를 아니꼬운 듯 내려다본다.
그래도 물러서지 않고 인상을 쓴 채 노려보는걸 보면 아무래도 우현이마저 진짜 싸울 생각인 듯하다.
이걸 뭘 어떻게 말려야 할 것 같은데…….
"야,씨발 뭐? 지난일? 장난치냐 진짜 지금, 너한테나 지나고 지나 잊혀질 일이겠지. 넌, 씨발, 니 생각밖에 안하잖아."
"자기생각밖에 안 하는 건 너겠지. 니가, 널 진짜 진심으로 친구라고 생각하던 나한테 니가 어떻게 했는데,
기억 안 나 넌 진짜? 너 머리 좋다며- 늘 너만, 니 상처만 생각하지?"
단순하기 그지없게 감정적으로 꼬아대는 호원이와 논리적으로 따져대려하는 우현이.
주먹 안 날아가는 게 다행이긴 한데... 둘 다 기집애냐, 뒤끝도 드럽게 길어요. 차라리 치고 박고 싸우고 시원하게 풀던가.
그만하라고 말리려는데 픽. 우현이가 조그만 비웃음을 흘렸다.
그리고는 호원이의 가슴을 툭, 밀면서 말했다.
"그래서 남는 게 뭐일 것 같은데. 나? 이성열? 장동우? 기다릴 것도 없어.
다 곧 떠날 거야. 남은 안중에도 없는 니 곁에 누가 남는……."
진짜 우려했던 일이 일어났다.
우현이가 비웃음 섞인 표정으로 말을 내뱉자, 순식간에 호원이가 우현이의 왼뺨에 주먹을 내리꽂았다.
그리고는 바로 멱살을 잡아 갑작스러운 탓에 휘청 이는 우현이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씨발, 뭐?, 뭐라고 했냐고!!!"
그리고 그때, 옥상입구에 못 박힌 채 서있는 내 뒤쪽에서 발자국소리가 들렸다.
내 등을 몇 번 두드리는 손.
어쩔 줄 몰라 하며 숨어있는 나와는 다르게 성큼성큼 두 사람 쪽으로 걸어간다.
"야, 너네 뭐하냐?"
/
이성열은 대단했다.
여러 의미로.
금방 다녀온다며 가놓고 소식이 없는 나를 잡으러 옥상에 온 성열이는
금방이라도 옥상에서 구르며 싸울 것 같은 둘에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둘의 뒤통수를 망설임 없이 쳐 갈겼다. 공평하게 한대씩.
그리고는 둘을 밀어 떼어놓고는 자기생일인데 누구 허락받고 싸우냐며
싸울 거면 내일 싸우라고, 할 거 없으면 술이나 더 사오라며 둘을 옥상 밖으로 내쫓는다.
이 와중에 내가 버너를 들고 우물쭈물하며 나오자 날 보고 놀라는 이호원.
저 새끼가 저렇게 열정적으로 티를 내는데, 어떻게 나는 쟤가 날 좋아하는 걸 몰랐던 걸까.
그제야 미안하다며 조심스럽게 우현이가 옥상에서 내려가고,
호원이는 아직까지 좀 무서운 표정으로 정색을 하고 상황을 중단시킨 성열이를 쳐다본다.
이성열은 그런 이호원에게 뭐라 말을 해 달래 쫓아 보낸 후에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냥 확 치고 박고 싸워버리지, 하긴 했지만 진짜 싸울 거라 생각을 안 해서 그랬던 거지.
성열이가 때맞춰 올라오지 않았다면 난 뭘 어떻게 해야 했을지..
"뭘, 그러고 섰어."
"어? 아, 아니 그냥……."
"이호원 저 새끼는 갑자기 왜 저래, 말도 제대로 안 들어 쳐먹고."
"근데 뭐라고 한거야?"
머리를 한대 맞고도 불같이 화를 내며 달려들던 호원이가 이성열의 말 한마디에
뭔가가 생각난 듯 풀이 죽어 순순히 걸어 내려간 게 마음에 걸려 물었다.
뭐, 이성열을 뚫어 죽일 듯이 쳐다보긴 했지만.
좀 쫄아 구석에 있던 날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쳐다보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물으니 이성열은 날 그저 빤히 쳐다보다가. 그냥 고개를 돌렸다.
"..그런 게 있어"
"아-야, 나도 좀 써먹자-어? 나중에 나도 막 때리면 어떡해, 어?"
"아, 넌 됐어."
"야!!너거 거서 뭐하노! 이성열이 니는 장동우 땡땡이치는 거 잡아온다 카면서 나가드만 또 여서 뭐하는데! 너거 닭 안 볶나!!"
친해질수록 아줌마가 되어 가는 듯 한 명수가 무려 국자를 들고 옥상에 올라왔다.
더 조르려던 나는 결국 성열이와 함께 명수의 사투리에 끅끅대며 웃다가 결국 버너를 두고 얌전히 끌려 내려갔다.
그 후로 무슨 생일파티라고 그래도 어줍잖은 남고생실력으로 이것저것 만지다보니 시간이 꽤 흘렀다.
이호원시켰으면 삼십분 만에 뚝딱 만들었을 텐데.
아, 물론 고딩 이호원말고…….
지 생일이라는 핑계로 뭐 하나 돕지 않고 누워가지고 이성종을 불러다가 이거 가져와라 저거 가져와라하는 이성열을 빼고
다들 이거 옮기고, 저거 옮기고, 바쁘게 움직여, 드디어 먹을 준비가 끝났다.
그러게 그냥 거실에서 먹자니까, 왜 굳이 옥상으로 가자는 건지-. 더워 죽겠구만.
다들 우르르 옥상으로 몰려가는 와중에, 나 혼자 화장실에 갔다가려고 욕실로 향했다.
문을 열었는데, 우현이가 거울을 보고 있다가 화들짝 놀랐다.
어후 깜짝이야, 내가 더 놀랐다.
아까 호원이한테 맞아 입안에 터졌는지 세면대거울로 이리저리 보고 있는 듯 한 우현이.
"약 발라줄까?"
"어? 아, 아니....괜찮은데.."
"괜찮긴. 이리 와 봐, 아까 거실어디에서 연고 본 것 같은데……."
기다리라고 우현이를 세워놓고 이리저리 헤집다가 굴러다니던 연고를 발견했다.
아까는 이거보고 웬 약을 tv위에 널어 놓냐고 좀 챙기라고 했었는데, 어쩐지 도움이 되고 있다.
"쨘- 자, 발라줄게, 어디 봐. 가만히 있어봐-"
"아, 응. 고마워-"
사람을 뭐 어떻게 때리면 한번 쳤는데 이렇게 되냐.
어떻게 발라야 되지 이걸…….
이리저리 보고 있는데 누가 내손을 탁, 쳐냈다.
놀라서 손을 그대로 든 채 누군가 싶어 쳐다보는데 내 손에 들린 연고를 뺏어가는 이호원.
얘는 또 왜 내려온 거래.
또 싸울까싶어 눈만 굴리며 둘을 쳐다보게 된다.
까만색으로 염색한건 아무래도 오버였나. 아무 말도 안하는데 괜히 겁먹고 있다.
아니지, 내가보던 호원이는 맨날 까만 머리였는데 무섭긴 개뿔, 엄청 부드럽게 느껴졌지.
그래, 사실 머리 탓이 아니라 다른 이유겠지만.
날 벽에 밀어붙인 채 단호하게 내뱉던 어제가 떠올라 그냥 멍하게 호원이를 쳐다보고만 있는데,
호원이가 망설임 없이 연고를 꺼내서 죽-짰다.
그리고는 우현이의 얼굴을 아무렇게나 잡고 거의 문지르듯이 쳐덕쳐덕하게 바른다.
그리고 다시 연고를 닫아 나에게 던졌다.
나를 흘긋, 보고는 우현이에게 말한다.
"이걸로 쌤쌤해. 난 너 안 친 거다, 어?"
"어....어……."
대충, 이성열이 이호원에게 뭐라 했을지 상상이 된다. 아니 분명히 알 것 같다.
뭐 내 핑계를 댔겠지…….
어떻게든 돌아가야 한다는 내 생각과 가지 말라고, 자꾸 내 앞을 막아서는 호원이의 마음이 또 뒤섞인다.
한숨을 내쉬었다.
연고를 원래 있던 tv위에 올려놓고 셋이서 옥상으로 올라가는데 이호원의 까만 머리를 확 잡고 싶었다.
니가 뭔데 날 이렇게 갈등하게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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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짧네요..거의 24편의 반쯤...ㅠㅠ..죄송해요...
그래도 다음편에 확실한 내용진전이 있을예정이니 예쁘게 봐주세요^0^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호원이의 욕이 늘 어색한건 순전히 저때문....제가 욕을 안쓰거든요.....어아모저ㅗㅠㅠㅠㅠ...
어떻게써야할지 늘 고민이예요..
번외로 씬을 쓸까 생각중인데, 그걸쓰게되면 또 고민이생길듯...
으어어어어어ㅓㅇㅇㅇ...어쨌든 즐겁게 봐주시는분들 감사합니다!
사실 다음편에 확실한 내용진전이있을예정이긴한데..쓰려니까 머리가 빠개지겠네요..
이걸어떻게써야 잘썼다고 소문이날까....흠....ㅡㅡ..ㅋㅋㅋㅋㅋㅋㅋ
별거아닌 가벼운글이지만 늘 댓글달아주시는 두분 정말 감사드립니다ㅠㅠ
원동력이 되어주고계세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조회수200안에 숨어있는 눈팅여러분도 챙겨봐주시는것에 감사드립니다.
제생각에 40화 전에는 끝날듯싶어요... 그러고보니 봄부터 겨울까지 거의 일년내내 연재한게되네요ㅋㅋㅋㅋㅋㅋㅋㅋ
늘 재미있게 봐주시는 여러분감사합니다!!ㅠㅠ
이해안되는 부분을위해 끝날때 해석을 따로 쓰든가할게요...
댓글에 이해안되는부분 질문해주셔도 답변해드립니다! 매우매우 쉽게!ㅠ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어줘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