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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ze

부제 : 안개속, 스스로를 감추다














어느 날, 갑자기 숲이 사라졌다. 숲이 사라진 장소는 근원모를 가시덩쿨로 뒤덮였고, 하룻밤 사이에 거대한 미궁이 세워졌다. 마치 미노타우르스의 미궁을 연상케하는 기괴한 모습에 사람들은 그 주위로 다가가는 것을 꺼렸고, 어느새 사람의 발길이 끊긴 미궁 주위엔 가시덩쿨과 정체모를 기괴한 모습의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라 아무도 다가갈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리고 2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미궁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조금씩 희미해졌고, 나무와 가시덩쿨은 더욱 울창해졌으며, 아무도 그곳에 관심갖지 않았다.




'미궁으로 가라. 맞서 싸우라.'




이상한 꿈을 꾸었다고 생각했다. 지호는 잠에서 깬 이후에도 오랫동안 멍하니 그자리에 못박힌듯 앉아있었다. 그것은 마치 무언가의 계시. 신이라던가 천사의 계시가 아닌, 악마의 계시다. 지호는 꿈에서 들었던 소름끼치는 목소리를 떠올렸다. 분명 따스하지 않은 목소리였으나 왜인지 느껴지는 압도감에 거역할 수 없는 힘이 담겨 있었다. 그저 어제 마을 사람들이 미궁에 대해 얘기하는것을 들었기 때문에 그런 꿈을 꾸었던 것 뿐이었을까. 그 꿈의 근원이 다른 존재인지, 제 머릿속에서 멋대로 만들어낸 환상인 것인지 지호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막연하게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은, '미궁으로 가야 한다' 라는 것. 그제야 해진 이불을 젖히고 자리에서 일어난 지호는 벽에 걸린 검 한 자루를 바라보았다. 제 아버지가 쓰던 검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버지'. 제게 물려주었다고 감히 말할 수 없는 것. 제 아버지는 자신의 존재조차 알지 못하고 죽었다는 것을 알았다. 유일하게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은 제 형과 어머니가 전부였고, 어머니마저 돌아가신 이 상황에서 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희미하게나마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제 형인 태운이 전부였다. 지호는 빛바랜 검을 오래토록 바라보았다. 저 검을 들고 가란 것인가. 검을 들고 미궁으로 향하는 것은 악마의 뜻인가 혹은 악마를 보내 날 시험하고자 하는 신의 뜻인가. 아아, 신이시여. 제 가족을, 저를 보호해주소서. 지호는 간절히 기도했다.


지호는 마을 사람들에게 어렴풋이 들었던, 그리고 제 눈으로 직접 보았던 미궁을 떠올렸다. 아주 어릴 적, 미궁이 생기기 하루 전까지도 지호는 그곳에서 친구들과 뛰어놀았었다. 평범하기 그지 없었던 숲과, 그 숲 가운데 아이들이 자주 놀았던 너른 공터와 시냇물을. 하루 종일 메아리쳤던 웃음소리를. 왜인지 점점 감상에 젖어가 지호는 옅게 미소지었다.

미궁은 단 하룻밤 사이에 생겨났다. 아이들이 놀던 공터와, 숲이 모두 사라진 자리엔 거대한 미궁과 가시덩쿨만이 자리했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친구들을 이끌고 숲으로 향하던 어린 지호는 그 모습을 선명하게 보았다. 그 누구도 들이지 않겠다는 듯 사납게 미궁 전체를 감싼 가시덩쿨에 살짝 손을 대자마자 그 날카로운 가시에 찔린 지호의 손에선 붉게 핏방울이 맺혔었고, 피를 보자마자 겁에 질려 울음을 터트린 이후로 지호는 다시는 미궁에 가까이 가지 않았다. 평생 미궁에 갈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열댓명 정도 되는 병사들이 미궁으로 향해 조사를 하고,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채로 허탈하게 돌아갈 때도, 몇 명의 무모한 사람들이 미궁으로 향했다 돌아오지 못했다는 소문을 건너건너 들었을 때에도 지호는 모두 남의 얘기라고 생각했다. 설마 제가 그곳으로 가게 되리라곤, 상상치도 못한 상황이었다. 지호는 제 손에서 흐르던 핏방울을, 그리고 가시덩쿨에 감싸져있던 미궁을, 떠올렸다. 웅성이던 사람들과 마을 주민들에겐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은 채 속삭이며 바쁘게 돌아다니던 병사들을. 어느날 갑자기 생겼다는 것, 그리고 가시덩쿨과 기괴한 식물들로 뒤덮여있다는 사실을 제외하곤 마을 주민들이 그 미궁에 대해 알고 있는것은 없었다. 괴물이 살고 있다는 둥, 마녀가 부린 마법이라는 둥 많은 소문이 떠돌았으나 모두 한때의 헛소문에 불과했다.


확실하고도 선명한 사실은 그 '미궁'이란 것이 지호의 미래가 되어버렸다는 것. 제 미래가 미궁처럼 꼬여있을 것인가, 혹은 미궁에서 살아남을 것인가. 지호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본래 인생이란 것은 미로와 같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 이것은 언젠가 친구와 싸우고 돌아온 저에게 태운이 해주었던 말. 어쩌면 저 미궁이란 것은 우리의 인생이란 것을 현실로 옮겨놓은 것이 아닐까. 인생을 본뜬 거대한 미궁의 제작자는 신일 것인가 악마일 것인가. 그 어떤 쪽이건 지호에겐 위로가 되지 않았다. 지호는 또다시 검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칼집에 녹이 슬어 있었다. 지호는 쌓인 먼지를 털어냈다. 평생 사용할 일이 없을 것만 같았던, 허나 지금 제 손에 들려있는 검 한 자루. 평생 갈 일이 없을 것만 같았던, 허나 제 미래가 되어버린, 미궁. 지호는 자신이 꿈 속의 계시를 따르지 않을 때에 벌어질 일을 생각했다. 자신의 아버지가 죽은 이유를 알았다. 아버지는, 얼굴조차 보지 못한 그 '아버지'는, 계시를 따르지 않아 죽었다. 숲으로 가란 계시를 따르지 않았고, 어느 날 아무 이유 없이 숨을 거뒀다. 병 때문도, 자살도 아닌 돌연사. 그리고 몇 년 후, 숲엔 미궁이 생겼다.


떠나야 함을 알았다. 떠나지 않았을 때의 결과를 알았다.


지호는 검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 가는 거야."


"계시를 받았어."


"계시."


"응."


태운은 지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따르지 않는다면 죽음으로 이어질, 허나 따른다고 해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뿌연 미래 속에 지호만이 내던져진 듯 했다. 태운의 눈엔 아직도 동네 아이들과 패싸움을 벌이다 울며 집에 돌아온 어린 지호가 보였다. 울먹이던, 어렸던 제 남동생과 그런 아이의 머리칼을 아무 말 없이 쓰다듬어주던 제 자신의 모습이. 이제 머리칼을 쓰다듬어주며 괜찮다 말할 때는 지난 걸까. 이제 위로해줄 수 있는 때는 이미 지나버린 걸까. 대체 그 경계는 언제부터 존재했던 걸까. 제가 눈치채지 못한 사이 훌쩍 커버린 제 동생을 태운은 고요히 바라보았다. 더이상 보호자가 되어 줄 수 없는 제 자신.


어쩌면 제 아버지의 뒤를 따라 지호도 사라져버릴지 몰랐다. 지호가 태어나기 전 죽은 '아버지'를, 태운은 어렴풋하게나마 기억했다. 기억나지 않는 시각, 그러나 아직까지 흐릿하게 남아있는 온기. 겹겹이 쌓인 세월 속 어느새 지워져버린 시각과 청각의 파편 속 촉각만이 남아있었다. 어렸던 저를 쓰다듬던 제 아버지의 손길을. 허무하게 스러져버린 그 온기를. 태운은 아마도 그 온기를 지호에게 전해주고 싶었을지 모른다. 그리하여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지호를 보듬어왔을지도 몰랐다. 태운은 지호에게 있어서 형이었고, 보호자였고, 아버지였다.



"조심해서...다녀와."



그리하여 태운은 지호를 보내줄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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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문체가 딱 제 스타일이에요 슼슼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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