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아요 짧아 분량은 짧고 끊기를 잘해야 살아남는법
내_전화_좀_뺏어줘.txt |
머리가 아플정도로 술을 퍼 마셨더니 뭐가 뭔지 모르겠다. 무작정 엎어놓은 폰을 집어들었다. 잊혀지지 않는 번호를 꼭꼭. 010.... 눌러가며 통화버튼을 누르니 뚜르르 단조로운 신호음이 들렸다. 여보세요, 오랜만에 듣는 그리운 목소리에 형- 하고 부르니 대답이 없다.
"형?"
"..또 왜 전화했어"
"형 내가 잘못했어요"
"....왜 자꾸 전화해서 그러는데"
"보고싶어요"
엉엉 울었다. 추하다 추해. 주위 사람들이 날 보며 쑥덕거리는 것 같았지만 그게 중요한게 아니였다. 지금 폰 너머 분명 우물쭈물 망설이고 있는 형이 더 중요하다, 나한텐. 아무 말 없이 한숨만 푹푹 내쉬는 형이다. 유권이형. 다시 부르는데 대답은 역시 없다.
"형,내가 진짜 잘못했"
"너 자꾸 술마시고 나한테 이럴래?"
언제까지 이럴껀데? 짜증 반 걱정 반으로 나에게 잔소리를 해대는 통에 머리가 지끈지끈. 물론 술 탓도 있겠지만. 오늘 좀 마셨네, 풀린 눈으로 테이블을 쳐다보니 초록 이슬이들이 안녕? 인사를 건네며 테이블 위를 뒹굴뒹굴. 날 유혹한다. 잔을 꼬옥 쥔 채 계속 형, 형, 유권이형, 야 김유권. 불러댔다. 그제서야 왜. 짧은 대답 하나 나온다. 보고싶다고요 어린 애 마냥 징징거리며 떼를 썼다. 물론 헤어지자고 했던 것도 나지만. 형을 처음 만난 건 알바를 하러 갔던 작은 카페였다. 물론 형도 같은 알바생. 잘해보자 하고 손을 내밀며 헤헤 웃는데 거기에 뻑 넘어가버렸다. 와 이렇게 귀엽게 웃는 남자도 있구나. 내 게이 인생 20년에 이런 귀여운 남자는 처음이다. 분명 거기서 첫 눈에 반한거겠지만.. 그렇게 열심히 할 알바도 아니였고 한 두달 한 다음 그만두려 했는데 결국 그 형이 그만두기 직전까지 그 알바를 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형이 늦게가면 나도 일 더한다면서 늦게가고. 덕분에 알바비도 이따만큼받았다. 그 돈으로 형에게 첫 월급이니까 쏜다는 말을 핑계 삼아 형과 데이트 아닌 데이트도 했고. 그러다 사적으로 연락하면서 결국 내가 고백도 했다. 그런데 내가 형을 왜 찼을까? 그렇게 좋아했는데? 머리가 딩딩 울리니 더 이상 뭔 갈 생각하기도 싫다.
"지훈아. 너 얼른 집에 가"
"형이 데리러 와주면 안돼요?"
"...너 희망고문하냐?"
"아뇨, 나 진짜 형 보고싶어"
김유권 보고싶다고오!!! 소리를 빽 지르며 테이블을 주먹으로 쾅쾅 내리쳤다. 결국 알바생이 후다닥 달려와서 손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하고 날 말렸다. 이게 어디서 개콘 따라해요? 확 노려보니 다른 손님들도 계신데 이러시면.. 하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건성으로 예 죄송함다. 하니 조금만 조용히해주세요. 경고하고 다시 원 위치로 돌아간다. 폰 너머 형이 날 부른다. 네?네? 오랜만에 형에게서 불리는 내 이름에 기분이 나아진다. 지훈아. 술마시고 그러면 신뢰도 완전 떨어지거든?
"진짜라고요. 내가 진짜 맨 정신에 하려다가"
"하려다가?"
"...아씨,쪽팔려서 내가.."
"...그래서 마셨다?"
"네, 그리고 형 보고싶어요"
그 말 좀 그만해라. 지겹다. 형의 말에 소심했던 내 멘탈이 사혼의 구슬조각처럼 산산조각 났다. 마치 내가 지겹다는 듯이 들려 잠시나마 멈췄던 울음이 터졌다. 아이고 꺼이꺼이 울며 갖은 추태란 추태를 다 부렸다. 형이 갈께.. 작게 말한다. 진짜요? 그 작은 소리가 어찌 내 귀에 그렇게 콱 박히는지 어지러웠던 머릿속이 확 하얘지는 기분? 알려나? 꼭 와요, 여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있는 곳을 말해주자 알았어, 전화를 끊는다. 아싸 형 온다. 우울했던 텐션이 절로 올라간다. 흐흐 웃으니 옆 테이블에서 여자 둘이 힐끗힐끗. 뭐야,저기? 게이야? 내가 듣기엔 민감한 이야길 나눈다.
"게인가봐.."
"..헐..."
"왜,아쉽냐?"
"...쫌?"
자기네들끼리 깔깔. 내가 좀 여자한테 먹혀주는 얼굴이기도 하지. 고갤 홱 돌려 옆 테이블을 쳐다보니 웃다 급 조용히 고갤 돌린다. 뜨끔한건가.. 뭐 상관은 없다. 곧 있으면 내 맞은편에 그토록 보고싶었던 형이 있을거다. 그때 그 예쁜 얼굴로 웃어줬음 좋겠다. 턱을 괴고 한참을 밖을 바라보았다. 20분이 지나고 30분이 지나니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온다해놓고 안오는거 아냐? 손목시계를 보기도 하고 혹시나 싶어 휴대폰도 1분 간격으로 확인했지만 형은 연락도 없고. 다시 한 번 전화를 거니 가고 있다며 헉헉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귀여워, 뛰어오는거야? 그렇게 보고싶어? 괜히 기분이 더 좋아진다. 추위를 뚫고 나에게 온 형은 얼굴이 새빨겠다. 특히 코. 루돌프같아. 헉헉거리며 내 앞에 앉은 형이 귀여워 작게 웃었다. 형 보고싶었어요, 서슴없이 내뱉는 내 말에 그만 좀 하라며 고갤 흔들었다. 헛웃음을 짓기도 한 것 같고? 형 진짜 왔네요,이뻐. 느리게 손을 움직여 형의 머릴 마구 쓰담으니 머리 헝크러진다며 인상을 찌푸린다. 지훈아.
"네?"
"우리 이러면 안되잖아"
"왜요?"
"...왜긴...너 남자지?"
나도 남자지. 네,네 형의 말에 고갤 꾸닥꾸닥. 형이 조곤조곤 이야기를 하는데 어쩌라고다. 그럼 지금까지 사겨왔던 건 뭔데? 형의 변명이 가짢아 콧웃음을 쳤다. 형, 보고싶었어. 반복하는 내 말에 형이 고갤 푹 숙였다. 그러더니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나한테 미련이라도 있어서 이러는거야? 묻는다. 미련이요? 후회인데요. 자꾸 풀리는 눈에 힘을 꽉 주고 형을 쳐다보았다. 형의 표정이 참으로 가엾다. 확 안아주고싶다. 형-유권이형- 부르니 슬쩍 고갤 들다 눈이 마주치자 다시 확 고갤 숙였다. 야 김유권. 최대한 목소릴 깔고 부르자 놀란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나보다 조그매서 인지 앉은 키도 나보다 작다. 귀엽게.. 은근 올려다보는 시선이 마치 길 잃은 강아지같아 마음이 일렁였다. 귀여워.. 중얼이니 형의 빨간 얼굴이 더 빨갛게 달아오른다.
"근데 그때 나 찬건 너잖아"
"...후회한다니까요..."
"...진짜?"
"당연하죠,그럼 제가 장난으로 이래요? 왜 나 자꾸 못 믿어요? 진짜래니까"
따박따박 대답하니 형이 아..응.. 조용해진다. 이 답답한 형아야. 내 말 좀 믿어요. 가슴 언저리를 두어번 주먹으로 쳤다. 주위사람 시선? 신경 끈지 오래고. 형은 답답 해 죽겠고. 나 아직 형 좋아하나봐요. 내 말에 나도... 손을 꼼지락거리며 대답한다. 형도? 형도? 무슨 이런 기쁜 말을 다 들어봤나. 몇 번의 확인사살에도 형의 대답은 변하지 않았다. 얼씨구야! 소리치며 또 책상을 주먹으로 쾅쾅. 내 행동에 형이 당황스러워 하며 날 말린다. 형, 진짜죠? 장난 아니죠?
"내가 왜 장난을 쳐"
"히히.."
"너 나 때문에 혼자 술을 이만큼이나 마신거야?"
"당연하죠,"
"...나도 사실"
너 만나기 전에 좀 마셨는데. 중얼중얼. 어쩐지 얼굴이 많이 빨갛더라니- 특히 코. 헤헤 특유의 강아지같은 순한 미소를 짓는 형이다. 거기에 또 가슴이 쿵쿵 뛴다. 형, 우리 그럼 다시 사겨요,네? 내 말에 우물쭈물한다. 아니 형도 나 좋다며 왜 우물쭈물하는데- 볼을 쿡쿡 찌르자 또 헤헤 웃는다. 그거 긍정의 대답이죠? 내 말에 고갤 소심하게 끄덕인다. 형의 손을 잡았다. 나 형 진짜 너무 좋아- 잡은 손을 주물주물거렸다. 형이 당황해선 야..야! 손을 내뺀다. 좋으면서 괜히 뺀다 이형은. 밀기도 잘하고 당기기도 좀 잘 하지. 물론 그 순한 미소 한 방이면 바로 당겨지는게 나지만.
"여기 사람 많아, 표지훈"
"알거든요-"
"왜 이래..!"
사람들 시선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형에, 손을 내빼더니 주머니에 집어넣는 형에 심통이나 입술을 삐죽였다. 형이 조용히 날 보며 집에 갈까? 속삭였다.
콜. 집가서 못 다 한 것도 하고. 지금까지 못한 것도 하고.
형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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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리니 번외는 내일...킼
불 기대해여..아니 그냥 기대는 마시고...음
불 달게여 헿..흐헿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