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언제 끝을 낼까요
옆_집_어린_아저씨_-3.txt |
비 오는 날은 늙은 것도 아닌데 몸이 찌뿌둥하다. 이제 19살인데 벌써부터 몸은 다 늙은 80대 노인인가보다. 학교 책상에 축 늘어져 창 밖을 한참 바라보았다. 전에 아프다고 회사도 안가던 양반이 그 날 이후 쿨럭쿨럭거리면서 목도릴 둘둘 맨 채 나와 같이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아직 아프냐는 내 물음에 고개를 절래절래. 멀쩡해 하면서도 크게 기침을 해대며 허릴 앞으로 숙였다. 내가 죽...
"거절"
단호하시네요, 단호박이세요? 내 드립에 엘레베이터에 정적이 흘렀다. 옆을 힐끗보니 정색한 채 앞만 쳐다보고있다. 야박도 하지, 좀 웃어줘요. 옆구릴 쿡쿡 치자 너라면 웃겠냐? 어깰 으쓱이며 엘레베이터에서 가볍게 내렸다. 에이씨 뒤 따라 내려 터덜터덜. 하늘 참 맑다, 엄만 왜 이런 날에 우산을 챙겨줘.. 투덜거리며 학교로 걸어갔다. 아저씨는 뒤도 안 돌아보고 휘적휘적 긴 다리로 차까지 걸어가선 문을 열고 들어가버린다. 그런 드립 쳤다고 잘가라고 인사도 안해주냐. 괜히 서운해진다. 무슨 애인도 아니고, 왜 이렇게 서운한지 모르겠다. 묘한 감정에 사로잡혀 한참을 그 자리에 멍 하니 있다 정신차리자! 내 뺨을 두어번 쳤다. 노래나 듣자 하며 이어폰을 귀에 꼽고 학교로 다시 걸어갔다. 학교는 썩 나쁘지않았다. 구석에 앉아 이상한 머리를 한 채 노랠 들으며 리듬을 타는 애나 아니면 그 옆에 더 이상한 머리를 한 채 날 노려보는 애 빼곤 괜찮다 싶었다. 문제는 내가 그 애들 바로 앞 자리라는 거지. 뭐 별 문제는 없었다. 가끔 선생님이 뭐래냐? 이런 자잘한 것만 묻고 나머진 자거나 지들끼리 키득키득 이야기 할 뿐이였다. 덕분에 편하게 나도 엎드려자거나 멍때리거나. 선생님들도 참 이상하다. 학생이 새로오면 관심을 가지던가 자면 깨우던가 떠들면 조용히시키던가 해야지. 자기 수업만 중얼중얼. 몇 몇 쌤들의 형식적인 신입환영에 난 웃으며 예예 고개를 끄덕였다.
"야,김유권"
뒤에서 누군가 내 어깰 콕콕 치길래 뒤돌아보니 무슨 주황머리 애가 날 본다. 어휴 머리 색도 참 찬란하지.. 나처럼 갈색이면 몰라도.
"나 오백원만"
한다는말이.. 옆에 눈매 매서운 회색머리가 한심하다는 듯 웃는다. 어? 나 없는데? 대답했더니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아 배고프다고! 소릴친다. 선생님께서 무슨일이야? 물으셨다. 그 둘은 아닙니다- 손을 공중에 휘적거렸고 난 하하 웃기만했다. 선생님이 잠시 우릴 조용히 쳐다보시더니 다시 문제를 풀어나가신다. 다시 뒤를 쳐다보았다. 둘이서 투닥투닥 아주 잘 논다. 박경. 우지호.
얘네 둘 덕분에 어색할 것 만 같았던 학교가 순식간에 조금 즐거워진 것 같다. 처음 만났는데도 처음이 아닌 것 같은 친근함? 키득거리며 놀다보니 시간이 물 흐르 듯 흘러갔다. 수업 중 천둥소리에 어깨를 움츠리며 얼른 창 밖을 보았다. 아침에 그렇게 날씨가 좋았는데 무슨 천둥번개야? 순간 아저씨 생각이 들었다. 몸도 안 좋은 양반인데 우산은 제대로 챙겼으려나.. 내 걱정보다 아저씨 걱정이 머릿 속에 먼저 드는 내 모습에 스스로 당황했다. 나 오늘 왜 이러지? 결국 나도 모르겠다 책상에 엎어져 잠을 청했다.
학교에서 한거라곤 잠, 뒤에 애들이랑 드립 그리고 아저씨 생각. 그정도였다. 아저씨 생각을 한 건 절대 아저씨한테 무슨 마음이 있어서 그런게 아니라 비도 많이 오고 천둥번개도 치니까 걱정되서 그러는거다. 나이랑 겉만 아저씨지 속은 어리니까. 혹시 모른다. 회사에서 천둥번개가 칠 때 마다 아이쿠하며 놀랄지. 상상하니 귀여워 웃음이 났다. 다 큰 아저씨가.. 푸흐흐 웃으며 신발을 갈아 신으니 우지호랑 박경이 여자친구라도 생각하냐며 자기네들끼리 낄낄. 여자친구는 아니니까 아니, 하고 정색하니 드립도 정색으로 받아치냐며 되려 타박만 주고 떠났다. 우산이 무겁다고 느껴 질 정도로 비가 쏟아졌다. 폭우같이. 무슨 소나기 철도 아니고, 태풍 철도 아닌데 많이도 온다. 꽃 다 떨어지겠다. 아파트 마당 앞의 벚꽃나무를 한참 바라보았다. 비가 하도 와서인지 거의 다 바닥에 떨어져 앙상했다. 꼭 말라비틀어진 아저씨처럼.
"야!!"
익숙한 부름에 뒤를 홱 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아저씨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아저씨 생각하니 아저씨 딱 오네요. 무슨생각 했는데? 저 나무처럼 앙상하다고 생각했는데요. 바로 주먹이 머릴 콩하고 때렸다. 틀린 말도 아닌데 그게 무슨 말이냐며 버럭 소리친다. 자기도 나름 탄탄하게 근육이 있댄다. 그걸로 여자 여럿울렸대나 뭐라나. 믿거나 말거나다. 예예 대충 고갤 숙이며 인정해주었다. 아파트 동으로 들어가 우산을 대충 털어내었다. 털어도 털어도 끝 없이 나오는 빗방울이다. 아저씬 그만 털고 엘레베이터나 타라며 언제 엘레베이터에 탔는지 버튼을 꾹 누른 채 날 불렀다. 말 없이 엘레베이터에 탔다. 왠지 모르게 두근거리는 듯 한 알 수 없는 느낌에 어색해져버렸다. 아저씨도 아무 말이 없었다. 띵 거리는 소리와 함께 너도나도 서로 바쁘게 엘레베이터 밖을 빠져나왔다. 복도에 서서 아저씨를 힐끔 쳐다보니 아저씨가 왜? 묻는다.
"아저씨 혹시 천둥번개 무서워해요?"
"...내가 애냐?"
"..그건 아니지만 혹시나.."
"설마 내가 그런 걸 무서워하겠냐"
"그러면 있잖아요.."
나랑 같이 좀 있어주면 안돼요? 엄마 올 때 까지만. 내가 왜 저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내 입으로 한 말이지만 속으로 당황했다. 사실 난 저런 천둥번개소리에 놀라지않는다. 놀란다면 그게 더 이상한거지. 아저씨도 당황한 듯 날 보다 갑자기 푸하하 크게 웃는다. 얼굴이 화끈거림을 느꼈다. 진짜 무서워하는 것도 아닌데 내가 무슨 생각으로 무섭다고 같이있자했을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주워 담을 수 도 없고 난감하다.
"뭐야, 그렇게 안생겨가지곤"
"그럴 수 도 있지.."
"진짜 무서워? 저런게?"
"아 그만 묻고 대답이나 해요"
"니가 정 무섭다면 친히 같이 있어주고"
나도 모르게 웃으며 그럼 아저씨 집 가도 돼죠? 물었다. 아저씬 당연하다는 듯 고갤 끄덕였다. 뭐 어쨌든 아저씨랑 노는 건 재밌으니까. 내가 아무리 고3이여도 노는 건 재밌지,암. 아저씨 뒤를 쫄래쫄래 따라 들어갔다. 이젠 내 방보다 더 익숙한 아저씨네의 거실이다. 쇼파에 엎어져 가방을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두었다. 그랬더니 간만에 치운 집안 어지럽히지 말라며 훈계를 두었다. 듣기싫어 아아아- 거리며 귀를 막으니 약이 바짝 올라 발을 쿵쿵 굴리며 씩씩대는 아저씨가 눈 앞에 서 있었다. 이렇게 보면 딱 어린앤데 어떻게 나 보다 더 아저씰까?
"잔소리 좀 그만해요, 우리엄마보다 더 심해"
"너가 잔소리 안 나오게 좀 해라"
"와 우리엄마랑 똑같은 소리해"
소름이 팔에 쫙 돋았다. 어떻게 엄마랑 똑같은 소릴 하냐 절로 감탄까지 터져나오니 지금 상황에서 감탄하지말라며 또 잔소리다. 분명 전생에 잔소리 못하고 죽은 귀신이 몸 안에 씌인게 분명하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더러워서 발 딛을 틈 마저 보기 힘들었던 집 안이 무슨 모델하우스마냥 깨끗히 잘 정리정돈 돼어있다. 티비 위에 가득 쌓였던 먼지들도 없고 설거지도 다 한 듯 깨끗한 접시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고생한 티가 난다. 혼자 끙끙대며 청소했을 아저씨의 모습이 상상되어 쇼파 위에서 마구 웃었다. 그러자 왜 비웃냐며 더 씩씩대는 아저씨다.
"아뇨,그냥 아저씨 혼자 청소하시는거 상상하니까"
"왜! 웃겨?!"
"아니아니-귀여워서요"
뭐 임마? 아저씨가지고 놀려,지금? 또 다시 들리는 주먹에 아이코 손으로 머릴가렸다. 칭찬해줘도 주먹으로 때리고 칭찬에 내색한 아저씨인가보다. 아저씨는 내 앞에서 몇 번 더 씩씩거리다 옆에 앉으셨다. 슬금히 기어올라 아저씨 무릎에 머릴 베고 누으니 아저씨가 내 머리가 무겁다며 비키랜다. 아 조금만 있을게요, 나 천둥번개 무섭다니까?
"그거랑 이거랑 무슨 상관이야"
"혼자 덩그러니 있음 무섭단말이에요"
"나 옆에 앉아있잖아,그래서"
"이렇게 있음 더 안무서울 것 같은데-"
히히 웃으며 어린 애 처럼 구니 아저씨가 마음대로 하라며 내 머리칼을 만지작거렸다. 참 아침부터 묘하다. 끊이지않고 드는 아저씨 생각이라든가 인사안해주고간 아저씨께 느낀 서운함이라든가 엘레베이터에서 느낀 두근거림이라든가 아님 지금 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조용히 있는 상황이라든가. 그렇다고 내가 아저씰 좋아하는 것도아니고. 아저씨를 좋아한다면 내가 동성애자인가? 아니 사람은 70% 이상이 양성애자라 했지만 설마 내가 이 아저씰 좋아하겠어? 그냥 많이 친해서 그렇겠지. 그리고 이 나이에 저 아저씨를 좋아하면 거의 띠동갑차인데.. 이것 저것 생각이 복잡하게 얽혔다.
"야 너 샴푸 좋은거 쓰나보다?"
"왜요?"
"어-..되게 부들거리길래."
그 말이 뭐가 부끄러운지 얼굴에 열이 올랐다. 아저씨가 갑자기 왜 얼굴이 빨개지고 난리냐며 요란법석이다. 아니 더워서그래요! 말도 안되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뜨거운 양 볼을 감싸다 손바람을 일으키니 다시 사그라들었다. 아저씬 얼굴이 빨개지면 내가 뭐가되냐며 크게 웃으신다. 이렇게 밑에서 바라보는 아저씨라니. 것도 그런 이상한 말을 나한테 해대는 아저씨라니. 한 번 더 생각이 드니 다시 얼굴이 빨개지는 것 같아 얼른 딴 생각을 하려 노렸다. 그래 오늘 참 이상한 애들을 만났지, 우지호랑 박경.
"학교 오늘부터 가지?"
"네 갔다왔죠"
"와-일찍 마친다."
"아저씨도 완전 일찍 마치는데요?"
"몰라 회사 퇴근시간이 이런데?"
"회사 참 좋네요"
내 말에 자부심이 생긴 아저씨가 어깨에 힘을 주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나처럼 열심히 살아야 복이 오는거야- 그렇게 큰 복은 아닌 거 같지만 아저씨가 너무 행복해보여 차마 태클은 못 걸고 아아- 수긍하듯 고갤 끄덕였다. 그 때 쾅 소리와 함께 천둥소리가 크게 들려왔는데 내가 무섭다며 달려들어도 모자랄 판에 아저씨가 우어어!! 상체를 숙인다. 다리에 누워있던 난 아저씨 가슴팍에 퍽. 아저씨 왜 놀라요! 천둥소리가 사라지고 번쩍거림이 서서히 흩어질 때 고갤 돌려 아저씩 올려다보니 무안한 기색이 역력하다.
"안 무서워 한다해놓곤.."
"...오늘따라 무섭네,하하"
"..됐거든요,애도 아니고"
"잠시 방심한거야"
하하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방심한거라고 변명을 늘어놓는데 또 다시 쾅! 거렸다. 아니나다를까 소리가 머릿 속에 인식 되자마자 고갤 푹 숙이고 눈을 질끈 감는 아저씨다. 그냥 처음부터 무섭다고 말하지. 몸을 돌려 아저씨 배를 쳐다보다 허릴 안았다. 아저씨도 무서운 듯 가만히 있을 뿐. 허릴 토닥이며 아저씨 이름을 불렀다. 우리 재효 많이 놀래쪄요? 내 놀림에 야! 소리치며 또 다시 잔소리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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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도 알수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