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갗에 닿아 느껴지는 공기가 끈적했다. 예상 외로 후덥지근한 날씨에 걸치고 있던 가디건을 벗어 어깨에 가볍게 두른 후 매듭을 지어 묶었다. 앞에서 걷던 박 경이 거칠게 넥타이를 잡아 당기며 발을 구르며 소리를 빽빽 질렀다.
“ 존나 더워! ”
“ 그럼 유럽이랑 홍콩이랑 날씨가 같을 줄 알았냐. ”
어린아이 처럼 구는 박 경을 무심한 표정으로 쳐다보던 태일이 다시 몸을 돌려 뚜벅뚜벅 어딘가로 걷기 시작했다. 박 경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머리를 마구 헤집다가 태일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멀어지는 둘을 자리에 우뚝 서서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손에는 외딴 곳의 주소가 적혀진 종이가 쥐어져 있었다. 태일이 자신과 박 경은 다른 직원들의 상태를 살펴보러 간다며 먼저 우지호에게 가라며 쥐어 준 종이였다. 태일은 내게 종이를 쥐어주곤 박 경 몰래 내 귓가에 속삭이곤 웃어보였었다. 사실 지호가 너가 제일 보고싶대, 먼저 가 봐. 참고로 우리도 곧 갈테니까 만남의 기쁨은 짧게, 약하게 나누도록 해. 하는 도중에 우리가 들이닥치면 흥이 깨지잖아?
씨발, 그렇다고 처음 와보는 타 국에 종이 쪽지 하나만 주고 가버리면 어떻게 하자는거야? 서툰 영어로 겨우 택시를 타고 와 도착한 곳은 번화가의 빽빽한 빌딩 숲 사이에 있는 고급처럼 보이는 호텔 앞이였다. 택시 기사가 영어로 뭐라 블라블라 떠드는 걸 듣다가 주머니에 넣어 둔 돈 뭉치를 대충 던져주고 문을 닫았다. 아, 존나게 덥다. 그러니까 우지호가 이 호텔 1308호에 있다 그 말이지. 큰 회전문을 지나쳐 들어가자 넓은 로비에 서 있던 예쁜 여직원들이 날 향해 꾸벅 인사해 온다. 띵 하고 작은 소리를 내며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가 얼른 탑승하라는 듯 그 큰 입을 드르륵 열고 날 반겼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고 숫자 13이 적힌 버튼을 꾹 눌렀다. 부드럽고 빠르게 출발하는 엘리베이터는 다이아몬드라도 박은건지 이 곳, 저 곳에 투명한 보석들이 빽빽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우지호 존나 좋은 곳에서 자고 있었네, 괜히 걱정했어.
“ 문 열어. ”
- 누구.
“ 니 동료인데요. ”
-표지훈?
큰 문 앞에 금박 장식으로 1308이라고 써진 방 옆 초인종을 꾹 눌렀다. 삑 하며 인터폰을 누르는 소리가 분명 났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길래 먼저 입을 열었다. 표지훈? 하며 재차 물어온 우지호의 질문에 대답없이 그저 문 열어주기만을 기다렸다. 다 알면서 뭘 또 물어. 잠시 조용하던 인터폰 건너에서 곧 우당탕 하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쿵 쿵 하고 바닥이 울리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기도. 잠시 넋을 잃고 서있는데 벌컥 하고 열리는 문에 깜짝 놀라 뒤로 주춤 물러섰다. 방 안에서 나온 우지호가 내 모습을 훑어보더니 대뜸 얼굴을 들이밀고 밝은 목소리로 내게 말 했다.
“ 보고싶었어. 나 보러 온 거야? ”
“ 다쳤다더니 대가리가 다쳤냐? ”
“ 아, 나 다쳤다고 걱정되서 온 거구나. 나 많이 다쳤어. ”
“ 네 꼬라지를 보니 많이 다친 것 같진 않은데. 진짜 머리 다친 거 아니냐. ”
“ 전혀. 언제까지 그러고 서 있을거야? 들어 와. ”
나의 말에도 그저 생글생글 웃던 우지호가 문 앞을 가로막고 있던 몸의 방향을 틀어 방 안으로 들어 갈 틈을 만들어 주었다. 들어오라면 들어가야지요. 방 안으로 발을 디뎠다. 그리고 욕을 내뱉었다. 야, 씨발… 존나 넓잖아. 이태일, 씨발. 내가 라스베가스 갈 땐 존나 구린 방 주더니 고작 홍콩에 와서 다치기나 하는 우지호 한테는 호텔 룸을, 그것도 이렇게 큰 방을 잡아줘? 제 자리에 우뚝 서서 방 안을 둘러보던 날 보던 우지호가 휴 하고 긴 한숨을 내뱉으며 입을 뗐다.
“ 너 나 간호하러 온 거 아냐? 방만 보지 말고, 약 좀 발라줘. ”
“ 손가락도 다쳤냐? ”
“ 어? 아니. ”
“ 손가락 멀쩡하면 네가 직접 발라. 너 간호해 주러 온 거 아냐. ”
와, 치사하다. 됐다, 내가 바른다. 투덜대며 등을 돌려 욕실로 들어가는 우지호의 등을 바라보다 가디건을 벗어 대충 바닥에 던져놓고 침대로 걸어가 누웠다. 존나 푹신하다. 좋은 호텔, 좋은 방은 침대도 좋네. 바보같은 생각을 하며 그저 두 눈만 꿈뻑꿈뻑 대며 천장을 바라봤다. 천장엔 아기천사들이 나팔을 부는 멋드러진 그림이 금장 장식과 함께 세겨져 있었다. 우지호는 이 방, 그리고 이 침대에 누워 저 천장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 야, 진짜 나 혼자 못 하겠어. 좀 도와줘! ”
내 깊어져 가는 망상 덩어리를 달아나게 한 건 우지호의 목소리였다. 욕실에서 부터 울리는 우지호의 간절한 목소리에 느리게 몸을 일으켰다. 야, 존나 귀찮게 얼마나 다쳤다고 혼자서 약도 못 발라? 닫혀있는 욕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 큰 전신 거울 앞에 앉아있는 우지호를 내려다 봤다. 아, 그대로 굳고 말았다.
“ 나 붕대 갈아야 하는데 진짜 혼자 못 하겠어. 이거 보이지? 다 엇 나간 거. ”
“ ……. ”
가슴팍에 둘둘 감은 흰 붕대가 빨간 핏빛으로 물들어 제 색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우지호가 일을 하며 이렇게 다친 적도, 다친 걸 본 것도 처음이였다. 우지호가 인상을 찌뿌리며 붕대를 돌려 풀었다. 점점 드러나는 상처에 인상을 찌뿌렸다. 하얀 우지호의 가슴팍엔 이 곳, 저 곳 파편이 튀어 움푹 파인 듯 한 상처가 있었고 가운데엔 길게 주욱 무언가에 긁힌 상처가 덧나 아직 빨간 피를 토하고 있었다. 상처에 공기가 닿아 따가운건지 우지호가 윽 하고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지르며 인상을 찌뿌렸다. 네가 그렇게도 소중히 여기던 네 몸을 그렇게 엉망으로 만들 정도로 이 일이 중요했니? 나도 모르게 동시에 인상을 찌뿌리며 우지호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 씨발아, 이렇게 다쳤으면 병원을 가야지! ”
“ 병원 갈 시간이 어딨다고 병원을 가, 그냥…. ”
“ 네 몸부터 챙겼어야지. 씨발, 소독약 어디있어? ”
“ 소독약 붓지마. 존나 따갑다고! 그냥 붕대만 감아달라고! ”
덤덤하게 대답하던 우지호가 내가 우지호의 옆에 놓여진 구급상자에서 소독약을 꺼내 뚜껑을 열자 손을 내저으며 빽빽 소리를 질렀다. 네가 애야? 가만히 있어. 핏 자국 때문에 상처 보이지도 않잖아. 보나마나 소독도 하나도 안 하고 약만 쳐 발랐네. 소독을 해야할 거 아냐. 나름 챙겨준다고 가까이 다가가 상처에 투명한 소독약을 붓자 우지호가 아악!! 하며 내 귓가에 고함을 질렀다. 좀 닥쳐. 옆에 있던 하얀 솜뭉치를 우지호의 입에 처넣었다. 욱욱 대며 솜뭉치를 뱉으려고 하길래 그 사이에 얼른 소독약을 부었다. 쓰라린건지 잔뜩 몸을 웅크린 우지호의 들썩임이 빨라졌다. 그 사이에 얼른 연고를 짜서 상처에 덧바른 후 붕대를 집었다. 어느새 입에서 솜뭉치를 뺀 우지호가 으윽, 윽 하며 옅은 신음소리를 냈다.
“ 상체 숙이지 마. 붕대 감아줄게. ”
“ …존나, 아파. 진짜. ”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아픈건지 눈을 게슴츠레 뜬 우지호가 들뜬 숨을 내뱉으며 날 쳐다봤다. 허리를 굽혀 앉아 우지호의 가슴팍에 둘둘 하얀 붕대를 감기 시작했다. 우지호에게 안길 듯, 말 듯 한 자세가 존나게 이상했지만 얼른 감아주고 푹신한 침대에 눕고 싶다는 생각에 빠르게 손을 놀렸다. 구급상자에서 반창고를 꺼내 작게 뜯어 붕대의 끝 부분을 이어붙였다. 고분고분 하라는대로 몸을 움직이던 우지호가 갑자기 풀썩 제 머리를 내 어깨에 묻었다. 순간 우지호의 반창고를 붙여주던 나의 손이 끼익 하고 차의 브레이크를 밟은 듯 우뚝하고 멈췄다. 우지호가 하아하아 하고 들뜬 숨을 내뱉다가, 잔뜩 내려앉은 목소리로 내 귓가에 속삭였다.
“ …보고싶었어. 정말이야. ”
“ ……. ”
“ 키스…해줘, 지훈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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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만에 찾아 온 5편ㅠ.ㅠ 오랫만이에요
대망의 피코 상봉 장면인데 쓰기가 그렇게 어렵더라구요
결국 몇 번이나 쓰고, 지우고를 반복해 나온 결고ㅏ가.. 이 것... 전 죄인입니다
내가 쓰면서도 표지훈이 너무 다정해서 설렜음 낄낄낄
표지훈이 다정하다니!!!!!!!!! 아마 다친 건 우지호가 아니라 표지훈이 머리를 다친 거 일 수도?;
님들 다음편이나 다다음편에서 드뎌 격투씬??이 나옴 헠헠 조직물의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