띵동 하고 문자가 도착했음을 알리는 작은 알림음이 울렸을 뿐인데도 온 몸을 웅크려 새우잠을 자고 있던 우지호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주위를 돌아보지도 않고 제 베개 밑에 숨겨둔 작은 권총을 꺼내들곤 내 쪽을 향해 조준하기 시작했다. 씨발, 저 새끼 또 저 지랄이야. 쇼파에서 폴짝 뛰어 내려와 바닥을 향해 몸을 숙이자마자 탕 하는 큰 굉음이 울려 퍼졌다.
“ 아, 씨발…. ”
총을 쏜 우지호가 그제서야 정신이 든건지 손에서 툭 권총을 떨구곤 찌르르 울리는 제 팔을 슥슥 위 아래로 훑었다. 오늘은 우지호가 과연 어떤 물건을 박살 냈는지 한 번 볼까. 몸을 일으켜 우지호가 쏴버린 물체를 보는 순간 기절 할 뻔 했다. 야 이 개새끼야! 저게 어떤 건데! 정신 없이 달려가 우지호가 쏜 그 물건을 손으로 슥슥 훑어 모았다. 사방에 유리 조각이 흩어진 러그를 손으로 슥 훑으니 따끔한 아픔이 밀려왔다. 손을 들어 확인 하니 작은 유리 조각에 손이 베어 피가 나고 있었다. 이 따위 피 매일 보는건데 피 나면 좀 어때. 다시 시선을 돌려 물건의 안부를 살폈을 땐, 씨발. 우지호도 총으로 똑같이 쏘고 싶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설리 -라고 쓰고 나의 여신님 이라고 부른다- 의 싸인을 걸어둔 액자를 깬 것도 모자라서, 그 싸인 종이 가운데엔 총알이 지나간 그대로 동그랗게 구멍이 뚫려 있었기 때문이다.
“ 우지호 씨발 새꺄! ”
“ 아, 너 나 쳤냐? 그 종이 쪼가리가 뭐라고 감히 날 쳐! ”
“ 미친, 너 때문에 박살 난 물건이 한 두개가 아니야! 나중엔 나까지 쏠 기세더라? ”
“ 어릴 때 부터 있던 습관인데 어떡하라고! ”
결국 우지호를 향해 주먹을 날렸더니 우지호도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며 내 얼굴에 사정없이 자신의 주먹을 꽂기 시작했다. 몸 위에 올라와 내 조각같은 얼굴을 정신없이 때리고 있는 우지호를 보곤 무릎을 들어 우지호의 소중한 그 곳을 힘을 주어 퍽 하고 올려 쳤다. 억! 외마디 비명을 지른 우지호가 그대로 자신의 소중한 곳을 두 손으로 감싸고는 내 몸 위에서 굴러 떨어졌다. 그러니까 그 버릇 좀 어떻게 해봐, 개새끼야. 내 말에 대답도 못 하고 억… 억 대며 바닥을 데구르르 구르고 있는 우지호의 옆구리를 힘을 주어 까버렸다. 하여튼 내 인생에 도움도 안 되는 새끼야, 넌.
꿈 속에서 까지 조직원인 건지 우지호는 자고 있을 때 미세한 소리라도 제 귀에 들리면 반사적으로 제 베개 밑에 숨겨둔 권총을 들고 아무 곳이나 탕, 탕 쏘는 그런 지랄같은 버릇이 있었다. 제 말로는 트라우마 때문에 생긴 버릇이라는데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같은 집에 살기 때문에 우지호를 배려해준답시고 -사실은 더 이상 집 안의 물건이 박살나는 꼴이 보고싶지 않았기 때문- 일부러 쿵 쾅 대며 걷는 버릇도 고치고, 티비도 헤드셋 까지 꼽아가며 듣는데 저 씨발같은 우지호는 내 수고를 비웃는 것 마냥 매일마다 총으로 집 안 물건을 박살냈다. 구석에 아무렇게나 놓여진 빗자루와 쓰레받이를 가져와 유리조각을 쓸어 담고 있는데 제 머리칼을 거칠게 헤집으며 설리님의 싸인을 박살 낸 원인이 된 휴대폰의 문자를 확인하던 우지호가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 근데 왜 요즘 너 조직에 안 나가냐? ”
“ 그럼 넌. ”
“ 난 그냥. ”
“ 나도 그냥. ”
유리 조각을 다 쓸어담고 휴지통으로 그것들을 와르르 쏟아 버렸다. 가운데가 동그랗게 뻥 뚫린 그 작은 종이는 고이 접어 서랍장에 넣었다. 우지호가 그런 날 보며 웃긴 새끼라며 푸스스 작게 웃으며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런 우지호를 쳐다보다가 빨간 입술이 시선이 닿았다. 남잔데 입술은 여자처럼 존나 빨갛단 말이야…. 썰면 3접시나 나올 것 같은 저 통통하고 빨간 입술을 쳐다보다 슬쩍 발걸음을 우지호 쪽으로 옮겼다. 침대에 누워 꿈뻑꿈뻑 천장만 보고 있던 우지호가 자신에게 슬금슬금 다가오는 나를 보고 뭐하냐는 눈빛을 보냈지만 그 눈빛을 무시했다.
“ 야, 키스 한 번만 해보자. ”
곧바로 주먹이 날라올 것 같았지만 우지호는 미친 소리 같은 내 말을 듣고도 그저 두 눈을 꿈뻑 거리며 날 바라보고 있었다. 뭘 봐, 싫으면 말고. 하고 등을 돌리려 하니 우지호는 뜬금없이.
“ 그래. ”
하며 침대에서 제 몸을 일으켜 세워 몸을 돌리던 나를 잡아채곤 내 입술에 제 입술을 부딪혔다. 내가 먼저 키스하자고 말 해놓고 막상 키스를 하니 놀란 건 내 쪽이였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게 제대로 해보자. 우지호의 긴 머리카락 속으로 손을 집어 넣어 고개를 뒤 쪽으로 꺾으니 우지호가 윽 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입이 벌어졌다. 그 틈으로 혀를 밀어넣어 우지호의 입 속을 마구 헤집었다. 처음엔 가만히 있더니 우지호도 곧 잘 날 따라와 줬다. 서로의 혀가 입 속에서 마구 엉키고, 누구의 것인지 모를 타액이 벌려진 틈 사이로 흐르는데. 씨발, 이게 뭐하는 짓이지. 그때서야 놓아버린 정신줄을 다시 잡았다. 주위의 공기가 후끈해 질 정도로 발정난 짐승처럼 서로의 입술을 탐하고 -사실은 물어뜯고- 있던 걸 멈추고 우지호를 팍 밀쳐냈다. 힘 없이 밀려난 우지호가 얼빵한 표정을 짓더니 곧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다시 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 한 번 하자길래 했더니 내빼기는. ”
“ …야, 너도 나도 제정신이 아닌가 보다. 내가 여자가 고픈가. ”
“ 그건 모르겠고 너 키스 잘한다. 사람 쏴 죽이는 건 나보다 좀 딸리더니 키스는 나보다 낫네. ”
어, 눈물나게 고맙다 씹새끼야. 대답 할 가치가 없으므로 가운데 손가락 하나를 들어 우지호를 향해 흔들어 보이자 우지호는 픽 웃으며 제 몸에 하얀 이불을 휘감았다. 그리고는 엎드린 그 자세로 라면 하나만 끓여봐 라고 말하는 걸 못 들은 척 했다. 행거에 걸려진 까만 트렌치 코트를 집어 들고 현관으로 나와 신발을 신으니 우지호가 그제서야 고개를 빼꼼 내밀고 어디 가게? 하며 물어온다.
“ 사무실. ”
말이 좋아 사무실이지 조직원들 한테 가는 거 였다. 그래. 하며 우지호가 심드렁한 목소리로 대답해 왔다. 더 이상 집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에 얼른 집을 빠져 나왔다. 아, 우지호 저 새끼 조직 내에서 별명이 여우라더니 괜히 여우가 아니였어. 뜨뜻하다 못해 후끈한 집 안 공기와는 달리 빌라 복도는 꽤 쌀쌀한 공기가 내 몸을 휘감았다. 블라블라 영어를 쓰며 날 아는 척 해 오는 이웃집 꼬마 아이를 향해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곤 빌라를 빠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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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기지 않겠지만 조직물 마자여
처음부터 싸우고 피 튀기고 이런 장면보단 피코의 동거? 생활과 표지훈의 출근 장면을ㅋ
참고로 한국 아님.... 유럽이나 미국 쪽으로 할 생각인데 아직 못 정했어여ㅠ.ㅠ
계속 연재합니다 쭉쭉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