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재규어 전정국
경종 잡종토끼 너탄
오늘도 어김없이, 꾸꾸는 탄소의 집으로 저를 데리러 왔어요.
현관에서부터 깍듯하게 토끼의 엄마아빠에게 인사를 건넨 꾸꾸를 얼굴이 뚫어져라 째려보는 융기는 정말 심술쟁이에요!
"탄소야, 일어나봐. 오늘 꾸꾸 오기 전까지 일어나 있으면 사탕 사주기로 했는데, 오늘도 토끼는 사탕 못먹겠네?"
꾸꾸가 웃으며 저를 살살 흔들어 깨우면,
"이잉.. 나 일어나 있었어!!"
애써 감기는 눈을 바짝 떠올린 토끼가 꾸꾸의 교복 소매를 흔들거리며 이야기해요,
"알겠어 빨리 씻고와요,"
꾸꾸가 푸스스 웃으며 제 흐트러진 머리를 살살 쓰담아 주면, 토끼는 기분이 좋아져 엉덩이 춤이라도 추고싶어져요, 괜시리 부끄런 마음에 와다다 뛰어 욕실로 들어서는 토끼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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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에서 손빼, 넘어질라,"
결국 등굣길의 편의점에서 사탕 하나를 물려준 꾸꾸가, 만족스럽다는듯 귀를 팔랑이는 토끼의 모습을 보며 잔잔하게 웃어보여요, 주머니엔 손을 집어 넣은 채로 입술만을 삐죽이며 막대사탕을 빨아먹던 모습을 지켜보던 꾸꾸가, 토끼가 넘어질까 걱정되어 잔소리를 하면,
꼼질꼼질, 그 작고 쪼그마한 손을 주머니에서 빼낸 토끼가, 꾸꾸의 커다란 손을 맞잡아요.
"정국아, 어, 왜 오늘으은...뽀뽀 안해조?"
"주머니에 손넣고 다니는 토끼랑은 뽀뽀 안하기로 했는데,"
꾸꾸가 토끼를 놀리듯 양볼에 희미한 보조개를 지으며 이야기 해요, 밉살맞은 말과는 다르게, 토끼의 목도리를 세심하게 고쳐매주는 꾸꾸지만, 저렇게 장난을 칠 때면 꼭 엉덩이를 때려주고 싶다니까요?
"나 이고바, 두 손 이렇게, 다 꺼내도?"
토끼가 두손을 힘껏 들어올려 정국의 시야에 간신히 보이면,
"응 안해줄꺼야."
오늘따라 묘하게 단호한 정국이를 울망울망 올려다보며 입을 꾸욱 다무는 탄소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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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니 열난다."
"알아, 아침에 약 먹었는데도 이렇다.. 덕분에 우리 토끼랑 뽀뽀도 못하고 왔어."
교실에 들어와서는 감기기운에 녹아내리는 몸을 간신히 의자위로 앉히는 꾸꾸에요,
꾸꾸도, 그 작고 예쁜 입술에, 몇번이고 쪽.쪽 입술을 부딪히고 싶었지만. 안그래도 감기에 잘 걸리는 토끼가 저로 인해 옮게 될까봐, 그 아쉬운 맘을 꾸욱 눌러 참았대요.
토끼는 그런 꾸꾸맘도 모르고, 울망울망한 표정으로 자기 교실로 들어가 버렸지만요..
"김탄소 삐졌겠는데?"
"말도 마라, 아침부터 삐져가지고, 분홍색 코가 삐죽삐죽거리는데 예뻐 죽는줄 알았다고.."
"말을말자."
팔불출 전정국때문에, 아침부터 희생되는 태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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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오늘 집 먼저 가봐야겠다. 혹시 탄소가 찾으면 집에 먼저 갔다고 말좀 해줘."
"어 그래..안색이 말이 아니네 병원 꼭 들르고."
결국 2교시부터 끙끙거리며 식은땀을 흘리던 꾸꾸가, 가방을 챙겨 학교를 나섰어요.
"태태야.. 꾸꾸느은?"
"오늘 아파서 먼저 갔어, 나랑 밥 먹자."
태태가 아무리 토끼의 손에 쥐인 당근 도시락 통을 까며 어르고 달래도,
"꾸꾸 아파?... 흐아.... 꾸꾸 왜아파아??"
한번 터져나온 토끼의 울음을 멈추기란 쉽지 않았어요.
결국 밥도 거르곤 태태의 품에 잠들어버린 토끼 덕분에, 음악실 한켠에 사모예드 혼현을 드러내곤 토끼의 옆을 지키는 태태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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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퇴근이 늦어지는 사자부부덕에 저녁부터 집을 지키게된 윤기와 탄소에요,
입시의 장벽에 멘탈이 너덜너덜해진(사실 작가도 입시의 장벽에 너덜너덜 걸레짝이 되었답니다) 윤기는 학교가 마치자마자 방에서 곤히 잠들었구요,
"꾸꾸.. 아프면 앙대는데.."
토끼는 정국이 걱정에 추욱 쳐진 귀로, 열심히 인터넷에 '죽 만드는법' 을 검색해서는 냄비를 들고 사투를 벌이고 있었답니다.
칼은 절대로 쓰지 못하게 하는 윤기와 엄마 아빠 덕분에 칼은 모두 찬장 안에, 토끼는 덕분에 의자를 밟고 올라가도 찬장에 손이 닿지 않아요..
이내,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솔솔 올라오는 냄비를 들어올려보온병에 담으려 냄비를 들어 올리는데,
"아, 뜨거!"
그대로 냄비를 놓쳐버린 토끼에요, 토끼의 작은 다리위로 뜨거운 죽이 들이부어지곤,
"김탄소! 다쳤어?!"
놀란 윤기가 방에서 달려나와 토끼의 다리를 살폈어요,
토끼는, 아픈것보다. 윤기가 놀랄까봐 울지도 못하곤 연신 미안하다는 말만 뱉어냈어요.
"융기야.. 미아내 토끼가 꾸꾸 아프다고 해서 죽 만들어 주려고 했는데..."
"뭐가 미안해, 뜨겁지! 오빠한테 이야기 하지, 왜 혼자 그랬어.. 응? 오빠가 미안해.. 오빠가 신경 못써줘서 미안해.."
욕실에 들어서서는 다리에 쏟아진 뜨거운 죽을 씻어내면서도 자꾸만 훌쩍이는 융기에요..
결국 융기의 성화에 못이겨, 응급실까지 가서는 처치까지 마친 토끼와 융기가, 정국이의 죽까지 사서는, 꾸꾸의 집으로 향하기 시작했어요.
"9시 되면 오빠가 딱 데리러 올테니까 정국이 집 앞에 서있어, 알겠지?"
융기와 새끼 손가락까지 걸고 약속을 마친 토끼가, 죽을 받아들곤 깡총깡총 정국의 집 초인종을 눌렀어요.
"전정국 토끼 다친거 알면 또 속상해서 죽을라고 할텐데."
윤기가 집으로 돌아가며 중얼거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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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꾸야.. 많이아파?"
집에 들어서자 마자, 죽을 탁자위에 올려두곤 침대에 얌전히 누워있는 정국이의 옆구리에 파고드는 탄소에요,
열은 좀 내렸지만 여전히 몽롱한 기운을 담고있는 정국이의 두 눈이, 울상인 토끼를 두눈 가득 담았어요.
"있지.. 토끼가 죽 사왔어.. 원래는 막 죽 만들어서 가져오려고 했는데에.. 응"
가만히 옴찔옴찔 이야기를 뱉는 예쁜 입술을 바라보던 정국이, 그저 작은 토끼를 품에 꼬옥 끌어 안았어요.
"오늘 뽀뽀 못해줘서 삐졌지, 옮을까봐 그랬어, 우리 토끼."
"응.. 응 내가 막 그것도 모르고 삐져서 미아내... 토끼느은, 그냥 꾸꾸 좋아서 그런거야.. 흐... 흐어어..."
눈물을 꼬옥 참고는 또박또박 이야기를 뱉어내던 토끼가, 결국엔 울음을 히끅,히끅 터트려냈어요.
"뚝, 울지마.. 응?"
꾸꾸의 한쪽 어깨에 고개를 파묻은 토끼가 꾸꾸의 어깨 옷을 축축히 적시고 나서야 울음기 섞인 호흡을 파르르 뱉으며 품에서 빠져나왔어요.
이내, 식탁위에 있는 죽을 총총총 뛰어가 들고와서는,
"토끼가 사왔어, 응 근데 사실 융기가 사줬어."
아직도 눈물이 가득한 얼굴로는 정국이의 손에 수저를 쥐어주는 토끼에요,
그렇게 죽을 한입 퍼 먹으려는 정국의 눈에 들어온건,
무릎부터 복사뼈까지 토끼의 작은 다리에 감긴, 흰 붕대.
"토끼야, 이거.. 이거 왜그래?"
정국이 들어올렸던 수저를 다시 죽 그릇에 내려놓고는, 토끼의 다리를 들어올리자,
"으응, 아까.. 쪼금 다쳤어."
토끼가 다리를 얼른 빼어내며 이야기 했어요.
이내 정국의 머릿속을 스치는, '있지.. 토끼가 죽 사왔어.. 원래는 막 죽 만들어서 가져오려고 했는데에.. 응' 토끼의 말.
"죽 만들다가 그랬어? 응?"
"아니야, 그런거 아니야."
거짓말을 한다는걸 티라도 내듯, 꾸꾸의 시선을 자꾸만 피하는 토끼의 모습에. 정국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지더니.
"어, 어? 정구가 왜 우러어..."
결국엔 눈물을 퐁퐁.. 흘려대는 정국이에요.
"꾸기때문에... 토끼 다쳤잖아... 속상해."
또륵또륵 흰 얼굴에 자꾸만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던 토끼가, 간신히 그쳤던 눈물을 다시금 쏟아내며 꾸꾸의 품으로 폭 안겨 들었어요.
"흐아앙.. 울지마.. 미안해.. 꾸기 속상하게 해서 미아내"
결국, 한참을그렇게 훌쩍이다, 잠든 토끼의 옆에서 식어버린 죽을 퍼먹는 정국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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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시간이 몇신데, 빨리우리 토끼 내놔라."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엄한 윤기의목소리에, 어느새 감기기운을 떨쳐낸 정국이 토끼를 들어올려 품에 안고는 현관으로 나섰어요.
"이거, 흉터는 안남는데요?"
서로를 마주한 정국과 윤기의 표정에 읽히는 묘한 속상함,
"응, 일단 붕대 푸르고 연고 잘발라주면 흉터는 안남는데,"
토끼를 넘겨받아, 능숙하게 안아올린 윤기가 포옥, 한숨을 쏟아내면.
"하아,"
정국이의 입에서도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한숨.
"들어가서 쉬어라, 아프다며."
"토끼 잘부탁해요."
"내꺼야 임마, 너한텐 잠깐 빌려준거고."
장난을 주고받다 돌아서는 둘이에요,
그날밤 융기와 꾸꾸의 인터넷 검색 기록엔, '흉터에 좋은 연고' 가 가득 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