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이 늘었다.
오늘은 친구 집에서 같이 시험공부를 하기로 해서 자고 가겠다며 부모님에게 전화를 거는 동안 옆에서 박지민은 뭐가 그리 좋은지 박수까지 쳐가며 웃고 있었다. 거짓말이라는 게 한 번 시작하기가 어렵지 시작하고 나니 술술 나오는 듯하다. 이게 다 박지민 때문이야. 며칠 전부터 형이 널 보고 싶어 한다고 노래를 부르기에 그럼 집에 한번 놀러 가도 되겠냐고 물었더니 완전히 흥분해서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더니 당연히 된다며 데리고 온 곳이 여기였다. 학교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원룸촌, 그중에서도 가장 구석에서 박지민은 살고 있었다. 형이 요즘 돈을 많이 벌어서 곧 이사하기로 했어! 콧노래를 부르며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문을 따는 지민이의 머리칼을 조용히 정리해줬다. 으이구, 그래서 요즘 이렇게 신난 거야? 우리 지민이.
" 햇빛이 잘 안 들어서 어둡긴 한데, 들어와. "
" 실례하겠습니다…. "
" 형 아직 안 들어왔어! 학원 끝나고 온다고 했으니까 한..두 시간 후에 올 거야. "
" 그럼 그동안 뭐 해? "
" 우리끼리 놀아야지 뭘 해. "
이삐야, 나 그림 그려줘. 내 얼굴 그려줘. 프린터기 위에 올려져 있던 에이포 용지와 연필꽂이에 꽂혀있던 연필을 주섬주섬 챙기길래 뭘 하려나 했더니 제 얼굴을 그려달라고 졸라댄다. 옛날에 그려줬던 그림은 잃어버려 아직도 자기 전엔 허전하다면서 빨리 다시 그려달라는 지민이의 코를 연필로 아프지 않게 톡톡 건드렸다. 사실은 말이야,
" 그 그림, 우리 집에 아직 있어. "
" 뭐? "
" 네가 놔두고 갔길래 내가 가지고 있었는데? "
" 이씨! 진짜 내가 그걸 얼마나 찾았는데. "
" 놔두고 간 사람 잘못이지! 어쨌든 다시 그려줄 테니까 거기 가만히 앉아봐. "
" 그럼 나 진짜 가만히 있을 테니까 예쁘게 그려줘야 된다? "
몇 번이나 예쁘게 그려준다는 확인을 받아내고 나서야 벽에 가만히 기대 웃으며 나를 바라보는 지민이를 새하얀 종이 안에 담기 시작했다. 두툼해서 귀여운 눈두덩이, 왼쪽 오른쪽 다른 매력이 있는 눈, 앙증맞은 코, 예쁜 입술, 그리고 꽤 날카로운 얼굴형까지. 하나같이 너무 사랑스러운, 내가 온 마음을 담아 사랑하는 박지민 그 자체이다. 쓰다듬을 때마다 보들보들 부드러운 머리카락도 멋있게 그리고, 꼭 디테일을 살려서 표현해달라는 지민이의 주문에 맞춰 웃을 때 보이는 귀여운 뾰족 앞니까지 그리고 나니 시간이 꽤 지나있었다.
" 어때? "
완벽하게 그리지는 못했지만 나름 만족스럽게 잘 그려진듯하여 자랑스럽게 종이를 내밀었다. 잔뜩 신이 난 표정으로 종이를 받아든 박지민은 네가 보는 나는 이렇게 생긴 거냐며 화장실로 달려가 거울을 보며 비교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마음에 쏙 들었는지 내일 당장 문구점에 들러 코팅을 할 거라면서 책상 위에 조심스럽게 종이를 내려놓고 다시 자리에 앉은 지민이가 고맙다는 말과 함께 내 볼에 입을 맞춰왔다.
" 뭐야! 갑작스럽게. "
" 선물이야. "
이삐야 여기 봐! 또 시작이네. 할 줄 아는 애교란 애교는 다 보여주기 시작하는 박지민은 아무리 봐도 적응이 안 된다. 학교 애들이 지금 이러고 있는 박지민을 본다면 아마 놀라서 자빠질지도 모른다. 그곳에서의 지민이와 지금 내 앞에 있는 지민이는 내가 봐도 참 다른 사람 같거든. 주머니에서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카메라를 켰다. 동영상 찍을 거니까 다시 해 봐! 하지만 청개구리 같은 박지민은 핸드폰을 들이대자 입을 삐죽이더니 갑자기 하기 싫어졌다며 바닥에 드러누워버렸다. 아 왜 잘하다가 갑자기 왜 이러는 건데?
" 뽀뽀 한 번만 더 해주면 보여줄 수 있는데. "
" 됐어, 안 할래. "
" 아 왜! 나 싫어? "
" 우리 아직 고등학생이거든요. "
" 나이가 뭔 상관이야? "
참으로 기가 막힌 타이밍이지. 부스럭부스럭 열쇠를 뒤적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양손에는 검은색 비닐봉지가 잔뜩 들려 열쇠도 겨우 쥔 모양이었다. 아, 이분이 지민이 형이시구나. 사실 무서운 사람이면 어떡할까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직접 본 지민이의 형은 그와는 정반대의 타입인듯싶었다. 꽤 큰 키에 눈과 코가 참 예뻤고, 활짝 웃는 모습은 내가 보기에도 참 해맑아 부러울 정도였으니 말이다. 분식집에 들렀다 오는 길인지 기름내가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아마도 저 비닐봉지 안에는 떡볶이와 튀김이 들어있는가 보다.
" 아 형! 진짜 타이밍 못 맞추네. "
" 뭐래 이 새끼가? 기껏 맛있는 거 사 왔더니. 어이가 하늘로 올라가려 하네? "
음, 생각보단 꽤 웃기신 분 같기도. 뭐랄까.. 거침 속에서도 희망이 뿜어져 나오는 분 같았다. 그래도 지민이 얘기를 들어보면 정말 좋으신 분이던데, 빨리 친해지고 싶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재빨리 봉투 하나를 받아들고 인사를 했다. 오빠 안녕하세요! 성이름입니다. 그래도 한참 어른인듯하여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더니 우리 사이에 뭘 이렇게까지 예의를 차리냐며 깜짝 놀라는 모습이 참 귀여웠다. 아마도 박지민이 저렇게 가끔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는 건 이 분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인 것 같다.
" 안녕하세요! 오, 드디어 뵙네요? 박지민이 그렇게 찡찡거렸죠. 이삐씨 보고 싶다고. "
" 네? "
" 덕분에 얘가 요즘 더 열심히 해요. 이삐한테 자랑스러운 남자친구가 되겠다나 뭐라나. "
아 진짜 부끄럽게... 귀가 새빨개진 채로 웅얼웅얼 거리는 지민이를 가볍게 무시하고 오빠와 함께 식탁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박지민이 오빠 말 드럽게 안 듣죠? 헐 대박. 그걸 어떻게 알아요? 역시 여자친구라 그런가 달라. 어렸을 때도 그랬다니까요? 한 여덟 살 때였나…. 정말 오랜만에 물 만난 물고기마냥 신이 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대화의 주제는 당연히 박지민이었다. 대놓고 자기 앞담을 깐다면서 시무룩한 지민이를 데려와 식탁 앞에 앉혀놓고 이쑤시개로 찍은 떡볶이 하나를 입에 물려줬더니 또 맛있다고 잘 먹는다. 체중관리한다고 한동안 못 먹었을 테니 많이 먹여놔야지.
" 아 근데 그거 알아요? "
" 네? 뭐를요? "
" 박지민 유학…. "
형, 그만해! 안 간다고 했잖아. 급격하게 표정이 굳은 채로 소리를 지르는 지민이를 말리고 다시 되물었다.
" 유학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
지민이 입에선 유학이라는 단어 자체가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는데.
" 지민이 얘 독일 쪽으로 유학 올 생각 없냐고 얼마 전에 연락을 받았었거든요. 그거 지민이가 말 안 해줬어요? "
이게 무슨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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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이라니! 의사양ㅂ..아니 호석옵빠!!!! 이게 무슨 말이오!!!!
이런 부족한 글을 재밌다고 읽어주시는 여러분 정말 감사드려요. 펑펑 울었어요ㅠㅜㅠㅜㅠㅜㅠ감동감동. 끝까지 잘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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