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 혹시 냉장고에 술 사다 놓은 거 있어요? "
" 무슨 소리야. 네가 술 끊으라고 해서 끊은 지가 언젠데. "
" 알았어요. 끊어요. "
" 야! 근데 너 왜.. 끊겼네. "
지민의 입학식이 무사히 끝난 후 호석은 여느 때처럼 학원 문을 열었다. 예정대로라면 패밀리 레스토랑이라도 가서 지민의 수석 입학을 축하하려 했으나, 입학날임에도 정상수업을 진행한다고 하기에 교실에 지민을 들여보내놓고 발걸음을 돌린 것이다. 그로부터 한두 시간이나 지났을까? 참 요란하게도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화면을 확인하니 놀랍게도 지민과 함께 살고 있는 집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귀신이 걸었을 리는 없으니 분명 지민이 건 전화일 텐데, 학교에 있어야 할 아이가 왜 집에서 전화를 거는 거야. 의아한 마음에 급하게 전화를 받으니 한다는 소리가 술 사다 놓은 것 있냐니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지민과의 통화가 종료됨과 동시에 호석의 핸드폰이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저장되어있지 않은 번호. 원래 저장되어있지 않은 번호로부터 걸려온 전화는 받지 않는 편이나, 지민과 관련된 사람일 것 같아 호석은 통화 거절이 아닌 통화연결 쪽을 택했다.
" 여보세요? 박지민 학생 형 핸드폰 맞나요? "
" 예? 예, 맞습니다. "
" 저 지민이 담임입니다. "
지민이가 학교에서 사라졌습니다. 아이들이 뭐라고 수근덕거린 모양인데 그걸 들었는지…. 혹시 연락이 왔다거나 그러진 않았나요? 수화기 넘어 들려오는 지민의 담임은 도저히 알 수 없는 말만 해왔다. 뭐라고 수근덕거렸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결국 호석은 일단 나중에 연락드리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학원이고 뭐고, 일단 집에 가봐야 해. 학원 문만 일찍 열었을 뿐이지 수업이 시작하려면 아직 멀었다. 그나마 다행이네. 참 오랜만에 휴강 문자를 보내보는 것 같다. 지민을 처음 만나던 날도 그랬었지.
버스를 기다리는 것조차 무언가 불안하여 급한 대로 택시를 잡아탄 호석은 채 10분이 걸리지 않아 집에 도착했다. 조급한 마음에 몇 번이나 비밀번호를 틀린 호석은 작게 욕설을 내뱉으며 자켓 안쪽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냈다. 문이 열리고, 호석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현관에 가지런히 놓인 지민의 무용 구두였다. 그리고 들려오는 물소리. 커튼이 쳐져 있어 어두컴컴한 집안과는 대조되는 환한 빛이 화장실 문틈에서 새어 나오고 있었다. 박지민! 설마 하는 마음에 문을 연 호석의 눈에 들어온 건, 자신이 왔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반쯤 정신이 나가 보이는 지민이었다. 지민은 욕조에 몸을 뉘인 채 오열하고 있었는데, 그동안 함께 살면서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모습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호석이 생각하던 그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 지민아. "
어르고 달래 겨우 진정시켰다. 아침까지만 해도 웃으면서 선서문을 읽던 애가 지금 왜 이러고 있는 건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분명 아까 지민의 담임이 그랬었지,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뭐라고 하는 걸 들은 모양이라고. 그게 무슨 말이었는지, 호석은 알아야 했다.
" 갑자기 왜 그래? 학교 잘 가놓고. 무슨 일 있었어? "
" 예전에 형이 그랬었죠, 나중에 나이 들면 술 마시자는 소리가 절로 나올 거라고. "
" 그랬었지. "
" 술을 마시면 정말 즐거워져요? "
" 넌 아직 안 돼. 열일곱밖에 안 된 놈이 뭔 술이야. "
" 오늘 딱 하루만, 안 돼요? 형도 오랜만에 마시면 좋잖아. "
이거 완전 모순덩어리네. 이거 우리 아버지가 알면 날 죽일지도 모르는데, 너 진짜 비밀로 해야 한다? 알겠으니까 빨리 사 와요. 기다리고 있을게. 지민의 성화에 못 이겨 편의점에서 봉투 가득 술을 사온 호석이 돌아왔을 때, 식탁 위에는 어디서 구했는지 지민이 올려놓은 잔 두 개가 나란히 있었다. 어이 박지민이, 준비성 철저한데? 급해서 안주는 그냥 과자로 대충 사 왔다. 술만 마시면 속 다 상하니까 안주 먹어가면서 마셔야 해. 알겠지? 고개를 끄덕인 지민이 조용히 과자 봉투를 하나 뜯으며 웃었다. 이 와중에도 형은 내가 좋아하는 과자만 사 왔네요.
" 그래서, 무슨 일인데? 사실대로 다 말해줬으면 해. 아까 선생님한테 전화 왔다. "
" 내가 고아가 아니었나 봐요. 다들 부모가 얼마나 대단한 작자길래 뒷돈 쑤셔 박고 수석으로 들어왔냐고 하더라구요. "
" 미친, "
" 그동안 내가 뭘 해온 건가…. 지난 시간을 전부 부정당하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숨이 턱 막히더라고요. "
멋대로 집에 와버린 건 미안해요. 그냥 그 자리에 계속 앉아있으면 내가 미쳐버릴 것 같았어.
결국 또 터져버리고 말았다. 언젠가 지민이 형, 형은 왜 이렇게 잘 울어요? 완전 울보네 울보. 라며 놀렸던 적이 있었지. 그때 다시는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눈물 한 방울이 호석의 잔 위에 떨어져 작은 파동을 일으켰다. 그게 보기 싫었는지 호석은 그대로 술을 입에 털어놓았는데, 이상하리만큼 술맛이 달게 느껴졌다. 원래 이거 엄청 쓴 술인데. 내 눈물도 섞였으니까 조금은 짠맛도 날 텐데. 오랜만에 마셔서 그런가, 이 술은 무지 달았다.
지민의 일은 일단 아프단 걸 핑계로 일주일 정도 학교를 빠지는 것으로 합의 봤다. 안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 커다란 상처 하나 가지고 있는 아이에게 다음날 바로 등교하라고 할 만큼 호석은 매정하지 못 했다. 그저 일주일 동안 마음을 정리한 후에 학교에 돌아가기로, 그렇게 결정했다. 그동안에 연습이나 열심히 하고 있어. 너 걔들 앞에서 보여주고 싶지 않아? 증명해야지. 내가 이래서 수석이라고. 위로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호석의 알쏭달쏭한 말에 정신을 차렸는지 지민은 아침 일찍 호석의 학원으로 가 하루 종일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주일, 지민은 엄청난 수면부족 상태였다. 그래도 호석과의 약속은 지켜야 하기에 졸린 눈을 비비며 등굣길에 나섰다.
이제 웅성거리는 애새끼들 따위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쟤들에게 신경 쓴다고 흘러간 시간들이 엄청난 낭비처럼 느껴졌다. 바보처럼 이제 와서 모든 것을 포기할 생각은 절대 없다. 그냥 나는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이 악물고 열심히만 하면 되는 거니까. 실력을 보여준다면 아무 말도 못하고 입을 닫을 놈들에게 감정 소모가 너무 심했음을 깨달았다. 그나저나 연습한답시고 잠을 많이 못 잔 탓에 눈이 계속해서 감겨왔다. 빨리 교실에 들어가 책상에 엎드려서라도 자야겠다고 생각한 지민은 서둘러 교실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때였을까, 어깨를 잡아오는 누군가의 손길에 지민은 뒤를 돌아보았고, 그곳에는 성이름이 있었다.
둘 중 하나였다. 닮은 사람이거나, 내가 벌써 잠들어 꿈을 꾸고 있는 중이거나.
잠시 당황하긴 하였으나 이게 실제 상황일 리 없다고 판단한 지민은 간단하게 사과한 후, 이름을 지나쳤다.
3년 만의 재회였으나 단 5초 만에 끝나버린, 참으로 안타까운 재회였다.
그날로부터 박지민과 성이름이 다시 만나기까지는 딱 두 달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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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좀 많이 슬펐죠? 지민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래도 걱정 마세요 드디어 달달이라는 것이,,,,,,나옵니다. 네. 나와요. 제목도 그렇곸ㅋㅋㅋㅋ어둡어둡할것같기만 하지만....나오네요. 다음 편에 !! 기대해주세요 >< 어느덧 태형이 생일도 지나가고 2016년의 마지막 날이 되었네요. 참 저에게도 방탄에게도 뜻깊었던 한 해가 아닐까 싶습니다. 모두 2016년 마무리 잘 하시고 내년에 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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