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우유
교장이 복도를 돌다 우리 반을 보면 기절하지 않을까 싶다.
이건 뭐 인강도 아니고……. 단체로 다 퍼자고 있고 선생 혼자 입 아프게 떠드는데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진풍경이다.
따라서 여름방학 보충은 강제가 아니라 자율로 해야 한다. 낮 열두시까지는 기본으로 취침하던 녀석들이 아홉시까지 억지로 학교에 끌려나와 책상에 앉혀진 채로 지루한 수업을 듣고 있는데 잠이 쏟아지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라서 일이교시는 책상에 엎어져있고, 잠이 깬 삼사교시도 마찬가지로 책상에 누워 멍 때리거나 박경이 하는 모양을 지켜보며 시간을 때우는 게 전부였다.
흐아암. 이제 점심시간까지 약 십분 정도 남았다. 나는 팔을 베고 비스듬히 누워 경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커튼을 치지 않은 탓에 따사로운 오전 햇살이 교실 안에 흘러넘치고 창가에 앉은 박경의 옆얼굴이 금박을 붙인 듯이 테두리가 번쩍번쩍 빛이 난다. 초콜릿 눈동자가 빛을 받고 색이 더 연해져서, 마치 호박 보석을 보는 것 같다. 왠지 경이를 보고 있으니 입가가 풀리는 게 기분이 나른해진다.
드디어 경이가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걸까? 오늘따라 아침부터 나를 대하는 태도가 영 조심스럽기 그지없었다. 내가 말만 건네도 통나무처럼 뻣뻣하게 굳어서 마냥 목소리를 떠는데 우스운 걸 넘어 불쌍하기까지 했다. 자꾸 눈치 보면서 수업 중에 몰래 날 힐끔힐끔 살피는 것이 잘은 몰라도 아마 사과할 타이밍을 엿보는 것 같다.
아, 사과하니까 문득 경이가 사과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나는 우유를 좋아하고. 그래서 경이가 한참 연구 중인 사과우유가 어쩐지 우리를 닮았다고, 쏟아지는 햇살 속에서 강아지처럼 귀엽게 고개를 살랑살랑 움직이며 수업을 듣는 경이를 보며 나는 실실 웃으면서 생각했다.
“오늘은, 어, 그러니까, 어, 어어 종례가….”
우리 담임쌤 성함은 안재효. 사기라는 말이 튀어 나올 정도로 잘생겼다. (경이만큼은 아니지만) 눈도 크고, 키도 백팔십 넘고, 콧날도 오똑한 것이 여자 여러 울렸을 외모다. 생김새만 보면 카리스마 폭발, 얼굴로 반 아이들을 발라버리고 교감은 물론 교장까지 자기 무릎 아래에 꿇게 하며 종횡무진 학교를 제패할 것 같은데 성격은 의외로 아주 덜떨어져서 입만 열면 어버버 어버버 거린다. 외국어도 아닌 모국어가 저리도 느리고 서툴러서야 자기보다 잘생긴 사람은 전부 적이라고 간주하는 남고에서 살아남기 힘들 거다. 말실수 할 때마다 꼬투리 잡기 좋아하는 녀석들은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데, 순진한 담임은 혼내지도 못한 채 어쩔 줄 몰라 쩔쩔맨다. 그래서 내가 별명도 지어줬는데 귤이다. 까야지 맛있는 귤.
어쨌든 오늘도 담임은 자기보다 한참 어린 것들의 장난에 놀아나 어제처럼 눈물 그렁그렁 울상인 채로 쫓기듯이 퇴장했다. 뒤가 좀 구리긴 하지만 어쨌든 드디어 학교가 끝났구나아아. 얼씨구 차차차 신난다 닐리리야 닐리리맘보.
“경아! 오늘 울 집에 놀러 와라.”
경이가 도망가기 전에 나는 얼른 녀석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희희낙낙해서 말했다.
“팔 치워.”
박경은 어깨동무가 불쾌했는지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고 거칠게 몸을 뒤틀었다. 덕분에 내 팔은 허공에 불쌍히 버려졌다. 강제로 내동댕이 당한 내 팔을 보더니 경이가 좀 미안한 표정을 짓다가, 갑자기 뭔가가 떠올랐는지 뚫어지게 나를 응시했다. 나를 통해서 무언가 얻어 내려는듯한 살벌한 눈동자. 의심과 기대에 섞인 경이의 얼굴을 보니 괜히 이에 고추라도 낀 것 같아 머쓱하니 입을 가리고 뒤로 물러났다. 얘가 대체 왜 이러나 싶다. 사과를 할 거면 부담스럽게 가만히 있지 말고 뭔 말을 하던가. 나는 정말이지 이런 무겁고 불편한 침묵이 싫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거지 어정쩡한 이런 분위기, 진심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죠.”
“어.”
“오늘 무슨 일 없었어?”
“…?”
꼭 내게 무슨 일이라도 있어야만 한다는 식의 말투는 뭘까. 당황해서 미간을 찡그리자 박경은 뭐가 마음에 안차는지 얼굴이 차갑게 식어서는 입술을 꾹 깨문다. 뭐야, 뭐, 또 뭐가 불만인데. 어제 하루종일 피똥까지 싸가며 관계를 회복해놨는데 또 삐지면 골치 아프다. 경이의 어두운 얼굴을 보자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앗!”
“왜?”
“저거 너 책상 밑에 봐봐, 뭐 있는 거 같아!”
“…엥?”
뜬금없는 경이의 외침을 따라가 보니 정말 내 책상 서랍에 하얀 종이 같은 것이 얼핏 비쳤다. 마네킹 같은 뻣뻣한 동작으로 책상 밑을 가리키는 경이를 보고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됐어, 내꺼 아냐. 그냥 가ㅈ…….”
“아니. 꼭 확인해보자!”
그냥 가려니까 경이가 울상인 얼굴로 내 팔뚝을 두 손으로 강아지처럼 낑낑 잡아끌었다. 먼저 경이가 터치를 해온 건 일억 광년만의 일이라 나는 입고리가 찢어진다. 그래서 평소라면 신경 쓰지도 않았을 책상 서랍을 더듬어 기특한 종이 쪼가리를 꺼냈다.
“이제 가자.”
“…그거 확인 안 해봐?”
“몰라, 버릴 건데.”
내거도 아닌데 뭐하러봐, 라고 중얼거리는데 돌연 박경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단 몇 초만의 일이었다. 안색을 싹 굳히고 입은 지퍼를 채우고 싸늘하게 나를 응시하는데 얼마나 무서운지 등 뒤에 식은땀이 또르르 떨어질 지경이었다. 도대체 뭐가 또 불만인거야! 당황을 넘어 황당하기까지 하다. 박경은 짜증난 티가 팍팍 느껴지는 한숨을 내쉬면서 앞머리를 후- 불어 넘기고는 껄렁하게 말했다.
“우지호, 너, 내용이, 궁금하지도, 않아?”
박경 로보톤 또 나왔다. 무슨 대본 읽어? 연기해? 경이는 이 종이의 정체가 매우 엄청 격하게 궁금했던 것이다. 진작 그렇게 말하던가. 나는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다른 한 손으로 경이에게 종이를 내밀었다.
“정 궁금하면 너 봐,”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경이의 얼굴이 더 이상은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싸늘하게 식었다. 실수라도 경이의 얼굴을 만지다간 그대로 동상 걸릴 것 같았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지호야.”
“…네, 네?”
“같이 보자?”
“…네엡.”
결국 나는 꼬리를 말고 경이가 보는 앞에서 꾸깃꾸깃 접혀진 종이 쪼가리를 펼치기 시작했다. 분명히 전 책상 주인이 공문 받은 거 귀찮아서 대충 꾸겨서 책상 안에 짱 박아둔 것 같은데 이게 뭐라고 그렇게 집착을 하는지. 사과우유 때부터 알아봤지만 경이는 정말 사소하고 불필요한 것에 유난히 더 민감하게 굴었다.
『To. 우지호
하이. 내가 누군지 궁금하지?ㅋㅋ 절대로 안알려줄거임ㅋㅋㅋㅋ맞춰보려면 맞춰보든가~ 어차피 못맞출게 뻔하지만ㅋ 이제부터 평소에 너한테 하고싶었던 말을 편하게 적을테니까 눈 똑바로 뜨고 마음속 깊이 새겨두도록. 존나 우지호, 너.. 왜 날이갈수록 잘생겨지는데ㅡㅡ?? 섹시해 질거면 내앞에서만 섹시해지던가... 글고 아무한테나 찰싹 붙어서 앵기는 버릇좀 고치고 제발 눈치좀 기르길; 둔한 것도 죄다; 마지막으로 요즘 널 볼때마다 생각나는 시가있는데 그건 뒷장에 적어놨엉 그럼 이만ㅂㅂㅂㅂㅂ
From. 우주에서 제일 잘생긴 아이가』
공문 찌꺼기인줄 알았는데 의외로 종이의 타겟은 바로 나였다. 잠깐, 이거 내 이름 쓰여 있는 거 맞지? 눈을 감았다 떴다 반복해 봐도 내용은 변함없이 그대로였다. 잘못 본건 아니라는 소리인데……. 나는 존나게 어이가 없었지만 빠르게 종이 내용을 다시 스캔했다. 어이상실인 채로 종이를 뒤집자 앞면에서 말했던 그 시라는 게 삐둘빼뚤한 글씨로 적혀있었다. 나름 신경 썼는지 연필로 적혀있던 앞장과 달리 뒷장은 분홍색 볼펜으로 적혀있었다.
『너에게로 가는
그리움의 전깃줄에
나는
감
전
되
었
다.』
미친! 세상에 이렇게 오글거릴 수가 있다니. 으아아악 고대기, 누가 내게 고대기를 줘! 얼굴 표정을 어찌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후아후아, 우지호 침작하자. 침착해. 나는 냉정해 질 수 있어.
일단 글씨가 매우 더러운 걸 보니 누군지는 몰라도 악필의 소유자임이 분명했다. 또한 수신자는 나와 같은 성별. 글씨체를 보나, 말투로 보나 분명 시커먼 사내놈임에는 확실했다. 게다가 …여기는 금녀의 공간인 남고라서 섹시한 여고생이 몰래 러브레터를 주었다거나 하는 그런 망상의 여지가 애초에 존재할 수가 없었다. 나는 종이를 이리저리 훑어보면서 좀처럼 풀리지 않는 단 하나의 궁금증에 눈썹을 치켜떴다. 꿀꺽, 경이가 침 삼키며 긴장하는 게 느껴졌다.
“경아.”
“……어, 어?”
“대체 이 새끼는 무슨 의도로 내게 이걸 쓴 걸까?”
내가 한없이 진지한 얼굴을 해서 묻자 경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윽박질렀다.
“내, 내가 썼냐? 내가 썼어!?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모르면 아닌 거지 왜 자꾸 아까부터 경이가 과민반응인지 이해가 안 간다. 잡아 먹을듯이 날 노려보는데 너무 억울하고 황당하고 서글프다. 답답한 건 나라니까? 뒤처리 난감한 편지 비스무리한 이 종이 쪽지를 보며 나는 푹푹 한숨을 쉬었다. 날 엿 먹이려고 썼다면 놈의 목표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이 해괴한 편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도통, 조금도 모르겠다. 박경처럼 심리를 알 수 없는 녀석의 소행임에 틀림없었다.
“그, 근데 내용으로 추측해 봤을 때는…….”
내가 너무 심란한 얼굴로 몇 분 째 계속 종이만 뚫어져라 내려다보고 있으니 경이가 슬그머니 말문을 텄다.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하고 조심스럽게 종알거린다. 나는 희망에 휩싸여서 반짝이는 눈망울로 경이를 보았다.
“러브레터가 아닐까?”
지랄.
ㅠㅠㅠㅠㅠㅠㅠㅠㅠ으허어유ㅡㅠㅠㅠㅠㅠㅠㅠ |
독자분들 진짜... 우지호때문에 미치겠어요 ㅠㅠㅠㅠㅠ소설이 안써져ㅠㅠㅠ!!!!!!!!!!!!!!!!아아아아악 마마에서 콜라보한거 123156487번은 돌려본 것같은데,, Cocks까지...^q^ 나쥬금ㅇ<-< ㅎㅎㅎㄶㅎㅎ하ㅠㅠ 진짜 아직도 가슴 쿵쿵 두근두근 아주 난리가 아니에염!! ㅜㅠㅠ지..진정이 아니된다..☆★ 도대체 우지호는 뭘믿고 그렇게 멋있는걸까염 ㅠㅠㅠ??ㅠ?ㅠ으흑..이 마성의 남자야..ㅠㅠ 설레서 도저히 소설에 집중할수가 없..엌..ㅋ... 그래서 내용도 뭔가 좀 난잡한거같네요유ㅠㅠㅠ
결론은 제가 블락비 팬이라서 넘 행복하다그영!^~^
짘부심 터져서 때아닌 새벽에 포풍 지호 앓이해보네요..ㅎㅎ..ㅎ..ㅎ..
쮸 / 코너킥 / 바나나 / 부스러기 / 미네랄 마가레뜨 / 새주 / 설라 / 크림우유 / 망가리
님 감사드립니다!!!!! 헿헤헿 님들은 나의 비타민~ 강제 뽀뽀 받으세요 쮸압♡♡♡
((저번에 실수로 빼먹은 설라님 죄송합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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