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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wer on the sacrifice
아
가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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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쾅거리는 심장은 멈추었던 생각의 톱니바퀴를 부단히도 움직이려 애썼고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성보다도 본능에 따라 나의 다리가 이끄는 대로 집 안으로 뛰다시피 들어섰다. 아가씨를 보러 갈 때마다 나를 멈추게 했던 계단도 그저 아가씨를 향한 길이라기보단 아래에서 위로 향하게 해주는 구조물에 지나지 않았다. 그 누가 이상하게 보던, 나는 숨도 쉬지 않고 계단을 올랐고 얼마 못가 내려오는 사람에 가로막혀 멈추게 되었다. 까만 정장 바지를 따라 고개를 들다 얼굴을 확인한 후 나도 모르게 표정이 굳었다. 내 앞에 남자는 이런 나와는 다르게 뭐가 그리도 좋은지 보조개를 띄며 웃고 있었다. 어색한 눈 맞춤이 끝나고 마저 오르던 길을 가려는데 남자는 나의 앞길을 천천히 막아섰다. 미간이 찌푸려진다. 내가 입을 떼기 전에 남자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 혹시 지금 아가씨를 뵈러 가나요? ”
“ ....마차로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
“ 아뇨, 제 뜻은 그런게 아니였는데. 가만보니 우리 구면이네요 ”
“ 그게 무슨- ”
“ 아까 저랑 눈 마주쳤잖아요. ”
그가 마당에서의 나를 보았다고 생각을 하니 불쾌감이 들었다. 첫 만남부터 정도가 지나치리만치 웃는 남자에게 사교성이 좋은 사람이라기보단 사람을 쉽게 홀리고 다닐 것 같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입을 꾹 다물고 그에게 던진 시선을 거둔 체 다시 한 번 그를 지나치려 하였으나 그는 웃으며 또 나를 막아섰다.
“ 왜요, 내가 그쪽 아가씨 건드렸을까봐? ”
“ 그만... 하시죠. ”
“ 그랬을 거 같아요?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궁금해서 묻는 거예요. ”
“ ..아닙니다. ”
“ 그렇다면 이 주먹 좀 풀어봐요. 무섭게 왜 그래 ”
어느새 쥐어진 나의 두 손을 잡으며 쓰다듬는 남자를 강하게 뿌리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자는 웃음을 잃 지않았다. 처음으로, 미움이란 감정을 이 남자에게서 느껴본다. 입술은 왜 자꾸만 떨리는 건지. 더 이상 그와의 대면을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마치 요오카이 부인과 단둘이 있을 때 기분이 든다. 격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가씨의 생각이 간절히 났다. 그리고 이런 내 마음을 읽으셨는지 아가씨의 방이 열렸다. ‘ 재현씨. ’ 아가씨의 목소리가 들렸고 그것이 남자의 이름인듯 했다. 아가씨는 내려오다 나를 보고 조금 놀라신 눈치였다.
그런 아가씨를 보고 나는 그만 고개를 숙였다. 아가씨는 남자를 배웅하러 나오셨고 나는 둘의 뒤에 몇 발자국 떨어진 거리에서 아가씨의 뒷모습을 보며 따라갔다. 1층에 다다르고 밖으로 나갈 줄 알았던 아가씨는 집 안에서 그를 보냈다. 멍하니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나는 곧 뒤를 돌아보는 아가씨와 마주쳤고 차마 그 눈길을 피할 새가 없었다.
“ 잠깐, 나랑 얘기 좀 할래? ”
나는 대답 없이 느린 걸음으로 아가씨에게 다가갔다. 아가씨는 내가 곁에 오자 방으로 걸음을 옮기셨다. 말없이 계단만 오르던 아가씨와 나는 아가씨의 방에 들어가서도 처음 몇 초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한참을 내게 뒷모습만 보이던 아가씨가 뒤돌았다. 나는 손을 뒤로 모은 체 아가씨의 눈이 아닌 바닥에 시선을 두었다. 아가씨가 나에게 다가옴을 느꼈다. 내 앞에 멈춘 가지런한 구두가 보이고 나서야 고개를 들었다. 나의 어두운 표정을 읽으신 건지, 아가씨는 살짝 시선을 떨구었다. 그 모습을 보는 내 마음이 아려온다.
“ 나한테 묻고싶은거 없니? ”
“ 제가 감히 묻고싶은게 있을리가요.. ”
“ 아닌데, 표정은 궁금증으로 가득찬 얼굴인걸... ”
아가씨의 말에 나는 급히 고개를 숙였다. 묻고 싶은 게 셀 수 없이 많았다. 하지만 내 주제에 아가씨에게 질문을 할 수가 있으랴. 아무런 말도 못하고 눈동자가 돌아가는 소리라도 아가씨에게 들킬까 봐 겁이 났다.
아가씨는 나의 표정만 보아도 내 마음을 훤하게 꿰뚫어보는데 나는 왜 아가씨의 표정에서 그 무엇도 읽어낼 수가 없는걸까.
“ 욕해도 좋아. ”
“ ...아가ㅆ, ”
“ 물건을 훔쳐도 좋아. ”
“ ..... ”
“ 하지만 민형아, ”
“ ..... ”
“ 나에게 거짓말만 하지마. ”
눈도 못 마주치고 죄송을 빌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던 나의 고개를 들어 올린건 아가씨였다. 아가씨는 조금씩 가까이 다가오며 나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아가씨의 행동에 바지춤에서 맴돌다 허공에서 갈 곳을 잃은 나의 두 손에 못 이겨 내 마음과는 다르게 나는 뒷걸음질을 쳤다. 아가씨는 아랑곳 않고 내가 물러난 한 발자국을 채워왔다. ‘ 아.. 아가씨... ’ 무어라 말을 하고 싶어도 주체할 수 없이 떨려오는 몸 때문에 말도 제대로 내뱉을 수가 없었다.
“ 응? 내 말 이해했어? ”
나는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손을 들어 아가씨의 손목을 살며시 감싸 쥐었다. 조심스럽게 뜬 눈앞에 아가씨가 서 있다. 나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노력하며 용기 내어 물었다.
“ 약혼할... 사람인거죠. ”
“ .... ”
“ 그런거죠.. ”
나의 물음에 아가씨의 손이 나에게서 떨어졌다. 나는 나에게서 아가씨가 멀어지는 것이 싫어 떠나려는 아가씨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아가씨의 눈가에 투명한 것이 맺힌 건지, 아니면 내 눈가가 시려오는 건지 구분도 못 할 정도로 모든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미흡한 공간 속에서 아가씨가 침묵을 깼다.
“ 너는 이해 못할거야. ”
아가씨는 알 수 없는 대답을 했다. 무슨 말이냐는 나의 물음에도 아가씨는 똑같은 말뿐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표정은 일그러졌고 꼭 잡은 아가씨의 손목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아-, 하는 아가씨의 외마디 소리에 나는 움찔하고 아가씨를 뿌리치듯 놓았다. ‘ 죄, 죄송해요 아가씨. ’ 파르르 떨리는 두 손을 바라보고 떨림을 가라앉히기 위해 주먹을 쥐어보았다. 가끔씩 이렇게 내 힘을 스스로 조절할 수가 없다. 혹시 아가씨가 나를 싫어하실까 무서웠다.
“ 나에 대해 알수록 나를 미워하게 될지도 몰라. ”
“ 저는 그러지 못해요. ”
나는 말을 마치고 옷소매로 눈가를 비벼댔다. 아가씨의 앞에서 눈물을 보이긴 싫은데, 내 몸은 왜 내 뜻대로 움직여주질 않는 걸까. 창피한 마음에 아가씨를 볼 수가 없었다. 닦아낼수록 다시 차오르는 눈물 때문에 가만히 있기도 힘들었다. 그때 아가씨의 두 팔이 내 몸을 감싸 안아왔다. 말없이 나를 껴안아주는 아가씨에 나 역시 아무 말 않았다. 한참이 지나, 내가 잠잠해지고 나서야 아가씨는 팔을 풀렀다. 내 어깨 위로 올라온 작은 두 손과 함께 아가씨와 나는 짧은 시간 시선이 엉겨붙었고,
그대로 나의 입술 위로 아가씨의 입술이 포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