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암호닉은 맨 마지막※
아
가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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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출은 처음이지? 아닌가? ”
“ 글쎄... 잘 모르겠어. ”
망토를 두르고 모자를 꾹 눌러쓴 나는 집을 나서기 전 자연스럽게 계단으로 시선이 갔다. 머리는 당장이라도 저 계단을 올라 아가씨에게 가라고 말하는 것 같다. 복희는 내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는지 서둘러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새벽 특유의 비릿한 구름 내음이 나를 가득 둘러싸고 돌았다. 복희가 마차에 먼저 올라탔다. 나는 말을 타고 있는 집사님께 목례를 하고 복희를 따라 자리에 앉았다. 달그닥 거리는 말발굽의 템포에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 점점 실감 났다. 말없이 마차 창을 바라보는 내게 복희가 물었다.
“ 어때, 답답한 집구석을 벗어난 기분이? ”
“ 너는 집이 답답해? ”
“ 당연하지. 돈만 있어도 저 집에 들어올 일은 없었어. ”
“ ..돈... ”
돈이라는 단어를 곱씹어 보았다. 복희가 아가씨의 집에 있는 이유가 돈이라면, 나는 무엇일까. 나도 돈이 많았다면 아가씨를 만나지 못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물음표 속에서 허우적대던 나는 어느 순간 잠에 들었다. 뻐근한 목을 비틀며 눈을 뜨니 광활한 평야와 들판은 온데 간데 없고 시끌벅적한 시장통 속에서 마차가 멈추었다. 몽롱한 눈을 비비며 복희를 따라 마차에서 내렸다. 오후에 제일 큰 건물 1층의 바에서 기다리겠다는 집사님을 뒤로한 채 나는 복희에게 의존하여 조금씩 걸음마를 뗐다.
아기의 울음소리. 주정뱅이의 노랫소리. 여인네들의 웃음소리. 잔과 잔이 부딪히는 소리.
식사시간을 제외하고 언제나 쥐 죽은 듯 조용하던 아가씨의 집과는 다르게 나의 귓가를 끊임없이 파고드는 복잡한 소음들이 낯설었다.
“ 뭘 그렇게 두리번거리니, 시골쥐가 상경한것 마냥 ”
“ ... 그러면 안돼? ”
“ 운이 나쁘면 좀도둑을 만날 수도 있으니 최대한 자연스럽게 다녀. ”
좀도둑이라는 말에 나는 어깨를 움츠렸다. 하지만 어디선가 풍겨오는 구수한 국밥 냄새에 자연스럽게 또 고개가 돌아갔다. 복희는 푸스스 웃으며 배가 고프냐 물었고 나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복희를 따라 들어온 식당은 바깥보다 조용했다. 밥 먹을 때는 편안한 마음으로 먹을 수 있을거 같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우리가 착석하자마자 어디선가 사람이 나타나 무어라 말을 걸었다. 나는 복희를 보며 두 눈만 꿈뻑거렸다. 복희는 자연스럽게 대처했다. 그런 복희가 새삼 대단해 보인다.
“ 너 정말 이런 것도 못해서 어쩔 거야. ”
“ 집에선 이럴 일이 없으니까.. ”
“ 평생 아가씨 집에서만 살려고? ”
“ 응, 너는 아니야? ”
“ 돈 모으면 당연히 나가서 살아야지. 언제까지 시중이나 들면서 살어. ”
복희의 말에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동영도 복희와 같은 생각일까, 혹시 민석이 형도 이런 이유로 집을 나가게 된 걸까. 나 역시 복희의 말마따나 그렇게 될는지. 영원히 아가씨의 곁을 지키고 싶었는데. 그게 내 마음만 가지곤 되는 일이 아닌 건지. 또다시 가시 돋친 덩쿨 속을 헤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더 이상은 생각을 멈추라는 건지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국밥이 식탁 위로 올려졌고 나는 자연스럽게 숟가락을 들다 복희에게 저지당했다.
“ 그냥 먹으면 맛 없어, 이거 넣어. ”
“ 이게 뭔데? ”
“ 바보야, 소금도 몰라? ”
“ 아.. 미안. ”
“ 뭘 또 미안이야. ”
“ 응.. ”
잠시 머쓱하던 나는 국을 휘저으라는 복희의 말에 다시 어깨를 펴고 숟가락을 이리저리 휘저었다. 호호 조심스럽게 뜨거움을 식히고 한 입 먹고, 또 먹고, 계속 먹었다. 숨도 쉬지 않고 먹는 나에게 복희는 물을 건넸다. ‘ 진짜 맛있다. ’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집에선 먹어볼 수 없는 전혀 새로운 맛이었다. 문득 아가씨에게도 이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거 집에 가져갈 수 있나? ”
“ 왜? 동영 주려고? ”
“ 어? 어.. ”
“ 동영은 나랑 이미 먹어봤어. 걱정 말고 얼른 드셔 ”
“ 아...그, 그냥 내가 먹고 싶어서. ”
“ 그렇게 맛있어? 그러면 집에 돌아갈 때 쯤에 사가자. ”
나는 다시 맘을 놓고 먹는데 집중했다. 그릇을 통째로 들고 들이키니 복희가 웃는 소리가 들린다. 한 사발을 들이켠 나는 휴지로 입가를 닦았다. 든든해진 배에 기분이 저절로 좋아졌다. 나중에 꼭 기회가 된다면 아가씨와 다시 들러보고 싶은 곳이다. 식사를 마친 나와 복희는 식당을 나와 다시 시장길을 거닐었다. 중간에 복희를 따라 한 가게에 들어왔다. 나를 민망하게 만들었던 복희가 입었던 옷들이 즐비했다. 나는 시선을 이리저리 피하다 유리 속 정렬되어 있는 장갑에 멈추었다. 무릎을 낮추고 여러 종류의 장갑들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그중에서도 연분홍색의 부드러운 실크로 제작된 장갑이 눈에 띄었다.
“ 이거... ”
“ 네 손님, 뭘 도와드릴까요? ”
“ 이거, 얼마에요? ”
여자의 대답에 나는 소매를 뒤적거렸다. 동영이 준 돈을 천천히 세보았다. 장갑을 사고 나면 조금은 빠듯하겠지만 큰 상관은 없었다. 나는 그대로 여자를 따라 계산대로 갔다. 옆에서 옷을 구경하던 복희가 어느새 가까이 다가왔다.
“ 세상에, 너 설마 이거 아가씨주려고? ”
“ 응. ”
“ 내껀? ”
“ 응? 못 들었어. ”
“ 너무해. ”
내가 뭐 잘못했나.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포장된 장갑을 고이 품 속에 꼭 넣어 망토를 단단히 여몄다. 그 사이에 복희는 또 기분이 좋아졌는지 나에게 이런저런 옷을 보여주며 몸에 대보고 무엇이 어울리는지 물어보았다. 딱히 무관심한 행동을 보이면 다시 토라질까 걱정돼 한 가지를 골라주었다. 옷을 갈아입으러 어디론가 사라진 복희를 기다리기 위해 나는 조금 더 가게를 깊숙이 둘러보았다. 천천히 한 바퀴를 빙 돌고 가게 안의 짙은 향수 냄새가 거북해 잠시 밖으로 나왔다. 어디론가 바삐 자신들만의 목적지를 향해 오고 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던 도중 인파 속에서 한 남자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 민석이 형.. ”
나는 어느새 저만치 멀어진 형으로 보이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달리기 시작했다. 남자는 곧 골목으로 사라졌고 사람들에게 치이며 간신히 골목으로 들어온 나는 휑한 그 모습에 맥이 풀렸다. 왜인지 복희가 날 찾고 있을 것 같았지만 나는 골목을 따라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미처 몰랐던 샛길에서 누군가 나를 벽으로 강하게 밀쳐내 피할 틈도 없이 손목을 뒤틀린 체 얼굴을 벽에 맞대고 섰다. 얼마 안있어 손을 풀어준 그에 뒤를 돌았다.
“ ...민형이 너가 어떻게- ”
* * *
나, 복희, 민석이 형은 나란히 둥근 테이블에 앉았다. 형은 말없이 한동안 차를 마시고 복희 역시 말이 없었다. 복희도 형을 반가워할 줄 알았는데, 예상과는 다른 분위기에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형을 만나 너무 기뻤다.
“ 형은 예나 지금이나 걸음이 무척 빠른 것 같아요. ”
“ 하하, 마음이 여유롭지 못해서 그래. 그나저나 복희는 많이 예뻐졌네. ”
“ 형 저랑 같이 집으로 가요. 아가씨가 무척 반가워 하실거예요. ”
“ ...이제 가볼 시간이 다 된 것 같은데 민형아. 집사님이 기다리실거야. ”
“ 응? 벌써? ”
“ 오라버니 반가웠어요. 저희 이만 가볼게요. ”
“ 잠깐만. ”
알다모를 복희의 이상한 행동에 나는 복희를 다시 자리에 앉혔다. 나는 형의 손을 잡고 말했다. ‘ 집에 같이 가요. 형 ’ 나의 말에 민석이 형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복희를 바라보았다.
“ 그래도 될까 복희야? ”
“ .... ”
“ 그걸 왜 복희한테- ”
복희는 자리에서 튕기듯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너무 순식간이어서 복희를 잡지도 못했다. 나는 이제 곧 형과 헤어져야 한다는 직감에 테이블 위 휴지를 뽑아 펜과 함께 형에게 내밀었다. 편지를 할 수 있는 주소를 적어달라는 말에 민석이 형은 내 손을 도로 집어넣으며 물었다.
“ 혹시 아가씨가 낭독회를 여시는지 아니? ”
“ 아 네! 오늘부터 낭독회 준비를 한다고 복희에게 들었어요. ”
“ 확실하지? ”
“ 그럼요. ”
“ 오늘 나를 봤다는 건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렴 민형아. ”
“ 왜요..? ”
“ 형 부탁이다. ”
민석이 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을 따라 일어난 나는 아쉬움에 형의 손을 놓지 못하였다. 형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나도 형을 따라 웃어보았다.
“ 형 정말 저랑 같이 안 가실 거예요? ”
“ 곧 갈 거야. ”
“ 정말요? 언제요? ”
“ 낭독회가 열리는 날. ”
정말이죠? 재차 형에게 확인을 받은 나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오후를 가리키는 시곗바늘에 어쩔 수 없이 형과의 다음을 기약하며 나가려다 형의 부름에 멈춰 섰다.
“ 고맙다 민형아. ”
“ 네? ”
“ 형은 잊지 않아줘서. ”
“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형. 제가 형을 어떻게 잊어요~ ”
“ ...그래, 낭독회 날 보자. ”
“ 네 형, 기다릴게요. ”
나는 형에게 인사를 하며 밖을 나섰다.
어렴풋이 ‘ 정말 고마워. ’ 라는 민석이 형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항상감사해요▼
세일러문 안돼 이불킥 로로 수진리 딱풀 봄날 왕왕이 길성이 제이스 댜댜 약간 민형도령 꼬미 핫초코 도룽
다음편부터 오랫동안 뵙지못한 분들은 암호닉에서 볼 수 없으실것 같아요 ㅜ_ㅜ
늘 말씀드리지만 항상 부족한 제 글 봐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