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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금(자동X/반복X)이 총 3개 있어요.

 글을 다 읽어도 브금이 울린다면 위에 있는 브금을 꺼주고 새 브금을 켜주세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내 인생은. 


 무릎 꿇은 내 앞에 왕처럼 군림하고 있는 저년의 눈에 처음 들었을 때부터? 이 학교에 전학 와서 처음 발을 들인 순간부터?

 확실한 건 내 남은 학창 시절은 모두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나날이 될 것이며, 날 구원해줄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야. 너 지금 딴 생각해? 진짜 죽고 싶구나?"




 말 한자 한자에 힘을 주며 비아냥거리는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손이 내게 날아왔다. 나는 별 반항조차 하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고통이 뺨을 에워쌌다.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반사적으로 맞은 부위를 손으로 감싸며 눈을 깔았다. 괜히 눈을 치켜떴다가 당할 불상사를 예방하기 위함이었다. 깔깔깔. 기분 나쁜 하이톤의 웃음소리가 귀를 찔렀다. 




 "탄소야, 아파? 아프지. 그러게 왜 그랬어."


 

 

툭툭. 내 뺨을 건드리는 손은 결코 사람을 대하는 손길이라곤 볼 수 없을 정도로 무성의했다. 길게 자란 그녀의 손톱이 뺨을 파고들다 떨어졌다. 억울함에 몇 번 입을 달싹이다 다물었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어? 혀끝까지 매달린 말이었다. 하지만 난 잘 알고 있었다. 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남는 건 지독한 생채기 뿐이라는 것을. 이윤지, 종 칠 시간 다 됐어! 가자! 아까부터 상황을 관망하던 여자애가 외쳤다. 아. 벌써..? 나른하게 뱉어진 말에 아쉬움이 감돌았다. 이윤지가 서서히 일어나 내게서 멀어졌다. 걸어가면서도 끈질기게 닿던 시선은 종소리가 울려서야 부산스레 떨어졌다. 


후. 나는 간헐적으로 깊게 숨을 내쉬었다. 발갛게 부어올랐을 볼이 얼얼했다. 익숙하게 주머니에서 마스크를 꺼내 썼다. 

걸리지도 않은 감기 행세를 시작한 지는 꽤 됐다.







[방탄소년단/김남준] 수렁 | 인스티즈











 매일 일요일 밤이면 나는 열리지도 않는 아파트 옥상 문 앞에 주저앉아 절규한다. 지지리도 흐르지 않는 학교에서의 시간을 저주하고, 나를 괴롭히는 년들의 죽음을 소망하며 이 와중에도 잘만 살아 숨 쉬는 내 몸에 절규한다. 차라리 이번 잠이 영원한 잠이 되기를. 잠든 것처럼 죽기를 바라지만




 "이루어질 리가 없잖아."




웅크린 몸에 얼굴을 숙였다. 무릎을 감싸고 있는 천이 서서히 젖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온몸이 서럽게 헐떡였지만 소리는 나지 않았다. 슬프게도, 나는 소리 내어 우는 것보다 소리 없이 우는 것이 더 쉬웠다. 하나밖에 없는 딸을 위해 상경하신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난 절대 소리내어 울어서는 안됐다. 울음소리는 내 몸에 차곡차곡 쌓여 독으로 변질되고 있었다. 저 독이 내 머리를 뒤덮는 순간 더 이상 살아가지 못하리라, 예감했다.




  [김탄소]

  [너 이번 기말고사 필기 해놨어?]




갑자기 울리는 진동에 놀라 몸을 떨었다. 벌어진 주머니 새로 빠져나가 떨어진 핸드폰 액정 위에 '이윤지'라는 이름이 떠있었다. 나는 한동안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다 급하게 대화창을 눌렀다. 연락은 늦게 확인할수록 안 좋았다. 기말고사 필기라. 이곳에 온 이유가 성적인 만큼 공부만큼은 열심히 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응


몇 번의 망설임 끝에 확인을 누르려는 순간. 여태껏 내가 해온 노력, 시간 그리고 그년의 진저리 나는 괴롭힘이 눈앞을 스쳐갔다.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이 대화가 어떻게 이어질지. 그 생각을 하자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신경질적으로 문장을 지웠다.




 [아니다]

 [너 같은 년 필기를 어떻게 믿고]




나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아직 이곳에 전학와서 시험을 치르지 않았으니 이윤지는 나의 실력에 대해 잘 몰랐다. 학교에서 깨어있는 시간은 급식 시간, 쉬는 시간 뿐이니 내가 허벅지를 꼬집어가며 열심히 수업을 듣는다는 사실도 모를 것이다. 




 [너]

 [김남준 알아?]




김남준. 김남준이라면 우리 학교 학생이 모르면 간첩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유명한 애였다. 그는 1학년 땐 전교 부회장, 2학년 땐 전교 회장을 역임했으며 모의 성적 상위 1%에 들었다. 전교 1등은 물론 경시대회, 올림피아드 상까지 모두 쓸어오는 괴물 같은 아이. 때문에 모든 선생님들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걔 필기 훔쳐와]

 [하루 줄게]




마지막 톡을 확인한 순간 나도 모르게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욕설과 폭력. 이제는 하다 하다 도둑질까지 시키다니. 손이 경련이 일어난 것처럼 덜덜 떨렸다. 아무리 이윤지가 무섭더라도 내게도 어느 정도 삶의 기준이란 게 있다. 해도 되는 짓과 해서는 안될 짓은 충분히 구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얘는 도대체 날 뭘로 보는 거지? 한동안 체념을 앞세우며 숨겨둔 분노가 차올랐다. 




 [필기 훔쳐오면]

 [더 이상 안 괴롭힐게]




하지만 대화창에 뜬 말을 본 순간 손이 떨릴 정도의 분노는 한순간에 수그러들었다. 하하. 실성한 웃음이 마구 새어 나왔다. 나라는 인간의 바닥이 얼마나 끔찍한지 소름 끼치게 와닿았다. 아무도 나를 구원해 줄 수 없다면 내가 개척해나가야만 한다. 비록 그 길이 험난하고 비윤리적이더라도. 




 -약속 지켜




 나는 어디까지 추락하는 걸까.



 



***






 기간은 하루였다. 매일 아침이면 아침밥 먹듯 내게 찾아와 시비를 걸던 이윤지가 오늘은 나를 건들지 않는다. 아마 어젯밤의 그 약속 때문이리라. 나는 자리에 도착하자마자 책상에 가방을 걸고 빠르게 반을 벗어났다. 다른 반인 김남준의 필기를 훔칠 수 있는 시간은 그 반의 이동시간뿐이었다. 그마저도 주번이 자물쇠를 걸면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나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김남준의 반 앞에 섰다. 


남자반이어서 그런지 반을 드나드는 남학생들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머리를 넘기며 게시판 위에 붙어있는 시간표를 빠르게 훑어내렸다. 미물영화일음체. 6,7교시가 이동시간이었다. 기회는 이때뿐이다. 그 지긋지긋한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기회.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그렇게 가달라고 아무리 빌어도 흐르지 않던 시간은 이럴 때만 야속하게 흘러갔다. 너무 긴장한 탓에 입맛이 없어서 점심을 걸렀다. 모두가 급식실에 가서 조용한 틈을 타 김남준의 반으로 슬쩍 갔으나 밥을 먹지 않고 컴퓨터를 하는 남자애가 있어 포기했다. 




 "여기서 수업을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 꼭 예습해오세요."




선생님이 교탁에 책을 정리하며 경쾌하게 말한 순간 종이 울렸다. 오늘따라 유난히 졸린 문학 수업 때문에 종이 친 순간 대부분의 아이들이 책상에 얼굴을 박았다. 전멸이네, 전멸. 살아남은 몇 안되는 아이들이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대부분이 잠에 취해 쓰러져 있는 와중에 나만 정신이 멀쩡했다. 아니, 멀쩡하다 못 해 아찔했다. 곧 6교시의 종이 울릴 것이다.




나는 눈동자를 굴리며 조심스럽게 우리 반을 벗어났다. 그리고 김남준의 반으로 향했다. 그의 반은 음악실로 이동했는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슬쩍 고개를 좌우로 돌려 복도에 몇 명이 있나 살폈다. 돌아다니는 사람이 많아 시끌벅적했다. 나무를 숨기기 위해선 숲으로 가야 한다. 나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사람이 별로 없어 조용한 복도보단 차라리 사람이 가득 차서 시끄러운 것이 더 나았다. 어차피 제 할 일 바빠 주변엔 신경도 안 쓰고있을테니 나 같은 건 딱히 관심도 가지지 않을 것이다. 


자물쇠는 장식처럼 걸려있을 뿐 제대로 잠겨있지 않았다. 나는 주변에 의심을 사지 않도록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손길로 자물쇠를 뺐다. 그리곤 불도 켜지 않고 반에 들어갔다. 대낮이지만 암막 커튼으로 가려진 터라 반은 깜깜했다. 어젯밤 수십 번 상상한 그림을 그리며 빠르게 김남준의 책상으로 걸어갔다. 책상 밑에 손을 넣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손이 멈칫했다. 아까부터 불안함에 깨물고 있던 입술에서 비릿한 맛이 났다. 나..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필기 훔쳐오면 더 이상 안 괴롭힐게




대화창에서 본 문장이 눈앞에 빠르게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래. 이번 한 번만. 딱 한 번만. 어차피 멍청한 걔는 필기를 본다 해도 큰 점수를 받지 못 할 것이다. 김남준은 여전히 전교 1등을 할 것이며 나는 괴롭힘에서 벗어날 수 있다. 김남준에게 피해도 없고 나는 학교에서 편하게 숨 쉴 수 있다. 그도 이런 내 사정을 알면 용서해주지 않을까? 말도 안 되는 합리화를 하며 빠르게 손을 놀렸다. 하지만 아이들 사이에서 소문처럼 떠도는 그의 필기 노트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혹시 이거 찾는 건가."




소름 끼칠 정도로 낮은 저음이 들렸다. 너무 놀라면 움직일 수 없다는 게 사실인걸까.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눈동자만 슬쩍 들면 공책이 내 앞에서 힘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공책 위에 써진 단어에 집중했다. 김남준. 공책 위에 정갈하게 써진 것은 분명 김남준이었다.




 "사람이 물어보면 대답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특히 남의 필기를 훔치려고 한 도둑이면 더욱더. 그 말을 듣는 순간 빠르게 상황 판단이 되었다. 좆됐다. 한마디로 내 인생은 끝났다. 나는 차오르려는 눈물을 애써 삼키며 고개를 들었다. 그곳엔 흥미와 불쾌가 뒤섞인 눈빛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눈빛은 차갑고 날카로웠으며 노골적이었다. 눈빛이 내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순간 겁이 났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허둥지둥 도망쳤다. 너무 정신없이 도망친 탓일까. 채 몇 걸음도 가지 못하고 가방끈에 걸려 넘어졌다. 우당탕탕. 넘어지는 책상의 소리가 반을 울렸다.




 "생각보다 멍청하네. 소용없는 거 네가 제일 잘 알잖아?"




넋을 놓고 넘어진 그대로 주저앉았다. 넘어지면 당연히 찾아와야 할 통증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먹이를 찾으러 온 육식 동물처럼 여유롭게 그가 다가왔다. 어느새 내 앞에 선 그가 천천히 손을 뻗어 내 턱을 쥐었다. 나는 힘없이 그의 손길대로 고개를 들었다. 




 "거래할까, 우리."




높낮이 없는 말. 하지만 그건 분명 내게 던진 물음이었다. 나는 멍하니 그의 눈을 바라봤다. 어느새 흥미로 가득 찬 그의 눈이 번뜩이고 있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김남준이 정말 내가 알고 있는 김남준이 맞는 걸까. 처음 전학을 온 후 강당에서 보았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목 끝까지 잠근 와이셔츠, 단정한 머리, 유순한 표정으로 사회를 보던, 내 나이 또래의 그 소년이. 




 "응?"


 "...."


 "대답."




그가 으르렁거리듯 낮게 읊조렸다. 나는 겁을 집어먹은 초식 동물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한 채 넋을 놓았다. 무서움에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가 턱을 쥐고 있던 손을 옮겨 상처 난 입술을 눌렀다. 아! 나도 모르게 작은 비명을 질렀다. 겨우 피가 멎은 입술이 다시 벌어져 비린 맛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런 내 반응에도 그는 눈썹만 치켜뜰 뿐 손을 거두지 않았다. 나는 입을 앙 다물고 그를 올려다봤다. 소리 없이 흐르던 눈물이 입꼬리에 묻었다. 짜다.




 "울어서 해결되는 건 없다고 보는데."




그가 내게 주는 마지막 경고이자 기회였다. 나는 급하게 머리를 굴렸다. 거래. 김남준은 내게 거래를 제안했다. 내가 그에게 원하는 건 너무나 뻔했다. 필기노트. 하지만 나는 그가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하루에 한 번 복도에서 마주치면 그게 자주 만난 거라고 생각할 정도로 나와 그는 접점이 없었다. 그의 곁에 맴도는 수많은 수식어는 알고 있으나 그의 진정한 면모에 대해선 몰랐다. 성사하기엔 찝찝한 구석이 많았다. 하지만




 년아, 너 아까 일부러 그런 거지 나 엿 먹이려고


 탄소야, 아파? 아프지 그러게 왜 그랬어




 협박과 욕설이 난무하는 일상. 살을 떨리게 하는 날카로운 마찰음. 애초부터 내게 선택권 따윈 없었다. 

 그래. 저 지옥 같은 구렁텅이에서 벗아날 수만 있다면 이 동아줄이 썩은 동아줄이더라도, 나는. 




 "좋아."




나를, 도와줘. 입술 위에 있는 김남준의 손가락 때문에 발음하기가 힘들었지만 최대한 또박또박 말하기 위해 노력했다. 내 대답에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의 표정은 게임의 승패와 관계없이 오로지 지금을 즐기는 참가자 같았다. 무료한 일상에 잠깐의 자극이 되어줄 재밌는 장난. 그는 여유롭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손을 거뒀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아무렇게 버려진 필기 노트를 건넸다. 




 "내가 원하는 건 나중에."




그는 그 말만 내뱉고 홀연히 반을 빠져나갔다. 나는 주저앉아 홀린 듯이 그 모습을 바라봤다. 정확히는 내 피가 묻어 빨갛게 변한 그의 네 번째 손가락을. 




[방탄소년단/김남준] 수렁 | 인스티즈




 






 요즘 들어 나는 갑자기 찾아온 평화로운 일상에 어색해하면서도 즐기며 살아가고 있다. 비록 쉬는 시간마다 떠들 친구는 없지만 적어도 내 몸의 일부처럼 붙어있던 생채기를 볼 일은 더 이상 없었다. 기말고사가 10일 밖에 남지 않은 이 시점에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주변에 건드는 사람이 없으니 스트레스받을 일도 없었다. 꿈같은 나날이다.


김남준과 거래를 한 그날, 나는 공책을 받자마자 망설임 없이 이윤지에게 달려갔다. 이윤지는 자신의 앞에 있는 공책을 보면서도 굉장히 어리둥절해했다. 소문 속의 그 공책이 바로 앞에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진짜로 구해올 줄은 몰랐는데.. 당황한 기색이 만연한 그녀가 나를 쳐다봤다. 




 너. 사기 치는 거 아니야?




신경질적으로 내뱉은 이윤지가 빠르게 책을 펼쳤다. 촤르륵. 빠르게 지나가는 책장 탓에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두터운 공책 한 권이 김남준의 글씨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왠지 모를 승리감에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약속 지켜.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미련 없이 내 자리로 돌아갔다. 그 이후로 선생님이 오실 때까지 의심에 찬 이윤지의 시선이 계속 내게 닿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앞으로 더 이상 그 년과 마주칠 일은 없을 것이므로.

그게 내 기억 속 이윤지와의 마지막 대면이었다.





 약속을 안 지키면 어떡하지란 걱정은 별 의미 없었다. 가끔 이윤지 친구들이 내게 시비를 걸었지만 그뿐이었다. 정말 시험 점수가 급했는지 이윤지는 야자 시간마다 공책을 꺼내 공부를 했다. 가끔씩 그 꼴을 보면 어차피 시간도 남았었는데 좀만 보고 줄걸, 후회가 들었지만 그보단 내가 지금 만끽하고 있는 평화가 더 소중했다. 5교시 문학 수업이 끝나고 데자부처럼 전멸한 우리 반을 구경하다 심심함에 고개를 틀었다. 바로 옆이 창가인지라 고개만 살짝 돌려도 운동장이 보였다. 




 "패스해, 패스!"




종이 친지 한참인데도 축구에 열중하고 있는 남자 무리가 보였다. 저게 그렇게 재밌나. 턱을 괴고 무료하게 구경하는데 문득 눈에 띄는 얼굴 하나가 보였다.




 "김남준!"




의외인 이름 하나가 들렸다. 머리보다 눈이 먼저 운동장을 활개치는 그의 모습을 따라갔다. 골대 근처까지 힘차게 달리던 그가 가볍게 힘을 실어 공을 찼다. 골인. 그의 이름과 함께 와아 하는 환호 소리가 들렸다. 시꺼먼 남자들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가 환하게 웃으며 세레머니를 했다. 나는 충격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 광경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웃고 있던 그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거래할까, 우리


 울어서 해결되는 건 없다고 보는데




 며칠 전 내게 대답을 강요하고 거래를 제안하던, 나를 꿰뚫어보듯 내려보던 그가 선명한데.

 사람들 틈에 섞여있는 그는 지극히 평범했다. 성숙과 대비되는 청춘의 풋풋함이 물씬 풍겼다. 



 눈이 마주친 그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그 미소가 비틀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






 김남준과의 만남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벌어졌다. 최근 부족한 수면과 생리가 겹쳐 난조된 컨디션 때문에 보건실로 향하던 중이었다. 고개를 가눌 힘도 없어서 푹 숙인 채 걸어가고 있었는데 재수 없게도 지나가는 남자애와 부딪혔다. 부딪힌 반동으로 그대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멍 때리고 있는데 낯설지 않은 목소리가 들렸다. 아.. 괜찮아? 목소리의 주인을 찾아 고개를 들면 어제 운동장에서 김남준에게 엉겨 붙어 환호하던 남자애가 서있었다.  




 "이 새끼 쓰레기네. 여자애를 넘어뜨리고."




동시에 그 남자애를 향한 야유가 쏟아졌다. 그 애의 친구로 보이는 남자애들의 호들갑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두통이 일었다. 눈을 찡그리며 정신을 가다듬는데 문득 내게 닿는 익숙한 시선이 느껴졌다. 한 번 마주하면 다시는 잊을 수 없는 그 노골적인 시선, 그 시선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무리의 가장 끝에서 팔짱을 낀 채 날 내려보는 김남준이 있었다. 




 "누가 얘 보건실 데려다줘야 되는 거 아니야?"


 "내가 할게."




엉거주춤 나를 일으켜주려는 남자애의 손을 치우며 김남준이 나섰다. 능숙하게 어깨를 감싸고 날 일으킨 그의 품에서 옅은 담배 냄새가 났다. 먼저 가. 그가 덤덤하게 뱉었다. 남자애들의 은근한 눈빛이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들어 김남준을 바라봤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태연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자신은 그저 넘어진 여학생을 순수하게 도와주고 있을 뿐이라는 듯이.




 "저기. 나 혼자서도 충분히 갈 수 있어. 그러니까 좀 놔줄래?"




그 가식적인 모습이 가증스러웠다. 나는 그의 품에서 벗어나기 위해 바르작거렸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는 내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주어 움직일 수 없도록 나를 제지했다. 아까까지 우리의 주변을 둘러싸며 놀리던 무리들은 저 멀리 떨어져 있었다. 어느새 나와 김남준. 둘 뿐이었다. 




 "호의를 무시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은데."




조소를 흘리며 나를 내려다보는 시선이 서늘했다. 뒷덜미가 서늘해졌다. 나는 반항을 포기하고 그의 품에 안긴 채 그가 이끄는 대로 걸어갔다. 침묵. 지독한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우리 중 그 누구도 먼저 말을 하지 않았다. 어느새 보건실이 써진 문패가 보였다. 그가 갑자기 가던 길에 우뚝 멈춰 섰다. 의아함에 그를 바라봤다. 그는 생각에 잠긴 것처럼 한동안 말이 없다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필기 노트는 잘 갖다 줬어?"




은근한 장난기가 섞인 그의 얼굴이 반짝였다. 나는 그의 의중을 이해하지 못하고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는 거지. 의아함에 입을 다물었다. 필기노트 잘 갖다 줬냐고. 대답 없는 내가 답답했는지 살짝 인상을 쓴 그가 되물었다. 숨이 막혔다.




 "응."


 "지금도?"


 "응."




내 대답에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그가 실없이 웃기 시작했다. 내 대답이 우스워 죽겠다는 듯이. 그가 웃으며 내뱉는 숨결이 내 얼굴에 닿았다.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 잘 됐네. 혼잣말하듯 중얼거린 그가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나는 상황 파악이 안되는 머리를 붙잡고 그가 이끄는 대로 또다시 끌려갔다.




만약 그때 내가 아프지 않았더라면, 조금이라도 정신이 온전했더라면 그의 의중을 알아챌 수 있었을까.

그가 내가 알기 훨씬 전부터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사건은 정확히 3일 후 벌어졌다. 여느 때와 같이 조촐한 저녁을 매점에서 때우고 반으로 가던 길이었다. 기말고사가 일주일도 안 남았으므로 그 어느 때 보다 시간이 중요했다. 한 손에 요점정리를 들고 막 계단을 오르려던 참이었다. 갑자기 복도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악에 받친 소리가 들렸다. 거친 발소리가 가까워지더니 누군가가 내 머리칼을 잡아채 내 몸을 돌려세웠다. 




 "야 이 씨발년아!"




그곳엔 지겨울 정도로 익숙한 이윤지의 얼굴이 있었다. 다른게 있다면 항상 날 내려다보듯 거만했던 눈빛이 아니었다는 것. 내 머리채를 움켜쥔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 하는 것이 육안으로 보였다. 나는 도저히 영문을 몰라서 그저 놀란 눈으로 서있기만 했다. 너무 당황스러워서 머리카락이 뜯어질 것 같은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윤지는 서슬 퍼런 눈빛으로 날 내려보다 손을 들어 내 뺨을 내리쳤다. 맨손으로 고인 물을 내려친 것 같은 커다란 마찰음과 함께 나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삐-  삐-  삐-


본능적으로 뺨을 감쌌다. 혹시 손톱에 얼굴이 찢어지지 않았을까, 더듬더듬 얼굴을 매만지다 들어 올린 한쪽 손에 피가 묻어있었다. 피로 물든 손가락, 입안을 서서히 물들여가는 비릿함, 위험을 경보하듯 반복적으로 들리는 이명이.. 





 "이윤지 말려!"




크고 불규칙적인 발소리가 들렸다. 발길질을 하러 내게 다가오는 이윤지를 친구들이 급하게 막아섰다. 머릿속이 안개로 가득 찬 것처럼 혼란스러웠다. 야, 안 놔? 놓으라고. 씨발! 친구들에게 붙들린 이윤지가 내 쪽으로 온몸을 허우적거렸다. 친구들은 진땀을 흘리며 말리다가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학교 안이라고."




이윤지의 팔에 매달린 여자애 하나가 급하게 속삭였다. 그러더니 이윤지의 옆구리를 마구 찌르며 고개를 젓는 것이다. 나는 홀린 듯이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막 저녁을 먹고 반에 가는 몇몇의 아이들이 제들끼리 속닥이며 우리를 힐끗힐끗 쳐다보고 있었다. 하. 씨발. 신경질적으로 앞머리를 쓸어넘긴 이윤지는 그래도 화가 덜 풀렸는지 제 옆에 내팽개쳐져 있던 공책을 내 쪽으로 던졌다. 공책의 모서리가 땅에 부딪혀 그 안의 필기가 고스란히 보였다. 낯설지 않은 필기체. 김남준의 공책이었다. 기말고사와는 전혀 관계없는 공식이 정갈하게 쓰여있는.




 "나 이렇게 엿 먹여서 기분 좋아 미칠 것 같지?"




정신이 아찔했다. 머릿속의 안개가 삽시간에 걷히며 김남준이 했던 모든 말들이 순식간에 머리를 휩쓸었다. 아. 그렇구나. 너는 애초부터 날 도와줄 생각이 없었구나. 얼마나 바보 같았을까. 생뚱맞은 공책을 받아가 지금껏 멀쩡히 학교를 다니는 내 모습이 얼마나, 얼마나




 "됐고 넌 나랑 어디 좀 가자. 알지? 우리 항상 가던 곳 있잖아."




우스웠을까. 


그대로 몸을 일으켜 계단을 두세 개씩 올랐다. 한 층 오를 때마다 벅차오르는 숨과 함께 잠시 잊고 있었던 이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삐- 한 계단을 오를 때마다 한 번씩.  삐- 네가 떠오를 때마다 한 번씩. 삐- 벅차오르는 설움이 터져나가려 할 때마다 위험 경보 같은 그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렸다.


떨리는 몸을 이끌고 도착한 복도엔 품 안 가득 유인물을 들고 여유로이 걷는 네가 있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쪽으로 달려가 그 품 속에 있는 유인물을 옆으로 밀어버렸다. 허공에 흩날린 유인물이 사방에 소리 없이 떨어졌다. 내 거친 숨소리만이 이 적요를 가득 채우는 것 같았다. 내 갑작스러운 난동에도 너는 별 반응 없이 그저 가만히 나를 내려다봤다. 그 무덤덤한 시선이 오히려 나를 더 미치게 하는 것 같았다.





 "재밌었어? 내가, 내가. 너 진짜 쓰레기인 거 알지?"




주체 못 하는 감정 탓에 두서없는 말이 계속해서 튀어나갔다. 화가 너무 났는데 그걸 다 표현할 수 없어 더 화를 내는 아이처럼. 결국엔 벅차 오른 감정을 감당하지 못 해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처럼, 눈물이 났다. 마구잡이로 흐르는 눈물이 뺨을 적셨다.


난데없는 소동에 점차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모두 의아한 눈초리로 나와 김남준을 번갈아 보다 내 우는 얼굴을 가리키며 웅성거렸다. 나는 고개를 들어 김남준을 쳐다봤다.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그의 눈썹이 치켜올라가 있었다. 내가 잘못 본 건가. 눈물 때문에 뿌연 시야가 거슬렸다. 그때 그가 갑자기 손을 뻗어 나를 자신의 품에 가뒀다. 담배 냄새가 훅 미쳤다. 




 "알았어."




김남준에게 안겼다는 사실도 충분히 당황스러운데 들려오는 말은 더욱 당황스러웠다. 다 알겠으니까 이제 그만 울어. 거의 끝나가니까. 당혹감에 잠잠해진 나를 그가 답지 않게 타일렀다. 네가 뭘 아는데. 뭐가 끝나가는데. 당혹감도 잠시 들끓는 반발심에 벗어나려 발버둥 쳐도 품에 완전히 안겨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거기 무슨 일이야!"




시험 기간에 복도에 몰려있는 학생이 거슬렸는지 여선생의 호통이 들렸다. 급하게 흩어지는 학생들의 발소리가 귀를 내리치는 것 같았다. 나를 꼭 껴안은 김남준의 숨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모든 감각이 예민하게 반응했다. 영원히 풀어지지 않을 것 같던 품은 여선생의 걸음 소리가 가까워지자 가볍게 풀렸다.




 "남준아, 네가 왜 여기 있니?"




그의 얼굴을 확인한 선생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그는 예의 그 맑고 순한 표정을 지으며 난감하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길을 가다 유인물을 놓쳤어요."


 "어머! 그렇네."




이제야 알았는지 주변을 살피던 선생은 걱정스러운 낯빛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길 가다 갑자기 그런 거면 몸이 안 좋은 거 아니니? 시기가 어느 때인데 몸조리 잘해야지. 선생이 조심스럽게 그의 등을 쓰다듬었다. 나는 말없이 그 모습을 관망하다 그대로 몸을 돌려 학교를 빠져나갔다. 속이 뒤집어진 것처럼 울렁거리고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무단 조퇴를 했다. 난생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정신없이 집으로 돌아가 울렁거리는 속을 겨우 달래고 나서야 현실 감각이 돌아왔다. 그때라도 학교에 돌아가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체온으로 겨우 데운 이불안에 몸을 웅크렸다. 이윤지. 김남준. 이윤지. 김남준. 김남준. 김남준. 무수히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온갖 걱정과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러다 문득 비웃음이 나왔다. 내가 이렇게 머리를 굴린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여전히 내 머릿속은 포화 상태였지만 이제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기기로 했다. 아무리 많은 생각을 가지며 살아봤자 해결된 적은 한 번도 없었으므로.






***






 모든 걸 포기하면 광명이 찾아오는 걸까. 모든 사고를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던 그날이 지나고 나의 학교생활은 눈에 띄게 변했다. 당연히 아침 조회가 끝나자마자 온갖 지랄을 떨며 내게 찾아올 거라 생각했던 이윤지는 한 주 내내 학교에 오지 않았다. 대신 그날의 일로 호기심에 가득 찬 아이들이 내 주변을 감쌌다. 




 남준이랑 무슨 사이야?


 진짜 신기하다. 걔 착하긴 해도 은근히 철벽 쩌는데.




전교에 나와 김남준에 관한 소문이 퍼졌다. 비밀 연애 중이다. 썸 타는 중이다. 헤어졌는데 내가 매달린 거다. 말도 안 되는 추측이 난무했다. 지루한 학교에 갑자기 퍼진 핑크빛 소문은 뭇 학생들의 관심을 앗아갈만했다. 나는 집요하게 물어오는 아이들의 말에 적당히 둘러대며 소문에서 빠져나가려 했지만 무리였다. 아무리 아니다 부정해도 확신에 찬 그들에겐 먹히지 않았다. 학교의 투명 인간이었던 나는 전교 회장의 여자친구라는 이름으로 탈바꿈되었다. 참, 거지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더 거지 같은 건




 "탄소야, 오늘 방학식인데 남준이랑 놀러 안 가?"


 "야. 남준이가 놀러 가겠냐? 독서실 가겠지."




소문 이후로 갑자기 변한 나의 위치. 반 아이들은 물론 복도를 다닐 때도 몇몇 아이들이 소문을 들먹이며 내게 아는 척했다. 걷는 곳마다 시선이 떨어지는 곳이 없었다. 이런 지속적인 관심의 근거는 해명은 커녕 소문을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 김남준의 태도에 있었다. 




 "아무 데도 안 가."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려 답했다. 제발 귀찮게 하지 말고 가달라는 부탁이 담긴 말이었다. 하지만 이런 내 부탁이 느껴지지 않는지 아이들은 계속해서 수다를 떨었다. 


한때는 이런 관심이 너무 그리웠다. 하지만 아사 직전의 사람이 급하게 음식을 먹으면 체하는 것처럼, 나도 이 모든 관심이 부담스러웠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시선이 꼭 그의 올가미인 것 같아 갑갑했다. 나는 턱을 괸 채 평소보다 들뜬 교실을 둘러보았다. 주변 친구들과 끼리끼리 대화하는 아이들 사이에 빈자리가 몇 군데 보였다. 그러고 보니 이윤지와 친구들의 얼굴을 못 본 지 꽤 된 것 같다. 




 "얘들아. 이윤지 학교 안 온 지 며칠 됐지?"


 "어? 이윤지? 걔 전학 간다고 하지 않았나."




걔만 가는 게 아니라 걔랑 어울리던 애들도 전학 간다던데. 들려오는 대답은 뜻밖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그들은 학교에 빠지는 일이 잦았다. 가끔 학교에서 마주쳐도 똥 씹은 표정으로 먼저 피할 뿐 별다른 해코지를 하지 않았다. 처음엔 너무 의아했다. 하지만 한창 관심을 받고있는 내게 시비를 걸었다간 되려 그들이 해를 입을 수 있어 먼저 피하는 것이라 넘겼다. 근데.. 갑자기 전학을 가다니?




 "그런데 걔네 전학 가는 거 되게 뜬금없긴 해."


 "그러니까. 이 시기에 전학 가는 게 흔한 일도 아니고."




어떻게 이윤지랑 놀던 애들만 딱 전학을 가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그게 뭐야! 의리야, 무슨? 재밌다는 듯 소리 내어 웃는 애들 사이에서 나만 웃을 수 없었다. 삐- 한동안 안 들렸던 이명이 다시 들리는 것 같았다. 




 "어! 네 남친 나온다!"




열심히 웃으며 떠들던 애들 중 한 명이 갑자기 내 팔을 붙잡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 애가 가리키는 티비 화면엔 교장 선생님께 호명되어 단상에 올라가는 김남준이 있었다. 선생님 앞에 선 그는 꾸벅 인사를 하며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그 누가 보아도 믿음이 갈 듬직한 모습으로.




 "교과 우수상. 위 학생은 모든 학업을 착실히 수행하여 이 상을.."




 무언가 잘못됐다.




 "탄소야, 어디 가!"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격한 내 움직임 탓에 흔들린 책상 밑으로 필기구가 떨어졌다. 날 부르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개의치 않고 그대로 몸을 돌려 반을 벗어났다. 세상이 붉게 물들었다 흐릿해지는 착각이 일었다. 




 생각보다 멍청하네.




왜. 나는 왜 지금까지 눈치채지 못한 거지.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수상한 것 투성이었는데. 내가 책상을 뒤지고 있을 때 거짓말처럼 나타난 것도.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쳐다본 것도. 그럴 애가 아닌데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던 이윤지도. 




 다 알겠으니까 이제 그만 울어. 거의 끝나가니까.




 모든 게 우연일 거라 넘겨 짚었던 조각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상을 받고 시청각실을 벗어나는 김남준의 모습이 보였다. 그대로 달려가 그 앞에 섰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급하게 숨을 몰아쉬느라 온몸이 헐떡였다. 바람에 엉망이 된 머리가 자꾸만 시야를 가렸다. 지금 내 몰골이 어떨지 안 봐도 뻔했다. 




 "생각보다 늦게 왔네."




처참하겠지. 그와 달리 김남준의 모습은 여태껏 그래왔듯 지금도, 반듯하고 또 반듯해서. 너 뭐야?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화가 났다. 그 누구도 모를 이 애의 본모습을 나만 안다는 게. 그걸 알려도 믿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답답했다. 그는 뭐가 좋은지 교장 선생님 앞에서 짓던 그 가증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누구에게나 환심을 사는 그 미소를. 




 "도와달라며."




거래, 잊었어? 묻는 그의 얼굴에 의아함이 띄었다. 왜 그런 걸 물어. 자신이 벌인 짓에 대한 무게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도와달라고 했지. 하지만 걔네들을 그렇게 보내버리길 바란 건 아니었어!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내가 바란 건 정말 별거 아니었다. 그냥 평범한 학교생활을 바랐다. 그 애들이 쫓겨나듯 도망가길 바란 건 아니었다. 얘는 도대체 걔네들한테 무슨 짓을 했을까. 상상하면 내가 저지른 짓도 아닌데 마음이 무거워졌다.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그 눈을 마주한 순간 나도 모르게 몸이 흠칫했다. 




 정말 네가 바란 게 이게 아니야?




마음속 깊이 숨은 본성을 꿰뚫어보는 눈. 그제야 깨달았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노골적으로 날 바라보던 눈빛이 뭘 뜻하고 있었는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바라보던 그 눈의 깊이를. 날 바라보던 그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원래 썩은 건 싹을 자르는 게 아니라."




내게 한 걸음 가까워진 그가 엉망으로 엉킨 내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눈빛과 달리 다정한 손길이 소름 끼쳤다. 




 "뿌리 뽑는 거야."




그의 모든 게 비틀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그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도. 

썩은 동아줄을 타고 구렁에서 수렁으로 넘어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수렁

 1. 곤죽이 된 진흙과 개흙이 물에 섞여 많이 괸 웅덩이

 2. 헤어나기 힘든 곤욕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사담

안녕하세요 되게 오랜만이에요 5달 전에 쓴 글을 드디어 다 썼네요ㅠㅠㅠ

갑자기 잠수 탔다가 이렇게 글 들고 찾아왔어요ㅠㅠㅠㅠ

혹시 기다린 분 있다면 미안해요;ㅅ; 

너무 오랜만에 쓴 거라 글이 잘 이어졌을지 걱정되네요 

너무 정신 없이 써서 사실 자신이 없어요ㅠㅠㅠ

나중에 수정 한 번 해야지ㅠㅠㅠㅠㅠ


어쨌든 글 읽어주신 분들 모두 고마워요♥

혹시 내용에 관해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세요!



+약간의 설명

학교 폭력이 한창이었을 때의 여주는 일요일 밤마다 울면서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해요.

하지만 남준이의 도움으로 일상이 평화로워지자 괴롭히던 아이들을 어떻게 했냐며 남준이를 탓하죠.

이 모순을 여주가 스스로 깨달았을 때 남준이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자신의 본성을 마주하고 깊은 수렁에 빠집니다.


그리고 남준이는 여주가 생각하는 첫만남, 그 전부터 알고 있었고 그때부터 관심 있었어요.


암호닉♥

요랑이 모란 주인 뷔밀병기 복숭아 룬 ●달걀말이● 규수 윤기윤기 우리집엔신라면 백발백뷔 꽃오징어 허공이 한드루 쿠키오 꾸꾸린 삐삐걸즈 뱁새☆ 촘촘이 고기로케 짐절부절 세이쓰 민투구 @침침@ 쿵쿵 떡케이크 감귤 유자청 쿠쿠 핑크공주지니 진우부인 쉬림프 집수니 삼다수 코코링 세젤귀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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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윤기윤기에요 밍 ㅠㅠㅠ남준아 ㅠㅠㅠ너 뭐야 ㅠㅠ
7년 전
독자2
헐...치명적인...남준이ㅠㅠㅠㅠㅠ너무 좋아요 작가니뮤ㅠㅠㅠㅠ암호닉 신청해도 될까요??ㅠㅠㅠ퓨ㅠ받아주신다면 [치카초코]로 신청하겠습니다!
7년 전
독자3
와 대박이예요 ㅠㅜㅜㅜㅜㅜㅜㅜ암호닉 신청해도 된다면 [러블리보스] 로 신청합니다 ㅠㅠ
7년 전
독자4
헐 맞아 저 이거 기다렸었어요 암호닉 신청할려고 기다렸었는데 오셨군요!!! [최초]로 신청할게요!!
7년 전
독자5
[사랑해요]로 신청 할게요!!!!기다렸습니다❤
7년 전
독자7
떡케이크에요ㅜㅜ이게 무슨일이람ㅜㅜ엄청 기다렸어요♡♡
7년 전
독자8
헐작가님글제목이익숙해서와봤더니ㅜㅜㅜㅜㅜㅜㅡㅠㅜ세상에 [굥기]로암호닉신청합니다
7년 전
비회원110.169
작가님ㅠㅠㅠ 보면서 정말 깜짝놀랐어여 대단하십니당ㅠㅠ 뭐랄까 금잔디를 구해주는 구준표와는 다른 느낌의 도움인것 같아요 암호닉을 신청해도 된다면 [봉석김]으로 신청하고싶어요!!
7년 전
비회원51.147
와 진짜 남준이 너무 치밀하고 예... 좋아요 ㅠㅠㅠ [왼쪽]으로 암호닉 신청하고 갑니다..!
7년 전
독자10
암호닉 받으신다면 [찬란] 으로 신청하겠습니다...!!! 너무 오랜만이에요 작가님!!! 남준이가 넘 끝내줘서 처음에 글 보자마자 5번정도 읽었던 것 같은데 돌아오셔서 넘 행복해요...
7년 전
독자12
워... 정말 뱀같은 남준이 한마리 독사같네요 너무 발리구 취저인것...ㅠㅠㅠ
7년 전
비회원16.63
[슈비]로 암호닉 신청해도 될까요?
도와주는데 거래를 한다는거 참 재밌는부분
인거같아요 나중에 거래에 뜻을 알아버린
여주도 자신은 남준이와 다를게없다는 것도
남준이가 여주를 전부터 알고있었다는 부분도
흥미로운 부분인거같아여

7년 전
독자13
호ㅠㅠㅠㅠㅠㅠㅠㅠㅠ작가님 사랑해여ㅠㅠㅠㅠㅠ
7년 전
비회원124.111
아 진짜 짱이다....... 드디어 완결을 봤네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ㅠㅠㅠㅠㅠㅠㅠ남준이 너무 치명적인거 아닌가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자까님 외전이 빠진것같은데ㅠㅠㅠㅠㅠㅠㅠㅠ남준이가 뭘 원하는지도 알아봅시다 우리!!!!!!!!! 아 진짜 간만에 흥미로운 글 잘봤습니다... 사랑해요.... 외전...ㅇ히전.... 번외 믿어요...............♥
7년 전
비회원41.3
저 [흥탄❤]으로 암호닉 신청할게요~ 글진짜 완전잘쓰시는것같아요ㅠㅠ 넘나 감사한것~ 잘부탁드려요~
7년 전
독자14
룬입니다!!!!!!!
이렇게 마무리가 되는구뇽 ㅠㅜㅠㅜㅠㅜㅠㅜㅠㅜㅠㅜㅠㅜㅠㅜ 작가님 굉장히 오랜만이에여ㅠㅜㅠㅜㅠ

7년 전
독자15
와 필력 대박이신데요 혹시 다음에 암호닉 받으시면 신청할게요 지금 이 작품이 끝났으니까..
7년 전
독자16
오 세상에 .... 오 ... 저 지금 굉장히 치였어요 작가님 글에 ... 준이에게 .... 오 ..... 오.....
7년 전
비회원220.163
작가님 야밤에 수렁 읽었다가 크게 치이고 갑니다. ㅠㅠㅜㅜ 제가 원했던 전교회장의 남준이를 그대로 보여주셨어요
저도 암호닉 신청 가능하다면 신청해도 될까요? [대추차]로 신청합니다.

7년 전
독자17
재밌게 읽었습니다. 브금도 완전 적절... 치명치명한 남준이 너무 멋지네요..ㅠㅠㅠ
6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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