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닉- [호찡] [낑깡] [8월의 겨울] [봄꽃] [열시십분] [여름밤] [호시 부인] [디케이] [쑤하진] [아니아니] [슝] [스팸] 캔버스와 물감 [물감 열두 방울] 권순영의 손에 이끌려 향한 곳은 다름 아닌 미술실 앞이었다. 등교 시간이라 아무도 없는 복도는 조용하고 한적했다. "미안, 놀랐지" 자신이 붙잡았던 손목을 살살 매만지며 말하는 권순영의 말에 손목을 바라보자 권순영의 손이 떨어진 곳에는 약한 손자국이 남아있었다. "아....." 다른 한 손을 뻗어 손목에 남겨진 손자국 위로 손목을 약하게 감싸 쥐었다. "난,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다 괜찮으니까.." "세봄아" 내 스스로도 뭐라 말할지, 뭐라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애써지어 보인 어색한 웃음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보일 뿐이었다. 괜찮았다, 나는, 괜찮아야만 했다. 그러자 권순영은 팔목을 감싸 쥔 내 손 위로 자신을 손을 겹쳐 잡고는 나지막이 내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그런 내 이름을 부르는 그 목소리가, 마치 마법과도 같아, 나는 저어내던 고개를 멈췄다. "괜찮지 않아도 돼, 상처받아도, 상처받았다고 말해도, 다 괜찮아" "아냐..나는 정말...." 권순영은 그렇게 말하며 마치 우는 아이의 등을 토닥이듯 겹쳐 잡은 손을 규칙적으로 올려냈다, 내렸다. 그런 권순영의 행동에 다시금 괜찮다고 말하려던 입은 말을 모두 하지 못하고는 닫혔다. 나보다 훨씬 상처받은 듯한 권순영의 표정에, 무언가가 막아놓은 듯 괜찮다는 말이 나오지 못한 체 입안을 맴돌았다. 나는, 나는 정말 "괜찮지, 않아.." 한 번 입 밖으로 터져 나온 진심은 눈물과 함께 봇물 터지 듯 흘러나왔다. '괜찮지 않아, 싫어, 듣고 싶지 않았어', 어린아이가 말을 새로 배운 듯 띄엄띄엄 흘러나오는 말들에 권순영은 그저 겹쳐 잡고 있던 손을 끌어당겨 자신의 품 속에 기대게 하고는 오른손을 들어 느릿하게 등을 토닥였다. "쉬이, 이제 괜찮아 세봄아. 마음껏 울어도 돼" 나의 귓가에 속사여 오는 권순영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다정해서, 나는 마치 처음 우는 것 마냥 펑펑, 울음을 쏟아냈다. 그리고 그런 나의 행동에도 불구하고 권순영은 그저 조금 더 힘을 줘 나를 안고는, 일정하게 등 위를 쓸어내리며 다시금 귓가에 속삭였다. '괜찮아, 괜찮아 세봄아' 라고. - 멈추지 않을 것만 같던 눈물이 겨우 멈춘 것은 이미 수업 종이 치고 난 뒤였다. "많이 빨개졌어, 아프지는 않아?" 조심스레 얼굴을 감싸 쥐며 눈가를 매만지는 권순영의 말에 말없이 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잔뜩 울음을 터뜨리고 난 뒤 밀려오는 민망함은 잔뜩 젖다 못해 축축해진 것만 같은 권순영의 셔츠 한 쪽을 봄으로써 더욱 커져, 이 민망함이 줄어들기를 바라며 차라리 눈을 감아내렸다. 눈을 감자 눈가를 매만지던 손길이 순간 멈칫,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이내 감겨진 눈 위로 손가락이 천천히 지나갔다. 뜨거워진 눈과 다르게 차가운 손 때문인지 감겨진 눈이 파르르, 떨려왔다. "나는 네가 속 시원하게 우는 것도 좋지만, 다음부터는 그냥 네가 울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 걱정스러움이 한껏 담긴 다정한 목소리와 함께 눈꼬리 언저리에 머물렀던 손가락이 띄어졌다. 그에 나는 감겨있던 눈을 느릿하게 떠올리고는 천천히 깜빡였다. 그리고 깜빡일수록 선명해지는 권순영의 모습에 웃어 보였다. '이제는 오늘처럼 울 일은 없을 거야, 네가 있잖아' 그리고 그런 내 말에 권순영은 약간 커진 눈을 깜빡이더니 이내 한껏 웃음을 지었다. '응, 그러네', 라며. "아, 나 약속 지켰어"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메달 생각에 말을 꺼내자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권순영의 모습에 등에 매여져 있던 가방을 앞으로 둘러 매 지퍼를 당겼다. 지익, 소리와 함께 열리는 가방 속 가장 윗부분에 자리 잡아있던 메달을 꺼내 손안에 감싸 쥐고는 다른 한 손으로 권순영에게 가까이 오라 손짓하자 권순영은 궁금하단 표정으로 몸을 숙이며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 '금메달 따오면, 내 목에 걸어줘야 돼' 그리고는 그런 권순영의 목에 메달을 걸어냈다. 자신의 목에 걸려진 채 흔들리고 있는 메달의 모습을 본 권순영은, 한 손안에 메달을 살포시 쥔 채 메달 위 표면을 매만졌다. '대회가 끝나면 또 이렇게 같이 가자' "그러니까, 오늘부터 다시 같이 가자" '기다리고 있을게' "기다려줘서 고마워" "순영아" - 아, 정말 마음에 드는 화에요. 이번 화의 포인트를 잡으라 하면 '캔버스와 물감 12화' 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요. 세봄이가 처음으로 혼자 참지 않게 되었고, 또 처음으로 세봄이가 순영이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제가 가장 신중했던 부분이에요, 세봄이가 순영이의 이름을 부르는 부분이. 위로 장면, 메달 장면도 너무 마음에 들고요. 그리고 사실 이번 화는 세봄이의 이름을 부르는 장면으로 끝내고 싶어 분량도 뚝, 잘라내버렸어요. 그 부분은 다음 화도 이렇게 빨리 올테니 조금만 봐주세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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