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닉- [호찡] [낑깡] [8월의 겨울] [봄꽃] [열시십분] [여름밤] [호시 부인] [디케이] [쑤하진] [아니아니] [슝] [스팸] 캔버스와 물감 [물감 열세 방울] '순영아', 그렇게 말하며 웃어 보인 것이 무색하게도 뒤이어지는 것은 넓은 복도를 한가득 채운 정적이었다. 흔들리는 시선을 권순영에게로 향하면 그저 목에 걸려 쥔 메달을 손에 쥔 체 메달 표면 위를 손가락으로 쓸어내리고 있었다. 그런 권순영의 모습에 겨우 고정시킨 시선이 다시금 흔들릴 때쯤, 자그마한 권순영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흘러나왔다. "다시, 다시 불러줘" 그렇게 말하며 마주쳐진 권순영의 눈동자가, 왠지 모르게도 반짝이는 듯해 나는 다시금 입을 열어 권순영의 이름을 불렀다. "...순영아" 그리고 내뱉어진 권순영의 이름은 마주쳐진 권순영의 시선 때문인지, 이상하리만치도 잘 내뱉어지지 않았다. 붙어져 있는 입술을 겨우 벌려내어 비집고 나온 권순영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이상하리만치도 떨렸다. 그리고, 그런 나의 부름에 권순영은 마주치고 있던 시선을 내리고는 자신의 손을 눈 위로 포옥, 덮어버렸다. "봄아, 세봄아" 아, 또다. '봄아', 갑작스레 권순영에게 불렸던 어색한 그 단어가 또다시 들렸다. 그저 이름의 가장 끝 글자를 따 부르는 건데. 그저, 그럴 뿐인데. 권순영의 입에서 나오는 저 말에 가슴께가 왜 그리도 간질거리는지. "...잘했어, 수고 많았어" 권순영의 눈을 가리고 있던 권순영의 손은 스르륵, 내려가 권순영의 입 위를 덮어내렸다. '잘했어', 듣기 좋게 울리는 음성에 이번에는 내 손이 나의 입가로 향했다. 아, 분명 오늘 아침이 얹힌 것이 틀림없다. 분명히.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속이 울렁거릴 리가 없었다. "세봄아?" 정말, 그런 게 틀림없어야 했다. - 무단으로 1교시를 반이나 빼먹고는 반으로 향하는 걸음이 무거웠다. 가라앉은 나의 표정에 권순영은 뭐가 그리고 자신만만한지 괜찮을 거라 말했고, 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지만 전혀, 괜찮을 리가 없었다. 긴장되어 굳은 손을 한번 쥐었다 펴낸 뒤 문을 열자 수많은 시선들이 나에게로 쏠렸다, 이내 흩어지고는 선생님의 시선만이 남았다. 이상하리만치 빠르게 흩어지는 시선들에도 잠시. 꾸준하게 향해지는 선생님의 시선에 마른 입술을 혀로 축였다. 아, 선생님한테는 뭐라고 말해야 하지. "아파서 보건실 갔다 온다는 소리는 들었다. 어서 자리에 앉아" 전혀 전한 적 없는 말을 들었다 전하는 선생님의 목소리에 얼떨떨하게 대답을 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칠판에 분필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조용해진 교실을 둘러보며 생각했다. 진짜, 괜찮다. 권순영의 말이 맞았다. 정말 괜찮았다. 선생님의 추궁도, 힐끔힐끔 닿아오는 아이들의 시선도 없었다. 마치 아까 전 일이 없었던 것 마냥. 권순영의 말처럼, 괜찮았다. 어쩌면 권순영의 말에는 마법이 들어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과 함께, 순식간에 풀어진 긴장에 작은 숨을 내쉬며 눈두덩이 위를 손가락으로 꾹꾹, 매만졌다. 그러다 비죽, 책상 서랍에서 튀어나온 공책으로 시선이 향했다. 공책 속 끼워진 연필 부분을 펼치자 살짝 흐릿한 형태의 권순영의 모습의 그림이 보였다. 길게 찢어진 눈이 둥글게 휘어지고, 동글동글한 양 뺨에, 부드럽게 올라간 입술이. 방금 전 보았던 권순영의 모습과 같았다. 약간 굳어진 오른손을 가볍게 풀어내고는 공책 위에 놓인 연필을 잡고는 종이 위로 선을 그어내렸다. 부드럽게 그어지는 선들이 옅은 선들 위를 덮어내렸다. "됐다" 지우개 가루가 이리저리 놓인 종이 위를 가볍게 '후', 하고 불자 지우개 가루들이 바람에 사라지고는 오로지 종이 위에 그려진 그림만이 남았다. 권순영과 처음 만났던 5월에 그렸던 그림이, 8월의 끝자락에 선 이제야 완성이 되었다. 조심스레 종이 위를 손가락으로 쓸어내리자 수업을 마치는 종소리가 울렸다. 또다시 속이 울렁였다. 아, 어쩌면 가슴께에 얹힌 건. 아침밥이 아니라, 권순영이 아닐까. - 조금은 짧은 캔버스와 물감이네요 ;ㅅ; 마무리를 꼭 세봄이의 저 말로 마치고싶어 조금 내용을 잘라냈어요. '아, 어쩌면 가슴께에 얹힌 건. 아침밥이 아니라, 권순영이 아닐까.' 저는 이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드네요. 이름 변환을 하려했으나 제가 쓰는 세봄이란 이름에 끝 글자를 따 부르는 순영이의 대사에서 봄이, 는 변환이 되지 않네요 ;ㅅ; 양해 부탁드려요. 그리고 순영이, 세봄이와 함께 좋은 새해가 되시길 바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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