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이고, 봄입니다.
제 2화 : 향기와, 너만으로도 충분히 봄이다.
w.선샘미가좋마묘
"… …"
"… …"
이지훈 얘는 전학생이고 뭐고 궁금하지도 않은 건지 나도 꽤 낯을 가리는 편이라 가만히 있었더니, 아예 말을 걸지도 않는다. 다른 애들이 말을 걸지 않는 시간에는 계속 이지훈을 쳐다봐서 그런가, 이제는 이지훈의 볼에 구멍이 뚫려도 이상하지 않다. 싶을 정도다. 이젠 오기가 생겨서라도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옆태도 동글 동글하고, 피부도 하얀 게, 예쁘장 하게 생겼다.
나도 피부가 조금만 더 좋았더라면... 하고 생각하며 볼을 만지작 거리다가 다시 이지훈에게 시선을 두었다. 쉬는시간마다 애들이 말을 걸고, 옆 반에서 날 보러 오고, 난리가 났는데 이지훈은 돌부처 처럼 가만히 앉아서 책만 들여다 본다. 웃긴 건, 책의 페이지는 10분이 지나도록 한 페이지도 넘어가지를 않는다는 거다.
한 마디로, 얘 지금 책 읽는 '척'하고 있다는 말씀.
"여기서 왼쪽에 2를 곱해봐, 이렇게 되지? 그 다음에는…"
"야. 짝꿍아"
"… …"
"너 책 안 읽는 거, 엄청 티 나거든?"
"… …"
내말을 계속해서 잘도 무시하던 이지훈은 내가 정곡을 찌르자, 떨떠름한 표정으로 내게 시선을 옮겼다. 한 번만 더 완전히 씹혔으면 소리라도 지를 생각이었는데, 잘 됐다. 싶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이지훈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 분명히 닿았을 텐데, 인사도 제대로 받아주지 않는 모습에 뾰루퉁한 표정을 짓고는 다시 앞으로 시선을 뒀다.
그래도 한 달 정도는 옆 자리에 앉을 텐데, 계속 말을 안 하는 게 말이나 돼? 왜 이렇게 까칠하게 구는 거람. 혼자 중얼거리며 어떻게 어떤 말을 꺼내야 이지훈이 관심을 가질까 싶어서 필통을 만지작 거렸다. 그러다 문득 좋은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듣지도 않는 수학 수업이니까, 괜찮겠지? 하며 수학책의 귀퉁이를 조심 조심 뜯어냈다.
매끈한 종이가 조그맣게 찢어졌고, 나는 볼펜을 꺼내어 뚜껑을 열고는 쪽지에 또박 또박 적었다. '너, 왜 나랑 말 안해줘?' 내용을 적기는 적었지만, 이걸 건네면 혹시 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에 두어번을 더 고민한 후에 이지훈의 앞으로 쪽지를 건넸다. 책에 꽂혀 있던 시선이 내 쪽지로 향했다.
잠시 쪽지에 시선을 두던 이지훈은 파란 연필을 꺼내어 쪽지에 글자를 하나씩 써 내려갔다. 아까의 나와 같이. 손가락도 길고 예쁘다는 생각을 하며 이지훈을 뚫어져라 쳐다보기를 5분정도가 지났을까, 이지훈이 내 앞으로 쪽지를 내밀었다. 그리고 그 쪽지의 내용을 본 나는 입을 막고서 끅끅 웃어댔다. 수업시간이 아니었더라면 교실 전체가 울리도록 웃었을지도 모르겠다.
'사투리가 좀 심해서… 웃을까봐'
"내가 그런 걸로 웃을 사람으로 보여?"
이지훈이 웃음기 섞인 내 모습에 고개를 옅게 끄덕였다. 야, 죽을래. 주먹을 살짝 쥐며 말하자, 어이없다는 듯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줄곧 무표정으로 있을 때보다도 약하게나마 웃으니 더 귀여워 보였다. 사투리가 심해서 내가 웃을까봐 말을 안 했다는 것도 귀여웠고 말이다. 의자를 조금 더 가까이 끌어당겨 앉으며 괜찮으니 그냥 말 하라고 하자,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해야 이지훈이 사투리를 쓰는 걸 창피해하지 않고 말을 할까... 하면서 고민하다가, 할머니께서 쓰시는 짙은 사투리가 기억났다. 까짓거 내가 먼저 사투리를 쓰면 이지훈도 같이 해 주겠지 뭐.
"마, 사투리가 뭐가 창피한데!"
"...가시나, 사투리 겁내 어색하네"
"대답했다. 대박!"
출처를 알 수 없는 내 사투리에 결국 이지훈은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대답을 했고, 나는 신나는 표정을 지으며 책상을 약하게 내리쳤다. 결국 이지훈은 자기가 졌으니 절대 사투리로 놀리지 말라는 신신당부를 했다. 당연하지! 신나게 대답을 하자, 입꼬리를 씨익 올려 웃어 보였다. 보조개가 움푹, 들어간다.
이지훈이 소극적이고 조용해서 그런지, 평소엔 말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닌 나도 괜시리 이지훈 앞에서는 말이 많아지는 것만 같았다. 내 한 마디, 한 마디를 은근히 새겨 들으며 안 그런척 해도 열심히 대답을 해 주는 이지훈이 있었고, 이지훈의 뒤로부터 열어둔 창문의 사이로 어제 맡았던 특이한, 꽃 그리고 바람의 냄새가 솔솔 풍겨왔다. 봄이다.
…
"성수고고 야자 요정 이지훈이가 웬일로 야자를 다 짼대?"
"석민아, 닥쳐."
이지훈에게 말을 튼 이후로 이틀 정도가 지났으려나, 이제는 꽤 친해진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이 동네에 대해 아는 건 학교에서 집까지 가는 길 밖에 없는 것 같기도 해서 이지훈에게 동네 구경 좀 시켜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에는 당연히 야자를 해야 한다며 싫다던 이지훈이었지만 이지훈이 좋아한다던 양갱을 열개나 사다 바쳐서 결국 이지훈의 허락을 받아냈다.
선생님에게는 내가 너무 아픈데 동네 병원이 어딘지 모르니, 지훈이가 좀 같이 가줘야 할 것 같다는 변명을 했고 선생님은 흔쾌히 야자를 빼 주셨다. 내가 전학생임과 더불어 이지훈이 평소에 거짓말을 잘 안하는 타입이라 그런 거겠지? 여튼, 기분이 좋아져서는 가방을 들고 교무실 밖으로 나오는데 이지훈과는 완전 다른듯하면서도 비슷한 느낌의 남자애가 이지훈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야자 요정이라니… 큭큭 거리며 웃음을 참자, 이지훈이 내가 온 걸 눈치 챘는지 고개를 휙 돌려 나를 바라본다.
"아, 미안 미안. 일부러 들은 건 아니야."
"오- 이지훈 여자친구?"
"아, 아직 그 정도는 아니ㄱ…"
"돌았나 새끼가, 쌤한테 꼰지르기 전에 퍼뜩 안 드가나"
이지훈의 말에 장난스레 인상을 찌푸린 그 남자애는 알겠다며 교실로 들어갔다. 키도 크고, 피부도 까만 편이고, 엄청 능글맞게 잘 웃는 애였다. 친구는 반대인 성향을 사귀는 타입인가? 하며 이지훈을 쓱- 훑어보다가 멘트를 던졌다. 엄청 싫어하더라, 내 말도 확 끊구? 장난기 넘치는 내 목소리를 듣지도 못한 건지 이지훈은 바닥에 머물던 시선을 단번에 내게 옮겼다.
"그, 그런 건 아인데...!"
"됐어, 나 싫다는 애한테 동네 구경이나 시켜 달라고 하고... 눈치 없는 게 죄지 뭐"
앞서서 걸어가며 입가에 미소를 띄우는 여주의 뒷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지훈은 땅을 한 번 세게 찼다. 망했다. 순간 지훈의 머릿속에 엄마가 매번 하시던 말씀이 그려졌다. 여자? 여자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앵간치해서는 십중일구 여자는 단 거나 맛있는 거 먹으면 짜증이 다- 풀린다. 알겠나 지훈아.
늘 하시던 말씀이라 그냥 저냥 그런가보다, 하면서 대충 고개를 끄덕이던 말씀이었지만 오늘만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그 말이 꽤나 고마웠다. 지훈이 양 머리를 짚고 있던 손을 떼며 이미 저만치 걸어간 여주를 향해 뛰어갔다.
"떠, 떡볶이나 무러 갈래?"
"떡볶이? 진짜로? 어, 완전 좋아. 지훈이 네가 쏘는 거지?"
방금 전까지 입이 서울까지 닿을 것 마냥 아주 나와있었던 것 같은데, 진짜로 먹을 거 하나에 풀리네. 쫑알 쫑알 시끄럽긴 하지만, 은근히 귀여운 구석이 있다고 생각하며 웃음을 띄운 지훈이 여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함께 교문을 나섰다. 지훈은 여주가 처음으로 성을 떼고 저의 이름을 불러준 게 꽤나 신경쓰였던 건지 입으로는 지훈... 지훈이... 라며 중얼거리며 말이다.
사담과 암호닉 관련 주저리 |
ㅠㅠ저 솔직히 자꾸 변덕부리구 그래가꾸 댓글 대여섯개로 만족할 준비 중이었는데... 댓글 많이 달려서 넘나 좋아요 진짜로... (오열) 그래서 빨리옴. 어차피 연휴니까!!! 아, 그리고 저 이제 샘블리들 호칭 하나 더 늘었어요! 학샘들! 난 선샘미고 여러분들은 학샘미야! 100자리 있으니 31분은 어서 신청해주세요. 자세한 글은 암호닉 신청 글로 가면 있어요! 아, 그리고 초록글 너무 고마워요ㅠㅠ 사랑해요.♥ |
여러분, 글 읽으실 때 왼쪽 정렬이 편하신가요. 가운데 정렬이 편하신가요?
(가운데 정렬 안하면 죽는 병이 있지만, 읽을 때에는 왼쪽 정렬을 좋아하는 모순쟁이 선샘미)
전 서울 19년 토박이이므로, 사투리가 X나 이상하더라도. 우리 맘 넓은 학샘미들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주십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