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
남 몰래 입을 꽉, 물었다.
저 미친놈의 히스테리가 또 시작이구나. 애써 웃는 얼굴로 다음 트랙의 녹음본을 클릭했다.
무덤덤한 눈으로 정적 속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는 그 얼굴에 내 주먹을 꽂고 싶었다.
"...이건 뒷부분 좀 수정하고, 전체적으로 한번 다듬었어."
"니가 왜?"
...저 개시발 새끼가 진짜.
두 눈을 위협적으로 크게 뜨고 녀석을 바라보았다.
왜냐니. 나는. 프로듀서잖니. 우지야.
"뭘 왜야, 왜긴 범주 오빠가 좀 봐달라고 해서 한건데."
만만치 않게 퉁명스레(띠겁게) 대답했다.
보기좋게 썩어들어 가는 얼굴에 슬슬 올라가는 입꼬리를 애써 숨긴체, 내친김에 한마디 더 능청스레 내뱉었다.
"사실, 다 갈아엎으려고 했는데."
"뭐?"
"그러면 자체제작 타이틀에 어긋나잖아, 그치."
경련이 일어난 그 얼굴의 입 근육이 씰룩거리는게 눈에 들어왔다.
본능적으로 웃음을 참았다.
참아라, 터지면 넌 오늘 제삿날이다.
"...범주 형한테 메일로 보내."
"어?"
"내가 보기엔 아무리봐도 수정전이 더 났거든."
"......"
"형한테 들어보고 결정해달라고 하면 되지 않,겠니?"
분명 않겠니? 에 힘이 빡 들어갔다. 승리의 미소를 짓고 고개를 사정없이 끄덕였다.
"아, 진짜 때릴 수도 없고 이걸."
썩은 미소와 함께 ☆간지☆나는 대사를 마지막으로 녀석은 (부들거리는 다리로) 작업실을 빠져나갔다.
제목 : 오빠 우지 개빡침ㅋㅋㅋㅋㅋㅋ
[첨부파일.mp3]
클릭과 함께 승리의 기쁨을 마음껏 즐기기 위해 고개를 뒤로 편히 젖혔다. 성격 죽이라니까 드럽게 말 안 듣지 이지훈.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더니, 작업실만 들어오면 예민해지는 그 빌어먹을 감정컨트롤은 고삐리 이지훈이나 22살 이지훈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아니, 한 박자 쉬고 들어오라고."
...아, 이석민...ㅋ
지끈거리는 머리를 두 손으로 부여잡았다.
부스안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을 그 모습이 눈에 훤해 최대한 상냥한 목소리로 마이크를 켰다.
"저기요 너 뒤질래? 연습 안했지."
"아니요 했는데요 누나!"
존나 해맑아서 부럽다 시발..ㅋ....ㅋ..ㅋ.ㅋㅋㅋ
(...그래 연습했다 치고)
내말은 귓등으로 듣지도 않는 녀석에게 마지막 기회라는 협박과 함께 inst를 흘려보냈다.
"...어, 됐어. 나와."
13번의 시도 끝에 성공된 마의 구간을 마친 녀석이 신나게 부스를 벗어나왔다.
진저리나는 모습에 녹초가 된 몸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13번 저었다.
"넌 여주니까 산거야, 범주형이였어봐. 13번이 뭐야, 13번이."
투닥거리는 멤버들 뒤로 울리는 진동 소리에 쥐고 있던 마우스를 내려놓고 휴대폰을 집었다.
[박여사님]
...엄마?
"...뭐야, 저새끼는 왜 있는거죠."
"너는 친구한테 새끼가 뭐야 새끼가."
만두국 먹으러 오라메,
근데 이지훈은 왜 있는건데.
자신에게 뻗어있는 내 삿대질이 좆같았는지 n년째 우리 가족 마냥 나보다 더 자연스럽게 식탁에 앉아있던 이지훈이 내게 불꽃눈빛을 선사했다.
하지만 어느새 검지에서 중지로 바뀌어있는 나의 삿대질 반격에 녀석은 만두를 곱씹으며 슬그머니 수저를 내렸다.
"나도! 나도 줘. 빨리 만두국."
서늘한 녀석의 반응이 무서워서는 절대 아니궁ㅋ...
재빠르게 식탁에 앉는 나를 본 이지훈이 그제서야 조용히 다시 수저를 들었다.
왜 이렇게 식은땀이 나지.
"지훈아 너한테 대쉬하는 아이돌 없냐?"
"콜ㄹ, 콜록!"
안쓰러운 눈으로 만두를 건지다 말고 녀석을 바라보았다.
울 엄마 첫째 딸의 질문에 빨개진 얼굴로 연신 기침을 내뱉던 녀석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난 봤다.
녀석에게 물을 건네면서도 한심한 표정으로 이지훈을 바라보는 첫째 딸의 표정을.
하루같이 이쁜 여자들을 보면 뭐하니.
"모쏠이 뭘 알아야 연애를 하던지 말던지 하지ㅋ"
"야."
22년동안 갈고 닦았던 실력으로 눈까지 뒤집어까며 연신 혀를 낼름거리니 녀석이 또 다시 수저를 내려놓는 시늉을 한다.
"엄마, 지훈이 만두국 더 먹고 싶데요."
"야, 내가 언ㅈ"
지훈아 만두 몇개 줄까.
엄마의 질문에 이지훈이 하는 수 없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4개요.
잘먹네, 우리 지훈이.
"아, 지훈이 대쉬받은 적 있어."
숟가락으로 김치만두를 열심히 파괴시키던 이지훈이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오, 뭘 그리 불안한 눈으로 나를 보시나요, 친구여.
"누구?"
"남자한테."
"...뭔 개소, 콜록!"
깔깔대며 자지러지니 그제서야 장난임을 눈치 챈 가족들이 그저 새빨개진 얼굴로 콜록대는 녀석의 등을 토닥였다.
지훈아, 저런애랑 놀지 마. 누나랑 놀자.
"아, 근데 이번엔 구라안치고. 그 걔네 있잖아 요즘 뜨는애들."
"누구? 여그룹?"
"그럼 남그룹이겠어요 누나?"
이지훈이 정색하며 물었다.
"그 이름 뭐더라. 야, 현수 오빠네 애들 이름이 뭐였지?"
"White."
"아 맞아, 거기 막내가 너 좋아한데."
숟가락으로 열심히 고기만두를 파괴시키던 이지훈이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오, 뭘 그리 불신의 눈으로 나를 쳐다보시나요, 병신이여.
"진짜라니까."
"...안믿어."
"거기 막내가 몇 살인데."
"스무살인가."
딱이네! 이지훈 보다 더 신나신 박여사님이 손뼉을 치며 외쳤다.
유레카~!
"이야, 출세했네 이지훈."
"...아, 예. 뭐."
ㅋㅋㅋㅋㅋ저 새끼 귀 빨개진거봐.
새빨간 귀로 고개를 푹 숙인체 우걱우걱 만두국만 퍼먹는 그 작은 머리통을 바라보며 실실 웃음을 흘렸다. 하여튼간.
"그럼 지훈이 너가 마음에 드는 사람은 없었어?"
...올ㅋ
이건 나도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얘기라 관심없는척 괜히 만두를 건드리며 녀석의 대답을 기다렸을까,
당황으로 물 들어 있던 녀석이 한참을 망설이다 작게 입을 열었다.
"...있는데요."
"……"
이지훈의 대답에 씹고있던 만두를 뱉어내는 언니 뒤로 여전히 귀를 붉게 띄운 체
묵묵히 만두나 쳐 먹고 앉아있는 녀석의 정수리를 말 없이 바라보았다.
"아, 안 나와도 된다니까."
"어떻게 너네 둘만 가는데 안나가니, 뒷모습이라도 봐야지. 물가에 내놓은 애새끼들 같은데."
"괜찮아요, 이모. 들어가 보세요."
"그래?"
우리 엄마 맞지?
어째 당사자 딸보다 소싯적 옆집 사내자식의 말에 신뢰가 더 가는지 들어가 보라는 이지훈의 말에 엄마는 망설임 없이 손 한번 흔들어주더니 뒷모습을 보였다.
"......"
"......"
고해성가를 하며 거리를 떠 돌아다니는 평소와는 달리 한마디 찍, 소리도 내지 않은체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는 내가 의아했는지 자꾸만 옆에서 힐끗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야, 차 오잖아."
아프지 않게 당기는 손길에 힘 없이 끌려가 녀석의 앞에 우두커니 서, 녀석을 바라보았다.
"...뭐, 왜."
"왜 말 안했냐."
"뭐가."
...스블....존나 쪼잔한데 이거.
영문을 모르겠다는 그 얼굴 앞에 서서 입술만 잘근 잘근 물고 있었을까, 녀석의 손이 살짝 턱을 아래로 당겼다.
그제서야 괴롭히고 있던 아랫입술을 놓아 준 체 아무말 없이 서 있자 녀석이 입을 열었다.
"내가 뭘 말 안했는데."
"좋아하는 사람."
"...아."
"야, 나는 어? 중학생때부터 어? ...그 누구야. 누구였더라."
"성수 형."
"그래! 한성수 오빠부터. 그 또...고등학교 2학년때."
"연수 형."
"말 잘했다. 그렇게 다 말해줬는데 너는 나한테 한 번 이라도 말한 적 있어?"
자랑스럽게 턱을 내밀었다.
어이. 대답해봐, 있냐고.
"말해서 뭐해."
"와, 이 새끼."
"그때나 지금이나 한 명인데."
"...어?"
"못 알아 들었으면 됐고."
먼지가 묻었는지 손을 들어 뒤집어쓰고 있는 내 후드를 만지작 거리던 녀석이 공중에 먼지를 흐트리곤 앞서 발걸음을 옮겼다.
"와, 잠만 이지훈 그럼 언제부터 좋아한거야?"
"누군지 알고나 말하는 거야?"
"아니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니가 얘기도 안해줬는데."
"알았어, 성질 좀 내지마."
"와, 이지훈 순정파네 이새끼!"
"...뭐래 또 진짜."
"이야, 적어도 5년은 넘을꺼 아니야."
"아 몰라 몰라! 조용히 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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