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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미뇽앙 세일러문 딸기바나나 민형도령 맠맠 1978 체밈 딱풀 왕왕이 댜댜 이불킥 로로 수진리 약간 안돼 그대를위한잡채 길성이
Essbee - water float village
아
가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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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가씨. ”
“ 낯이 많이 익은 얼굴이구나. ”
“ ..... ”
“ 이 아이의 말대로 내일 해가 뜨기전까지 돌아가거라. ”
선희는 무언가라도 들킨 도둑고양이 마냥 머리를 조아리며 그러겠노라고 작게 대답했다. 그리곤 다급히 집으로 뛰어갔다. 아가씨는 나를 마주하며 물었다. ‘ 너가 말한 중요한 일이 끝난 것 같구나. ’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의 걱정과는 다르게 아가씨는 매우 평온해 보였다. 나는 긴장감에 입술을 깨물며 나의 신발 앞코만 바라보았다.
“ 이제 나에게도 시간을 내주지 않으련? ”
“ ...벌써 밤이 깊었습니다... ”
“ 일부러.. 나를 피하려는 것이구나. ”
내가 아가씨를 볼 때엔 아가씨의 고개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무슨 표정을 짓고 계신지.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지. 언제나처럼 궁금했다. 아가씨는 그대로 나를 뒤로하며 걸어갔다. 나 역시 그런 아가씨를 잡지 못했다. 아가씨의 마음도 점점 멀어지는 것 같다. 아프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작아지는 아가씨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나에겐 마차도, 멋진 정장도, 부릴 수 있는 나인도 없으니, 아가씨를 좋아할 자격이 되지 못하니 말이다.
* * *
나는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익숙한 일이었지만 익숙하지가 않았다. 오늘의 새벽에 담긴 의미가 달라서였을 것이다. 오늘도 여전히 그 남자가 저택을 들렀다. 남자를 맞이하는 일 역시나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가 않다. 밝게 웃는 남자의 미소가 향하는 곳이 부러웠다. 이번 아침식사에는 내가 아닌 동영이 나를 대신하여 들어갔다. 계단 옆에 움츠려 앉아 멍하니 있었다. 말을 걸어오는 복희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복희는 이런 내가 익숙한 듯 아무렇지 않게 지나간다. 나빼고 모두들, 물레방아처럼 반복되는 이 일상에 익숙해져 있다.
잠을 못 자서인지 나는 그 자리에서 꾸벅꾸벅 졸다 시끌벅적한 소리에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열린 문을 통해 마차에 오르는 요오카이 부인을 볼 수 있었다. 남자와 아가씨는 부인을 향해 목례를 했고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나는 방으로 돌아온 동영에게 상황을 물어보았다.
“ 글쎄, 나도 부인이 중간에 나가보라 하셔서 잘 듣지 못했지만 예전처럼 부인이 경성에 일을 보러 나가신 것 같아. 그동안 그 남자는 여기 묵을 예정이고, ”
“ 그렇군요.. ”
“ 그런데.. 있지 민형아. ”
“ 네? ”
동영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동영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알아챘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직감적으로 동영은 지금 나에게 좋지 않은 소식을 들려줄 것만 같다고 느꼈다.
“ 부인이 돌아오는 날... 아가씨의 혼례가 치러질 거래. ”
“ ....아.. ”
“ 나도 놀랐어. 그 남자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거든, 혼례를 앞당기고 싶다고.. 부인도 놀라셨어 하지만 이내 알겠다고 하셨고. ”
빠르면 내일모레, 늦어도 사흘 안에 진행될 거야. 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 그리고 이거 받아. ’ 동영이 책 한 권을 건넸다. 표지를 보고 단번에 아가씨가 동영을 통해 책을 전달했음을 알아챌 수 있었다.
“ 아가씨가 몰래 주시더라고, 무슨 책인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책인 것 같아. 잘 간수해. ”
아가씨가 나에게 미리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인 걸까. 아가씨에게 아직 못 다 읽어준 책을 받아든 나는 눈을 감았다.
*
그날 밤.
소녀는 침대에서 일어나 재현이 있을 옆방으로 건너갔다. 재현은 초를 키고 소녀가 올 줄 알았다는 듯 의자에 앉아있었다. 소녀는 미간을 찌푸리고 재현에게 다가갔다. 왜이리 심술이 났냐는 재현의 따뜻한 말씨에도 소녀는 인상을 구기며 그의 앞에 똑바로 섰다.
“ 부인이랑 나 몰래 뒷거래라도 하신 건가요? 당신이 갑자기 이러는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네요. ”
“ 글쎄요.. 아쉽게도 뒷거래는 하지 못했어요. ”
“ 그러면 나와 상의도 없이 혼례를 앞당긴 이유가 대체 뭔데요! ”
소녀는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럼에도 재현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밝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소녀를 마주했다. 반대로 소녀는 분노가 서린 눈빛으로 재현을 올려다보았다.
“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당신을 도우려 했는데.. 그러기에 시즈코 당신에게 첫눈에 반해서 말이죠. ”
“ ....하, ”
“ 당신을 내 여자로 만들어서 이 집을 벗어나게 해주자는 게 나의 새로운 계획인데, 별로인가요? ”
“ 그렇게 될 바에 차라리 이 자리에서 혀를 깨물고 죽는 편이 낫겠네요. ”
“ 숙녀 입에선 그런 거친 말이 나오면 안 된다고 부인에게 호되게 배우지 않았나요? ”
재현이 소녀의 얼굴로 손을 뻗자 소녀가 세게 그 손을 뿌리쳤다. 재현은 거절당한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웃었다.
“ 어차피 자기 과거도 잊어버린 그런 멍청한 남자애와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거, 당신도 잘 알 거라 생각하는데, ”
“ ...그 아이를 건드릴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
“ 알겠어요 알겠어, 그러면 이제 마음을 좀 풀어요. ”
재현이 소녀에게 다가가자 소녀는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나 곧 그마저도 벽에 막히고 말았다. 재현을 밀치려 소녀가 손을 뻗었지만 재현은 쉽게 소녀를 제압했다. 소녀는 겁에 질렸다. 이제야 긴 이야기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나 했더니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겨 지금까지 공들여온 모든 노력들이 물거품이 될 최악의 상황이 코앞까지 닥쳐왔다. 이럴 순 없어, 이렇게 되어선 안 돼, 소녀는 마음속으로 수십 번이고 외쳤다. 소녀의 머릿속에 소년이 아른거렸다.
“ 내가 언제 이 집에서 살자고 했나요? 나와 새로운 시작을 하자고 했지. ”
“ 그래서 내가 싫다고 했잖아요. 소리 지르기 전에 이 손 당장 놔요. ”
“ 소리라도 지르면 뭐, 백마 탄 왕자라도 올까 봐요? 이미 당신 앞에 서 있는데 ”
“ 하- 당신 정말 미쳤군요.. ”
소녀는 이를 악물고 재현을 밀어내려 했지만 그럴수록 재현은 더 가까이 다가올 뿐이었다. 당신을 이 구렁텅이에서 꺼내줄 동아줄이 나라는 걸 왜 부정해요. 표정과 목소리는 한없이 다정하고 부드러웠지만 소녀는 그런 재현이 무서울 뿐이었다.
“ 선희 그 계집애가 어제 들킨게 차라리 다행이라 생각되네요. ”
“ 부인에게 걸리면 죽을 수도 있는데, 자기 동생을 팔아서까지 하면서 나와 결혼하고 싶은거에요? ”
“ 그렇다고 말 하면, 이제 화 풀어줄거에요? ”
“ 나더러 썩은 동아줄을 잡으라니.. 어림도 없는 소리. ”
짝-
소녀의 입술과 맞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오던 재현의 고개가 순식간에 돌아갔다. 소녀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재현은 살짝 부어오른 볼을 감싸며 소녀를 보았다.
“ 좋게 넘어가려 했더니 분수를 모르고, ”
재현은 소녀의 머리채를 잡고 바닥으로 내리쳤다. 소녀가 소리를 지르자 재현은 소녀의 입을 틀어막고 일으켜 침대로 끌고 갔다. 소녀를 침대 위로 내동댕이친 재현이 올라가려는데, 누군가 재현의 어깨 위로 손을 올렸다. 뒤를 도는 순간 재현은 주먹을 맞고 쓰러졌다. 고개를 든 소녀의 앞에 소년이 서 있었다.
“ 너, 너가 어찌... ”
“ 아가씨.. ”
소녀에게 다가서던 소년은 비틀대며 의자를 들고 소년을 향해 달려드는 재현에 다시 눈앞에서 소녀의 손을 놓치고 말았다. 바닥에 나뒹굴던 소년의 위로 올라탄 재현이 마구잡이로 주먹을 날렸다. 소녀가 재현을 덮쳐 겨우 소년을 지켜냈다. 하지만 곧 재현의 손찌검을 맞고 바닥을 기었다. 소년은 책상 위에 놓인 유리 화분을 들고 재현을 향해 걸어갔다.
쨍그랑-
망설임 없이 재현의 머리 위로 화분을 내던진 소년의 앞에서 재현은 무릎을 꿇으며 천천히 쿵- 소리를 내며 바닥에 엎어졌다. 흩뿌려진 유리조각들이 점점 피로 물들었다. 소녀는 멍하니 재현을 바라보다 자신이 저지른 일을 뒤늦게 깨닫고 두려움에 떠는 소년에게 달려갔다. 소년은 자신의 손을 보며 심하게 떨고 있었다. 소녀가 소년의 터진 입술을 매만지며 떨리는 목소리를 잡고 얘기했다.
“ 정신차려, 정신차려야해. 너 여긴 어떻게 알고온거야.. 혹시... ”
“ ...아, 아가씨... ”
소년은 눈물을 흘렸다. 소녀는 소년의 눈물을 손으로 닦아냈다. 소년이 말했다.
“ ...저.... 다.. 알았어요... ”
“ ...무, 무슨.. ”
“ 기억이.. 되돌아왔어요... ”
미.. 민형아.
소녀의 부름에 소년이 기다렸단 듯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