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같이 살아요
+0
。
[엄마 이혼했다.
오후 11시 42분 ]
며칠 전부터 집이 비는 날이 많았다. 원래도 집이 비는 날이 수두룩 하긴 했지만. 유독 야근을 많이 하는 엄마와 애초에 집에 들어오는 일이 적었던 아빠 때문에 딱히 둘 사이를 의심할 일은 없었다. 내가 둘에게 관심이 없는 것도 크게 한몫을 했고. 핸드폰 배터리가 모두 나가 잠시 폰이 꺼졌었다. 학원이 끝나고 친구들과 밤 편의점을 조금 즐기다가 집에 들어와서 충전을 해보니 어쩐 일인지 용돈 입금 문자만 쌓여가던 엄마와의 문자에 드디어 다른 말이 쌓였다. 이혼이란 단어가 낯설어 몇 번이고 문자를 다시 보고 발신자를 확인하고 글자 크기도 키워봤지만 변하는 게 없었다. 우리 집은 끝이 났다.
딱히 이 상황이 무섭다거나, 앞날이 걱정되어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나는 7살 먹은 어린 애도 아니었고, 더더욱이 나는 둘 사이에 무엇인가를 해줬던 적이 없었다. 그냥 지금 걱정이 되는 건 누굴 따라가느냐 였다. 내가 한참 거실에 앉아 넋 놓고 있는 새벽 즈음 도어락이 풀렸다. 엄마나 아빠겠지 했는데 웬일로 변호사님이 들어오셨다.
이러쿵저러쿵. 내게 지금까지 있었던 둘의 상황을 얘기하시더니 곧장 본론이라며 입을 열으셨다.
" 어머님과 같이 살게 될 겁니다. 양육권은 그쪽으로 갔거든요. "
열여덟의 시작. 엄마와 같이 살게 되었다.
。
운전대를 잡은 엄마나, 가방을 꼭 끌어안은 나나. 둘은 말이 없었다. 오랫만이네. 가족의 첫인사가 오랫만이네 라니. 눈물나는 모녀 상봉을 바라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무미건조할 줄 누가 알았겠나. 나는 눈을 꼭 감고 잠에 들려고 애를 썼다. 차라리 그게 둘의 어색한 공기를 참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엄마의 손길에 잠이 깨니 새로운 집에 도착했다. 나란히 붙은 땅콩집이었다. 책에서 보던 것 같았는데 이렇게 보니까 신기하네. 작은 마당을 가로질러 현관문 앞으로 가는데 옆집 현관문이 바로 옆에 붙어있다. 느낌이 좋지만은 않았다. 엄마는 잠시 문 앞에서 망설이는 나를 보고는 들어가서 설명하겠다며 내 손목을 잡아 안으로 끌었다.
거실에 와보니 옆집과는 미닫이문 하나밖에 없었다. 그냥 한집이라고 봐도 무방한 듯 싶을 정도로. 속으로 제발 이 집과 저 미닫이문 너머의 집이 하나의 집이고, 엄마와 나의 공간이 나누어져 있길 빌었다. 미닫이문 너머로 또 다른 가족이 산다면? 그건 정말 싫었다. 엄마와 단둘이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힐 지경인데 여기서 또 다른 사람들과 마주하지 않길 빌었지만 나의 기도는 먹히지 않았다.
" 옆집은 엄마 친구네 집이야. "
。
엄마가 내 짐을 가지러 가겠다고 집을 나가고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멍하니 미닫이문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막막했다. 지금이라도 아빠와 같이 살겠다고 하고 싶었다. 차라리 중국으로 가서 아무것도 모르는 그곳에서 새롭게 사는 게 맘에 편할 거니까. 엄마의 말로는 나와 어렸을 때 같은 동네에서 자랐고 많이 친했었던 동네 친구가 미닫이문 반대편에 있다고 한다. 그럼 뭐해 기억도 안 나는 대여섯 살 때 친구인데.
마른세수를 멈출 수 없었다. 푹푹 쉬는 한숨만이 내 답답함을 풀어주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해가 뜨자 옆집에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작은 식기들이 부딪히는 소리였다. 아 이제 아침 먹을 시간이구나. 나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향했다. 냉장고가 이전 집과는 다르게 꽉 차 있다. 몇 주 전부터 여기 살았다고 했다. 냉장고를 열고 한참을 지켜보다가 딱히 간단히 먹을 게 없어서 문을 닫았다. 식탁에 식빵이 있길래 토스터에 넣고 잠시 식탁 의자에 앉았다.
" 이모. 아침 식사하세요. "
조용한 적막도 잠시, 미닫이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누군가가 우리 집으로 넘어왔다. 부엌으로 발걸음이 다가오자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자 또래로 보이는 남자애가 아직 졸음을 못 쫓아낸 체 하품하는 입을 손으로 가려가며 엄마를 찾아왔다.
" 아 지금 짐 찾으러 가셨는데... "
어색하게 남자애를 맞자 당황한 눈초리였다. 아 그래? 서로 어색하게 뒷머리만 긁적이고는 말이 없었다. 그럼 너라도 아침 먹으러 와. 남자애는 잠시 어색한 미소를 보이다간 저를 따라오라며 내게 손짓했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사양했다. 지금 빵 구웠으니까 괜찮아. 더는 할 말이 없자 남자애는 알겠다며 자리를 떴다. 그 찰나가 길어 숨이 막혔다. 힐끗 훔쳐본 교복 명찰에는 어렴풋이 기억나는 이석민이라는 이름이 박혀 있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잘부탁드릴게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