變化.
태니.
젤리탱.
*
눈이 펑펑 내리는 침침한 밤이었다. 밤이어서 더 들어올 빛도 없었건만 침실엔 커튼이 쳐져 있었 다.
주방 불만 들어 와있고 나머지 방 불은 다 꺼져 있었다. 침실 문은 열려있다. 으스스한 느낌도 나게 한다.
침실에선 흡사 비명소리 혹은 헐떡이는 소리가 뒤섞인 괴상한 소리가 나고 있었다. 요란하게 흔들리는 침대에 바삐 움직이는 손까지 그 모든 상황은 단 한가지를 위해 달리고 있었다.
부드럽지 못하고 다정하지 못한 입술과 손은 살 결을 따라 움직였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를 추구함에 있어선 실이 되지 못했다. 손을 깊숙이 넣자 그제서야 쾌락을 위한 행위가 멈춰졌다.
행위가 끝나자 태연은 언제 그 몸에 내가 달라붙 고 있었냐는 듯 무관심하게 대했다. 화장실로 직 행해 손을 깨끗이 씻었다. 목욕도 할 겸해서 욕조 에 물을 틀었다.
침대에서 요지부동이었던 여자는 이불을 끌어모 아 제 몸을 가렸다. 태연은 헝클어진 머리를 거울 을 보며 정리했다. 화장실에서 나오자 침실 안에 서는 욕조에 물 받는 소리만 들렸다.
태연이 바닥에 던져두었던 자켓을 집어 들어 속 주머니를 뒤졌다. 지갑을 찾은 태연은 지갑 속에 들어있는 돈이란 돈은 다 침대에 뭉텅이로 던졌 다. 이불로 몸을 가리고 있던 여자는 베시시 웃으 며 돈을 가져갔다.
"언니야, 금액이 더 커진 것 같다?"
"언니 소리 좀 그만하지."
"무슨 기분 좋은 일 있어?"
기분 좋은 일? 아니, 황미영인가 뭔가 하는 정신 과 의사 때문에 하루하루가 엿 같은데. 내 머리 위로 기어 오르려는 애들 내치고 꾸역꾸역 올라 온 건데 황미영은 눈치도 없게 내 머리 위를 밟고서려고 한다.
두 번은 내 머리 위에서 잘만 놀길래 가만히 보다 가 내가 충동적으로 욱 했더니 꼬리 내리는 것도 잘하더라. 강아지 같아서 괴롭히고 싶어. 내 인생 에 걸림돌이 될 게 분명한데 그걸 가만히 놔둬야 하는 걸까 아니면 산산조각 내버려야 하는 걸까.
여자는 돈을 세어보고 정말 금액이 늘었다며 좋 아했다. 태연은 여자에게 쉬고 싶다며 얼른 옷 입 고 꺼지라고 했다. 여자도 그럴 생각이었는지 바 닥에 널브러진 옷을 찾아 입었다.
여자는 문이 살짝 열려있는 장롱 문을 봤다.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상관할 바는 아니었는데 반짝하 고 빛에 반사되는 무언가가 있다는 건 알았다. 호 기심이 일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보석이라도 있으면 하나 달라고 말해야겠다. 태 연이 들어줄지 안 들어줄지는 미지수지만.
"언니, 여기 안에 뭐 있어?"
"......"
침대에 앉아 폰을 보고 있던 태연이 여자의 손이 가리키는 장롱을 봤다. 폰 불빛이 태연의 얼굴 일 부를 적나라하게 비추고 있었는데 이유 모를 분 노가 드러나 있었다. 여자는 눈치채지 못했다.
기계의 움직임 같은 태연의 행동은 진작 앞날을 예견해주고 있었다.
"열어 봐도 돼?"
"안 돼."
"왜에, 내가 몇 번이나 여길 왔다갔다 했는데 여긴 본 적 없는 것 같아."
"열지 마."
"귀한 거라도 숨겨 놨어? 응? 그럼 나도......"
태연이 막을 새도 없이 여자는 벌컥 문을 열었다. 신난 목소리로 떠들던 여자의 입이 저절로 다물 어졌다. 여자의 고개가 천천히 바닥으로 떨어졌 다. 여자는 손으로 눈을 가리고 비명을 질렀다.
태연은 폰을 침대로 던지고 열려진 장롱 앞에 있 는 여자의 머리를 잡아 바닥으로 내던졌다. 힘없 이 바닥에 쓰러진 여자는 일어날 정신도 없어 보 였다.
태연은 여자 위에 올라타서 여자의 목을 졸랐다. 손에 힘을 더해가는 중에도 태연의 얼굴엔 감정 이 실려있지 않았다. 여자가 발버둥 치면 칠수록 목을 죄고 있는 손도 무게를 가했다. 여자는 태연 의 팔을 붙잡았지만 힘이 자꾸만 빠져서 떨어졌 다.
여자의 움직임이 더뎌지기 시작했을 때 태연은 손을 뗐다. 심하게 콜록이는 여자는 숨을 막 들이쉬었다. 숨이 아무렇게나 들어와서 답답한 기분이 들어도 몇 초동안 마시지 못했던 숨을 마시려고 했다.
태연은 고통스러워하는 여자는 안중에도 두지 않 고 다시 여자의 머리채를 잡아서 화장실로 끌고 갔다. 여자는 화장실 벽에 기대어 앉아서 거친 숨 을 몰아쉬고 있었다.
태연은 틀어놓은 수도꼭지를 잠그고 화장실을 나 가서 끈을 찾았다. 화장실로 돌아와 무서워서 눈 을 동그랗게 뜬 여자의 양 손목을 등 뒤로해서 끈 으로 묶었다. 앉아있는 여자의 몸을 일으켰다.
손가락 사이사이에 여자의 머릿칼이 가득 차고 뒤로 잡아당겼다. 잡아 당겨지면서 여자는 천장을 바라보는 꼴이 됐다. 올라간 턱이 바들바들 떨었다. 태연의 손짓이 억세서 여자는 눈꼬리에 눈물을 매달아놨다.
태니.
젤리탱.
*
눈이 펑펑 내리는 침침한 밤이었다. 밤이어서 더 들어올 빛도 없었건만 침실엔 커튼이 쳐져 있었 다.
주방 불만 들어 와있고 나머지 방 불은 다 꺼져 있었다. 침실 문은 열려있다. 으스스한 느낌도 나게 한다.
침실에선 흡사 비명소리 혹은 헐떡이는 소리가 뒤섞인 괴상한 소리가 나고 있었다. 요란하게 흔들리는 침대에 바삐 움직이는 손까지 그 모든 상황은 단 한가지를 위해 달리고 있었다.
부드럽지 못하고 다정하지 못한 입술과 손은 살 결을 따라 움직였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를 추구함에 있어선 실이 되지 못했다. 손을 깊숙이 넣자 그제서야 쾌락을 위한 행위가 멈춰졌다.
행위가 끝나자 태연은 언제 그 몸에 내가 달라붙 고 있었냐는 듯 무관심하게 대했다. 화장실로 직 행해 손을 깨끗이 씻었다. 목욕도 할 겸해서 욕조 에 물을 틀었다.
침대에서 요지부동이었던 여자는 이불을 끌어모 아 제 몸을 가렸다. 태연은 헝클어진 머리를 거울 을 보며 정리했다. 화장실에서 나오자 침실 안에 서는 욕조에 물 받는 소리만 들렸다.
태연이 바닥에 던져두었던 자켓을 집어 들어 속 주머니를 뒤졌다. 지갑을 찾은 태연은 지갑 속에 들어있는 돈이란 돈은 다 침대에 뭉텅이로 던졌 다. 이불로 몸을 가리고 있던 여자는 베시시 웃으 며 돈을 가져갔다.
"언니야, 금액이 더 커진 것 같다?"
"언니 소리 좀 그만하지."
"무슨 기분 좋은 일 있어?"
기분 좋은 일? 아니, 황미영인가 뭔가 하는 정신 과 의사 때문에 하루하루가 엿 같은데. 내 머리 위로 기어 오르려는 애들 내치고 꾸역꾸역 올라 온 건데 황미영은 눈치도 없게 내 머리 위를 밟고서려고 한다.
두 번은 내 머리 위에서 잘만 놀길래 가만히 보다 가 내가 충동적으로 욱 했더니 꼬리 내리는 것도 잘하더라. 강아지 같아서 괴롭히고 싶어. 내 인생 에 걸림돌이 될 게 분명한데 그걸 가만히 놔둬야 하는 걸까 아니면 산산조각 내버려야 하는 걸까.
여자는 돈을 세어보고 정말 금액이 늘었다며 좋 아했다. 태연은 여자에게 쉬고 싶다며 얼른 옷 입 고 꺼지라고 했다. 여자도 그럴 생각이었는지 바 닥에 널브러진 옷을 찾아 입었다.
여자는 문이 살짝 열려있는 장롱 문을 봤다.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상관할 바는 아니었는데 반짝하 고 빛에 반사되는 무언가가 있다는 건 알았다. 호 기심이 일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보석이라도 있으면 하나 달라고 말해야겠다. 태 연이 들어줄지 안 들어줄지는 미지수지만.
"언니, 여기 안에 뭐 있어?"
"......"
침대에 앉아 폰을 보고 있던 태연이 여자의 손이 가리키는 장롱을 봤다. 폰 불빛이 태연의 얼굴 일 부를 적나라하게 비추고 있었는데 이유 모를 분 노가 드러나 있었다. 여자는 눈치채지 못했다.
기계의 움직임 같은 태연의 행동은 진작 앞날을 예견해주고 있었다.
"열어 봐도 돼?"
"안 돼."
"왜에, 내가 몇 번이나 여길 왔다갔다 했는데 여긴 본 적 없는 것 같아."
"열지 마."
"귀한 거라도 숨겨 놨어? 응? 그럼 나도......"
태연이 막을 새도 없이 여자는 벌컥 문을 열었다. 신난 목소리로 떠들던 여자의 입이 저절로 다물 어졌다. 여자의 고개가 천천히 바닥으로 떨어졌 다. 여자는 손으로 눈을 가리고 비명을 질렀다.
태연은 폰을 침대로 던지고 열려진 장롱 앞에 있 는 여자의 머리를 잡아 바닥으로 내던졌다. 힘없 이 바닥에 쓰러진 여자는 일어날 정신도 없어 보 였다.
태연은 여자 위에 올라타서 여자의 목을 졸랐다. 손에 힘을 더해가는 중에도 태연의 얼굴엔 감정 이 실려있지 않았다. 여자가 발버둥 치면 칠수록 목을 죄고 있는 손도 무게를 가했다. 여자는 태연 의 팔을 붙잡았지만 힘이 자꾸만 빠져서 떨어졌 다.
여자의 움직임이 더뎌지기 시작했을 때 태연은 손을 뗐다. 심하게 콜록이는 여자는 숨을 막 들이쉬었다. 숨이 아무렇게나 들어와서 답답한 기분이 들어도 몇 초동안 마시지 못했던 숨을 마시려고 했다.
태연은 고통스러워하는 여자는 안중에도 두지 않 고 다시 여자의 머리채를 잡아서 화장실로 끌고 갔다. 여자는 화장실 벽에 기대어 앉아서 거친 숨 을 몰아쉬고 있었다.
태연은 틀어놓은 수도꼭지를 잠그고 화장실을 나 가서 끈을 찾았다. 화장실로 돌아와 무서워서 눈 을 동그랗게 뜬 여자의 양 손목을 등 뒤로해서 끈 으로 묶었다. 앉아있는 여자의 몸을 일으켰다.
손가락 사이사이에 여자의 머릿칼이 가득 차고 뒤로 잡아당겼다. 잡아 당겨지면서 여자는 천장을 바라보는 꼴이 됐다. 올라간 턱이 바들바들 떨었다. 태연의 손짓이 억세서 여자는 눈꼬리에 눈물을 매달아놨다.
"열지 말라고 했잖아."
여자의 목울대가 울렁였다. 일정한 음으로 말하 는 태연의 표정을 보려고 여자는 제가 볼 수 있는 시야로 최선을 다했다. 태연이 한 손으로 마른세 수를 했다. 여자는 딸꾹질이 났다. 태연이 시선을 아래로 내려 여자를 쳐다봤다. 공포에서 기인된 딸꾹질은 멈추고 싶어도 멈춰지지 않았다.
태연은 예고도 없이 위로 들려진 여자의 얼굴을 욕조로 집어 넣었다. 손목에 묶여있는 끈 때문에 심한 반항을 하지 못했다. 여자가 괴로워서 얼굴 을 이리저리 흔드는데 태연은 위에서 아래로 강 하게 눌러서 여자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했다.
몸부림을 치느라 여자의 무릎이 바닥이고 벽에 부딪혀 상처가 나기 시작했다. 태연이 여자의 고개를 물 속에서 해방시켰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 하고 콜록이는 여자의 얼굴로 가까이 했다.
기도로 물이 넘어갔는지 한참 동안 기침을 심하 게 했다. 다급했던 시간이었던 걸 증명해주듯 거 칠게 숨을 쉰다는 게 여자의 코, 가슴의 오르락 내 리락 정도로 알 수 있었다.
끝난 줄 알았던 이 잔인한 행태는 세 번을 더 반복하고서야 끝났다. 여자의 몸이 성한 곳이 없었다. 손목과 무릎은 까진지 오래됐고 가슴팍엔 멍이 든 것 같았다.
단 몇 분 사이에 여자는 만신창이가 됐다. 태연은 여자의 젖은 얼굴을 조심스러운 손길로 만져주었 다. 냉랭했던 태연은 사라지고 다정다감한 태연 만이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다.
"경고를 했는데 듣지 않은 널 어떻게 할까."
"......"
"넌 내가 너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허망하고 초점없이 풀린 여자의 눈은 아무것도 대답해 주지 못했다. 물방울이 볼을 타고 턱으로 흐르고 목을 따라 내려갔다. 그 물방울이 젖어서 그런건지 아니면 눈물이 나서인지는 몰랐다.
태연은 좋은 구경을 시켜주겠다며 여자를 화장실 에서 끌고 나와 열린 장롱 앞으로 무릎을 꿇게 했 다. 손목에 묶은 끈을 끊었다. 숙여진 여자의 고개를 손으로 들어 올렸다. 여자가 눈을 감았다. 태연이 명령했다.
"눈 떠."
"......"
"강제로 벌리기 전에."
여자는 다시금 오금이 저려오는 걸 느꼈다. 아까 전에 당했던 물고문이 떠올랐다. 그보다 더 심한 걸 받지 않을까 라는 두려움에 눈을 떴다. 눈을 뜨고 펼쳐진 광경이 강제로 벌리기 위한 그 무엇의 행동보다 나을 거라고 여자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다독이고 위로했다.
"네가 보고 싶다고 한 것들이야. 어때? 아직도 보고 싶어?"
여자라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장롱 내부는 진열 장과 흡사하게 생겼다. 일종의 수납공간이었다.
원기둥 모양의 유리병 안에는 이상한 액체가 담 겨있었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유리병 안엔 사람 의 장기도 들어있었다. 이상한 액체의 용도는 장 기를 썩지 않게 하기 위해서인 것 같았다.
어림잡아 세어 보니 유리병은 적어도 6개는 있는 것 같았다. 태연은 그것들을 감상하며 말했다.
"안 그래도 하나를 더 얻어볼까 생각하고 있었는 데."
"......"
여자가 무릎걸음으로 뒷걸음질 하려했다. 태연이 눈치채고 못가게 어깨를 눌렀다. 여자의 피폐해 진 정신은 지금 이 상황에선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태연이 여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자의 눈동 자는 어떻게서든지 저 끔찍한 광경을 보지 않겠 다며 방황했다. 태연은 굳이 그 도망치는 눈동자 까진 붙들지 않았다. 보이는 삼면이 다 유리병들 이었으니까.
"내 방에서 몇 명이 죽었는지 알려줄까?"
"......"
"두 명이야. 그 두 명의 것도 여기 유리병들 중에 있어."
"......"
"넌 어떤게 좋아?"
여자가 뭘 물어보는지 모르겠다는 눈으로 태연을 마주봤다. 태연이 싱긋 웃었다. 태연은 전에 없던 호의를 베풀며 재차 말해줬다.
"어떤 장기를 좋아하냐고."
"!!"
"모르겠어? 괜찮아. 생각을 안 해봤으면 모를 수 있지. 가르쳐줄게."
태연이 선반 상단에 있는 유리병을 보며 여자의 흉부 중앙에 손을 올려놨다. 손으로 심장박동이 느껴졌다. 일정한 고동이 울렸다.
"심장?"
이번엔 갈비뼈로 손이 옮겨졌다.
"아니면 폐?"
태연은 유리병에 담긴 장기들의 명칭을 나열하며 손으로 친절히 위치를 가리켰다. 그럴 때마다 여 자는 제 장기가 저 유리병 안에 들어있는 착각을 했다.
"간이랑, 신장이랑, 아 너는 눈하고 손도 예쁘니까 그것도 낫겠다."
"그만..."
여자가 입을 뗐다. 신나서 얘기하던 태연은 여자 의 턱을 확 잡아돌렸다. 태연의 눈을 정면 응시하 게 된 여자는 울음이 비죽여 나오는 걸 참을 수 없었다.
"난 심장이 좋아. 모양도 예쁘고 피가 몸에서 터져 나올 때, 심장 때문에 울컥울컥 쏟아져. 폭죽 같다니까."
"......"
"내 손에 딱 들어오는 것도 좋아."
"살려줘..."
태연은 여자를 다 가지고 놀았는지 자리에서 일 어났다. 태연은 침대에 누워 폰을 했다.
"네가 보고 싶어 하던 거 구경 시켜줬으니까 이제 나가."
"......"
"또 보고 싶으면 그땐 흔쾌히 불까지 다 켜고 보여줄게."
-
밤 9시가 넘어가는 시각 미영은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고 있었다. 심심함이 극도로 치달아서 진기에게 카톡을 보냈는데 한참 있다가 톡이 오기를 '응급환자 떠서 정신없음 .'
아까 Tv채널을 틱틱 돌려도 재미없는 프로그램만 해서 진작에 때려쳤다. 불 끄고 일찍 자볼까 했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오늘 겨우 비번이 걸려서 꿀 휴식을 취하는 게 옳은 결정이었다.
그러나 미영은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일부 터 또 정신없이 밥을 거르고 잠을 거르며 일할게 분명한데도.
연락처를 뒤지던 미영이 연락처 맨 첫번째 줄에 있는 연락처에 멈췄다. '김태연.' 이 사람 때문에 내가 혼돈의 카오스에 빠졌다.
자칫 잘못하다 그 사람 얼굴만 보고도 무서워져 서 말이나 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럼 너무 자존심이 상한다.
내가 옆에서 봐주고 싶다는 열망이 솟구쳐 올라 왔다. 도면 도고 모면 모라고 그냥 부딪치자.
미영이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늦은 시간은 아닌 데 전화를 받을지 모르겠다. 의외로 태연이 전화 를 빨리 받았다. 예상 외여서 미영은 얼버무렸다. 무미건조한 투가 수화기를 타고 미영의 귀에 박 혔다.
"누구세요."
'여보세요? 누구세요?'가 아닌 자기가 궁금한 점 을 바로 질문하는 것도 뭔가 김태연다웠다.
"xx대학병원 정신과 의사 황미영입니다."
"......"
"다름이 아니라 치료 권유하려고 전화 드렸어요."
"......"
"여보세요?"
미영은 초조해져서 입술을 깨물었다. 불안함에 다리를 떨었다. 거절한다고 해서 나쁜 게 있는 건 아니었어도 뭔가 이 환자는 놓치기 싫었다. 처음 만났을 때의 그 눈빛은 대체 뭐였던 걸까.
이진기하고 비슷했지만 김태연은 더 어리숙했다. 서투름이 온 몸에서 표출됐었다.
"이번주 토요일 날 영화 보러 갈래요?"
"...치료라면서요."
"치료의 한 과정이라고 하죠, 뭐. 시간 돼요?"
"네."
"그럼 제가 나중에 연락 드릴게요."
미영이 전화를 끊었다. 벌렁거리는 심장이 주체 되질 않는다. 마음이 오락가락한다. 다음 해엔 좋 은 일만 있으라는 액땜인 건지 올해 연말은 엉망 이다.
미영은 방 불을 끄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복잡한 생각이 퍼지기 전에 잠들어야겠다.
여자의 목울대가 울렁였다. 일정한 음으로 말하 는 태연의 표정을 보려고 여자는 제가 볼 수 있는 시야로 최선을 다했다. 태연이 한 손으로 마른세 수를 했다. 여자는 딸꾹질이 났다. 태연이 시선을 아래로 내려 여자를 쳐다봤다. 공포에서 기인된 딸꾹질은 멈추고 싶어도 멈춰지지 않았다.
태연은 예고도 없이 위로 들려진 여자의 얼굴을 욕조로 집어 넣었다. 손목에 묶여있는 끈 때문에 심한 반항을 하지 못했다. 여자가 괴로워서 얼굴 을 이리저리 흔드는데 태연은 위에서 아래로 강 하게 눌러서 여자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했다.
몸부림을 치느라 여자의 무릎이 바닥이고 벽에 부딪혀 상처가 나기 시작했다. 태연이 여자의 고개를 물 속에서 해방시켰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 하고 콜록이는 여자의 얼굴로 가까이 했다.
기도로 물이 넘어갔는지 한참 동안 기침을 심하 게 했다. 다급했던 시간이었던 걸 증명해주듯 거 칠게 숨을 쉰다는 게 여자의 코, 가슴의 오르락 내 리락 정도로 알 수 있었다.
끝난 줄 알았던 이 잔인한 행태는 세 번을 더 반복하고서야 끝났다. 여자의 몸이 성한 곳이 없었다. 손목과 무릎은 까진지 오래됐고 가슴팍엔 멍이 든 것 같았다.
단 몇 분 사이에 여자는 만신창이가 됐다. 태연은 여자의 젖은 얼굴을 조심스러운 손길로 만져주었 다. 냉랭했던 태연은 사라지고 다정다감한 태연 만이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다.
"경고를 했는데 듣지 않은 널 어떻게 할까."
"......"
"넌 내가 너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허망하고 초점없이 풀린 여자의 눈은 아무것도 대답해 주지 못했다. 물방울이 볼을 타고 턱으로 흐르고 목을 따라 내려갔다. 그 물방울이 젖어서 그런건지 아니면 눈물이 나서인지는 몰랐다.
태연은 좋은 구경을 시켜주겠다며 여자를 화장실 에서 끌고 나와 열린 장롱 앞으로 무릎을 꿇게 했 다. 손목에 묶은 끈을 끊었다. 숙여진 여자의 고개를 손으로 들어 올렸다. 여자가 눈을 감았다. 태연이 명령했다.
"눈 떠."
"......"
"강제로 벌리기 전에."
여자는 다시금 오금이 저려오는 걸 느꼈다. 아까 전에 당했던 물고문이 떠올랐다. 그보다 더 심한 걸 받지 않을까 라는 두려움에 눈을 떴다. 눈을 뜨고 펼쳐진 광경이 강제로 벌리기 위한 그 무엇의 행동보다 나을 거라고 여자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다독이고 위로했다.
"네가 보고 싶다고 한 것들이야. 어때? 아직도 보고 싶어?"
여자라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장롱 내부는 진열 장과 흡사하게 생겼다. 일종의 수납공간이었다.
원기둥 모양의 유리병 안에는 이상한 액체가 담 겨있었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유리병 안엔 사람 의 장기도 들어있었다. 이상한 액체의 용도는 장 기를 썩지 않게 하기 위해서인 것 같았다.
어림잡아 세어 보니 유리병은 적어도 6개는 있는 것 같았다. 태연은 그것들을 감상하며 말했다.
"안 그래도 하나를 더 얻어볼까 생각하고 있었는 데."
"......"
여자가 무릎걸음으로 뒷걸음질 하려했다. 태연이 눈치채고 못가게 어깨를 눌렀다. 여자의 피폐해 진 정신은 지금 이 상황에선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태연이 여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자의 눈동 자는 어떻게서든지 저 끔찍한 광경을 보지 않겠 다며 방황했다. 태연은 굳이 그 도망치는 눈동자 까진 붙들지 않았다. 보이는 삼면이 다 유리병들 이었으니까.
"내 방에서 몇 명이 죽었는지 알려줄까?"
"......"
"두 명이야. 그 두 명의 것도 여기 유리병들 중에 있어."
"......"
"넌 어떤게 좋아?"
여자가 뭘 물어보는지 모르겠다는 눈으로 태연을 마주봤다. 태연이 싱긋 웃었다. 태연은 전에 없던 호의를 베풀며 재차 말해줬다.
"어떤 장기를 좋아하냐고."
"!!"
"모르겠어? 괜찮아. 생각을 안 해봤으면 모를 수 있지. 가르쳐줄게."
태연이 선반 상단에 있는 유리병을 보며 여자의 흉부 중앙에 손을 올려놨다. 손으로 심장박동이 느껴졌다. 일정한 고동이 울렸다.
"심장?"
이번엔 갈비뼈로 손이 옮겨졌다.
"아니면 폐?"
태연은 유리병에 담긴 장기들의 명칭을 나열하며 손으로 친절히 위치를 가리켰다. 그럴 때마다 여 자는 제 장기가 저 유리병 안에 들어있는 착각을 했다.
"간이랑, 신장이랑, 아 너는 눈하고 손도 예쁘니까 그것도 낫겠다."
"그만..."
여자가 입을 뗐다. 신나서 얘기하던 태연은 여자 의 턱을 확 잡아돌렸다. 태연의 눈을 정면 응시하 게 된 여자는 울음이 비죽여 나오는 걸 참을 수 없었다.
"난 심장이 좋아. 모양도 예쁘고 피가 몸에서 터져 나올 때, 심장 때문에 울컥울컥 쏟아져. 폭죽 같다니까."
"......"
"내 손에 딱 들어오는 것도 좋아."
"살려줘..."
태연은 여자를 다 가지고 놀았는지 자리에서 일 어났다. 태연은 침대에 누워 폰을 했다.
"네가 보고 싶어 하던 거 구경 시켜줬으니까 이제 나가."
"......"
"또 보고 싶으면 그땐 흔쾌히 불까지 다 켜고 보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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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9시가 넘어가는 시각 미영은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고 있었다. 심심함이 극도로 치달아서 진기에게 카톡을 보냈는데 한참 있다가 톡이 오기를 '응급환자 떠서 정신없음 .'
아까 Tv채널을 틱틱 돌려도 재미없는 프로그램만 해서 진작에 때려쳤다. 불 끄고 일찍 자볼까 했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오늘 겨우 비번이 걸려서 꿀 휴식을 취하는 게 옳은 결정이었다.
그러나 미영은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일부 터 또 정신없이 밥을 거르고 잠을 거르며 일할게 분명한데도.
연락처를 뒤지던 미영이 연락처 맨 첫번째 줄에 있는 연락처에 멈췄다. '김태연.' 이 사람 때문에 내가 혼돈의 카오스에 빠졌다.
자칫 잘못하다 그 사람 얼굴만 보고도 무서워져 서 말이나 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럼 너무 자존심이 상한다.
내가 옆에서 봐주고 싶다는 열망이 솟구쳐 올라 왔다. 도면 도고 모면 모라고 그냥 부딪치자.
미영이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늦은 시간은 아닌 데 전화를 받을지 모르겠다. 의외로 태연이 전화 를 빨리 받았다. 예상 외여서 미영은 얼버무렸다. 무미건조한 투가 수화기를 타고 미영의 귀에 박 혔다.
"누구세요."
'여보세요? 누구세요?'가 아닌 자기가 궁금한 점 을 바로 질문하는 것도 뭔가 김태연다웠다.
"xx대학병원 정신과 의사 황미영입니다."
"......"
"다름이 아니라 치료 권유하려고 전화 드렸어요."
"......"
"여보세요?"
미영은 초조해져서 입술을 깨물었다. 불안함에 다리를 떨었다. 거절한다고 해서 나쁜 게 있는 건 아니었어도 뭔가 이 환자는 놓치기 싫었다. 처음 만났을 때의 그 눈빛은 대체 뭐였던 걸까.
이진기하고 비슷했지만 김태연은 더 어리숙했다. 서투름이 온 몸에서 표출됐었다.
"이번주 토요일 날 영화 보러 갈래요?"
"...치료라면서요."
"치료의 한 과정이라고 하죠, 뭐. 시간 돼요?"
"네."
"그럼 제가 나중에 연락 드릴게요."
미영이 전화를 끊었다. 벌렁거리는 심장이 주체 되질 않는다. 마음이 오락가락한다. 다음 해엔 좋 은 일만 있으라는 액땜인 건지 올해 연말은 엉망 이다.
미영은 방 불을 끄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복잡한 생각이 퍼지기 전에 잠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