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인반고양이 전정국과 아슬한 동거 05 고양이 습성 반, 인간 습성 반이 섞여서 그런지 종잡을 수 없는 정국이다. 그렇게 나가고 싶어서 신났던 정국이는 내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를 타는 순간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기 바빴다. "정국아, 긴장했어요?" 내 말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아니라고 말을 했지만, 정국이의 손에서 땀이 흘렀다. 그런 정국이가 혹시나 긴장해서 고양이로 돌아가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잡은 손을 더욱 세게 잡았다. 긴장한 정국이는 엘리베이터에 두고 내렸는지, 바깥공기를 킁킁거리면서 맡는다. 금세 기분이 좋아졌는지 내 손을 잡고, 어린아이처럼 주변을 바라보았다. "주잉, 여기 여기 너므 큰 나무 이써요. 와, 지짜 크다. 꾸기보다 더 커. 꾸기 여기 올라가고 시퍼, 주잉."
고양이들이 나무를 잘 탔나? 순간 멍해진 틈에 정국이는 내 손을 놓고, 나무를 양손으로 잡았다. 사실 정국이랑 하는 첫 외출이라 언제 어떻게 고양이로 변할지 몰라 걱정되는 마음에 빠르게 손을 잡아챘다. "정국아, 그렇게 혼자 돌아다니면 다음부터 외출 못해요. 손잡아. 얼른." "주잉, 화나써? 미아내. 그냥 저거 너므 신기해서, 신기해서 그래써요. 안 그러께요." 앞으로 외출이 없다는 말이 무서웠는지, 아니면 내 표정이 무서웠는지 급히 꼬리를 내리곤 내 손을 잡는 정국이였다. 오늘은 네가 고양이로 변하는지, 안 변하는지 알려고 나왔다는 주의를 주고는 얌전히 거리를 걸었다. 그동안 못 보던 벤치도 생겼다. 그곳에 앉혀놓고, 주변에 맛있는 음식점을 찾으려고 핸드폰을 뒤적거리는데 정국이가 조용해져서 고개를 돌리니 이상한 물병을 들고, 냄새를 맡고 있었다.
"정국아, 너 이거 어디서 났어? 버려, 얼른. 더러운 거야." "냄새가 이산해, 주잉. 내가 마시는 물이랑 다르다. 상해써." 정국이에게 목이 마르지 않냐고 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인다. 정국이 손에 들린 물병을 받아들고, 주변 쓰레기통에 버렸다. 아마 우리 전에 앉았던 사람이 버리고 간 거겠지? 이런 걸 길고양이들이 마시고, 아픈 거겠지. 자기가 먹은 건 바로 버려야지 왜 이렇게 무단투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보지 않고 있었으면 정국이도 저 물을 마셨을거다. 혹시나 이 상태에서 아프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기에 더 화가 났다. 그 화는 고스란히 정국이가 느꼈다. "주잉, 꾸기가 잘 모태 써. 앞으로 저런 거 앙 만지께요. 화 푸러요, 주잉." 정국이가 사과할 일은 아닌데 들려오는 귀여운 사과에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들려오는 말에 미소뿐만 아니라 심장도 요동을 쳤다. "주잉이는 이케 우스면 더 예뻐. 꾸기가 매일 웃게 해주고 시퍼." 정국이를 데리고, 근처 식당에 갔다. 정국이를 돌보는 사이에 리모델링 된 밥집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뭐가 그렇게 신기한지 여기저기를 둘러본다. 귀여워. 곧이어 우리가 시킨 밥과 반찬이 연달아 나왔다. 정국이는 내 눈치를 살피다가 내 밥그릇 위에 햄을 하나 올려줬다. "주잉, 꾸기가 좋아하는 해미야. 햄. 그거 먹고 우서요."
그 말을 끝으로 정국이는 고개도 들지 않고, 밥을 먹었다. 아니, 밥을 들이켰다고 해야지. 체할까 봐 천천히 먹으라는 내 말에도 뭐가 그렇게 맛있는지 잘도 먹는다. 집에서도 그런 모습을 자주 봐서 설마 체하겠어, 하는 생각에 나도 밥을 먹었다. 그동안 정국이는 별말없이 내 손을 잡고, 계산대로 함께 갔다. 만 천 원이라는 말에 카드 대신 현금을 드렸고, 카운터에 계신 아저씨는 나와 정국이를 번갈아 보면서 잘 어울리는 커플이라고, 천 원은 빼어 드릴 테니깐 잘 가라는 말씀을 하셨다. 정국이는 그 말을 알아들었는지, 아니면 식사가 맛있었는지 별말은 없이 웃었다. 집까지 가는 거리는 생각보다 가까웠다. 아까는 공원을 걸어서 갔기에 꽤 오래 걸렸다. 집 앞에 다다르자 정국이는 들어가기 아쉬운 듯 자꾸 뒤를 돌아봤다. "왜, 정국아? 더 놀고 싶어요?" "아니야, 주잉. 오느른 드러 가자." 평소 정국이 성격이라면 더 놀고 가자고 생떼를 부렸을 텐데, 순순히 집으로 들어갔다. 아니, 정국이가 먼저 내 손을 끌고 들어갔다. 놀고 싶은데 많이 피곤했나 보다. 집에 도착한 정국이는 내가 말하기도 전에 먼저 씻으러 들어갔다. 물소리가 들렸고, 정국이가 입을 옷을 꺼내러 방에 들어갔다. 하얀 무지 티에 긴 트레이닝복을 문 앞에 걸어두었다. 다행스럽게도 정국이는 고양이로 변하지 않았네. 이제 더 이상 변하지 않는 건가? 하는 생각에 잠겨있을 때쯤, 정국이가 좋은 향을 풍기면서 내게 다가왔다. 촉촉하게 젖은 머리가 이상한 상상을 하게끔 만드는 그런 외모였다. 고양이로 변한다는 문제만 없었어도 정국이는 아마 유명인사가 됐을거다. 오늘따라 말이 적은 정국이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 의자에 앉혔는데, 몸을 돌려 내게 안기는 자세를 해버렸다. "주잉, 나 놀래켜조." 뜬금없는 정국이의 말, 그리고 내게 안겨있는 정국이 덕분에 내가 더 놀랬다. "그게 무슨 소리야, 정국아. 이거 놓고 말..." "나 주잉이랑 떨어지기 시러서 그래. 얼른, 주잉." "떨어지다니? 설마 버릴까 봐 그런 거면 걱정 안 해도 되는데... 내가 정국이를 왜 버려요. 아니야, 그런 거." "안니, 그냥 놀래켜조. 꾸기 때려도 괜찮고, 묶어놓고, 가둬도 대. 지짜야, 주잉. 소리 안 지르께." 도통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정국이를 가만히 안아주자 배 언저리가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암호닉] 받습니다. 암호닉 정리는 다음편에서 할게요. 전에 달아주신 분들은 사라진 암호닉이 아니니깐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