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사랑 vs 첫 사랑
w. 비이
도대체 술을 얼마나 퍼부었길래 머리가 찢어질 것처럼 아픈 걸까. 난 오늘의 내 모습을 보며 어제의 나를 저주했다. 하지만 뭐 어제의 미련했던 내 덕분에, 나의 무서운 술 버릇을 알게 되었으니 나름 개이득?
김여주 님께서 최악의 술 버릇이라는, 필름 끊기기를 시전하셨습니다.
하...아무리 머리를 쥐어뜯어도... 기억이 안 나...
동혁이랑 승완이랑 조잘조잘 수다 떠는 모습을 본 게 내 기억의 마지막이었다. 깨어보니 집이었고, 난 내가 어떻게 집에 왔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정신 나갔네, 정신 나갔어. 아무리 제 머리를 쥐어박아도 수면아래로 가라앉은 기억은 더 떠오르지 않았다.
뭔가 실수 한 거라도 있으면 어쩌나 싶어 걱정 된 마음에 승완이에게 톡을 보냈다. 하지만 아직 자는 건지 깜깜 무소식... 전화라도 한통 해볼까 싶어 통화 기록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왜 때문에 내 폰에 그것도 새벽에 이민형과 통화한 내역이 남아 있는 거죠? 저장도 하지 않은 이민형의 번호가 그의 이름으로 저장된 채 있는 거죠? 네? 누가 대답 좀 해달라고요!!!!!
아무래도 뭔가 대단한 실수를 저지른 게 틀림이 없었다. 찜찜해... 아 찜찜해... 뭐지... 이민형과 왜 전화를 했던 거지? 싸우기라도 했나? 나 막 이민형한테 욕하고 그런 거? 도대체 뭐지... 뭐야...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괴성을 질러댔지만 조금 전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떠오르지 않던 기억이 불현듯 떠오르는 그런 기적 따위가 일어날 리는 없었다.
첫사랑 vs 첫사랑
오전 강의가 없어서 느지막하게 학교로 향했다. 시간표가 같던 승완이에게서 연락이 온 것도 그쯤이었다. 나만큼이나 어제의 행보를 궁금케 하는 쉰 목소리의 그녀와 통화를 하며 버스에서 내렸다.
"나 어제 술 많이 마셨어?"
[어제 들이부었지, 너.]
"넌 안 말리고 뭐 했냐? 친구라고 하나 있는 게..."
울먹이는 내 목소리에 승완이는 억울하다며 앓는 소리를 냈다.
[야, 너 누가 말리고말고 할 틈이나 줬냐? 단 시간에 소주 2병을 비웠는데. 동혁이랑 이야기하다 정신 차리고 보니 너님 이미 회생 불가능 상태였어.]
"헐... 나 그 정도였어? 2병 이라니, 나 진심 미친 거 아냐?"
[그래도 민형이가 너 집 어딘지 안다고 챙겨서 다행이었지.]
"... 녕이가?"
[그래. 민형이가 네 가방이랑 옷이랑 다 챙겨서 나갔잖아. 너도 민형이가 예전에 옆집 살아서 너네 집 잘 안다고 깔깔거리면서 따라갔고. 너 민형이랑 엄청 친해 보이던데?]
"내가... 제대로 돌았구나. 친구야, 내 이번 생은 여기까지인가 보다. 그동안 고마웠다..."
[뭐래? 정신 차려, 이년아. 너 설마 기억 안 나는 거야? 필름 끊어진 거? 한 번도 그런 적 없었잖아. 하긴 어제 너 많이 마시긴 했어.]
"이제 와서 후회하면 뭐 하겠니... 난 이만 마포대교로 발걸음을 옮기련다... 내 몫까지 행복하게 잘 살아..."
그때 누군가 내 뒤통수를 치고는 내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근처에 있었던 것인지 승완이가 전화를 끊고 실물로 나타났다.
"정신 차리라고. 필름 한번 끊어졌다고 우는소리 하긴."
승완이의 말이 별 위로가 되지 않았다. 독하게 마음먹고 모질게 대해 그를 동아리에서 몰아내도 시원찮을 판에 친한 척을 했다고 내가? 미쳐도 제대로 미쳤다. 오늘에서야 난 내 진짜 정체를 알아버렸다. 난 재활용도 안되는 쓰레기였던 거다.
이민형과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와 마주치면 곤란할 것 같아 오늘 하루 무작정 그를 피해 다녔다. 이민형이 어딨는지 내가 어떻게 알고 피하겠냐만은 동방을 가지 않는 것과 중앙 식당을 가지 않는 것 그리고 이민형이 있을 공대에 가지 않는 것이 내 작은 발악이었다.
하지만 그런 내 노력이 허무하게도 승완이 없이 혼자 듣는 마지막 수업이 끝나는 시간, 그 강의실 앞에 서 있는 이민형과 맞닥뜨렸다.
나 보러 온 거 아닐 거야. 이 강의를 듣는 친구가 있어서 정말 우연히 온 거겠지. 타과 교양이잖아.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난 모른 척 그럼 내 갈 길을 가볼...
"김여주."
이 새끼가! 하지만 어제의 일이 기억이 나지 않는 나는 일단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기로 한다.
"말이 짧다?"
"그럼 뭐라 불러야 하는데?"
"선배...는, 지금은 동기니깐 좀 그렇고... 누나?"
"너 빠른 이잖아."
"너? 너?"
내가 정색하며 콧김을 뿜어내고 있는데 이민형이 그런 내 모습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갑자기 내 손을 덥석 잡았다.
"가자, 밥 안 먹었지?"
"어머, 야 너 뭐야. 안 놔?"
"입 다물면 놓을 게."
"입 다물면? 다물면? 누나한테 말하는 본새 봐, 이게."
"누가 누나야. 그리고 입 다물면 놓는다고 했는데 자꾸 말하는 건 놓지 말라는 의미로 받아드려도 되는 거지?"
놓기는커녕 내 손을 더 세게 욱여잡은 이민형이 학교 밖으로 나와 스파게티 전문점으로 날 데리고 갔다. 그리고 그제야 잡은 손을 놓았다.
"너 뭐 하자는 거야."
"내 말 실천하는 중이잖아."
"녕아... 오해하지 말고 들..."
"주문부터 하자. 여기 알리올리오가 맛있대. 그거랑 까르보나라 시킬까?"
"너? 호칭 제대로 안 할래? 어?"
"어, 안 해."
"너 원래 이런 애였어?"
"여기요, 주문할게요."
내 말은 더 듣지도 않고 주문을 마친 이민형이 손깍지를 끼고 말없이 날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이제 할 말 있으면 해보라는 의미 같았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그러니깐 내가 그... 기억이 안 나. 그러니깐 어제 내가 너한테 혹시 말 까도 된다고 허락이라도 해줬니? 그래서 이래?"
내 말에 이민형의 인상이 살짝 굳었다. 뭐야, 정말 내가 허락이라도 해준 건가? 그래서 저런 반응 보이는 거야?
"김여주답다. 예나 지금이나 참 사람 힘들게 한다."
"뭐, 내가 뭐! 어제 내가 무... 뭐 했는데."
"뭐 안 했어."
"근데 왜! 나 아무것도 안 했다면서 왜 사람 힘들게 한다 만다 해?"
"내가 했어."
"응?"
"내가 했다고."
"뭘?"
"고백."
얼굴이 화르르 달아올랐다. 내가 잘못 들은 걸까 싶어 놀란 토끼눈으로 이민형을 쳐다보는데 그의 눈빛에 흔들림이 느껴지지 않았다.
"뭐... 뭐 무슨 고백? 나한테 말 깐다고 고백이라도..."
"이민형이 김여주를 좋아한다고, 말했어. 그게 어제 내가 한 고백이야."
첫사랑 vs 첫사랑
음식 주문도 했고, 그 음식이 테이블 위에 막 나온 상태였는데 난 그 모든 걸 그대로 둔 채, 심지어 이민형도 그대로 둔 채 도망치듯 가게를 빠져나왔다.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어안이 벙벙했다. 고백이라니, 그것도 이민형이.
불현듯 정수정이 스치듯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근데, 이민형 말이야."
"응?"
"나 사실 고등학교 때도 조금, 정말 아주 조금 생각해보긴 했는데 말이야."
"무슨 말인데 이렇게 뜸을 들여?"
"걔, 너 좋아하는 거 아냐?"
미친, 대미친, 정수정 자리 깔아라.
그나저나 이민형은 언제부터 날 좋아했던 거야? 고등학교 때부터? 설... 마... 대학 와서 예뻐진(이라 쓰고 화장빨이라 읽는다.) 내 모습에 새삼 반한 건가? 나 대학에서 좀 먹어주는 거?
아아,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지금. 이제 이민형 얼굴을 어떻게 봐...
근데... 나... 민형이 고백에 뭐라고 대답한 거야?
그제야 현실적인 궁금증이 밀려왔다. 그 순간 강의실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내 손을 잡던 이민형의 모습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리고 휴대폰에 남아있던 새벽에 한 통화기록까지도.
나... 술김에 고백받아주고 막, 그런 거 아니겠지? 나 그렇게 쉬운 여자 아닌데... 설... 마... 아니겠지? 아닐 거야...
나 자신을 믿지 못해...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집에 와서 다시금 머리를 쥐어뜯었다. 내 영혼을 갈아 넣은 간절한 기도를 제발 하늘이 들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제발!!! 기억해내라고 김여주!!!
@@
1.
여주는 기억하지 못하는 민형이의 슬픈 고백-☆
정수정이 자리 깔 게 아니라, 여주가 눈치를 좀 키워줬으면...또르르...
2.
5편도 초록글에 올랐답니다~
매편 늘어나는 댓글에 기뻐 널뛰고 있어요^^
항사 감사드립니다~
♥
암호닉 (신청은 최신글에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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