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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갑찬 여자 전체글ll조회 1169l 1
다음 날, 나는 해가 뜨자마자 파출소에 가서 아이를 찾는 사람이 있었는지 물어보았지만 경찰들은 조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했고 결국 내가 2시간을 기다려 들은 말은 겨우 "그 지역에서 그런 아이를 잃어버렸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였다. (그 말도 차갑게 굳은 내 얼굴을 보고 겁을 먹은 막내가 말해준 것이였다.)

벌써 8시. 곤히 잠든 아이를 깨우기 미안해서 두고 나온 것이 문뜩 후회가 되어 나는 빠른 걸음으로 서를 나왔다.

-전화 왔나 궁금해요? 그럼 5백ㅇ..

"여보세요, 병헌이형?"

-어 야, 너 어디냐. 나 지금 이찬희 끌고 너희 집으로 가는 중인데.

"저 지금 서 들렸다가 가는 중인데 여기 수족관 용품 파는 가게 앞이예요."

-창현이는?

"..재워두고 혼자 나왔어요."

-뭐? 빨리 가! 애 깨어있음 어떡하려고 !

"네. 알았어요, 끊어요."

형의 전화를 받고 더욱 불안해진 나는 집까지 3분도 안 걸려 도착했다. 비밀번호를 누르는데도 손이 얼어 몇번이나 실패를 하고 겨우 문을 열었다.

"창현아!"

아이는 일어나 있었다.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유리를 통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 침대 옆 내 방 한쪽 면은 통유리로 되어 한강이 한눈에 보인다.)

"창현아..뭐 보고 있어?"

"......"

아이는 나를 올려다보았다. 햇빛을 받고 있는 아이의 피부는 투명하다 못해 위태로워 보였다. 붉은 입술과 붉은 눈. 자칫 뱀파이어처럼 보일 수도 있었지만 창현이는 그렇게 강인해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한, 깨질 듯한 그런 모습이었다.

-띵 문이 열립니다.

"안다니엘!"

생각보다 형들은 일찍 도착했다. 아마 나랑 통화한 뒤 불안해서 미친 듯이 속력을 냈겠지.

창현이를 안고 나가니 병헌이형은 호들갑을 떨며 내게서 아이를 데려갔다.

"이그~ 귀여워. 난 너가 남자애라는 게 너무 아쉽다. 너가 여자면 커서 형한테 시집 오는건데."

아이한테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찬희형, 손에 그건 뭐예요?"

"먹을 거랑 옷."

"선배, 아침 안 드셨어요?"

"너는?"

"저는 아침에 경찰서 갔다오느라고 아직 못 먹었어요."

"그래, 나도 아직."

선배는 내게 봉투를 넘겼다. 한 봉투 안에는 애기 옷과 다른 봉투 안에는 햇반, 참치캔, 작은 봉투에 담아파는 김치, 컵라면, 삼다수, 담배... 담배?!

"형! 이 담배 누가 사온거예요?"

"어? 그거 이찬ㅎ...아니 아니 내가 샀어!"

담배연기도 못 맡는 병헌이형이 담배를 샀다고 연기하는 모습을 보아하니 또 찬희선배가 샀겠지. 내가 그렇게 끊으라고 얘기했는데..

담배. 찬희 선배는 작년부터 담배를 다시 피기 시작했다. 본인 스스로 말하지는 않지만 여기 저기서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대학 입학과 동시에 사귀던 여자친구가 군대도 꼬박 기다려놓고는 제대 후 만남 중에 몰래 바람을 피웠고, 모르는 척하며 먼저 말해주길 기다리던 선배에게 헤어지자고 했단다. 그 일로 찬희 선배는 그 여자친구와 사귀는 동안에 끊었던 담배를 다시 붙잡게 되었다고. 건강에 안 좋다고 그렇게 말해도.

그래도 한동안 안 피는가 했는데...

"야 안다니엘, 애 머리에서 이상하게 떨어졌어!"

"네? 뭐요?"

전자레인지에 햇반 뚜껑을 까서 돌리다 병헌이형이 큰 소리에 거실로 나갔다.

형은 빛나는 작은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뭐야, 빛나잖아, 이거."

얇고 빛나는 비닐 조각. 빛을 반사해 무지개빛을 띄고 있었다. 아. 어제 내가 본게 헛게 아니였구나.

갑자기 뭔가 멍해졌던 정신이 돌아오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뭔가 홀렸었던 것 같다. 이제 막 새내기 티를 벗으려는 어린 대학생 신분에 어린 아이를 집에 데리고 온 것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나는 제정신이 아니였던 것 같다.

'이것도 너에게 잘 보이기 위한 행동이었을까.'

"창현아, 이게 뭐야?"

병헌이 형의 질문에 계속 눈만 꿈뻑거라는 아이.

"그런다고 애가 알겠냐. 보아하니 말도 못하는 것 같고 가끔 몇몇 단어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같은데. 아가, 이리 와봐."

쇼파에 누워있던 선배가 창현이를 무릎에 앉혔다. 여전히 눈을 깜빡깜빡거리는 아이와 그런 아이의 눈을 지긋이 들여다 보는 선배. 한참을 그 자세를 유지하던 선배가 정적을 깬 말은.

"아, 배고프다."

"배부르면 배부른대로 기분 나쁘고, 배고프면 배고픈대로 기분 나쁘고, 살 맛이 안난다."

"선배, 어제 못한 이야기요.."

"구상?"

"네. 그냥 제가 스스로 할게요. 어제보니까 선배도 요새 힘드신 듯 한데 제가 괜히 귀찮게 하는 것 같아서요."

"그치, 요새 이찬희가 어떤 의뢰인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긴 하지. 어찌나 까다롭게 구는지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 속까지 새카맣게 태우더라니까. 아니, 이 수조나 저 수조나 다 똑같지, 뭐가 그렇게 복잡해."

"하지마."

"그정도예요? 어떤 건데요?"

"못생기고 뚱뚱한 아줌마가 55평 집에 들어갈 만한 큰 벽걸이 어항을 만들어 달라고 하잖아. 내가 이쪽 전문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하지말라고 했다."

-전화 좀 받아, 이 멍청한 바보야.

선배의 담담한 듯 화난 목소리가 끝나는 동시에 병헌이형의 전화벨이 울렸다. 형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자리를 피했다. 선배와 나 단둘이서 남겨진 자리에는 딱딱한 기류가 흘렀다.

아까부터 밥먹을 때까지 찬희형의 무릎에 앉아있던 창현이가 굳어있는 선배의 미간 사이에 손을 댔다. 고개는 절레절레. 선배는 창현이의 마음이 들렸는지 조금 누그러진 표정으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무뚝뚝한 사람. 알고보면 정 많은 사람.

"선배."

"..........."

"너무 힘들면 가끔씩 셔주는 것도 좋아요."

"니가 걱정할 일 아니야."

"걱정할 일이죠! 선배가 아프다는 데 내가 어떻게 걱정을 안해요. 선배, 얼마 전에도 아픈데 병원 가지도 못하고 혼자 집에서 앓았다던데. 전화라도 하지 그랬어요. 아플 때 혼자 있는게 제일 외롭고 미련한 거예요!"

"....니엘ㅇ.."

"야, 안다니엘, 이찬희! 어떡해? 내일 민수형 온대.."

"네?!"

"우리 누나 혼자 한국 보낸게 후회된다며 오겠다잖아. 그냥 거기서 일이나 하면서 기다리지, 왜 이 땅까지 찾아오냐고.."

나는 찬희형의 눈치부터 살폈다. 바람난 이찬희의 여자친구. 이병헌의 누나. 이서언과 방민수.

내 예상대로 선배의 얼굴은 돌아올 수는 없는 어둠에 빠져있었다. 아직도 못 잊은 걸까.

창현이가 꼬물꼬물 어린 손으로 찬희형의 미간을 펴보지만 아까와 같은 무게의 어둠이 아니였다.어린 아이의 손도 이기지 못하는...

"준비됐냐? 심호흡 좀 하고."

"민수형, 몇시 비행기라고 했죠?"

"4분 남았어, 도착까지. 너도 쟤 옆에 가서 앉아있어."

긴장으로 온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간 병헌 선배가 모자를 푹 눌러쓰고 다리까지 꼬아가며 의자에 앉아있는 찬희 선배쪽을 가르키고 있다. 옆에 다가가도 되는 걸까. 조심스럽게 옆자리에 앉았다. 내가 앉는 기척이 났을 텐데 선배는 조금의 미동도 하지 않았다.

"선배, 괜찮아요?"

"뭐가."

"....아녜요."

고개를 돌리려고 하는데 찬희형 오른쪽에 앉아서 공항을 이리저리 구경하고 있던 창현이와 눈이 마주쳤다.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는 아이. 나는 미소를 지으며 따라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나는 창현이에게 내 옆으로 와달라고 손짓하였다. 무슨 의미인지 못 알아들었는지 한참을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아이는 마침내 의미를 깨달았고 해맑게 의자에서 내려와 내 쪽으로..오려던 순간 찬희선배가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를 끌어안아 올렸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찬희선배를 보는 창현이와 모자의 그늘 속으로 누군가를 날카롭게 바라보고 있는 선배의 눈.

"어, 찬희도 다니엘도 오랜만이야! 다들 내가 보고 싶었지?"

"형, 가방 주세요!"

"이병, 너는 오바 좀 하지마."

"....형, 반가워서 ㄱ..."

"아닌 거 다 티나니까 닥쳐."

말은 그렇게 하면서 가방을 병헌이형 손으로 옮겨준 민수형은 능글맞게 웃으며 찬희 형 앞으로 다가왔다.

"이찬희, 얘는 누구냐? 일년 사이에 어디가서 사고라도 쳤냐? 너 닮아서 이쁘네."

민수형이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하자 고개를 돌리는 창현이와 아이를 뒤로 빼는 찬희 선배.

"제가 낳은 아이 아닙니다."

"그래? 그럼 사촌동생인가? Hello, 다니엘. 못본 새 더 곱상해졌네. 사내새끼가 말이야."

"안녕하세요, 민수 선배."

이 순간 찬희선배가 내 쪽을 힐끗 본 것 같지만.. 내 기분 탓이겠지.

"야, 니네 이사 안갔지? 아, 배고프다. 집에 가기 전에 밥부터 먹자. 이병, 서언이한테 연락해."

"네? 네.."

자리는 굉장히 어색했다. 나와는 초면인 여자와 구면이지만 썩 기분 좋은 사이가 아닌 찬희형과 커플. 이 커플은 서로 소근소근 애정을 나누고 있었고 찬희 선배는 그 모습을 죽일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사업일로 전화할 곳이 있다며 자리를 피한 병헌이형. 나는 아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창현이는 나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아이의 표정에 '왜?'라고 입모양 해보지만 아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뿐 말을 하지 않았다.

문득 내 눈에 밟힌 아이의 눈동자. 원래 붉다는 건 알았지만 이제는 아예 뱀파이어 마냥 빨갰다. 아이는 하얀게 뜬 자신 입술을 손가락을 가르켰지만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내가 고개를 갸우뚱 거리니까 머리가 바짝 선 아이는 숨을 깔딱깔딱 거렸다.

"하아.. 여기 물 좀 주세요."

찬희형이 벨을 누르고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떠나 다른 사람과 행복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참고 보고있는 것도 다행이였다.

웨이터가 주전자를 가지고 와 물컵에 물을 따랐다.

"하..하...!"

그 모습을 본 창현이가 몸을 버둥거렸다. 얌전하던 아이가 테이블을 때리며 뭐가를 갈망하고 있다.

"여기요, 여기도 물 좀!"

"아...네!"

웨이터가 물을 따르는 중에도 아이는 기다리지 못하고 계속 버둥버둥 거렸다. 아이가 발로 테이블을 찼고 그 충격에 놀란 서언이라는 여자가 비명을 질렀다. 나는 혹시라도 물을 쏟을까 아이를 내 무릎에 앉힌 후 팔을 꽉 잡았다. 아이는 내가 팔을 꽉 잡은 것에 대한 아픔도 느끼지 못한 듯 했다.

"어? 창현이 왜그래?"

타이밍 맞게 들어온 병헌이형이 창현이의 모습을 보고 내게 물음을 던졌다.

"형, 내가 애 꽉 잡고 있을테니까 창현이 물 좀 먹여주세요."

"..응...응.."

병헌이형은 당황한 얼굴로 유리컵을 조심스럽게 아이의 입에 가져다댔고, 천천히 물을 아이의 입에 흘러 넣어주었다. 조금씩 진정을 찾아가는 아이..

"뭐야. 애기 왜 그래?"

여자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놀란 나와 창현이 대신 병헌이형이 잘 모르겠다고 대답해주었다. 곧 아이는 완전히 안정을 찾은 후, 내 품에 얼굴을 묻었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옆을 곁눈질했다. 찬희 선배도 조금 놀란 눈으로 창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이 불편한 자리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저기, 보신대로 아이가 좀 아파서 먼저 가봐야할 것 같아요. 선배는 병헌이네로 가실거니까 저랑 다니엘은 이만 빠질게요."

"야...야 이찬희, 나는?"

"그래, 가봐. 다니엘도 놀란 것 같은데.."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 찬희 선배가 먼저 말을 꺼냈고 나는 민수 선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창현이를 안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왔다.

택시를 기다리고 있는데 선배가 뒤따라나왔다.

"니엘아, 괜찮아?"

"저는 뭐... 창현이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조금 놀랐을 뿐.."

"...너희 집으로 가자."

"네?"

"나 당분간 일 없어. 좀 여유롭게 지내도 될 것 같다."

나는 그 말의 의미를 택시에 나란히 타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 당분간 일 없어. 너희 집에서 너 도와서 같이 창현이 돌볼 수 있을 것 같다.'

선배는 이미 내 마음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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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진짜재밌어요!!다음편기대할게용^^*
11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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