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자의 귀환 (섹스피스톨즈세계관)
w. 비이
*인트로 있어요. 안 읽으신 분들은 인트로 먼저 읽어주세요^^
http://instiz.net/writing/3606217
(과거 이야기는 회색으로 현재 이야기는 검은색으로 표시해요.)
'그'는 중종 중에서도 최상위 계층인 호랑이와 호랑이 사이에서 태어난 순혈 호랑이었다. 그리고 난 그런 대단한 그의 집안일을 돕는 부모님 아래서 자랐다. 같은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같지 않았고, 같은 학교를 다녔지만 이 역시 같지 않았다. 그와 나는 물과 기름보다 더한 결코 섞일 수없는 그런 관계일 뿐인 것이다.
보통 중종과 경종은 상하 수직관계에 의한 대화 말곤 사적인 말을 섞을 일이 거의 없다. 그렇기에 나는 그와 같은 집에 거주하고 같은 학교를 다니면서도 그다지 얼굴을 마주할 일도, 대화를 나눌 일도 없었다. 그랬기에 난 그가 내 얼굴조차 모르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태어날 때부터 귀한 운명을 가진 그는 그것만으로도 이미 대단한데 사춘기를 거치며 그런 그에게서 백호가 발현되었다. 그에 미국으로 건너가 그는 이런저런 검사를 받기에 이르렀다. 처음부터 백호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성장 중 백호가 발현된 것은 희귀한 경우였기에 전 세계 반류가 그를 주목했다. 흔히 원인들이 알고 있는 진짜 동물 백호는 약한 존재라고 칭해지지만, 반류에서 백호는 순혈 중에서도 가장 고결한 순혈에 속했고, 그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귀한 이였다.
그리고 모든 일은 그로 인해 시작되었다. '그'에게 백호가 발현된 그 순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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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뜩 젖은 교복은 훌훌 털어낸다고 해결될 수준이 아니었다. 손으로 꽉 움켜쥐면 물기가 뚝뚝 흘러내렸다. 교복뿐이면 다행이겠지만 이미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흠뻑 물에 적셔진 상태였다.
남학생들은 앞에서 대놓고 괴롭히지만 이렇듯 여학생들은 제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채 야금야금 날 괴롭혀댔다. 화장실에 들어간 내 머리 위로 물을 붓는 일은 예사다. 그랬기에 항상 여분의 교복을 교실에 배치해두어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얇은 하복 아래에 속옷 자국이 여실히 드러나는 건 예상 밖의 일이라 선뜻 밖으로 나가는 게 꺼려졌다. 하필 오늘 색이 진한 속옷을 입을게 뭐람. 내 입에선 자연스레 한숨이 흘렀다.
그렇다고 오래 고민할 시간조차 내게 주어지진 않았다. 곧 수업 시작 종일 울릴 테고 내 모습이 어떤 상태이든 난 여기서 나가야 했다.
당당하게, 이럴수록 난 더 고개를 꼿꼿하게 들었다. 어쭙잖은 행동으로 내 이런 모습을 굳이 감추려 하지도 않았다. 열아홉, 한창 예민하고 부끄러움을 아는 나이이지만, 그걸 내색하지 않는 게 내 남은 자존심이기도 했다.
힐끔힐끔 거리는 남학생들의 시선이 집요하게 날 따라왔고, 수근대는 여학생들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울렸지만 아랑곳 않았다.
조금만 더, 몇 걸음만 더 가면 교실이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참자. 잘하고 있어, 김여주.
그렇게 힘주고 이를 악물어 걷는 데 내게로 향했던 시선과 수근거림에 갑자기 일제히 멈췄다. 마치 시간이 멈춘것처럼 모든 것이 얼음이 되어버린 듯 멈춰버렸다. 주변 공기마저 싸했고 건물 안임에도 사늘한 바람이 약하게 부는 듯한 착각마저 일었다.
아니, 이건 착각이 아니다. 이 느낌은, 그래... '그'다.
살짝 고개를 돌려 본 그 곳엔 내 예상대로 그가 서 있었다. 반류들위의 반류, 가장 귀한 순혈인 백호, 이민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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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은 날 보는 그의 눈빛을 마주하며 난 마치 알몸이 된 것 같은 수치심에 몸을 떨었다. 모든 걸 꿰뚫어 보는 듯한 그를, 난 그저 보는 것조차 버겁기만 했다.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곧 쓰러질 것 같은 몸을 지탱하고 있는 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자존심을 챙기고 버티고 내색하지 않는 건 다른 중종들에게나 가능할 뿐, 그는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나있었다. 내게 있어 거부할 수 없는, 그러나 거부해야 하는 존재가 이민형이다.
내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그 순간 멈춰버린 시간의 흐름을 끊어내듯 내 어깨 위로 후드 집업 하나가 걸쳐졌다.
"여름 감기 무서워. 그 꼴로 있다가 감기 걸린다, 너."
다정하게 웃으며 내게 후드 집업을 건넨 이는 같은 반 이동혁이었다. 혼현이 다람쥐인 그는 나와 같은 경종이지만 유일하게 중종들의 타깃이 된 날 멀리하지 않고 여전히 챙기는 친구였다. 그랬기에 이 학교에서 내가 마음을 터놓고 지낼 수 있는 단 한 명이었다.
팔 하나하나를 끼고 후드집업을 제대로 입자 이동혁이 지퍼를 채워 목 끝까지 올려주었다. 그 모습을 이민형은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난 그 침묵이 두려워 서둘러 고개를 돌리고 몇 걸음 남지 않았던 교실을 향해 도망치듯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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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새 교복으로 갈아입고 교실로 돌아오니 이동혁이 후덥지근한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따뜻한 음료를 내게 건넨다.
"괜찮아. 이 정도 일이야 뭐, 자주 있었잖아."
"그거 말고... 이민형 돌아온 거, 괜찮냐고."
"...아... 안 괜찮을 건 뭐야. 너야말로 괜찮겠어? 이민형 앞에선 나 감싸지마. 그러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그래, 내 코가 석잔데 누가 누굴 챙기고 걱정해. 사실 이동혁은 그냥 경종이 아니다. 아버지가 중종 중에서도 꽤 높은 지위에 있는 사자였기에 함부로 그를 대하는 이는 잘 없었다. 중종인 아버지가 경종인 어머니와 집안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강행했고, 이동혁을 낳았다고 들었다. 하지만 타고난 조건이 다른 경종과 중종의 결합은 경종에게 너무나도 버거운 일이었고, 몸이 약했던 이동혁의 어머니는 이동혁을 낳다 돌아가셨다고 한다. 결국 그의 아버지가 어린 이동혁을 홀로 키우기가 힘들어 본가로 데리고 들어가셨기에 이동혁의 뒷 배경은 중종이나 다름없었다. 그랬기에 경종 중에선 그 누구도 그를 건들 수없었다. 그리고 중종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동혁만 두고 본다면 내게 하는 린치를 그에게도 할 법하지만, 그의 아버지 때문에 다들 조심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늘 그렇듯 이 모든 건, 이민형에겐 제외다. 이 학교의 모든 법과 규칙은 이민형에 의해 만들어진다. 미국을 가기 전 이민형은 이동혁의 행동을 어느 정도 묵인해줬지만 언제 마음이 바껴 이동혁마저 괴롭힘의 대상 위에 올려둘지 모르기에 그게 조금 두렵긴 했다.
이미 이민형으로 인해 피폐해진 나와는 달리 내 하나뿐인 친구 이동혁은 아무 일이 없길, 바라는 건 그거 하나였다.
김여주 인생 참 단출하다. 여고생의 꿈이 그거 하나라니. 하지만 이 이상 더 거창한 꿈을 꾸기엔 내 세상은 너무나 작고 좁았다. 결코 이민형이 쳐둔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는 걸 나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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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다. 그가 전용기로 한국에 도착했다던 소문이 무성했을 때도 집에서 그의 흔적은 전혀 찾을 수 없었다. 그랬기에 난 그게 그냥 뜬소문일 거라 치부했다.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물론 본가와 별채라는 전혀 다른 건물을 쓰고 있지만 그래도 그 귀한 도련님의 귀국 소식은 집안을 떠들썩 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는데 너무나도 조용했기에 난 내 생각에 무게를 더 실었다.
허나, 오늘은 달랐다. 학교에서 그를 보았고, 어쩐지 집에 그가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스쳤다. 그리고 그 예감은 불행하게도 맞아떨어졌다.
거대한 철제 대문 앞에서 서성이는 그의 모습이 내 두 눈에 들어찼다.
그저 스쳐 지나가려는 내 한쪽 팔목을 그가 힘을 거르지 않은 채 움켜잡고 멈춰 세웠다.
"나 없는 동안의 자유는 잘 만끽했어?"
말간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잠깐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눈빛으로 그를 볼 수 있었다. 자유, 그 단어가 내겐 이질적이게 느껴져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내게 진짜 자유를 주고 싶었으면 날 이 집에서 내보냈어야지. 날 그 학교에서 내보냈어야지."
"내보내 주면 너에게 진짜 자유가 생기나? 그럼 보내주고."
사선으로 올라간 입술이 조롱 섞인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그래도 되는 이였다. 그의 말이 모두 사실이니까. 이 지구 상에서 그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을 테니.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진짜 자유가 생기려나?"
감정을 죽인 내 말투에 여유 있게 웃던 그의 입매가 살짝 굳어갔다.
난, 그를 도발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나라는 무기를 사용해, 나 스스로를 상처 입히면 되는 일이었다. 그에게서 벗어나려면 날 죽이면 되는 일이었다.
그래, 난 여기서 벗어날 해답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실행하지 못하는 건,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아직도 내 맘속에 그에 대한 어떤 마음이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지독하게 오래된 짝사랑이라는 마음이.
@@
1.
새 글도 초록글 올려주시고 감사드려요 ㅠㅠ
2.
전 글 쓸 때 김'여주'로 쓰고 있어요.
치환 기능을 설정해두긴 하지만 '시민'이란 이름으로 치환하게 되면 조사 연결이 조금 어색한 부분들이 있더라고요.
참고하세요 ㅠㅠ